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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서울로, 공해는 포항으로? ... ‘물적분할’ 포스코, 균형발전 역행 우려
돈은 서울로, 공해는 포항으로? ... ‘물적분할’ 포스코, 균형발전 역행 우려
  • 김유라 기자
  • 승인 2022.02.16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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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 지주사 '포스코홀딩스'의 설립으로 본점의 소재지가 포항에서 서울로 옮겨가면서, ‘균형발전 역행’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주요 대권 후보들도 잇따라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 논란은 정계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포스코는 신사업 성장을 위해 오는 3월 2일부터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한다. 탄소중립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철강업에서 친환경 소재 및 에너지 중심 글로벌 인프라 기업으로 정체성 변화를 추진 중이다.

출처=포스코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포스코는 지주사 포스코홀딩스와 철강사업회사 포스코로 나뉜다. 포스코홀딩스는 신설 포스코 지분 100%를 소유하게 되며, 기존 포스코가 가지고 있던 주요 계열사 지분 역시 포스코홀딩스가 가져간다.

 

포스코 지주사 서울 설립

포항시민, ‘지역소멸’ 우려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자생단체회원 200여명이 포스코 포항본사 앞에서 지주사 서울 설립을 백지화 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뉴스1

 

이강덕 경북 포항시장과 김정재 의원(포항북),김병욱 의원(포항남·울릉), 정해종 시의장과 지역 기관단체장 100여명이 지난 8일 포스코 포항본사 앞에서 포스코 홀딩스 지주사와 미래기술연구원 서울 설치 반대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출처=뉴스1

포스코 지주사의 설립과 함께 그룹의 거점도 서울로 옮겨가게 되면서 지역 균형발전이 저해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포스코 지주사 포항 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포스코 지주사 포항 이전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는 사흘 만에 약 7만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지주사 또한 현재 포스코 본사가 있는 포항에 설립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포항시는 ▲향후 철강산업 투자 축소 ▲지역 인력 유출 가속화 ▲세수 감소 등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이 포스코 그룹의 거점으로 자리 잡으면, 차후 임원진의 포항 방문이 줄어들 것이고, 지역 협력업체와의 교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역민들은 일전 포스코를 보고 포항에 투자한 기업도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에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도 서울사무소에 있는 그룹 전략본부가 지주사로 분리되는 것일 뿐 포스코의 본사는 여전히 포항”이라면서 “포항·광양의 인력 유출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그동안 공장과 본사는 포항에 두되, 철강 판매 등 사업 편의성을 위해 1995년부터 서울사무소를 운영해왔다. 서울사무소에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비롯해 200여 명이 근무 중이고, 지주사 출범 후 인력이 그대로 이동할 예정이다.

또한 서울에 지주사가 출범하더라도 공장 등 사업장은 여전히 포항에 있기 때문에 포항 지방자치단체에 납부되는 세수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포스코의 설명이다.

 

출처=뉴스1

그러나 포항시민 사이에서는 이미 포스코의 ‘탈(脫)포항’이 시작됐다는 인식이 거세다. "지역거점 개념으로 서울사무소를 운영하는 것과 지주사 본사를 서울에 두는 것은 그 상징성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포스코가 그룹의 신성장을 주도하는 ‘미래연구기술원’까지 수도권에 설립하기로 하면서 포항시민들의 불안은 짙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룹의 혁신기술 개발은 포스코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이 주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구개발이 수도권에서 진행되기 시작하면 지역 인력 유출은 예정된 수순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인재 유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은 언론을 통해 “포스코가 미국의 칼텍을 모델로 삼아 설립한 포항공과대를 지척에 두고도 '인재 유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 운운하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며 “균형발전에 역행한다는 지역 여론은 결코 억지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포항시는 최근 이장식 부시장을 단장으로 ‘포스코 지주사 전환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포스코 홀딩스 본사와 미래기술연구원 포항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이재명, 안철수 후보 한목소리

“포스코 본사는 포항에 머물러야...”

 

논란은 정계로 확산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14일 오전 경북 포항시 포스코를 방문,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의 안내를 받아 스마트 제철소로 이동하고 있다. /출처=뉴스1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일 포스코 본사 앞에서 열린 ‘포스코지주사 포항 유치를 촉구’ 집회에 참여해 “포스코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포항시민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1968년 포스코 설립 당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본사를 포항으로 못 박은 후 포항시민에겐 포스코를 키운 지역이란 자부심이 크다”며 “그런데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별다른 소통 없이 지주사를 서울에 설립한다고 하니 서운함이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포항시민들은 “돈은 서울로 공해는 포항으로 포항은 숨막힌다”, “포스코 지주회사 전환, 포항인구, 인재 다 떠난다” 등의 플래카드를 걸어두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한 시민은 언론 인터뷰에서 "포스코가 포항을 버리고 어떻게 떠날 생각을 하느냐. 이는 지난 50여 년간 철강공단에서 발생하는 공해와 환경훼손 등 온갖 피해를 감수하면서 묵묵히 인내해온 포항시민의 희생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 남구 형산강 교차로 주변에 포스코 지주사 서울 설립 백지화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출처= 뉴스1

이에 50만 포항 유권자를 의식한 주요 대권 후보들도 포스코 지주사의 포항 설립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지난달 27일 서울 당사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을 만나 “국가기관도 지방으로 가는 마당에 국민기업 포스코가 지주회사를 서울에 설치하는 것은 지방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것으로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균형발전 역행하는 포스코의 서울 본사 설립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포스코는 식민 통치로 고통받은 민족의 피와 땀이 배어 있고 포스코는 경북 유일 대기업 본사로 경북의 자부심이자 균형발전의 상징"이라며 "이런 포스코 본사 서울 설립 결정은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도전정신, 민족 기업으로서 역사적 사명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역시 지난 14일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방문한 뒤 경북 포항시 남구 해도동 형산교차로에서 '포스코지주사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나 "포스코 지주사 본사는 포항에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주사 분리, 중대재해법 회피를 위한 꼼수?

 

포스코 최정우회장 / 출처=뉴스1

일각에서는 이번 지주사 분리의 이면에는 포스코 회장의 중대재해처벌법을 회피의 목적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를 누구로 봐야 할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 시행 초기의 처벌 결과가 선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경북사회연대포럼, 포항시농민회, 포항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6일 성명서를 밝혔다. 이들은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최근 사망사고를 포함해 3년간 무려 8명이 사망했다"며 "최정우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피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주회사 전환은 최정우 회장에게 그 동안 발생한 중대재해의 면피 수단이 되고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책임은 자회사에 있게 된다"고 말했다. 법인을 분리해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자회사로 떠넘기고 경영에는 그대로 참여하는 ‘꼼수’라는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또한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정우 회장은 포스코 지주회사로 중대재해 책임과 불법파견 처벌을 회피하고, 이익만 독차지하려 한다”면서, “기업의 사회 책임은 비켜 가는 포스코 지주회사 전환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스코 최정우 회장은 같은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 체제는 회사의 신사업 성장을 균형 있게 추진해서 주주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고 해서 중대재해처벌법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회피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를 추진한다는 것은 잘못 알고 계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ㆍ김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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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기자 yulara1996@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