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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미래, 체제가 사람을 만났을 때
북의 미래, 체제가 사람을 만났을 때
  • 박영자
  • 승인 2012.01.0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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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특집 김정일 '이후'의 시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영결식 직후인 지난해 12월 29일 추도대회에서, 북한 정권은 ‘김정은 시대’ 출범을 공표했다. 북한 매체와 권력 엘리트는 김정은을 김일성·김정일과 동격인 ‘21세기 태양’, ‘어버이’ 등으로 극존칭하고, ‘심장 속 최고사령관’으로 표현했다. 이튿날엔 김정은을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한 데 이어, 31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탄생 100돌에 즈음하여’란 부제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공동구호’를, 1월1일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자’란 제목의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공동사설’을 잇따라 발표했다.

위 발표에서 북한 내부의 정치·사회 전망을 위한 두 측면의 핵심 내용을 분석해보자. 하나는 김정일이 1970년대에 사상·기술·문화를 기치로 주도한 ‘3대 혁명소조운동’과 1980년대 경공업·농업 생산성 향상 ‘대중운동’, 그리고 90년대 이후 ‘선군정치’를 계승하는 김정일 유훈통치의 실현이다. 3대 혁명소조운동은 1974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된 뒤 지도자로서 정당성과 조직을 확보하기 위해 펼친 대중동원운동이다. 빠른 목표 달성을 촉구하는 속도전으로서 ‘붉은기쟁취운동’, 1984년 ‘8·3 인민소비품생산운동’으로 대표되는 경공업·농업 생산성 증대운동, 그리고 군대를 앞세워 병영 체제를 구축한 ‘선군정치’가 뒤를 잇는다.

다른 하나는, 대중동원과 김정은 영웅 형상화 작업을 통한 집단주의와, 절대권력 체제 재구축 및 비사회주의(1) 검열 강화다. 구체적으로 경제난 지속과 시장화, 그리고 비공식적 외부 정보 확산에 따른 북한 관료와 주민들의 아래로부터의 변화에 대한 통제 강화다. 즉 비사회주의 현상 척결과 사회주의 법무 생활 강화다. 이를 위해 청년조직과 여성조직, 그리고 사회안전부·국가보위부·법관의 충성심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제국주의 사상문화적 침투책동 분쇄’, ‘사회주의를 좀먹는 현상 타개’, ‘이색적 생활풍조 뿌리뽑기’ 등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 시대 북한 정권의 정책 의지는 북한 사회와 주민에게 관철될 수 있을까?

‘아래로부터의 북한 사회와 주민의 변화’를 구조적 시각에서 살펴보고, 이에 기초해 북한의 올해 및 중·장기적 미래를 전망하는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북한 체제 수립 뒤 정권에 의해 ‘핵심·동요·적대’라는 정치·신분적으로 분류되던 주민의 계층구조가 시장화로 2003년 이후 소득 및 생활 수준에 따라 상층·중층·하층으로 재구성됐다.(2) 시장활동가와 권력자 공모·연계에 따른 ‘부-권력 공생 네트워크’가 계층 변화의 핵심 요인으로 작동했다. 부-권력의 연계 정도에 따라 ‘정치·신분적 계층구조’가 ‘정치·경제적 계층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계층 구성비는 지역과 도시·농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필자가 참여한 통일연구원의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2008년)과 ‘북한 주민의 삶의 질’(2011년) 연구 과정에서 최근 북한 이탈 주민 100여 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를 종합할 때, 화폐개혁을 기점으로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화폐개혁 이전 2007년 기준으로 상층은 10~30%, 중층 30~50%, 하층 50~70% 수준이었다.(3) 그러나 화폐개혁 이후 2010년 기준으로 상층 10~15%, 중층 15~30%, 하층 60~70%, 하층 중 극빈층 15~20% 수준으로 변해, 전체적으로 주민의 생활수준이 다소 낮아졌다.(4)
 
