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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레이서> - 가장 고통스러운 자가 대회의 우승을 거머쥔다! 조연의 반란!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레이서> - 가장 고통스러운 자가 대회의 우승을 거머쥔다! 조연의 반란!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6.0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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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영화의 도전정신과 <더 레이서>

영화에서 스포츠는 감동의 신화를 보여준다. <국내대표>(김용화, 2009)에서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되고, 스키점프에 대한 애정과 도전 정신으로 경기에 출전한다. 이 영화에서 얼음이 없이 지상 훈련, 공중 곡예 등 정신적, 육체적으로 중무장하는 장면은 코믹성과 감동을 자아낸다. <천하장사 마돈나>(이해영·이해준, 2006)에서는 뚱보소년 오동구가 마돈나처럼 완벽한 여자가 되어 짝사랑하는 일어 선생님 앞에 당당히 나서고자, 수술비 5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씨름을 하게 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프랭크는 32살 늦은 나이에 권투 선수가 되겠다는 매기의 열기에 트레이너가 되어 돕지만, 경기에서 심하게 다친 매기의 슬픈 부탁을 받게 된다. <반칙왕>에서 어눌하고 소심한 은행원 임대호는 부지점장의 헤드락 걸기를 피하기 위해서 레슬링을 시작하게 되고, 모진 훈련과 뜨거운 신념으로 레슬링 챔피언 유비호와 대등한 경기를 펼친다. 이런 스포츠영화에서 인물은 불굴의 의지, 모진 훈련, 힘든 경기를 통해 내적, 사적, 공적 성장을 하게 되며 감동의 신화를 보여준다.

키에론 J. 월쉬 감독의 벨기에 영화 <더 레이서>(The Racer, 2020)에서는 사이클 선수 도미닉 샤볼(루이스 탈페)이 ‘투르 드 프랑스’ 아일랜드 대회에서 승리가 아닌 생존을 위한 레이싱을 통해 감동의 신화를 보여준다. 20년 동안 팀을 승리로 이끌어 온 최고의 페이스메이커 돔은 젊은 선수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힘들어한다. 그는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계속 훈련하는 한편 팀의 에이스 타타레 마리노(마테오 시모니)를 돕는 가운데, 연인 린 브레넌(타라 리)과의 갈등과 가장 친한 동료 소니 맥엘혼(이아인 글렌)의 죽음으로 정신적 위기에 빠지게 된다.

 

지는 게 일?: 적대자/조력자의 딜레마

<더 레이서>의 전반부에서 주인공은 적대자/조력자의 딜레마에 빠진다. 주인공은 경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내적, 사적, 공적 갈등에 처한다. 돔은 39살의 사이클 선수로서 마지막일 수도 있는 경기에 참여하지만, 건강이 악화되면서 내적 갈등에 처한다. 돔은 20년간 팀의 우승을 이끈 페이스메이커이고 팀 에이스의 불안증세도 치유해 주지만, 내년 계약이 불투명해지면서 공적 위기에 처한다. 돔은 아버지가 사망하였지만 장례식에 불참하겠다고 하는 등 공적 업무를 더 중시하는 태도로 인해서 가족과의 사적 갈등에 처한다.

주인공 돔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육체적 한계에 도달하고, 고용 불안과 생계 위협으로 심리적 불안감에 시달린다. 돔은 팀에 대한 노력, 봉사, 헌신의 태도를 보이며, 끊임없는 운동, 구토, 적혈구 약품에 시달리며, 면역체계가 약해지면서 마비가 오는 등 고통을 겪는다. 조력자는 소수이고, 부재하거나 갈등한다. 마사지사 소니는 돔과 오랜 시간 친한 동료로 지내지만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어 돔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고, 여의사 린은 돔의 약물 검사 위기에서 도와주지만 돔의 약물 복용으로 갈등하게 된다. 적대자는 다수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성으로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준다. 바이킹 감독은 돔에게 처음에는 주전으로 경기에 참가하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젊은 선수를 기용하여 돔을 주전에서 빼버리고, 주전 선수가 아프게 되자 참가해 달라고 요청하고, 마지막에 돔이 떠나겠다고 하자 40살까지 계약을 연장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선수들은 모두 레이싱에서 돔의 경쟁자이며, 자신의 팀 선수들도 동료(조력자)이면서 동시에 주전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자(적대자)이다. 이렇듯 주인공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위기에 빠지고, 소수의 조력자와 다수의 적대자로 힘든 상황에 처하며, 조력자와 적대자의 가변성으로 딜레마에 빠진다.

<더 레이서>는 클로즈업, 흐릿한 화면, 거친 숨소리로 주인공의 정신적, 육체적 위기를 나타낸다. 호텔 방에서 돔이 운동을 하는 장면에서, 사이클 자전거의 바퀴, 계속 움직이는 다리,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며 육체적 고통을 표현한다. 경기장 입구에서 돔과 선수들이 출발하는 장면에서, 돔의 모습을 바스트숏, 미디엄숏, 롱숏 등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면서 동시에 옆모습에서 뒷모습으로 바뀌면서 돔의 불안과 불투명한 미래를 표현한다. 돔이 결승선에 도달하는 꿈 장면에서, 흐릿한 도로, 자전거 페달 위의 지친 다리, 거친 숨소리, 점점 멀어지는 결승점을 통해 주인공의 체력적인 한계, 승부에 대한 부담감, 자신감 상실을 표현한다. 이 장면은 영화 내내 반복되면서 이러한 주인공의 괴로움을 강조한다.
 

