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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lt;해리건씨의 전화기 Mr. Harrigan's Phone,(2022)> ; 유령을 부르는 휴대폰으로 전개되는 비틀린 <행복한 왕자>와 제비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lt;해리건씨의 전화기 Mr. Harrigan's Phone,(2022)> ; 유령을 부르는 휴대폰으로 전개되는 비틀린 <행복한 왕자>와 제비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2.11.09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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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해리건 씨의 전화기>는 스티븐 킹의 <피가 흐르는 곳에 IF IT BLEEDS>에 수록된 동명 단편 소설 원작으로 <블라인드 사이드>와 <하이웨이 맨>의 존 리 핸콕 감독이 연출했다. 호러(Horror)로 유명한 스티븐 킹 원작이지만 이 영화는 성장 드라마나 심리 드라마에 가깝다.

 

무덤안에서 망자의 벨소리가 들린다
무덤안에서 망자의 벨소리가 들린다

엄마를 잃고 죄책감과 외로움을 간직한 채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크레이그(제이든 마텔)는 왜 자신이 억만장자 해리건(도널드 서덜랜드)에게 선택됐는지 의구심을 갖던 중, 해리건의 비밀 벽장 안을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한다. 누구보다도 강해 보이는 억만장자 해리건 역시 일찍 어머니를 잃고 부모 형제도 없이 외롭게 살아왔다는 것을.

영화 전반부가 해리건이 독서를 통해 크레이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성장 드라마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크레이그가 해리건에게 선물한 휴대폰이 망자가 된 해리건에게 영향을 미쳐, <데스노트>처럼 죽음을 불러일으킨다는 휴대폰 고스트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이렇게 둘의 관계는 영화 전후반에 걸쳐 책과 휴대폰이라는 의미심장한 매체를 통해 각별해진다. 영화는 해리건 유령이 휴대폰을 통해 크레이그를 대신해 복수하고 있느냐에 대한 진실 여부보다는 오히려 크레이그가 갖게 되는 죄책감에 더 의미 있는 비중을 두고 있다. 라캉의 개념을 빌리자면, 유령은 억압된 죄책감이 만들어낸 억압된 실재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딕적 존재감: 해리건과 책

해리건은 첫 등장부터 교회의 권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강한 아우라를 드러낸다. 영화 전체를 통해 그는 교회와 대척점에 놓여있는 유사 악마주의라고 할 만한 어두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그가 교회에 들어오는 장면이다. 모든 신자가 마치 창살을 세워 놓은 듯한 구조로 서서 예배를 보고 있을 때, 해리건만 그 창살 이미지와 충돌하는 동선을 만들며 교회로 진입한다. 모든 신자가 서 있을 때 그는 계속 앉아 있다. 그는 예배를 위해 교회에 온 것이 아니라 크레이그가 성경 낭송을 하는 모습을 면접하러 온 듯.

크레이그에게 흡족한 미소를 지은 해리건은 자신에게 책을 읽어줄 소년 크레이그를 고용한다. 그들이 처음 만난 작고 소박한 시골 교회에 비해, 해리건의 집은 거대하고 압도적인 고딕양식 저택이다. 정원에서 일하는 고용인과 집사의 표정, 옷차림에서도 빅토리아식 어두움을 내뿜고 있다.

 

어두운 고딕식 거실 뒤로 해리건씨의 밝은 온실이 제대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다.
어두운 고딕식 거실 뒤로 해리건씨의 밝은 온실이 제대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다.

어둡고 음침한 해리건의 거실에는 빛으로 가득한 온실이 제단처럼 해리건을 둘러싸고 있고, 수년간 그들이 책을 읽은 곳에는 거대한 십자가 형상으로 직조된 카펫 형상이 부감 촬영된다. 해리건이 크레이그에게 낭독을 요청한 책들은 영화의 메시지를 예견하거나 함축하고 있다.