달라진 계층구조, 그 원인은

그렇다면 화폐개혁 이후 계층구조 변화의 핵심 요인은 무엇인가? 전반적 증언을 종합해볼 때, 부의 수준은 여전히 중요한 요인이고 권력의 영향력이 화폐개혁 이전보다 커졌다. 화폐개혁 이후 하루아침에 망한 신흥상인도 있으나, 여전히 ‘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특히 여전히 압도적 정치 우위 사회인 북한에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밀착할 수밖에 없고, 권력과 부가 연계된 집단이 상층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별 계층 분화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북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부-권력 공생 네트워크’다. 상층의 잘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1% 최상권력층을 제외하고는, 안면관계나 가족관계 등 각종 연고뿐 아니라, 감시와 통제로부터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후견해주는 ‘뇌물을 매개로 한 비인간적 관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부-권력 공생 네트워크’는 북한 체제 유지의 한 축이기도 하고, 역으로 급격한 사회변동기의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목적 합리성을 가진 세력이 될 가능성도 크다.(5)

현재 북한 주민의 새로운 계층구조와 위계를 가능하게 하는 관계는 혈연·학연·세대연 등에 의한 가족 및 친구관계, 돈벌이나 시장활동을 통한 관계, 뇌물을 매개로 한 후견-피후견 관계다. 특히 시장활동 및 통제·검열을 매개로 한 관료와의 부-권력 결탁 현상이 일반화됐다. 이 관계는 사회 전반에 관료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위주의 사회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하지만, ‘물질적 이익을 매개로 한 직접적이며 비인간적인 관계의 일상화’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즉, ‘일상화된 뇌물’과 ‘관계의 비신뢰성’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것이다. 이익 규모가 클수록 관계 대상의 직위가 높고, 하층구조 역시 액수는 적더라도 일상적 뇌물 관계가 생활수준에 영향을 미친다.(6) 관료들도 시장이나 생산단위와 연계된 간부는 잘살고 그렇지 않은 간부는 못살며, 비사회주의 검열이 강화돼도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당하는 구조가 자리잡혔다.  

북한의 비사회주의 요소 확산 실태를 보면, 비사회주의 현상뿐 아니라 체제에 위협이 되는 반사회주의 현상이 아래로부터 확산되는 것과 함께, 이에 대한 처벌·통제가 주민들의 정책 신뢰성을 낮추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같은 행위를 해도 주체와 상황, 인맥과 뇌물 등으로 처벌 여부나 수위가 검열 주체에 의해 자의적으로 불평등·비균등하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처럼 오랜 시기 평등주의 교육과 보상 제도를 운영하던 사회에서는 더 큰 불만 요인이 되고 있다. 한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식·삶의 준거와 정권의 인식·정책 준거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의식뿐 아니라 행위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다.

비사회주의 확산과 통제 사이 의식 변화

북한 정권 또한 비사회주의 확산이나 관료들과의 뇌물 연계를 알고 있기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통제를 강화했다. 2010년 말 당대표자회 이후 사회통제가 더욱 심해졌고, 사회안전단속법은 ‘인민보안단속법’으로 이름이 바뀌고 내용도 일상생활 통제 강화와 단속 절차 간소화 방향으로 대폭 개정됐다.(7) 북한 정권의 주민 통제 실태가 중요한 이유는, 북한 사회와 주민 변화가 법제도적으로 처벌을 강화해야 할 만큼 광범위하게 확산됐고, 이와 관련된 통제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으며, 2012년 이후 더욱 강화돼 김정은 시대에 국가·사회 갈등을 증폭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부의 규모와 권력과의 연계 정도에 따라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권도 비사회주의 의식과 행위에 대한 검열과 통제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 이념은 여전히 ‘사회주의’와 ‘평등’을 내세우고 있다. 공식 이념과 현실세계에 큰 괴리가 존재하며, 북한 주민들도 더 이상 북한 체제를 사회주의 이념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2000년 이후 “사회주의 사회냐 아니냐를 더 이상 논하지 않고”, “자기 능력에 따라”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됐다.(8) 주민들이 배급 단절과 시장경제 질서를 15년 이상 경험하면서, 집단주의와 평등 지향 사회주의 이념이 해체된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이든 능력이든 간에 가진 자들이 더 잘사는 것에 대해 사회주의적 평등 이념으로 평가하던 시대는 지났다. 또한 빈부 차이가 커지면서 “사람들의 상태에서 사회주의란 인식이 없어졌”고, ‘잘산다 못산다’는 불평등 의식이 크게 없던 배급 시대도 옛날이 되었다. “2012년엔 강성대국 문이 열린다는데 한 명도 곧이듣는 사람이 없고. 지나가면서 ‘흥! 강성대국이 왔대서 문 열어보니 뭐 거기 안에 간부들만 꼴독 찼더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까지”(9) 나오는 등 국가의 국민생활 보호 체계가 무너지면서 사람들 인식이 싹 달라진 것이다. 나라 형편이 어려우니 인민 형편을 생각해 개방 체제로 바뀌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정권에 의해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10) 15년 이상 자생적 시장화 과정에서 생존 방식을 터득한 사람들 중, 특히 큰 권력은 없으나 장사로 잘살게 된 사람들이 화폐개혁 뒤 무너지는 모습을 본 북한 주민들은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불신이 커졌다.

