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ée 특집 김정일 '이후'의 시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처음 전해들었을 때, 황당하고 황망한 중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남북 정상회담에는 누가 나올 것인가’였다.남북의 모든 회담에서 그는 최종 결정권자였다.그가 사라진 상황은 말 그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이다.북한 내부로 보면,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준 충격이 더 컸을지 모른다.그렇지만 남북관계를 포함해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보면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은 그보다 충격이 더 클 수도 있다.김일성 주석 당시에도 남북은 총리급 회담 등을 통해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그러나 김일성 주석은 직접 나서지 않았고, 회담 당사자도 아니었다.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래 김정일 위원장은 회담의 전면에 나섰을 뿐 아니라, 수많은 남북회담의 어떤 합의도 그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했다.북한과의 협상은 ‘김정일과의 담판’이었다.1994년의 제네바 합의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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