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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역사가 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소명 :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역사가 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소명 :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2.07.12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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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가 재외동포를 만나다

<헤로니모 Jeronimo>(2019)는 한국계 미국 변호사 전후석이 매혹된 쿠바 한인, 헤로니모 임Jeronimo Im, 임은조)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전후석은 헤로니모의 코리안 디아스포라(1) 소명에 깊이 공감하게 되고 이에 따라 전후석 자신의 인생도 전환점을 맞게 된다. 뉴욕의 한국계 변호사라는 직장인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역사적 소명 의식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으로 인식과 존재가 확장된 것이다. 전후석은 <헤로니모>를 통해 자신을 포함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특별한 보편성에 관해 묻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미 <헤로니모>는 감독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끌고 갈 주제어 디아스포라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논란(2)이 있지만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감독의 의도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 헤로니모> 포스터

헤로니모에게 매혹되다

전후석은 <헤로니모>를 시작할 당시 영화제작을 위한 사전 기획과 목적이 없었다. 다른 많은 여행객처럼 오랫동안 교류가 없던 사회주의 국가 쿠바로 호기심 가득한 여행을 떠났을 뿐이다. 전후석을 마중 나온 현지인은 쿠바 한인 3세. 재미 한국인 전후석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항상 관심이 있었으며 세계 각지의 한인들이 고국을 떠나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지 궁금해 왔다. 그렇지만 휴가로 떠난 쿠바에서 공항에서 처음 그를 맞는 현지인이 쿠바 한인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쿠바 한인 3세 가족의 거실엔 방패연과 하회탈 등 한국적 장식이 가득했다. 정작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이런 식의 한국 민예품 장신구들로 거실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재외한국인에게 한국의 정체성은 애써서 찾아야 겨우 붙잡을 수 있으니 그 장신구들처럼 다소 과장되어 있다. 이는 한국인 정체성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는 절박함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곳엔 태극기와 쿠바기가 함께 꽂혀 있다. 쿠바인과 한국인의 이중적 정체성의 균형을 찾으려는 흔적일 것이다. 전후석은 이 거실에서 가족사진을 통해 헤로니모(임은조)를 만나게 된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쿠바의 혁명가.

 

쿠바 혁명의 주역, 헤로니모. 체 게바라와 함께

9개의 훈장을 받은 쿠바 공산당 설립자로 쿠바 근대사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고위직 공무원. 하지만 노년엔 한복을 입고 북을 치고 있는 모습. 헤로니모의 아내 프란체스카는 전후석에게 남편의 사진을 보여주며 추억을 펼친다. “이건 역사야. 남편은 한인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어.” 전후석은 이 뜻밖의 역사적 인물을 대면하며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고인의 흔적들과 고인께서 보여주셨던 한국과 뿌리와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업적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제가 도와드릴 게요.”

전후석은 쿠바 전역에 퍼진 헤로니모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을 시작으로 영화작업에 착수한다. 이 여정을 위한 배경은 구한말 독도 사진에 순수한 어린이 목소리로 부르는 독도 노래를 뮤직비디오 시퀀스처럼 편집하여 개인사라는 미시역사와 거대역사가 촘촘하게 엮어가는 이주역사의 과정으로 장면화한다. 역사와 개인, 더구나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역사가 낳은 디아스포라는 더 처절하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은 소설 [파친코]에서 강렬한 첫 문장 “역사는 우리를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로 같은 상황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압축한 바 있다. 이 첫 문장의 무게감은 <헤로니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지난한 역사 속에서 재외한국인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관통했으며, 이념과 분단의 경계선 위에서 생존해야 했다.