삶이 점점 팍팍해진 사람들의 국가 불신은 커지지만 통제·검열로 인해 조직적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똑똑하고 배짱이 있는 놈은 두만강이라도 건널 생각을 하는데. 그게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나 좀 여유가 있을 때 두만강을 뛰겠다 하는데. 육체도 너무 볼 것도 없고 그쪽에도 옛날과 달리 국경을 넘기가 정말 안 되”(11)는 상황이 부가되고 있다. 국가와 사회 전망에 대한 불신·불안에도 탈북하기 어려운 것은 비사회주의 검열과 함께 국경 경비가 더욱 강해졌을 뿐 아니라,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죽음까지 불사하는 의지와 함께 육체적·물질적 자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북한 주민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자기가 노력해서 어떻게 하나 권력을 쥐든가. 그러지 않으면 머리를, 잔머리를 써서 법을 어겨서 나쁜 짓을 많이 해서라도 남보다 디디고 올라서서 돈이 많든가, 아니면 공부를 많이 해서 권력을 잡든가. 그러지 않으면 그냥 바닥에서 막 일어설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12)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의식 변화 양태는 어떠한가?

△윤리적 측면에선 물질주의, 개인주의, 가족이기주의 △현상적 측면에선 탈집단주의, 국가주의 약화, 체제 불만 증대 등을 꼽을 수 있다. 3대 세습과 관련해 주목할 점은 신처럼 인식되던 김일성 집안과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 민족’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이완됐다. 왕조로서, 비교가 금기시되던 김일성 가계 역시 일반 북한 주민의 가계와 비교되고 있다. 현재 북한 사회에서 일상적 삶에 안전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시장화와 외부 정보 유입에 민감한 여성과 시장 세대, 그리고 상대적으로 생활수준이 높은 중·상류층에서 의식 변화가 두드러진다.(13) 잘사는 사람일수록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와 여유가 있다 보니, 의식 변화도 중·하층과 농민보다 도시 중·상류층 사이에서 크게 나타난다.

2012년은 북한 당국이 김정은 시대를 안착시키며 강성대국의 포문이라도 열어야 하는 절박한 해이다. 이 상황에서 2012년 2월 16일 김정일 70회 생일,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 4월 25일 인민군 창건 80해맞이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치러야 한다. 이미 2010년부터, 그리고 2011년에 이와 관련된 각종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평양시를 비롯한 주요 시설 정비, 대대적인 건축 조형물, 주택 건설 등 돌격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식량 공급을 정상화하겠다며 식량 비축 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뇌물 구조에 견고히 얽힌 간부층 전반에게 충성의 헌납 등 뇌물 공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올해까지 평양시 10만 가구를 완공하겠다고 노력 동원을 했을 뿐 아니라, 각종 행사와 건축 비용 조달을 위해 기관·단체·학교 구성원들을 조직 동원하고 있다.(14)
 
