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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의 문화톡톡]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
[이호의 문화톡톡]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
  • 이호 |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1.06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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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그리고 간절하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건강? 사랑?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스스로에게 무엇이 필수적으로 필요한지 현실을 몰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런 관념들의 유희를 할 수 있는 유한계급(?)이 아니라면, 그래서 정확하게 현실을 지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끝으로 솔직한 사람이라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것은 바로 ‘돈’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도 역시 돈이다. 만일 다른 대답을 했다면, 자기기만 상태일 가능성이 매우 크거나 아니면 점잖은 자리에서는 돈 얘기를 하지 않기로 약속된 관념(대체 누가 그런 걸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꽤 오래전에 점잖고 가식적인 사람들이 만든 케케묵은 구시대적 관념)의 산물이라는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 이 단정적인 말에 불편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유사답안들을 하나씩 제거해보는 작업으로 이 지면(엄밀히 말해 지면은 아니고 웹상의 바이트들)을 허비해보자.

가족을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가족을 만들 수 있으며(심지어 새로운 가족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가족들을 아주 많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고? 돈이 있으면 없던 사랑도 생겨날 수 있고, 그것도 꽤 괜찮은 로맨스를 아주 근사하게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수조건이라는 건 요즘, ‘잼민이’라 불리우는 초등학생들도 아는 사실이니 더 이상의 누차한 설명은 삼가자. 건강? 돈이 있으면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운동도 할 수 있고, 좋은 음식을 통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과도한 노동으로부터 여유로워져 스트레스도 방지할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비싼 수술도 할 수 있고, 뭐 아무튼 돈과 건강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돈이 있으면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정해진 인생의 총량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돈으로 내가 해야 하는 노동의 시간을 줄이고, 나는 내 시간을 쓸 수 있으므로 결국 그 사람의 시간은 늘어나는 셈이다. 다른 사람을 시키면 해결되는 일이 아주 많다. 돈이 없다는 건 나를 위해 사용할 시간도 적다는 뜻과 동의어다.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노동으로 대체하고 있다.

생명을 살 수 없다. 아니다. 돈이 있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며, 생명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죽음 같은 삶을 살지 않고 안녕과 즐거움, 여유로움으로 가득한 삶을 구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돈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감옥에서도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심지어는 일찍 출소할 수도 있고, 심하면 감옥에 가지 않을 방법이 꽤 많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 시대에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어도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개인적 삶의 영역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거짓말쟁일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스스로에게 속고 있거나 간에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불편하면서도 해결법도 없는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한 것 같다. 그런 시대가 되어 버린 걸 탓해 봤자, 가난한 흥부가 읊조리는 돈 타령에 불과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한번 현실을 인식하자고 말해보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돈 세상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감상적으로나마 재인식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백년 전 쯤에 <이수일과 심순애>로 조중환이 번안한 소설,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에서부터 지적되어 왔으니 새로운 현실은 아니다. 사랑과 정의가 적어져서 그보다 –n으로 ‘의미’(Bedeutung)도 없어진 시대에 돈에 대해 문자 행위를 한다는 것조차도 불필요한 말의 낭비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필자가 아주 어렸던 시절에 배웠던 종교적 관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돈으로 못 사는 것에 대한 노래였다. “돈으로도 못 사요, 하나님 나라.” 오 마이 갓! ‘하나님의 나라’라니. 이 무슨 고색창연한 수천년전 관념이란 말인가!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아마도 온갖 좋은 것들의 형이상학적 관념들의 총체를 일컫는 단어라고 새삼 생각이 드는 것이다. 즉 좋지만 없는 곳, 유토피아로서의 사랑과 정의가 넘치고, 고통과 슬픔이 없고, 갈등과 분쟁, 더불어 배고픔과 착취가 없는 나라였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 역시 관념과 형이상학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돈으로 못 사는 것 하나쯤은 남겨두고 싶다. 그런 낡은 고집 역시 구시대적 딸깍발이(꼰대)의 비루한 관념일 뿐이라도 개인의 마지막 자유로 내버려 두자. 뭐 당신들한테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현실감각이 모자라는 인간들이 많을수록 당신이 재화를 차지할 기회는 증가하는 법이니까. 등쳐 먹기도 더 좋을 것이다.

이런 구차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 시대가 돈으로 초코드화된 보편성(?)의 시대라는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교환할 수 있는 시대, 모든 것을 사버릴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현실 재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하여 한 권의 책이 떠오른다.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독교의 정신 가운데 희망과 사랑과 믿음을 그리스어 어원을 분석하면서 보편성으로 이 세상을 초코드화했던 지점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마오주의자로서의 바디우가 “네 발로 기는 사회주의”를 구원하려고 시도한 책이다. 이론적으로는 꽤나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말과 글, 글과 책의 논리는 농경시대에 적합한 것이며, 지식은 산업화 시대에 환영받고 힘이 있는 것이지, 지금은 이미 돈 앞에서 글과 논리조차 그 강력한 자장 속에서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없는 현실이다.

작년에 ‘게임스탑’이라는 회사를 둘러싼 주식 전쟁이 있었다. 월가를 잠깐 배회하던 시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흥미롭다. 개미라 불리우는 소액주주들과 거대자본의 첨병인 헤지펀드 사이의 말도 안 되는 싸움. 우리 시대 프롤레타리아트들은 주식 시장에서 싸운다. 우리 시대는 전지구적 전방위적 시장이라는 걸 새삼 알게 해준다. 그 이야기는 다음 원고에 해보자. 그렇다. 필자는 이번 년도에 돈과 주식에 관한 연재를 해볼까 생각중이다. 나는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개점휴업 상태로이긴 해도 평론 공부를 해왔다. 주식 공부를 하다보니, 그것이 글공부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는데, 그것은 기호 분석이라는 것이다. 물론 글의 기호들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주식 분석이 몇 배는 어렵다는 걸 발견했지만, 여하튼 기호들(각종 수치와 그래프들)을 분석하고, 시장의 분위기를 파악하여 인사이트(통찰력)를 기르는 일과 책의 문자 기호들을 읽어서 디코딩하는 일이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글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글·이호
문화평론가, 소설가.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으로 등단하여 계간 《연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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