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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권력의 견고함과 균열의 목소리-<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김희경의 문화톡톡]권력의 견고함과 균열의 목소리-<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24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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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힘은 견고하게 유지되며, 갈수록 강화된다. 때로 수많은 개인을 억압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면서 말이다. 제이 로치 감독의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이 같은 권력의 구조와 폐단을 영화 시작과 동시에 수면 위로 드러낸다. 미국 뉴스 채널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인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의 입을 통해 폭스뉴스 건물 구조를 설명한다. 마치 켈리가 방송을 하듯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각 층의 구조를 얘기한다. 이때 공간은 이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특성으로 규정된다. 사람의 권력은 곧 공간의 권력이 된다. 로저 에일스 회장(존 리스고)가 자리한 2층, 창업주 루퍼트 머독과 그의 아들들이 있는 8층은 권력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반면 직원들과 스텝들은 지하에 있다. 4개월 동안 쥐가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 말하는 메긴과 직원들의 모습은 하나의 건물, 하나의 조직 안에서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강력한 위계와 이에 따른 폐해를 암시한다.

파놉티콘 안 바라보는 시선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이 많은 여직원들을 성희롱 한 사실이 폭로됐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이전, 거대한 권력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터. 영화는 그 지난한 과정을 함축적이면서 속도감 있게 그린다.

로저의 2층 집무실은 ‘파놉티콘’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메긴은 그가 방송에서 무슨 말을 할지 각자에게 지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로저는 다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들의 방송, 그리고 회사 내 각 공간을 비추는 CCTV 화면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이 응시는 검열의 기능을 한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직원들의 행동에 상당한 제약이 된다. 그렇게 시선은 드러내지 않음으로 모두에게 드러난다.

권력의 공간, 공간의 권력은 시간의 축적으로 더욱 공고해진다. 오랜 시간 로저는 2층 집무실에서 자신의 힘을 더욱 확장시키는 행위들을 반복한다. 이것은 지위를 이용해 여성들을 성희롱하고, 그 대가로 원하는 자리를 주는 형태로 나타난다. 또 자신의 요구를 거부하는 여성의 자리는 빼앗는다. 시간의 축적과 함께 반복된 폭력은 그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만들어낸다.

 

작은 목소리가 이뤄낸 권력의 균열

권력에 균열을 내는 것은 작은 목소리, 그 목소리의 연대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이다. 그레천은 화장을 하지 않은 채 방송에 나오는 과감한 시도를 한다. 그것은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행위이자, 로저의 시선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다. 나아가 그레천은 로저의 성희롱을 폭로하는 큰 용기를 낸다. 불가능한 도전처럼 보이지만, 그레천은 이를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한다.

처음엔 영화에서 이 균열은 크게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그레천으로부터 잠깐 물러나, 다른 인물들을 더욱 비추는 데 집중한다. 메긴과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다.

그레천보다 영화가 먼저 비췄던 인물은 메긴이다. 메긴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 그의 여성관에 대한 지적을 했다가 많은 공격을 받았다. 이 경험은 메긴이 그레천의 목소리에 이어 로저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고민하게 만든다. 권력에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자신의 실패로 인해 생긴 가족들의 고통은 메긴을 괴롭게 한다. 이 실패는 또 한번 용기를 내는 데 있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메긴은 결국 다시 용기를 낸다. 그레천에게 메긴의 연대가 보다 커다란 힘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그레천, ‘다 가진’ 메긴에 이어 ‘다 가질 수 있게 된’ 케일라의 용기를 더한다. 어렵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게 된 케일라의 용기가 발현되는 과정은 메긴이 용기를 다시 내는 것만큼 상세하게 그려진다. 로저 앞에 선 케일라는 권력의 억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것이 얼마나 추악하게 이뤄지는지를 직접 부딪히며 깨닫게 된다. 이 억압 속에서 케일라는 무너지고 말지만,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 용기를 낸다.

영화는 그레천, 메긴, 케일라를 한 자리에 모으고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그리진 않는다.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용기를 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의 연대가 될 수 있다. 영화는 개인이 어려움 속에서도 큰 결심을 해내고야 마는 모습, 그 용기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보여준다.

 

세상은 바뀌었고, 또 바뀔까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이후 세상은 바뀌었고, 또 바뀌게 될까. 영화는 결말을 통해 모든 것이 한번에 이뤄지진 않음을 암시한다. 권력의 공간은 때론 더 큰 힘을 가진 권력자가 채울 수 있으며, 이전과 동일한 혹은 다른 종류의 억압이 생겨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체념하지 않는다. 세상을 다시 한번 바꿀 수 있는 힘이 각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음을 케일라의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그렇게 권력의 억압과 횡포는 또 도전받고 무너질 것이다.

 

*사진:네이버영화

*글:김희경(문화평론가)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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