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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마이크를 잡은 여성들-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2>
[양근애의 문화톡톡] 마이크를 잡은 여성들-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2>
  • 양근애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0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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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주지 않는 웃음을 위한 시도

지난 626<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렸다. 1999년부터 방영을 시작해 1050회를 찍으며 21년을 장수했지만 마지막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철 지난 콩트도 문제였지만, 누구 보고 웃으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소재의 남발은 시청자의 외면으로 이어졌고 곧 시청률 하락과 폐지로 정리됐다. ‘혐오 콘서트라는 비유로 막을 내린 이 사례는 노인과 성소수자를 비하하고 여성의 외모를 수단으로 삼는 코미디가 웃음을 유발할 것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상에 대한 일종의 경고일 수 있다. 그러나 공중파에서 오래 명맥을 유지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 됐다는 사실 자체는 씁쓸하다. 의식주를 초월한 형이상학적 세계를 지향하는 비극과는 달리, 희극은 일상의 모순과 비판지점을 겨냥하고 사회적 교정 장치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질 좋은 코미디를 선보일 수 있는 더 많은 무대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공중파의 이른바 순수코미디 프로그램은 성찰도 자기갱신도 없이 자기복제만 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지만, 현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웃지 못 할 일들에 대한 풍자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몇 년간 시도된 스탠드업 코미디는 만들어진 상황에서 특정 역할을 연기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코미디언이 자기의 이름을 걸고 대중들의 웃음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에서 백 여 년의 역사를 통해 자리 잡은 대표적인 대중문화이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장르이다. 분장도 하지 않고 소품도 없이 오로지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관객을 웃기는 방식은 코미디언이 자신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위험 부담이 더 크다. 그렇지만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오로지 로 전달하는 방식이 주는 매력도 있다. 어떤 말은 관객을 시원하게 웃게 만들지만 어떤 말은 관객에게 야유를 받고 어떤 말은 공감을 유도하지만 어떤 말은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을 바로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스탠드업 코미디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코미디언은 유병재와 박나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미 유명한 방송인으로서 자기 이름을 걸고 나온 스탠드업 쇼를 선보인 바 있다. 유병재는 2018년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하는 등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유머를 선보여 논란이 되었다. 박나래는 ‘19을 표방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였고 그 흐름을 타고 KBS 2TV에서 201911월에 파일럿 방송으로 시도한 <스탠드up!>를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정규 편성 받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스탠드up!>에 출연한 여러 코미디언도 기존의 코미디와 코미디언으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재활용하는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쉽다. 성별만 바뀌었다 뿐, 혐오의 정서에 기반 한 코미디도 자주 보였다.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지만 <스탠드up!>은 외국인, 장애인 등 출연자 영역을 넓힘으로써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기존 코미디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자 한 점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의 코미디 방식에 기댈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 스탠드업이라는 새로운 코미디 형식의 등장은 무엇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성과 정치라는 성인의 영역을 다루면서 풍자와 조롱의 대상을 제대로 겨냥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관객의 수준을 높게 잡아야하지 않을까. 지금-여기 코미디를 원하는 관객들은 수동적인 관찰자의 자세로 코미디언의 웃기는 역량을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순과 권력자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거리 두기하면서 비판하고 싶어 한다. 관객은 코미디언이 자신이나 타인을 비하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코미디가 아니라 잘못된 관행이나 잘못된 행동 자체를 웃으면서 꼬집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를 상처주지 않고 웃길 수 있는 능력, 누군가를 상처주는 사람에 대한 조롱, 지금 코미디언들에게 필요한 능력은 오로지 그것이다.

