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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한국 뮤지컬 영화의 가능성, <인생은 아름다워>...장르적 전통 구축을 위한 냉철한 직시와 단호한 각성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한국 뮤지컬 영화의 가능성, <인생은 아름다워>...장르적 전통 구축을 위한 냉철한 직시와 단호한 각성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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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에서 뮤지컬 장르는 언제나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밀레니엄 이후 상업적으로 개봉한 뮤지컬 영화의 잇따른 흥행 실패로 한국 영화계는 한동안 그러한 장르가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하거나 잊고 지냈다. 최국희 감독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2022)는 이렇게 한국 영화계에서 뮤지컬 영화가 실종된 채 영원히 잊혀진 것만 같았던 시기에 등장한 작품이다.

뮤지컬 영화로 말하자면 무려 유성영화의 효시가 된 장르 아니던가? 혹자는 에디슨이 만든 일련의 영상 중 음성이나 소리가 녹음된 것들이 최초의 유성영화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디슨의 기술은 대중을 상대로 상용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현재 최초의 유성영화 자리는 1927년 워너 브라더스사에서 상업영화로 제작한 <재즈싱어>가 차지하고 있다. 당시 영화산업이 점차 하향세로 돌아서던 때에 유성영화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으나 무성영화 전성시대에 배우들의 목소리 없이도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맛본 헐리우드 영화 제작사들의 입장에서는 영화에 배우들의 목소리를 입힌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미덥지 않았다. 그러나 <재즈싱어>는 보란듯이 성공했고, 최초의 유성영화이자 토키(talkie) 영화, 뮤지컬 영화의 시초로 남게 됐다. 철저한 상업주의로 일관한 헐리우드 영화산업에서 현란한 군무와 주요 등장인물들의 빼어난 춤과 노래 솜씨로 엮어낸 남녀의 로맨스는 점차 장르적 관습을 형성하는 동시에 서사적 다양성 또한 확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영화사에서 뮤지컬 영화란 작품의 완성도를 언급할 근거나 제작을 위한 레퍼런스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여전히 그 장르적 기반이 미약하다. 50년대 말 권영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가 그 각본가가 감독으로 분해 60년대 말 다시 제작한 <오부자>(권철휘)는 형제들이 장가가는 이야기에 뮤지컬 형식을 입힌 코믹 뮤지컬 영화이다. 70년대 초에 등장한 <천사의 메아리>(김응천)에서는 한 시한부 소녀의 이야기를 합창단의 노래와 공연으로 풀어냈다. 이후 한국 뮤지컬 영화는 수십 년 동안 맥이 끊겼다가 2000년대 초, 당시 드라마 왕국으로 불리던 MBC의 과감한 도전으로 단편 및 장편 뮤지컬 드라마가 잠시 그 빈자리를 메꾸기도 했다. 그러다 2006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 극장>과 같은 본격 뮤지컬 영화가 등장하게 된다. <오부자> 이후 30년 이상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시 관객들은 이미 헐리우드식 뮤지컬 영화에 익숙해져 있었고, 게다가 영국식 뮤지컬 공연에도 눈을 뜬 지 오래였다. 그런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에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 극장>은 서사적으로나 뮤지컬 요소적으로나 다소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두 영화의 흥행 참패는 또다시 한국 영화 산업계에서 뮤지컬 영화가 지닌 태생적 한계를 부각시킨 듯 이후 한국 영화계에서는 뮤지컬적 상상력이 철저히 유보당하게 된다.

 

<인생은 아름다워>(최국희, 2022)는 바로 이러한 한국 뮤지컬 영화의 고질적인 가뭄 속에서 그야말로 느닷없이 등장했다. 비록 작품의 서사는 굵은 뼈대만 도드라진 채 한없이 빈약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공연(뮤지컬)과 영화 사이에서 여전히 최적의 길을 찾아 헤매는 듯하지만 뮤지컬 영화가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관습에는 매우 충실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기존의 한국 뮤지컬 영화와 차별화된다. 여기서 <인생은 아름다워>가 뮤지컬 영화로서 갖는 장르적 관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장르의 역사를 먼저 톺아볼 필요가 있겠다.

헐리우드 영화산업은 무성영화 시대에서 뮤지컬 전성시대를 거치며 50년대 <사랑은 비를 타고>, 60년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70년대 <그리스>와 같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겼고, 80년대에는 앨런 파커의 그 유명한 사실주의 뮤지컬 영화 <페임>(1980)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실사 뮤지컬 영화가 잠시 주춤하던 시기에는 디즈니사의 뮤지컬 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와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언 킹>(1994, 이상 미국 제작/개봉 기준) 등이 배턴을 이어받아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서는 <오페라의 유령>(2004)이나 <맘마미아>(2008), <레미제라블>(2012)처럼 원작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을 비롯하여 <라라랜드>(2016)와 같은 창작 뮤지컬 영화가 등장하고, <어거스트 러쉬>(2007), <원스>(2007, 아일랜드), <비긴 어게인>(2014) 등과 같이 음악과 노래를 주요 서사 장치로 활용하는 음악 영화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디즈니사에서 이전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제작/개봉되고 있다.