북한 정치·사회 균열의 중·장기 전망

이와 연동해 올해에는 북한 주민들의 장마당 활동을 통제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 한 해 각종 경축행사를 치르며 나타날 수 있는 북한 사회의 주요 특징을 전망해보자. 첫째, 상반기에 일시적으로 배급이 이루어질 수 있으나 그 대상은 평양과 군대, 주요 기관, 기업소에 국한될 것이다. 따라서 지방 주민들은 각종 사업에 동원되면서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시장활동도 제약돼, 중앙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것이다. 둘째, 2010년 중반 이후부터 본격화된 각종 제도 정비와 2012년 행사 준비를 위한 각종 노력 동원으로, 주민들의 피로감이 증대할 것이다. 셋째, 강도 높은 사회통제가 동반되므로 각종 검열을 피하기 위한 부-권력 공생관계, 뇌물 구조는 더욱 복잡하게 나타날 것이다. 넷째, 전쟁 분위기 조성으로 위기감을 고조시켜 불만을 잠재우려 함에 따라 일탈 및 탈출 행위의 위험도가 커지는 만큼, 특수한 일탈과 탈북의 양태가 확대되고, 북한 주민들이 치러야 할 비용도 증대할 것이다.

북한의 정치·사회 균열과 관련한 필자의 연구 결과(15)에 기초해 볼 때 △북한 집권 엘리트의 네트워크 특성상, 김정은 시대의 정권 구조는 어떠할 것인가 △북한 체제 이완 및 탈북의 주요 주체는 누가 될 것이며, 대량 탈북 가능성은 어떠한가 △북한 체제 변화 시나리오로 어떤 것이 있는가 등을 주제로 북한 체제의 중·장기적 전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은둔>, 2010-이강혁

#전망1_ 집권 엘리트와 김정은 시대
김정일 시대 북한 집권 엘리트의 중첩성과 지속성 구조를 통해 김정은 시대 집권 엘리트 구조를 전망할 때, 현 집권 엘리트의 네트워크가 내부에서 해체되거나 붕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 집권 엘리트의 중첩성과 지속성 높은 네트워크 구조로는 그 내부에서 ‘새로운 충원 기회 창출’이 어렵고, ‘집권 엘리트와 절대권력자의 권력 집중성’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노동당 경력 기준으로 평균 33년 이상을 고위직 집권 엘리트로서 권력을 행사하던 그들과 그 폐쇄적 네트워크가 새로운 정치 엘리트 충원 구조를 창출할 가능성은 적다. 세대성을 초월한 ‘장기 지속적 네트워크 구조’가 순환회로를 폐쇄시켰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 집권 엘리트 네트워크의 변동이 가능하려면 △전쟁을 통한 물리적 정치체제 변동 △인민봉기 형태의 아래로부터의 집권 엘리트 네트워크 파열 계기가 산발적으로라도 지속 △인민 저항·봉기의 영향을 받은 중간층 정치 엘리트 중 물리력을 가진 군부의 정치 엘리트들의 쿠데타 △집권 엘리트 내부의 구심으로 작용하는 전통성과 영향력을 갖춘 인물이 아래로부터의 변화 요구 담론을 선점하고 중간층 정치 엘리트의 동요를 세력화해 체제 비전을 제시하는 것 등이 요구된다.

전쟁을 제외하고 현 집권 엘리트 네트워크의 변동 가능성을 고려할 경우, 가장 큰 변수는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인민봉기의 수위 및 빈도이다. 그다음으로 이 영향이 중간층 엘리트와 군부 엘리트의 이해 및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무질서한 저항이나 인민봉기에 대한 대대적인 군의 진압이 있을 것이고, 사태가 확대될 경우 외부와의 연계 가능성 등을 포함해 상당한 물리적 충돌이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도 수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물리적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도 상상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 욕구가 증폭돼 현 체제의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현 집권 엘리트 중 중간층 엘리트 및 군부 엘리트 네트워크와 연계된 당·군·정의 실력자로서, 중간층 간부들의 저항이나 요구를 빠르게 정책 비전으로 제시할 수 있는 집권 엘리트와 그 세력들의 네트워크 작동이다.(16)