20207월에 올라간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 2>은 한국 코미디의 한계 지점을 어떻게 돌파하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웃음을 만들어나갈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3회 페미니즘 연극제에 참여한 이 공연에는 한국 최초의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인 블러디 퍼니의 코미디언들이 절반 정도 참여했다.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소외시키는 이야기로 웃음을 만들지 않는다.’블러디 퍼니의 지향점은 페미니즘과 자연스럽게 만난다. 페미니즘은 소수자의 편에 서서 혐오 표현 자체를 문제시하기 때문이다.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2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2 @박태양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스탠드업 코미디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 2> 이전에 <스탠드업 그라운드업>이 있었다. 2019년 당시 혜화동1번지 7기동인 가을페스티벌 영콤마영(0,0)’에 속해 있었던 이 공연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본다는 낯선 형식 때문인지 올해와 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경지은이라는 연극배우를 다시 보게 만들었고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이 지금-여기의 사회 문제에 천착해 있는 한국 연극과 조우하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공연에 참여했던 최정윤, 최예나, 고은별이 블러디 퍼니에 속해 있다. 당시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공연을 제작했던 엘리펀트룸의 단원이었던 김보은 배우가 공연 직후 블러디 퍼니에 합류해서 스탠드업 공연을 하고 있다. 블러디 퍼니를 만든 코미디언 최정윤은 직접 뉴욕의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 코미디 셀러을 찾아가 코미디 코스를 이수하고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는 스탠드업 나우 뉴욕(왓어북, 2018)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공연에서 최정윤에게 단숨에 눈길을 빼앗겼던 기억이 난다. 그는 자신이 아동 성추행 피해자이고 유학을 다녀와 외신기자로 일하다가 성인용품점을 운영했으며 낮에는 성교육 강사로 일하고 밤에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다고 소개를 했는데, 그 말들을 마치 어제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는데 햄이 많이 들어가서 좀 짰고 빨래를 널어놨는데 오후엔 비가 많이 내렸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심상한 말투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 방식의 조크에 신선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성추행 피해를 수치스러운 일로 숨기고 성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을 하는 것이 마치 좋은 여자의 덕목인 양 살아온 오래 된 관습에 아무렇지 않게 훅을 날리는 기분이었다. 그의 조크는 관객들을 거침없이 휘어잡았다. 별 일 아닌 일들을 나열하면서 잘못된 사회적 시선을 꼬집고 자신의 경험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치부했던 욕망들을 까발리는 솜씨가 능수능란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공감이기도 했고 조소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 각종 성폭력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기억 속에 숨겨 두지 않고 말로 꺼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6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은 자신이 어떻게 해도 여성혐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하기 시작했다.’ 옷을 어떻게 입어서가 아니라 늦게 다녀서가 아니라 남자친구랑 같이 다니지 않아서가 아니라 외진 곳을 다녀서가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공포는 여성이라서 겪는 부당한 폭력을 가시화할 수 있는 힘으로 전환 됐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일 역시 중요하다. 침묵을 깨고 나와 피해 사실을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말하는 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언론의 프레임 안에서 피해자는 모자이크로 혹은 음성변조로 은폐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미투 운동은 해시태그를 달고 나온 ○○계 성폭력에 대한 고발로 이어지면서 성폭력 사건을 가시화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조직화 된 제도권 내부의 부당한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고 자체적으로 시스템의 취약한 지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더디지만 지금은 말을 꺼낸 만큼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사회 안전망을 위협하는 폭력적 사건을 의제화 하는 일부터 일상 속에서 자행되는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성차별주의에 따른 착취와 억압을 깨뜨리고자 한다.

올해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 2>9명의 여성들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은 자신의 성을 여성이라고 정체화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누가 여성인가에 대한 논쟁은 이 글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공연에도 참여한 김보은, 최정윤, 고은별, 최예나, 경지은 외에 권김현영, 에디, 오빛나리, 이리가 합류하면서 3분 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의 출연 소식이 매진의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은 알려진 비밀이지만, 1분 만에 매진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관심이 지금 페미니즘 연극을 향해 있다는 것은 분명히 감지되는 사실이다. 올해 3회째를 맞는 페미니즘 연극제에 대한 관심만 봐도 그렇다. 페미니즘 이슈를 다룬 공연에 기꺼이 티켓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이 많다는 것은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페미니즘이 널리 퍼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성폭력이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며 대중들이 성폭력에 관한 개인의 경험을 말하고 서로 공유하면서 대중의 일원으로서 자아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이 공연의 참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올해 스탠드업 공연이 작년 공연과 달라진 지점이 있다면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모든 페미니스트에겐 자기만의 펀치라인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달고 나왔으니 무대에 오르는 사람도 공연을 보는 사람의 선택도 분명해진다. 공연을 미처 못 본 사람들에게는 유감이지만, 페미니즘 이야기만 해도 3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즐거웠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알아야만 웃을 수 있기에 통쾌했고 마음껏 웃을 수 있었기에 자유로웠다. 기혼 여성 배우, 코미디언, 여성학자, 작가, 트랜스젠더 활동가, 비건 지향 퀴어, 그냥 연극배우 등으로 구성된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이야기는 다채로웠고 그들만의 조크는 신선하고 싱싱했다. 페미니즘은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와 닿았다.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2: 이리, 최정윤, 김보은 @박태양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2: 이리, 최정윤, 김보은 @박태양

 

일상의 성폭력을 향한 펀치 라인

전문가(최정윤)와 그의 책(스탠드업 나우 뉴욕)에 따르면 스탠드업의 조크는 전제펀치라인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전제는 웃음을 위한 배경이 되는 이야기이고 펀치라인은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조크의 핵심 포인트이다. 고무줄 총으로 물체를 쏜다고 할 때,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기는 힘이 전제이고 날아가는 조약돌이 펀치 라인이다.(17) 그리고 스탠드업 공연에서 관객의 반응은 아주 중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관객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집중해야한다고 한다.(100)

9명의 코미디언 중에 반 이상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내용을 배우면서 공연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이미 킥페스티벌에서 랩 실력을 증명했던 권김현영은 대본을 각자 써야한다는 말을 듣고 이게 아니다 싶었다고 했지만 뛰어난 강의 실력 못지않은 조크 실력을 선보였다. 직접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 낸 이야기가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이야기의 생생한 힘이 느껴졌다. 강의 시간에 점잖게 돌려 말한 이야기들을 날 것의 언어로 돌려놓는 쾌감도 컸다. 역시 페미니즘은 인간이 자기가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의 한계지점을 돌파하는 내재적 힘이 있다. (방금 쓴 이 문장은 펀치 라인을 시도해 본 것이다.)