 

이렇게 헐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북미와 유럽의 뮤지컬 영화는 그들만의 방식대로 탄탄한 장르적 전통을 구축한 덕분에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으기도 수월했다. 물론 항상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들의 뮤지컬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외국의 뮤지컬 영화가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진보하면서 대중들의 안목 또한 높아졌고, 그것은 한국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까지 주로 헐리우드 뮤지컬 영화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 관객들은 한국형 뮤지컬 영화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스크린 쿼터제가 아니면 (당시에는 ‘방화’라 일컫던) 한국 영화를 상영관에 걸기조차 힘들었던 단관 개봉 시절이기도 했거니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막대한 자본이 들게 마련인 뮤지컬 영화는 한국 영화의 질적 수준과 양적 팽창을 떠나 영화 산업계 이전에 관객들마저 한국 환경에서는 제작 불가능한 형태의 그 무엇이라 치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시 상황에서 한국 영화계에는 헐리우드와 같은 뮤지컬 영화의 전통과 장르적 관습이 부재할 수밖에 없었고, 상영관이 아닌 상연장에서 공연으로서의 뮤지컬이 그나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장르적 기반이 빈약했기에 외국 작품을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하여 공연장에 올리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이른바 잘 만든(웰메이드) 뮤지컬 영화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영상예술로서의 영화적 기반뿐만 아니라 공연예술로서의 뮤지컬 또한 그 기초가 탄탄히 마련되어 있어야 하나 한국 상황은 둘 다 부재하거나 빈약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영화계에서 뮤지컬 영화라 할 만한 작품은 <오부자>(1969), <천사의 메아리>(1973) 정도였고, 이후 한국 관객들이 영국산 뮤지컬 공연 <맘마미아>에 열광하던 2000년대 초까지 한국 뮤지컬 영화의 등장은 요원해 보였다.

 

그 사이 대중들의 구미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방송사에서는 한국에서 <맘마미아>를 중심으로 뮤지컬 공연의 수요가 높아지던 당시 <고무신 거꾸로 신은 이유에 대한 상상>(2002, MBC)과 <내 인생의 콩깍지>(2003, MBC)와 같은 드라마로 대중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기기도 했다. 그러다 2006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 극장>이 차례로 개봉하게 된다. 그러나 일찍이 <사랑은 비를 타고>,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그리스> 등을 본 세대와 뮤지컬의 제왕이라 불리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 및 신선한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에 노출된 관객들에게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 극장>은 스토리나 뮤지컬 넘버 측면에서 모두 큰 호응을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토리와 뮤지컬 넘버 모두 기존의 뮤지컬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기괴함을 전면에 내세웠고, 때문에 뮤지컬 영화에서 필수적이고도 중요한 요소 두 가지가 관객들 입장에서는 매우 낯설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전의 한국 뮤지컬 영화에서와 같은 과감한 시도가 보이지는 않으나 기존의 뮤지컬 공연/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낯설지 않은 경험을 제공한다. 이와 관련하여, 토마스 소벅 등은 『영화란 무엇인가』(1999)에서 뮤지컬 영화의 일반적인 관습으로 한 쌍의 낭만적인 커플, 리듬감 있는 노래, 우스꽝스러운 가무, 연인들이 서로를 향해 부르는 노래, 배우들이 관객들을 향해 부르는 노래 등을 나열한 바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생은 아름다워>에 아주 공들여 적용된 것들이기도 하거니와 기존에 이 장르의 한국 영화에 부재했던 것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장르적 성취라 할 만하다.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중년 부부의 뻔한 이별 스토리가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덧입고 보다 새로워질 수도 있었다.

 

모름지기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하고, 특수한 것을 잘해 내기 위해서는 판에 박힌 일반적인 것부터 능숙하게 잘 해낼 수 있어야 하는 법. 그런 점에서 그동안 한국 뮤지컬 영화는 장르적으로 이러한 능숙함이 부족한 상태임에도 장르적 답습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작 해야 할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뻔한 스토리와 철저히 관습화된 장르 문법에 천착한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한국 뮤지컬 영화의 가능성을 보게 된 이유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한국 뮤지컬 영화의 한계를 냉철하게 직시하고 단호하게 각성한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국 대중예술이 <기생충>(2019)과 <오징어 게임>(2021) 등으로 영화와 TV 시리즈(드라마) 모두에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과 견주어 턱없이 부족한 장르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영화계에서는 뮤지컬 장르가 그 중 하나였다. 이제 <인생은 아름다워>의 등장으로 그 장르적 관습의 기초가 마련된 만큼 앞으로 한국 뮤지컬 영화가 일반적인 공식에 갇혀 장르적 가능성 안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을 향해 매순간 한 걸음씩 더 나아갔으면 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대학에서 강의하며 공연기획 '최영주의 in클래식' 전속 스토리 작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담화분석 및 스토리 문법과 문학/서사치료 연구, 한국문화교육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 비평 대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만화평론상,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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