페달을 밟는 대로 바퀴가 가는 것: 공적/사적 우승의 딜레마

<더 레이서>의 중반부에서는 공적/사적 우승의 딜레마가 나타난다. 돔이 주전에서 탈락되고 연장 계약도 물거품이 되며, 린의 가족과 만나서 우승을 할 수 없는 페이스메이커라고 자조한다. 바이킹 감독이 한 명의 주전이 아파 빠지게 되자 급하게 돔을 투입하고, 돔은 에이스 타타레를 도와 우승하게 만든다. 타타레는 돔에게 ‘사상 최고의 도메스티크!’라며 찬사를 보낸다. 돔은 주전 참가, 에이스 우승 등으로 들뜨지만, 린과 하룻밤을 보낼 때 적혈구 생선 촉진제 과다복용으로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더 레이서>에서 욕망의 주체는 노장 페이스메이커 선수인 주인공이며, 욕망의 대상은 우승이다. 우승은 팀의 우승, 팀 에이스의 개인우승, 돔 자신의 개인우승으로 나뉘며, 자신의 우승은 팀 에이스의 우승과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역할에 대한 반란이 된다. 돔은 항상 에이스가 지치지 않게 바람을 막아주는 ‘병풍’의 역할을 수행하고 마지막 결승선 앞에서 에이스에게 우승을 양보한다. 돔은 사실상 자신의 개인적인 우승을 갈망하지만,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역할 때문에 개인적인 욕망을 억누른다.

<더 레이서>에서 주인공의 욕망은 공적/사적 우승이지만, 두 가지 우승은 서로 딜레마 관계이다. 돔이 공적 우승을 욕심내면 혹은 공적 우승을 견인하는 자신의 역할인 페이스메이커를 충실히 하면 사적 우승은 포기해야 한다. 반대로 돔이 사적 우승을 욕심내면 팀 에이스를 우승하게 돕는 페이스메이커라는 자신의 업무를 저버리고 감독과의 합의를 깬 것이 되기 때문에 계약 연장이 어려워진다. 팀의 감독 입장에서는 39살 은퇴를 앞두고 있는 돔 같은 선수보다는 젊고 능력 있는 에이스에게 더 우호적이고 더 배려하는 작전을 펼쳐야 한다.

<더 레이서>의 스타일에서는 클로즈업과 공중촬영이라는 극과 극의 기법으로 힘든 여정을 표현하고, 클로즈업과 미장센으로 불안감을 표현하고, 클로즈업과 편집으로 위기를 표현한다. 제1구간 더블린 경기의 출발 장면에서, 돔이 경기를 하는 모습, 타타레가 십자가 목걸이에 키스하는 모습, 우승 후보자 드라고가 샤볼에게 물병을 던지고 실격당하는 모습을 클로즈업과 공중촬영으로 담아냄으로써 선수들의 긴장감과 대규모 스펙터클을 동시에 보여준다. 더블린 경기 장면에서, 전설의 샤볼이 주전 타타레에게 길을 터주는 모습, 타타레가 최고 기록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자전거의 부품을 계속 클로즈업으로 담아냄으로써 선수들의 힘겨운 모습을 표현한다. 돔이 결승선에 도달하는 꿈 장면에서, 앞에 보이는 결승선, 환호하는 관중, 자신을 앞지르는 다른 선수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자전거 바퀴가 묶여서 전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 돔을 보여주면서 극도의 불안감을 표현한다. 돔이 린과의 동침 후 자다가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장면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못 쉬는 돔, 옆에서 걱정하는 린, 돔을 자전거에 태우는 소니의 모습을 클로즈업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위급한 상황을 강조한다. 소니는 호흡곤란에 처한 돔을 자전거에 태움으로써 선수로서의 프로의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만든다.
 

에이스는 죽지 않지: 페이스메이커의 반란과 우승

<더 레이서>의 후반부에서는 페이스메이커의 반란과 우승을 보여준다. 돔은 약물검사에서 린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소니의 죽음을 검은색 밴드로 추모하여, 타타레와 감독의 신의 없는 행동에 개인우승을 탈환하고 팀을 떠나고자 한다. 연맹에서 파견한 의사가 선수들의 약물 검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선수들에게 물을 계속 먹여 약물검사를 통과하려는 모습에서 당시 실제로 있었던 도핑 스캔들을 희화화한다. 파견의사를 돕던 린이 약물을 복용한 돔의 피가 담긴 병을 깨뜨림으로써 선수 한 명에 한 번만 피를 뽑는다는 규정에 의해서 돔이 위기를 모면하게 돕는다. 돔은 연인 린에게 과거 여자와의 육체관계를 폭로하고 린을 모욕하는 타타레에게 분노하고, 2구간에서 자신이 우승하지 못한 책임을 돔에게 전가시키는 타타레로 인해 허탈해하고, 죽은 소니를 추모하는 검은 밴드를 버리는 타타레에게 실망한다. 그래서 돔은 제3구간 애니스코시에서 타타레와 팀을 위해 포기했던 개인우승에 돌진함으로써, 20년 페이스메이커 인생에서 처음으로 개인우승을 차지한다.