다음으로 3대 세습의 주체이며 영도자로 세워진 김정은의 정치 경력이 너무 짧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른바 ‘만경대 혈통’과 ‘백두의 혈통’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권력구조를 감안하더라도, 북한 집권 엘리트의 지속력이 평균 30년 이상임을 감안해야 한다. 1984년생으로 현 집권 엘리트들의 자식·손자뻘인 김정은으로의 세습은, 북한 엘리트의 지속성에 비춰볼 때 여러 문제를 파생시킬 것이다. 북한 권력 엘리트의 지속성 구조 때문이다. 현실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모든 임명권을 가진 권력자는 업무 처리나 의사소통 원활화를 위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신뢰를 얻은 인물을 임명하려 한다. 즉 거래비용(Transaction Costs)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 자신과 강한 결합 관계에 있는 사람을 임명하려 하고, 이것은 혈연·학연·세대연·경력 등 1차적 관계와 사업 및 관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임명·추천으로 나타난다.(17) 북한이 ‘김일성 민족’의 정통성과 정당화를 위해 ‘백두의 혈통’으로서 김정은 절대권력 체제를 유지하려 할 때, 김정은의 권한은 절대적이어야 하고, 그 자신이 절대권력을 발휘해 3대 수령으로서 지위를 굳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에게 가장 큰 장애는 빈약한 네트워크이다. 여기에 북한 집권 엘리트 네트워크 구조와 김정은 시대의 딜레마가 있다.

김정은에겐 김정일과 같은 권력투쟁과 세력화의 경험이 미약할뿐더러, 현재 상황으론 무엇보다 네트워크를 형성할 시간이 부족하다. 물론 김정일의 절대권력도 김일성과 동일하지 않았기에 김정은의 절대권력 체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김정일의 조직화 능력이나 수많은 당·군 경력, 유일사상 체계를 세우기 위한 과정 등을 제외하고라도,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30년 동안 김일성과 매일 전화로 사업을 토론했다.(18) 그럼에도 김정일의 절대권력은 김일성보다 훨씬 약했다. 따라서 절대권력 구축을 위해 김정은이 임명권을 행사하려 해도 그의 빈약한 네트워크와 사업 경험 탓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버지의 충신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고, 현재 집권 엘리트들이 그 축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상징적 수령’과 ‘실질적 집단지도 체제’로서 집권 엘리트의 권력 유지가 가장 유력한 김정은 체제가 될 것이다. 김정은의 절대권력 카리스마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현 집권 엘리트가 국정을 주도하는 권력 구조다. 현 집권 엘리트의 네트워크가 그 내부에서 해체되거나 붕괴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현재 북한 집권 엘리트의 네트워크와 이익이 가장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방안이다.
 
#전망2_ 체제 이완과 탈북의 주체, 그리고 대량 탈북 가능성
현 북한 체제 이완과 탈북의 주체로 지역별·계층별·세대별 주체를 주목할 수 있다. 지역별로 보면, 시장화 정도와 각종 정보 순환, 그리고 탈북에 필요한 인맥 및 지리적 유리함을 지닌 국경연선 지역 주민들이 주요 탈북 주체가 될 것이다. 국경연선 지역은 대다수 북한 이탈 주민의 출신 지역이고, 중국과 맞닿아 각종 연고로 탈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지역이다. 또한 탈북한 이들이 물질적 지원과 가족애를 동원해 가족 탈북을 유도하면서, 국경연선 지역은 이미 다수 탈북자들의 출신지일 뿐 아니라 이후 생산지가 될 것이다.

