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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문화톡톡] 캐릭터의 세계: <시민 케인>의 찰스 포스터 케인
[김경욱의 문화톡톡] 캐릭터의 세계: <시민 케인>의 찰스 포스터 케인
  • 김경욱(문화평론가)
  • 승인 2022.02.10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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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의 초상

25살의 오슨 웰스가 1941년에 데뷔작으로 연출한 <시민 케인>은 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미장센, 편집, 연기, 음악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할 만하다. 주인공 케인이 사망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의 일생을 추적하는 이야기에서, 오슨 웰스 자신이 연기한 케인은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에 필적할 만큼 흥미진진한 캐릭터이다.

 

그러면 먼저 케인의 성격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장면을 보자. 케인은 인콰이어러지의 발행인으로 일하다 무소속으로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유세장에서 케인은 “노동자들, 소외된 자들, 굶주린 자들과 빈민층의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연설한다(케인의 연설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웰스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난다). 그리고 케인은 “주지사가 되면 첫 번째 공식 임무로 특별 검사를 지명해, 주지사 선거의 경쟁자인 짐 게티스의 과거 직무 수행과 의혹들을 낱낱이 파헤칠 것”이라고 천명한다. 케인의 유세는 당선이 떼어 놓은 당상인 듯한 열띤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게티스는 케인의 외도를 빌미로 협박을 하고, 케인은 곤경에 빠진다. 케인의 아내 에밀리와 정부 수잔이 함께 한 자리에서, 게티스는 케인에게 “건강 악화를 핑계로 선거에서 물러나면 외도 사실을 폭로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때 케인이 게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에밀리(와 아들)를 선택했다면, 정치가로서 훗날을 도모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결정은 무엇이었을까? 케인은 “나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서 이리저리 빠져나가려고 수를 쓰는 썩어 빠진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혼자라도 싸우겠다”고 소리친다. 케인의 선택은 그가 부패한 자들과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운 인간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수잔에 대한 사랑을 배신하지 않는 충실한 연인으로 보이게 만든다. 또는, 외도 사실이 유권자들에게 알려지면 낙선이 불 보듯 뻔한데도 불구하고 게티스에게 “당신을 싱싱 형무소에 처넣겠다”라고 소리 지를 때, 케인은 현실 감각이 부족한 이상주의자 같다. 분명 케인에게 이러한 면모가 모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 에밀리와 정부 수잔이 함께 한 자리에서, 케인은 게티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수잔을 선택한다
아내 에밀리와 정부 수잔이 함께 한 자리에서, 케인은 게티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수잔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케인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며, “나는 찰스 포스터 케인”이라고 외친다. 따라서 케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잘못이나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는 극심한 나르시시스트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확신하는 나르시시스트는 근거 없이 자신이 옳다, 선하다, 정당하다고 믿는다.

선거에서 낙선하고 정치가의 경력을 포기한 케인은 에밀리와 이혼하고 수잔과 재혼한다. 이제 케인의 새로운 목표는 수잔을 성악가로 성공시키는 것이 된다. 케인은 오로지 수잔을 위해 오페라 하우스까지 지어준다. 그러므로 표면상으로는 케인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수잔을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수잔을 위해 헌신하는 사랑꾼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로서 케인의 면모는 수잔과의 관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케인은 자신이 선택한 여자가 특별해야되기 때문에, 수잔의 노래 실력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수잔의 프리마돈나 공연에 대해 혹평이 쏟아지자, 무대에 서는 것에 부담을 느낀 수잔은 그만두려고 한다. 그러나 케인은 용납하지 않고 수잔이 계속 공연하도록 몰아친다. 결국 자살 시도까지 한 다음, 수잔은 공연을 그만둘 수 있게 된다.

케인의 강압적인 태도를 견디지 못한 수잔은 마침내 결별을 선언한다. 이때 케인은 처음으로 “떠나지 말라”면서, “이제부터 무엇이든 진짜 당신이 바라는 대로 다 해 주겠다”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공손한 태도까지 취하며 애원한다. 수잔의 마음이 잠시 흔들리려는 찰라, 케인은 “당신이 나한테 이럴 수는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성찰할 수 없고,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없는 나르시시스트의 면모를 드러낸다. 수잔은 케인에게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떠나간다.

 

케인은 왜?

그런데 케인은 왜 수잔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케인이 어렸을 때, 부모는 벼락부자가 된다. 케인이 폭력 성향이 있는 아버지와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성공하기를 원했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유능한 자산관리사인 대처에게 맡긴다. 어머니의 결정은 아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케인의 인생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상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무의식 차원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그러므로 누군가를 위한 행위가 누군가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가 없다). 어린 케인은 (대리 아버지가 된) 대처를 어머니를 빼앗은 장본인으로 오인해 증오하고, 어머니가 원하는 성공을 이루기 위해 분투한다. 이것은 나르시시즘의 원천이 된다.

 

케인의 어머니는 케인의 장래를 위해 어린 아들을 자산관리사인 대처에게 맡기기로 결정한다
어머니는 케인의 장래를 위해 어린 아들을 자산관리사인 대처에게 맡기기로 결정한다

케인과 수잔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보자. 케인은 비 오는 날, 길을 걷다가 달려가는 마차로 인해 흙탕물을 뒤집어쓴다. 지나가던 수잔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고, 케인이 “왜 웃느냐?”고 물으면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수잔은 케인에게 옷에 묻은 오물을 닦게 해 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케인이 수잔에게 이끌리는 이유는 먼저 케인이 유명인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호의를 베푸는 수잔의 순수한 마음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데 작용하는 타이밍이다. 케인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그것이 보관된 장소로 가던 길이었다. “어린 시절을 찾으려는 감상적인 여행”의 와중에, 케인은 수잔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수잔이 “어머니는 내가 유명 오페라 가수가 되기를 원했지만, 나는 재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하자, 케인은 수잔의 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수잔 어머니의 꿈을 이루게 해 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극대화된 순간에 나타난 수잔이 어머니의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어머니-수잔의 연결이 강화된다. 그러므로 정계 진출을 포기하고 성공 가도에서 물러났지만, 케인은 수잔 어머니의 꿈을 이룬다면 실패를 만회할 수 있다고 믿으며 더욱 집착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케인의 트라우마는 수잔에 대한 집착뿐만 아니라 온갖 물건(동식물 포함)을 끊임없이 사들이는 행태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나르시시즘과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거대한 저택 제너두를 건설한다. 그러나 케인의 상실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도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는 없다. 케인의 모습이 왜소하게 보이고 목소리가 울리는 제너두의 텅 빈 공간은 그의 공허한 마음의 풍경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케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썰매는 쓰레기로 분류되어 소각된다
케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썰매는 쓰레기로 분류되어 소각된다

결국 혼자 남은 케인은 수잔이 남기고 간 스노우볼을 손에 쥔 채, ‘로즈버드’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기자 톰슨은 로즈버드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영화 내내 고군분투했지만 실패한다. 그러나 케인의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시절 케인이 갖고 놀던 썰매에 새겨진 ‘ROSEBUD’라는 글자를 발견할 때, 관객은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이 평생토록 되찾고 싶어 했던 케인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이며 어머니라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 쓸모없는 물건으로 분류되어 불태워지고 있는 썰매를 보면서, 엄청난 부를 가졌으나 행복했다고 하기는 어려운 케인의 삶과 그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글ㆍ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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