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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에 대한 영화 <오마주>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들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에 대한 영화 <오마주>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들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3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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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원 감독의 영화 <오마주>(2022)는 제목 그대로 많은 것에 대해 오마주(존경)를 표한다. 그중에는 영화도 있고, 영화인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찾던 공간도 있다.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대부분 잊힌 것들이지만, 기억하고 기록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오마주> 포스터

- 회상 장면 없는 추적 영화가 보여주는 과거와 현재

<오마주>의 주인공 지완(이정은)은 연이어 흥행 실패를 겪은 영화감독이다. 남편의 밥 타령과 엄마 영화는 재미없다는 아들의 무시 속에도 꿋꿋이 새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그러던 중 홍재원 감독의 영화 <여판사>의 사운드 복원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시나리오가 남아 있지 않아, 유실된 사운드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의 입 모양을 보며 대사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간중간 필름 자체가 유실된 부분도 있어, 녹음할 장면의 앞뒤 내용도 참고하기 어렵다. 참여하는 성우들 역시 협조적이지 않고, 복원 작업은 더디게 진행된다.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했던 지완은 점차 복원 작업에 빠져들어, 유실된 필름이나 시나리오, 관련 정보를 쫓아, 홍재원 감독의 가족, 옛 동료를 만나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과 홍 감독의 유품 등을 보며, 지완은 60여 년 전 힘겹게 영화 작업을 했던 홍재원 감독을 마주하게 된다.

<오마주>는 추적 영화의 구성을 따르지만, 과거 회상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후반 지완의 상상(혹은 환상) 장면에서 홍재원 감독으로 짐작되는 한 여성의 그림자를 잠시 보여줄 뿐이다. <오마주>는 지완이 홍재원 감독과 <여판사>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 더 집중한다. 1960년대와 2020년대가 느슨하지만, 매혹적으로 연결된다.

 

- 부엌과 영화관이라는 공간

<오마주>에서는 몇몇 공간이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홍재원 감독의 동료 편집기사 옥희(이주실)가 나오는 장면들 중 지완이 찾아낸 필름을 보기 위해 부엌에서 영사기를 꺼내어 이불 홑청에 필름을 영사해 보는 장면은 지완이 식탁에서 시나리오를 쓰던 장면과도 겹쳐 뭉클하다. 과거를 추적한 감독과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편집기사의 연대감도 느껴진다. 소위 여성의 공간으로 칭해지는 부엌이라는 공간 등이 교묘하게 영화와 연결된다.

 

 

철거를 앞둔 영화관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지완은 <여판사>를 상영했던 옛 영화관의 영사실에 쌓여있던 모자에서 유실된 필름을 찾아낸다. 단관 영화관에 대한 기억이 소환되는데, 개봉관과 재개봉관으로 구분되던 1950~70년대 영화관은 잊힌 영화와 영화인만큼이나 잊힌 공간이다. <오마주>의 마지막 크레딧 시퀀스는 사라진 영화관과 함께 사라진 영화인에 대해 오마주를 표한다.

사실 먼 과거까지 거슬러 가지 않더라도, 최근 몇 년 코로나19 상황으로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관객의 일상에서도 많이 멀어졌다. 요즘의 영화관도 꽤 아쉽고 그리운 공간이다.

 

- ‘2호 여성 감독’ 홍은원 감독의 1962년 영화 <여판사>

<오마주> 속 홍재원 감독은 1962년 영화 <여판사>로 데뷔한 홍은원 감독을 모티브로 한다. 홍은원이라는 이름이 홍재원으로 바뀌었지만, 꽤 많은 부분에서 실제 홍은원 감독의 이야기를 참고했다. 홍은원 감독에게는 ‘1호 여성 시나리오 작가’, ‘2호 여성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여판사> 개봉 당시 홍보 기사를 보면,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판사>의 줄거리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는데, 일과 가정 사이에서 오해받고, 고부 갈등에 빠지는 상황 등이 펼쳐진다. 문정숙, 김승호, 엄앵란 등의 배우가 출연했고, 서울의 경우 명보극장에서 개봉됐다.

 

<여판사> 신문 광고(경향신문, 1962.10.10 6면)

‘1호 여성 감독’ 박남옥 감독의 경우, <미망인>(1955)이 감독 데뷔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였지만, 홍은원 감독은 <여판사> 이후에 <홀어머니>(1964), <오해가 남긴 것>(1965) 두 작품을 더 연출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박남옥 감독보다는 길게 활동했으나, 두 감독의 감독 생활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은원 감독은 이후 몇 년 동안은 시나리오 작업을 이어갔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이하 KMDb)를 참고하면,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이성구, 1966) <이별의 모정>(이종기, 1968)의 각본, <흐느끼는 백조>(강대진, 1968), <동경의 밤하늘>(이성구, 1970)의 각색, <하와이 연정>(현상열, 1966), <새로운 결혼식>(김종선, 1969)의 원작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 영화의 발굴과 복원

<오마주>는 유실된 영화의 발굴과 복원의 가치와 원로 영화인들의 구술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게 해준다. 기억과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원래 홍은원 감독의 영화는 모두 유실된 상태였는데, 2015년 <여판사>는 프린트(상영용 필름)가 발굴되었다. <오마주>에서처럼 사운드가 유실된 건 아니고, 전체적으로 약 20여 분 분량이 유실된 상태다. 따로 복원 작업을 거치진 않았고, 디지털화되어, 현재 KMDb VOD, 네이버TV와 유튜브 ‘한국고전영화채널’ 등에서 감상할 수 있다.

지난 10월 25일부터 30일까지 ‘세계 시청각 유산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된 행사의 일환으로 <여판사>와 <오마주>가 상영되기도 했다. 행사는 놓쳤더라도, 두 영화 모두 온라인 서비스 중이라서 두 영화를 함께 감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마주>에 이어 <여판사>까지 감상하는 것도 추천한다. 현재와 과거, 영화와 현실이 뒤섞이는 재미를 모두 누릴 수 있다. 발굴과 복원의 결과를 누려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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