계층별 측면에서, 탈북의 주요 계층은 일상생활을 기준으로 볼 때 비사회주의 또는 반사회주의 검열에 연루될 경우, 통제의 직접적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중류층이 될 것이다. 상류층은 대개 권력층과 중첩되거나 긴밀히 연계된 북한 체제의 기생·공생 집단이라 할 수 있다. 하류층은 시장활동 수준이 낮고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희박해, 생존 자체가 절실하기 때문에 체제 이완의 주체로 떠오를 가능성이 낮다. 탈북도 브로커나 연줄, 뇌물 등 상당한 돈이 있어야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따라서 하류층은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적대세력이라고 해도, 북한 체제 이완과 탈북의 현실적 주체로서 동력이 없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권력층과의 연계수준이 상류층보다 낮고, 물질적이며 정보적 측면에서는 하류층보다 높은 중류층 주민들 중에서 정치·경제·사회적 비사회주의 및 반사회주의 사건에 연루되거나 연루 위협에 처한 사람들이 탈북의 주요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가족 탈북의 경우도, 중류층 가정의 구성원이 가장 많을 것이다. 세대별로 보면, 정보순환도가 높고 새로운 조류와 사상을 빠르게 흡수하는 젊은 세대, 특히 2000년대 시장화 이후 개인적 실리를 추구하며 돈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뿐 아니라 삶의 가치와 사회적 권위를 보장해준다는 것을 학습한 시장 세대가 탈북의 주요 주체가 될 수 있다.

대량 탈북 가능성은 어떻게 볼 것인가? 전쟁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그 가능성은 낮다. 부-권력 공생관계가 북한에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상류층 내부에 형성돼 있다. 이들은 북한 내에서도 외부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 절대권력 체제와 공생하고 있다. 또한 북한에서 숙청 등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황이 아니면 거의 어려움 없이 잘살 수 있기에, 탈북의 정치·사회적 비용을 감내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중류층은 탈북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이들 역시 20년 이상의 식량난을 거치며 북한 사회 내부에서 일정하게 생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 직접적 구속이나 통제의 대상이 되는 비사회주의 또는 생명 위험과 직결되는 반사회주의 검열에 연루되지 않는 한 대량 탈북할 가능성이 낮다. 하층민들은 외부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하루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며, 더욱이 탈북 의지가 있다고 해도 상당한 돈과 인맥, 각종 연줄이 필요하기에 탈북을 시도하거나 성공하기 힘든 상황이다.

#전망3_ 북한 체제 변화 시나리오
북한 사회와 주민 의식 변화가 체제 변화에 직접적으로 연계될 것인가? 앞서 서술한 북한 체제 이완, 비사회주의적 검열에 연루되거나 의식 변화 가능성이 높은 국경연선 지역 주민, 중류층 주민, 시장 세대가 사회 균열의 주요 집단을 형성한다고 해도, 사회 균열 구조가 체제 균열과 직결되긴 어렵다. 이들의 비사회주의적 행위와 의식 변화는 정치적 기회 구조와 맞물려야 체제 변화에 실질적 의미로 작용할 수 있다. 이때 정치적 기회 구조는 내적으론 엘리트 분화 과정 및 세력 이합집산과 긴밀한 상관성이 있고, 외적으론 개방 및 정보화 정도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

지난해 북한의 부와 권력의 공생관계에 기초해볼 때, 김정은 시대에 외자 유치 등을 위한 대외적 부분개방 전략을 취할 경우, 체제 전환의 주요 정치적 기회 구조를 창출할 집단은 ‘부-권력 공생관계 네트워크’에 얽혀 있는 자들이다. 이들이 집단화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집권 엘리트 구조와 세습 구조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유지되면서, 부분적일지라도 외자 유치를 위한 개방과 미국과의 빅딜을 추진할 경우, 개혁·개방 과정에서 그리고 이후 상당 기간 사회 불균형과 빈부 격차가 극심한 체제 전환 유형에 근접할 것이다. 반대로, 집권 엘리트 구조의 균열과 사회 균열이 맞물려 아래로부터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외부 지원 세력과 연계될 경우, 내부로부터 체제 전환이 급진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만약 전쟁이나 외부의 물리적 충돌로 북한 체제가 붕괴될 경우, 북한 주민들은 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북한 체제가 전쟁이나 외부와의 충돌로 붕괴될 경우, 지속적으로 북한 정권의 공적 부조를 받고 있는 평양 시민, 300만 명 이상의 조선노동당원과 당·군·정 각 기관의 간부층, 군부 등 현 북한 정권의 상대적 수혜 집단들과 현재의 체제·생활에 상대적으로 만족하는 상류층, 그리고 변화 및 정보에 둔감한 하류층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군의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권력층 내부의 갈등으로 체제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북한 사회와 주민들은 어떤 행태를 보일 것인가? 북한 체제가 김일성 가계를 벗어나 내부 쿠데타 형태나 권력층 내 분열로 정권이 바뀌게 되면,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전망할 수 있다. 하나는 정권의 성격이 아닌 인물 교체 수준으로 변화될 경우, 북한 주민들의 현재 계층과 지역별 차이는 큰 변동 없이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집권 인물들이 급속한 정치·경제적 성과를 이루지 못할 때, 현 북한 집권 엘리트의 강력한 네트워크에 의해 역쿠데타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시장 세대와 부-권력 공생 집단들로부터 새로운 양상의 저항이나 정치·사회적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전망에 기초해 민주·자유가 구현되는 통일과 사회통합을 고려할 때, 가장 중시할 지점은 북한 국가-사회 갈등관계, 주민 신념체계 변화, 남한의 경제 민주화이다.