<더 레이서>에서 주인공은 조력자의 도움과 자신의 의지로 장애물을 극복하고 개인우승이라는 욕망을 성취한다. 장애물은 불투명한 계약 연장, 육체적 문제, 젊은 선수의 대체,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역할이다. 돔은 린의 도움으로 약물검사 위기를 넘기고, 소니의 죽음으로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조력자 인생에 대해 성찰하게 되고, 타타레의 부도덕과 감독에 대한 불신으로 자신의 헌신에 대한 의미를 상실하게 되면서 개인우승에 매진하게 된다. 그래서 돔은 ‘지는 게 일’인 페이스메이커이면서 에이스의 바람을 막아주는 ‘병풍’의 삶을 잠시 내려놓는다.

<더 레이서>의 스타일에서는 편집을 통해 슬픔을 극대화하고, 편집으로 연습의 고통을 강조하고, 멀어지는 카메라로 초탈한 심정을 표현한다. 소니의 죽음 후 돔이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장면에서, 소니의 유품, 돔의 눈물, 흐르는 비를 이미지로 연결하는 편집은 돔의 슬픔을 극대화한다. 돔이 제3구간 애니스코시 경기에서 소니를 추모하는 장면에서, 돔의 손목에 있는 검은색 암밴드와 타타레가 바닥에 버린 검은색 암밴드를 클로즈업으로 대비시킴으로써 돔의 실망감을 표현한다. 제4구간 호스코프 경기 장면에서, 돔이 선두에 서서 타타레를 위해서 바람을 막아주는 모습을 보여주며 카메라가 점점 멀어져가면서 다시 페이스메이커로 돌아온 돔의 초탈한 심정을 표현한다.
 

사상 최고의 도메스티크: 죽음과 우승의 드라마틱한 레이스

<더 레이서>는 희망과 고통의 신화인 투르 드 프랑스의 4일간의 레이스를 담아낸다. 118년 전통의 투르 드 프랑스는 한반도 내륙의 직선거리 1,000km의 3배인 3,000km가 넘는 거리를 3주 내내 질주하는 극한의 사이클 경주 대회로서 다양한 사연과 놀라운 이슈를 보여준다. 연속 7회 우승자 랜스 암스트롱은 고환암을 극복하고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암 환자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여 희망의 아이콘이 되지만, 나중에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승 타이틀을 박탈당한다. 이 대회에서는 종합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노란색 저지가 선망의 대상이며, 그 외에도 최고의 스프린터에게 주는 녹색 저지, 가장 먼저 산을 오른 선수에게 주는 물방울 저지, 누적 시간이 가장 적은 선수에게 주는 흰색 저지가 있다. 에디 메르크스는 첫 출전에서 노란색 저지, 녹색 저지, 물방울 저지까지 모든 차지하는 전설적인 기록을 보여준 선수이며, “가장 고통스러운 자가 대회의 우승을 거머쥔다”는 명언을 남긴다.

<더 레이서>의 특이성은 주인공이 팀의 에이스가 아니라 에이스를 도와주는 도메스티크라는 사실이다. ‘도메스티크(domestique)’는 직접 순위 경쟁을 하지 않고 사이클 팀과 팀 대표의 경기를 돕는 선수이다. 도메스티크는 물통 운반자(프랑스), 친구(이탈리아·스페인), 하인·조력자(벨기에·네덜란드) 등으로 불린다. 이 영화는 주인공 도메스티크를 통해서 진정한 승자는 대회의 우승을 거머쥔 에이스 스타 선수가 아니라 그 스타 선수를 지원하는 조연 선수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도메스티크의 팀 전체에 대한 배려, 스타 선수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지원을 강조한다. 또한 도메스티크는 팀의 조연 역할에 머물러 있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계약 갱신의 문제, 생계 문제, 선수로서의 자존심·도전·경쟁을 드러낸다.

<더 레이서>는 고통과 감동의 드라마이다. 이 영화의 반전은 ‘병풍’ 도메스티크가 마지막 경기라는 위기감, 절친한 동료의 죽음, 에이스 선수에 대한 실망감으로 우승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에이스 타타레보다 도메스티크 돔을 가장 고통스럽게 그려냄으로써 도메스티크로서의 역할을 저버리고 우승을 차지한 것에 대해 공감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돔의 불굴의 의지, 모진 훈련, 힘든 경기를 통해 내적, 사적, 공적 성찰을 그려냄으로써 감동의 신화를 펼친다는 점에서 스포츠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더 레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가족과의 절연, 육체적 한계, 심리적 불안과 위기감, 약물 복용의 유혹, 선수 생명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자가 대회의 우승을 거머쥔다!’는 명언을 증명하면서 조연 인생의 반란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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