 

이념과 역사가 뒤엉킨 쿠바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그 애잔한 역사

1903년에서 1905년까지 7,000명의 조선인이, 정확히는 노예에 가까운 조선 근로자가 하와이로 떠났으며 한 척의 배는 멕시코로 향한다. 당시 황성신문 ‘농부모집 광고’ 내용이다. “묵서가(멕시코)는 미합중국과 이웃한 문명 부강국이니 부자가 많고 가난한 사람이 적어 노동자를 구하기가 극히 어려우므로 한국인도 그곳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다.”(1904년 12월 24일 황성신문) 영화는 충실하게 이 역사를 보고한다. 당시 조선은 멕시코와 국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멕시코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1905년 4월 4일, 1,033명의 조선인이 멕시코 유카탄반도로 갔다. 도착 직후 그들은 22개의 농장으로 팔려 갔다.’ 하시엔다라는 에네켄(Henequen·용설란) 농장에서 에네켄의 뾰족한 가시들과 말을 탄 관리자들이 휘두르는 채찍으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조선인들은 설상가상 1910년, 국권 피탈로 돌아갈 고국마저 잃어버리고 통곡한다. 일제 강점기의 고국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멕시코에 남기로 결심한 그들은 쿠바 한인들과 매 끼니 쌀 한 숟가락씩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보낸다. 그 주축이 된 독립운동가가 헤로니모의 아버지 임천택이다. 임천택의 독립운동자금 마련에 관한 이야기는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도 언급된 바 있다. 헤로니모 역시 쿠바 한인들을 위해 헌신했다. 다만 헤로니모가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혁명 영웅이었기 때문에 남한사회와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쿠바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쿠바와 미국의 국교 회복과 남한과 쿠바의 국교회복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헤로니모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방문을 하게 되며 또 한 번의 인생 전환점을 갖게 된다. 아버지 임천택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모국, 그토록 가르치고자 했던 한국인 정체성에 대해 돌아보게 된 것이다. 헤로니모는 쿠바로 돌아와 한인사회 재건을 위해 900여 한인들을 찾아 명단을 만들고 한인 커뮤니티를 만들며 한글학교를 세운다. 이들의 헌신은 수많은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의 한 예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헌신으로 인해 100년 넘게 모국땅을 밟아본 적 없는 그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헤로니모와  가족 

타자로 살면서 자기 정체성 찾기: 한국인 정체성이라는 ‘본질’

영화는 첫 장면부터 단도직입적으로 한국인 정체성의 본질을 묻는다. 전후석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성장했고, 하고 싶은 얘기가 분명해졌다. 관객 또한 영화를 감상하면서 한국인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800만 재외동포는 거주국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아웃사이더로 취급받아왔지만, 실은 한민족의 저력을 과시하며 전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국력이며 세계시민을 품는 대한민국과 세계를 이어가는 교량이 되고 거점이 된다. 고통 위에 세워진 한국인과 한국인 디아스포라, 그 고통 안에서 이루어 낸 성숙함을 통해 세계시민을 위한 선민이 될 수 있다. 재외동포의 소명은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서 더 분명해진 것이다. 헤로니모에게 있어 모국이라는 의미는 이 소명과 역사의식일 것이다. 전후석이라는 재외동포의 렌즈 더 나아가 그의 삶 속에 투영된 헤로니모의 역사는 이제 감독 전후석의 역사가 되었고 관객의 역사가 되고 있다. 이것이 역사다. 한국 내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은 일상이지만 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정체성에 관해 묻고 예리하게 끝을 벼리며 긴장해야 얻을 수 있는 절실한 것이다. 한국 전통 민예품이 악착같이 거실에 장식돼야 하는 재외동포 거실 풍경처럼.

 

 

글·김 경
영화평론가


(1)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재외동포재단법」(2020.11.27. 시행) 제2조(정의)에서 “재외동포”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혹은 국적에 관계없이 한민족(韓民族)의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외국에서 거주·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 재외동포에 대한 정의 전 세계 재외동포 수는 약 732만 명(7,325,143명, 2020년 기준, 외교부)이며 공식 명칭은 재외동포이나 ‘잠시 머물러 살다’ 혹은 ‘더부살이하다’는 의미를 지닌 ‘교(僑)’를 사용하여 교포, 교민 등 비하적 용어를 혼재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 시정이 필요하다.

(2) www.koreatimestx.com , [최윤주 칼럼] 잘못된 용어 ‘코리안 디아스포라’에서 최윤주는 그 부정적 의미를 이유로 “더 이상 재외동포 사회를 ‘디아스포라’로 표현하지 말라”고 강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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