/ 박영자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SSK연구교수. 정치학 박사. 북한의 정치·사회와 체제를 연구하고 있다.


(1) 구체적 내용은 최대석·박영자·박희진, 통일부 정책용역 보고서 ‘북한 내 비사회주의적 요소의 확산 실태 및 주민의식 변화’, 2010 참조.
(2) 박영자, ‘2003년 종합시장제 이후 북한의 주변노동과 노동시장’, <한국정치학회보>, 2009.
(3) 필자가 참여한 조정아 외,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 통일연구원, 2008 참조.
(4) 필자가 참여한 김수암 외, <북한 주민의 삶의 질: 인식과 실태>, 통일연구원, 2011 참조.
(5) 이들은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 과정이 진행될 경우, 새로운 자본가계급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큰 계층이다.
(6) 박영자, ‘2003년 종합시장제 이후 북한의 주변노동과 노동시장’, <한국정치학회보>, p.166, 2009.
(7) 구체적 실태는 좋은벗들, <오늘의 북한 소식> 2010~2011년 각 호 참조.
(8) 김○○, 남성, 1985년생, 양강 혜산, 체육 교원 출신, 2010년 3월 탈북.
(9) 유○○, 여성, 1950년생, 함북 온성, 양복사 출신, 2009년 12월 탈북.
(10) 동○○, 여성, 1956년생, 양강 혜산, 가족 부양, 2010년 3월 탈북.
(11) 임○○, 여성, 1966년생, 기계 설계사 및 예술선동 출신, 2010년 7월 탈북.
(12) 박○○, 여성, 1985년생, 양강 김형직, 상점 판매원 출신, 2010년 1월 탈북.
(13) 구체적 실태 및 내용은 박영자, ‘2000년대 북한 주민의 의식변화와 민족의식’, <정책연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2011년 12월 참조.
(14) 구체적 실태는 <연합뉴스> <자유아시아방송> <열린북한방송>의 2011년 10~11월 기사 참조.
(15) 박영자, ‘2003년 종합시장제 이후 북한의 주변노동과 노동시장’, <한국정치학회보>, 2009. 박영자, ‘북한의 집권 엘리트와 포스트 김정일 시대’, <통일정책연구>, 통일연구원, 2009. 박영자, ‘북한 경제 시스템의 복잡계 현상’, <한국정치연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2010 등.
(16) 현재 그만한 세력을 가진 유력한 인물은 장성택이지만, 그는 김정일 가계의 일원이며 당·군·정 모두에 중첩적이고 지속적인 권력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그와 그의 세력에게 현재의 안정적 지위와 안녕을 건 ‘생사의 도박’, 체제 붕괴 직전의 거대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현실화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17) 이 선호는 정치 전통성과 체제 운영 효율성 때문에 임명권자의 의지대로 이루어지지는 못한다. Williamson, Oliver E., <The Economic Institutions of Capitalism>, The Free Press, New York, 1985.
(18) 김정일, ‘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새로운 승리를 위하여 힘차게 싸워나가자’(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1995년 1월 1일), <김정일 선집> 14,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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