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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한국 정치 풍자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한국 정치 풍자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2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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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라지만 선거 관련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코미디 장르로 만들어진 영화는 드물다. 지난 한국영화사(史)의 심의 규정과 정치적 부담 등으로 제작이 쉽지 않은 과거 동력이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걸까. 정치영화는 우리가 모르는 정치계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정직한 후보>는 정치풍자 코미디 영화의 명맥을 잇는 귀한 영화다.

 

거짓이 득세하니 정직이 차별화되는 세상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을 못 하는 4선에 도전하는 의원을 통해 정치판을 비꼰 블랙 코미디이다. 주상숙 의원은 4선에 도전하기 위해 폐지 주운 돈 수십억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친할머니 김옥희 여사를 사망한 것으로 위장하고 보험 소송을 하는 청렴한 이미지의 정치인으로 위장한다. 손녀의 거짓말에 실망한 할머니는 손녀가 “거짓말 못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정치는 선거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총체적 활동을 의미한다.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뜻하는 바를 펼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한창 선거철만 되면 간이건 쓸개건 다 빼줄 것처럼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결국 당선 후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많고 자기 배만 채우는 사람도 많은 게 현실이다. 이 영화는 그런 모습을 아주 유쾌하게 풀어낸 한국 정치 코미디영화다.

<김종욱 찾기>(2010), <부라더>(2017)의 장유정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2014년에 개봉해 브라질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동명의 브라질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이 정직해진다는 설정은 코미디영화로 손색이 없나 보다.

연출을 한 장유정 감독은 “거짓말쟁이 국회의원이 거짓말을 전혀 못 하게 되었다는 설정 자체가 아주 재미있었고, 거짓말을 잃어버린 사람이 과연 어떤 이야기까지 쏟아낼 것인가 하는 부분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이 정직한 후보는 어디까지 정직해질 수 있는지, 이건 영화를 직접 봐야 할 것 같고, 대략적인 내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직한 후보 주상숙(라미란) 국회의원은 정치 구력이 3선이라 요령이 몸에 밴 사람이다. 가톨릭 신자를 만나면 성호를 긋고, 불자를 만나면 재빨리 손목에 염주를 차는 인물이다. 국민 앞에선 서민의 일꾼을 자처하고 청렴결백의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그의 진짜 속내는 서민이 자기 일꾼이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민 아파트와 고급 빌라에 두 집 살림을 차려 보여주기식 정치를 한다.

평소에는 명품 옷과 구두를 착용하다가 선거유세를 나갈 때는 저렴한 신발로 갈아 신는다. 거짓말이 습관인 그의 속내는, 서민이 자신의 일꾼이라는 것이고 이중생활을 불사하는 것도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주상숙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그의 선거 사무실은 발칵 뒤집어지고, 유세 전략에 비상등이 켜진다.

 

이 영화는 주 의원이 거짓말을 앞세워 이미지 정치를 하는 전반부와 그의 입에서 거짓말이 나오지 않으면서 소동이 벌어지는 후반부로 구성돼 있다. 전반부는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의 위선을 꼬집고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이다. 후반부는 주상숙이 자신의 속내를 여과 없이 내뱉으면서 웃음을 유발하는데, 그러면서 영화는 그녀가 정치권에 입성하기 전 순수했던 시절을 환기시킨다.

 

‘진실의 입’이 열린다면

주상숙 의원이 노래방에서 당 대표와 상대 후보, 이렇게 셋이 검은 거래를 하고, 거래 성사 차원에서 세상 신나게 부르던 노래는 ‘아모르파티’다.

아모르파티는 아모르, 사랑과 파티, 운명이 결합된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인데,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로 니체가 했던 말이다. 영화에서는 이번에 내가 4선 하고, 다음엔 당신이 해, 하면서 서로 자리 나눠먹기식 거래를 하고는 이제부턴 파티로구나 하는 느낌으로 부르는 곡이다. 이 파티는 그 파티가 아닌데, 아무튼 워낙 신나는 노래라 선거 송으로 많이 쓰인다.

 

이렇게 가장 강력했던 경쟁자인 상대 후보와도 거래가 성사됐고, 이젠 정말 4선이 바로 눈앞에 와 있는데, 이 중차대한 순간에 진실의 입이 열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에게도 진실의 입이 열린다면?’

좀 아찔하지 않나?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말은 진실보다는 거짓’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세상에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하게 되는 하얀 거짓말도 있다. 하얀 거짓말은 상대에 대한 '배려' 때문일 때가 많다. 그래서 ‘아예 거짓말을 못 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은 아찔한 상상으로 다가온다. 만일 그렇게 되면 정말 입을 닫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라미란’이라 가능한 코미디

역시 이 모든 코미디를 가능하게 하는 배우, 라미란 배우의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코미디 장르는 특히 배우의 역할이 더 클 수밖에 없는데, 원치 않지만 갖게 된 ‘진실의 입’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주상숙의 촌철살인 팩트 폭격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주는 웃음뿐만 아니라, 답답한 현실에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라미란 배우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친절한 금자씨> ‘오수희’ 역으로 강렬하게 데뷔한 이후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현실감 넘치는 밉상 상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치타여사’로 많은 사람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이후 2019년에는 <내 안의 그놈>, <걸캅스>를 흥행으로 이끌면서 코미디 장인의 명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라미란은 이 영화로 제41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수상 소감으로 “코미디로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덜컥 주연상을 받게 되어 놀랍고 감사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3년 만에 돌아온 <정직한 후보2>는 진실의 입 덕분에 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 주상숙이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1편에서 주상숙은 이미 현실 정치에 찌들어 있는 상태로 등장해서 웃음을 준다. 하지만 누구라도 순수했던 시절은 있을 테고, 2편에서는 타락하는 과정을 다루는, 일종의 프리퀄 같은 내용이 들어 있고, 국회의원에 낙선하고 강원도 지사가 되어 있는 주상숙을 만날 수 있다.

2편에서 영화의 배경이 입법부에서 행정부로 옮겨간 덕에 국회의원과 관련 거짓뿐만 아니라 행정부 관료와 관련된 사람들의 진실과 거짓을 들춰보는 재미가 있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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