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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벚꽃 흩날리는 영화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벚꽃 흩날리는 영화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1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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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흩날리는 봄날 보고 싶은 영화

완연한 봄이다. 어느새 매콤했던 겨울 냄새가 사라지고, 따스한 바람이 봄이 왔음을 알린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전하는 포근한 봄 향기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봄을 알리는 최고의 시그널은 아름다운 벚꽃이 아닐까. 벚꽃은 ‘삶의 아름다움’이란 꽃말처럼 팍팍한 삶에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그래서 봄에는 벚꽃이 아름다워 영화도 더 아름답게 느껴질 영화를 찾게 된다. 벚꽃이 흩날리는 감성 로맨스 영화 중 특히 제목이 기억에 남는 영화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이다.

흩날리는 벚꽃 눈을 맞아보는 건 세상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지만, 아름다운 영상에 담긴 벚꽃을 보는 건 또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영화로 즐기는 ‘랜선 벚꽃 놀이’에는 스토리가 있고 그 스토리의 심장에는 벚꽃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짧게 지나 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달달한 감수성에 젖고 싶을 때 감성 로맨스 영화는 보는 이의 감성 지수를 올린다. 2015년 출간해 이백만 부가 넘게 팔린 스미노 요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로 제작이 될 정도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제목만 봐서는 감성 로맨스 맞아 하는 의심이 든다. 제목이 너무 살벌해 피가 튀는 하드 고어 장르를 상상하기도 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제목은 ‘옛날 사람들은 아픈 부위와 똑같은 동물의 부위를 먹었다’는 일본의 오랜 미신에 기댄 표현이다. 간이 아프면 간을 먹고 위가 아프면 위를 먹고, 그러면 병이 나을 거라 믿었다고 한다. 이런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들에게 신선하고 흥미로운 영화 제목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이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색다른 감동을 전하는 의미로 다가온다.

 

‘어디 아픈 데가 있으면

동물의 그 부위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

‘나한텐 아무도 먹게 해 주지 않겠지?’


고등학생인 하루키는 맹장 수술 후 실밥을 풀러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공병문고’라는 노트를 줍게 된다. 알고 보니 병과 함께 살아가는(共病) 누군가의 비밀일기장이었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고 쓰인 걸 어쩌다 보게 된 하루키. 그런데 그 일기장의 주인이 바로 자신의 반 친구 사쿠라였다.

 

공병문고를 설명하는 사쿠라(하마베 미나미)와 듣고 있는 하루키(키타무라 타쿠미) 

시한부 삶을 다룬 영화가 많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오글거리거나 신파적이지 않다. 시한부 삶을 다룬 다소 전형적인 소재를 아주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유사 소재의 청춘 로맨스 영화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손꼽을만하다. 말랑하기만 한 작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지막에 나오는 반전이라면 반전, 충격이라면 충격적인 사건은 오글거리는 청춘 멜로 그 이상의 영화가 되게 한다.

 

우연인가 선택인가

둘은 상당히 다른 사람이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 예를 들면 인생은 우연인가 선택인가 하는 둘의 관점 차이를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둘의 만남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하루키와 그 모든 게 선택이라고 믿는 사쿠라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사쿠라는 자신의 삶이 일 년 정도 남았다는 걸 알고 있고, 그럼에도 새로운 친구 하루키와 인연을 만들어 가는데, 이게 쉬운 건 아니다. 사실 하루키는 어쩌다 병원에서 일기를 보게 됐고, 그 일기의 주인이 같은 반 친구고, 비밀을 공유하게 됐으니 우연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쿠라는 우리 모두 선택을 해서 여기까지 와 있다고 얘길 한다. 우연도 운명도 아닌 각자의 선택으로, 우리가 해온 선택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서로를 끌어당긴 거라고 말한다.

 

(이 타이밍에 헤이즈의 <헤픈 우연> 한 곡 듣는 것도 좋다.)

하루키와 사쿠라는 음식, 친구 사귀는 방식, 취미 등 뭐 하나 비슷한 게 없는 정반대 스타일이다. 자꾸만 다가오려는 사쿠라에게 하루키는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다른 뭔가 특별한 일을 해보라”고 권한다. 사쿠라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하루의 가치는 너나 나나 똑같다고 말하며 특별한 일, 산다는 건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 답한다.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 누군가와 함께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일, 누군가와 손을 잡는 일. 사쿠라는 혼자만 있으면 자신의 존재를 알 수 없고, 타인과의 관계가 바로 산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존재하는 건 모두가 있기 때문이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사쿠라는 하루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반대로 하루키는 남과의 관계가 아니라 그냥 자신인 사람, 자신의 매력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이다. 사쿠라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함으로써 가치를 발하는 자신과 달리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는 하루키에게 부럽다고 말한다. 상대의 장점이 부럽긴 하지만, 자기 삶에 자신감이 넘쳤던 사쿠라는 마지막까지 늘 친근하게 먼저 다가가 말한다. “죽을 때까지 사이좋게 지내자!” 이런 태도가 영화 전체를 밝고 즐겁게 느끼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는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서로 바라보고 있으니까. 영화의 구조도 그렇게 되어 있다. 모든 걸 하루키의 관점에서 바라보다가 충격적인 사건이 있고 난 뒤부터는 사쿠라의 시점으로 보여준다. 서로의 다름이 함께하는 가치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걸 영화 구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소설 원작에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로 모두 제작되었으니 취향에 따라 골라보면 된다. 2017년에 나온 영화는 원작과 달리 12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었다. 츠키카와 쇼 감독은 “사쿠라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에게 계속 살아가야 할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영화는 원작에는 없는 홀로 남겨진 하루키가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 구조를 가져와 현실성을 확보하려 했지만,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개연성이 다소 느슨하다. 오히려 둘의 관계와 당시 느꼈을 애틋한 감정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면 2018년에 나온 우시지마 신이치로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추천한다.

 

12년 후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 하루키(오구리 슌)

영화에 나오는 얘기처럼, 산다는 건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누군가를 인정하고, 좋아하고, 누군가와 함께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일, 누군가와 손을 잡는 일, 그리고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 그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강력한 고백으로 다가온다.

지루한 일상은 잊히지 않을 순간을 동경한다. 그래서 우리는 첫사랑을 찾는다. 부담스럽게 발랄하고, 이상하리만치 행복해 보이던 시한부 소녀와 친구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외톨이 소년이 함께 써 내려가는 첫사랑 이야기를 봄만 되면 다시 찾게 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은 짧은 순간 피고 지는 벚꽃 같은 첫사랑이지만 그럼에도 잊을 수 없는 아련하고 애틋한 관계를 아주 천천히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및 영화학박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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