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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만화 같은 겨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추억하며 소개하기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만화 같은 겨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추억하며 소개하기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1.12.31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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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마지막 날, 우연히 떠오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이명세, 1990)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추억하기, 이 영화를 모르는 이들에겐 소개하기일 수 있겠다.

 

-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에 오른 단골 겨울 영화

시작은 ‘일간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였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서는 아직 국내 모든 온라인 영화 상영 데이터를 통합하고 있진 않지만, 일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박스오피스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2021년 12월 24일 박스오피스는 매우 흥미로웠다.

 

'나홀로 집에'(1990) 포스터
<나홀로 집에>(감독 크리스 콜럼버스, 1991) 포스터

20위 권 영화 중 몇 편의 영화는 오랜만에 보는 영화라 제목만 봐도 반가웠다. 5위에 오른 <나홀로 집에>(1991), 9위 <나홀로 집에 2>(1992), 13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 19위 <러브 액츄얼리>(2003)는 소위 성탄 특집 방영 영화, 겨울 영화로 불리는 옛 영화들로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 나게 했다. 올해도 많은 이들이 익숙한 겨울 영화들을 다시 보기 중인 것으로 보인다.

 

- 겨울 영화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추가!

단골 겨울 영화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바로 1990년 12월에 개봉된 이명세 감독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였다. 영화 내내 화면 가득 성탄 색감이라 할 수 있는 붉고 노란 색감이 가득 찬 영화이기 때문일까?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이명세, 1990) 포스터

사실 옛 신문 기사 검색을 좀 해보니,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성탄 특집보다는 가정의 달 특집으로 여러 차례 TV 방영이 된 영화다.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신혼부부의 이야기다 보니, TV 방영 시에는 겨울보다는 봄에 선택이 됐던 듯하다.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기엔, 조금 유치한 신혼부부 이야기로 넘길 수도 있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내용과 형식 모두 따뜻한 영화라서 다시 보기를 시도해 볼 만하다. 아기자기하게 볼거리와 들을거리도 많다.

 

- 신생 영화사, 신인 감독, 신인 배우가 보여준 가능성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이명세 감독을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한 영화로, 데뷔작 <개그맨>(1989)에 이은 두 번째 영화였다. 이명세 감독은 두 번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신인감독상도 휩쓸었고, 서울 관객 약 21만 명을 동원해, 1991년 한국영화 흥행 순위 2위도 기록했다.

1991년 전체영화 중에서는 16번째 규모의 흥행으로, 실망스러운 흥행으로 보일 수 있으나, 당시 영화관을 찾는 관객 중 20% 정도만 한국영화를 보던 시절이었으니, 요즘의 기준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어쨌든 1991년 한국영화 중 두 번째로 인기를 얻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1987년 영화 시장 개방 이후, 한국 영화계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에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기도 했다.

당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은 여러모로 젊은 영화로 평가됐다. 신인 감독 이명세, CF 스타 출신 신인배우 최진실, 1987년에 설립된 신생 영화사 삼호필름이 함께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 만화 같은 영화

참여한 인력뿐만 아니라 만화를 떠올리는 영상 스타일도 새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요즘은 만화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도 많고, 화려한 시각효과로 현실과 비현실, 판타지가 구분되지 않는 영화도 많지만, 30년 전엔 달랐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는 소위 애니메이션 기법을 비롯해 말풍선 등이 추가되는 만화 같은 요소가 곳곳에서 활용됐다. 영화 초반부만 보더라도, 제작사 로고가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했고, 뒤이어 ‘사랑이란....?’, ‘한 송이 장미처럼 아름다운 것’,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것’ 등의 문장이 글자 한 자 한 자 그림과 함께 화면에 나타난다.

말풍선도 하나 뜨는데,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요?’라는 문장이 보인다. 뒤이어 불에 타다 만 봉투 안에서 제목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반짝거리며 날아 나오고, 하트 그림 속에 출연진들의 이름이 보이다가, 닫힌 붉은색 막 위로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라는 황금색 글씨가 새겨진다. 막이 열릴 때까지 배경음악 ‘워싱턴 스퀘어’가 흐르는데, 짧은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본 것 같다.

주인공 신혼부부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영화적 요소도 등장한다. 영화 내내 주황 색감과 노란 색감이 유지되고, 신혼 방은 알록달록 소품들로 채워진다. 카메라는 신혼 방 창문 안팎을 오가며 창틀 너머 방안과 골목길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던 분할화면은 두 사람의 대립 관계를 시각화한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에 어디선가 들어본 유명한 배경음악, 바람 소리, 찌개 끓는 소리, 끊임없는 혼잣말 등 청각적 요소가 추가되고, 여기에 자막, 말풍선, 애니메이션 시각효과까지 추가되면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만화광으로 알려진 이명세 감독 특유의 만화 같은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리메이크가 되기도 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임찬상, 2014)

- 여전히 신기한 영화

시청각적으로 꽉 찬 영화를 글로 표현하자니, 좀 길어지고, 어색해졌지만, 30년이 지나서 그런지 더더욱 만화같이 느껴지는 면도 있다. 그래서 더 추억의 겨울 영화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일상이 만화적으로 시각화되면서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익숙하지만 낯선 판타지를 제공한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레트로' 느낌과도 좀 비슷하다.

만화나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이 낯설지 않은 2021년의 마지막 날,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추억하며 소개하기에 딱인 따뜻하고 예쁜 겨울 영화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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