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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의 상업적 타락을 보여주는 슬픈 얼굴: 영화 <발신제한>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의 상업적 타락을 보여주는 슬픈 얼굴: 영화 <발신제한>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7.30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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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발신제한>

어떤 배우에게 끌리는가?

빤해 보이는 영화를 보고나서도 뭔가를 써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건 낯선 배우가 갑자기 잡아끄는 매력 탓이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핵심은 참신한 시나리오나 클리쉐를 뛰어 넘는 연출력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배우의 마력과도 같은 흡입력이 문제다. 같은 눈물연기라 하더라도 아니, 딕션이 출중한 배우의 절대적인 연기력이라 하더라도 이런 낯선 배우에게 더 사로잡히고 마는 이상한 경험은 늘 뭔가를 끄적이고 싶게 만든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한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영화를 보면서 누구나 첫 눈에 반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사로잡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건 분명 영화가 전해주는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요컨대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사랑’이다.

 

영화<발신제한>에서 이성규(조우진)의 딸 혜인(이재인)은 이런 의미의 ‘사랑’을 보여준다. 물론 손발 오그라드는 아빠를 향한 자식의 신파적 사랑도 그런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의 만듦새를 뚫고 튀어나와 기어이 '어떤 특별함을 만들어 내고 만다는 의미'에서 더 그렇다. 이건 이재인의 무엇인가가 영화의 서사나 연출력을 모두 넘어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대체로 ‘연기력’을 운운하기 마련인데, 정말 그럴까.

 

영화<발신제한>

진우(지창욱)에게 원한을 산 아버지 이성규가 폭발물이 설치된 차에서 위협을 당하는 순간, 그 차에 함께 타고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들도 그 위협 속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직감한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보다 직접적인 죽음에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와중에 이성적으로 돋보이는 건 아빠 성규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빠 성규가 끝까지 침작함을 잃지 않으려 전력을 다하는 의지에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정리하면 아이들의 존재는 아빠라는 존재가 이성적이어야 하는 배경을 만들어주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런 서사구조 속에서 혜인이의 역할은 말 그대로 성규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조력자로 보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그녀의 특별함은 바로 이 지점을 파열시킨 후 그 틈새를 뚫고 나온다. 그런 서사의 틀을 기어이 비집고 나오는 그녀의 마력. 바로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교한 서사와 연기력

영화의 서사 틀은 꽤 논리적으로 탄탄한 구조를 갖는다. 이야기의 흐름이 비약적이거나 인과적인 연쇄를 정교하게 이루고 있지 않으면 대체로 교정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요컨대 맥락상의 들뜸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 한 배우가 전해주는 매력의 요건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탄탄한 서사의 구조와 함께 물 흐르듯 흘러가는 연기력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뚫고 나올 수 있는 다른 무언가여야 한다는 것. 그렇다. ‘연기력’은 어쩌면 그 강렬한 매력과 사실 상 깊은 연계성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얼굴의 의미

그러면 연기력과도 다른 결을 가진 그 매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럴 경우 대체로 사람들은 배우의 ‘얼굴’을 얘기한다. 얼굴이 특별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서사의 정교한 구조를 뚫고 나올만큼 강력한 매력의 발산지가 얼굴이라는 말은 손쉽게 재단하듯 뱉어내는 '잘생겼다', '멋지다', ‘예쁘다’라는 말과 그 차원이 다르다.

 

여기서의 얼굴의 의미는 그 얼굴이 진짜 얼굴이냐는 것이다. ‘가짜 얼굴’과 ‘진짜 얼굴’을 구분하는 것은 ‘꾀병부리는 것’과 ‘진짜 아픈 통증’을 구분하는 것과 같다. 진짜 아픈 것은 숨길 수 없는 것으로서, 증상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진짜 얼굴은 하나의 증상처럼 작용한다. 그러면 진짜 얼굴은 꾀병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어떤 근본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요컨대 진짜 얼굴은 아픈 통증의 근본 원인을 보여주는 얼굴인 것이다.

영화<발신제한>은, 겉보기에, 은행계에서 자행되었던 비윤리적 영업행태와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의 매정함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더 나아가면 부산 올로케를 강조하면서, 지역경제를 전략적으로 도모하기위한 홍보차원의 영화로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특정 브랜드 자동차 광고로 보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앞서 언급했듯이, 아빠와 자식 간의 끈끈한 사랑?

 

영화의 슬픈 타락

비관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의 소위 먹히는 방식을 대부분 차용한 영화로서, 투자대비 수익의 안정성을 고려하여 만든 영화라고 평가 절하할 수 있다. 이른바 영화 자본가의 재무제표 상 수익발생을 최우선으로 삼은 영화라는 말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상업주의로 점철된 블록버스터 급의 헐리우드 영화를 모방한 전략적 상품에 불과하다.

 

이제 진짜 얼굴

그 가운데 이재인의 얼굴, 이재인의 마력과도 같은 진짜 얼굴은 단언컨대 바로 이런 상업영화의 타락을 슬프게 바라보는 얼굴. 이런 방식으로 찍혀 나오는 영화를 향한 절망, 그 자체를 보여주는 얼굴이다. 그래. 이재인 배우의 얼굴에 끌린 이유는 그녀의 얼굴이 ‘상업영화의 타락을 보여주는 슬픈 진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제아무리 타락해도 끝끝내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는 존재는 바로 이런 낯선 배우들의 진짜 얼굴들이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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