무엇보다 9명의 코미디언들이 전제로 삼은 이야기가 일상에서 접하는 성폭력의 문제라는 점이 주목된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느끼는 가부장제의 폭력, 일터에서 여성으로서 지위가 낮은 직급으로 일하면서 당하는 부당한 폭력, 여성 학자에 대한 공격과 선입견, ‘여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한계와 소비방식, 트랜스젠더 활동가로서 접하는 모순적인 상황, 퀴어 페미니스트로서의 갈등 상황 등이 유려하게 펼쳐졌다. 관객들은 그 이야기가 자신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공감하고 그들이 던지는 펀치 라인에 폭소하면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았다. 현장성을 특징으로 하는 만큼 공연하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유머 코드들도 즐거웠다. 내가 관람한 회차는 수어 통역이 있는 날이라 무대 위에는 코미디언과 수어 통역사가 함께 올라갔는데 특히 오늘 관객은 다 필요 없고 통역사님을 웃기겠다는 포부를 밝힌 에디님의 재치가 빛이 났다. 코미디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이었지만 30분이 넘어가도록 극장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가끔 팟캐스트로 셀럽 맷의 영혼의 노숙자를 듣고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도 듣는다. 페미니즘을 표방하지는 않지만 여성이 주도하는 유머와 코미디를 듣는 것이 얼마나 안전한지, 또 통쾌한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알았다.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본 이후로는 기왕이면 더 많은 여성 코미디언들이 마이크를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현장에서 옆 자리에 앉은 관객의 웃음소리에 나의 웃음이 섞여 들어가고 모여 앉은 극장에 공감이라는 연결된 느낌이 들어차 있는 경험을 더 많이 하고 싶기 때문이다. 집회 현장에서 연대의 감각을 느끼며 호소력 짙은 구호를 외치는 것도 좋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부당함을 함께 웃으며 풍자하고 우리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 왜 펀치를 위를 향해 날려야하는지 확인하는 일도 필요하다. 마이크를 잡으면 누구 못지않게 웃길 수 있는 여성들이 많을 뿐 아니라 부끄러워서 역사에 남기기도 어려운 코미디의 소재가 아직 너무 많다.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 2>은 여성들이 이제 페미니즘 이슈를 유머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이런은 결국 승리한다

비극으로 관객을 울게 만드는 것보다 희극으로 관객을 웃게 만드는 일이 더 어렵다. 비극은 정서에 호소하지만 희극은 앎의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상황인지 확실히 알지 못해도 가슴 아픈 이별이나 착한 사람이 죽음을 맞는 일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그러나 희극의 세계에서는 알지 못하면 웃을 수 없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된 코미디를 보거나 다른 직업군 혹은 다른 세대에만 통용되는 이야기를 듣고 웃을 수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 2>은 페미니즘을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통하는 유머들을 선보였고 알기 때문에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제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아시죠? 알고 웃으시는 거죠?”라는 이리 배우의 말이 펀치 라인이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앎의 체계에 기반 한 공감 말고도 희극에 필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곧 거리두기이다. 희화화 되는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다면 마음껏 웃을 수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웃음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자신과의 거리두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신세한탄을 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이유가 여기서 납득이 된다. 희극은 비극보다 지적이며 이성적인 행위이다. 그러니 페미니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고 웃을 수 없는 당신이 바로 풍자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희극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 유형은 알라존(Alazon)과 에이런(Eiron)이다. 표면적으로는 알라존이 더 강하고 상대방을 속여 목적을 달성할 만큼 힘이 있어 보이지만, 에이런은 알라존이 능력이 없으면서 과장하는 허풍선이라는 사실을 안다. 평범하고 나약해 보이는 에이런이 알라존에게 속아주는 척하면서 결국 승리하는 이야기가 그리스 희극이다. 알다시피, 아이러니라는 용어는 에이런으로부터 파생했다.

자신을 반영웅적 악마로 착각하는 성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주었을 때, 또 그가 피해 여성에 대한 단 한 마디의 미안함도 내비치지 않았을 때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는 과연 누구에게 마이크를 주는가. 페미니즘은 여성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말해도 된다고 더 많이 설치고 떠들고 생각해야 한다고 알려주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에이런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 사족: 아무리 생각해도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Vol. 2>은 도합 몇 백 명의 관객에게만 선보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공연이다. 재공연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실제로 재공연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이 글에서 코미디언들이 이야기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했다. 그러니 공연 소식이 들리고 예매창이 열리면 폭풍 클릭을 하시길.

 

양근애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극작, 드라마터그, 평론을 병행하며 드라마 장르에 대한 글을 쓰고 공연에 참여한다. 공적 역사와 사적 기억의 차이와 사이에 관심이 많고 정치의 내포를 의심하면서 일상의 지속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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