그들이 처음 읽은 소설은 19금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 Lady Chatterley’s Lover >이다. 할아버지와 손주뻘인 두 세대는 알 수 없는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해리건은 신선하고 매혹적이며 나쁜 교육의 모습으로, 오스카 와일드나 사키의 소설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지루하고 뻔한 의도를 풍자한다. 어린 크레이그에게 수시로 복권을 주는가 하면, 그들이 읽는 책들은 시니컬하고 풍자적(<돔비와 아들 Dombey and Son>)이며 범죄와 죄책감(<죄와 벌 Crime and Punishment>)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 They Shoot Horses, Don’t They?>를 읽을 즈음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크레이그는 해리건과 죽음의 선물(고통에서 해방되고 초조함이나 걱정에서 벗어나는 선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지옥의 묵시록에 영감을 준 원작 <암흑의 핵심 Heart of Darkness>를 읽을 때는 “두렵구나….” 대목을 반복한다. 이는 영화 후반부의 죽음과 유령이 된 후 전개될 두려움을 예견한다.

또한 해리건은 돈의 힘에 대해 가르친다. “돈을 제대로 이용하면 잔인할 수 있다.” 해리건의 권위와 힘의 원천은 돈과 지식이다. 나약한 왕따인 크레이그는 빠듯하게 근근이 살며 영수증을 챙기는 아버지에게서 볼 수 없는 이상적 남근, 해리슨에게 마음을 준다. 책과 함께 전해지는 힘 있는 해리건의 메시지는 크레이그를 매료시킨다. 해리건은 대단한 애서가다. 그는 책의 영원성을 예찬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크레이그에게도 책을 쓰는 작가가 되기를 권한다. 거액의 유산과 함께 남긴 유서에 ‘시나리오 작가와 여배우’를 웹에서 찾아보라는 뼈있는 농담을 남긴다. 결국 크레이그는 저널리즘을 전공한다. 해리건이 크레이그에 미치는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를 이끄는 망자의 휴대폰은 크레이그의 잠재된 죄책감과 어두운 악마성에 불을 붙인다. 크레이그는 그들이 읽었던 <죄와 벌>처럼 공익을 위해 죽어도 되는 인생이 있는지에 대해 혼란스럽고 두려워진다.

 

유령을 부르는 휴대폰을 통해 전개되는 삐딱하게 비튼 <행복한 왕자>와 제비

 

크레이그는 해리건의 시신에 휴대폰을 넣어 준다.
크레이그는 해리건의 시신에 휴대폰을 넣어 준다.

해리건의 책이 크레이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크레이그는 해리건에게 휴대폰을 통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크레이그는 해리건에게 휴대폰을 선물한다. 이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해리건에게 그가 흥미로워 하는 기능을 소개한다. 주식, 뉴스, 이동 전화기의 편리함 등. 이 장면은 할아버지와 손주가 흔히 보여주는 평화롭고 훈훈해 보이는 모습이다. 다만 보통의 할아버지와는 달리, 통찰력 있는 해리슨은 휴대폰의 장단점을 꿰뚫을 뿐만 아니라 우려되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

서로의 벨 소리를 의미심장한 <스탠바이 유어 맨 Stand By Your Man>으로 세팅해 놓는다. 이들은 이때부터 더 가깝게 소통한다. 마치 영화 도입부에 인용된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염두에 두고 왕자와 제비의 ‘관계’를 비튼 것처럼. 행복한 왕자는 제비에게 선한 일을 시켰고 그 일을 통해 서로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크레이그는 해리건의 시신에 그들의 추억이 깃든 휴대폰을 넣어주고, 그 이후 망자인 해리건에게 휴대폰을 통해 넋두리하면, <데스노트>처럼 크레이그가 읊조린 자들이 모두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모습으로 처참하게 죽어 나간다. 크레이그를 땅바닥에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꺾어 때려눕혔던 케니는 똑같은 십자가 모양으로 목이 꺾인 채 죽고, 크레이그에게 결핍된 모성애를 채워주었던 하트 선생님을 음주운전으로 살해한 범인은 하트 선생님이 좋아했던 비누를 삼킨 채 질식사한다.

휴대폰을 통해 연쇄살인을 하게 되는 유령 해리건은 행복한 왕자, 크레이그의 나쁜 제비가 된 것이다. 제비가 왕자의 몸에 장식된 보석을 이용하여 성실하게 선행을 베푸는 것과 대조적으로 해리건은 크레이그의 요구에 대해 성실하지만 가혹하게 복수한다. 유령의 존재나 저승에서 응답하는 휴대폰 메시지의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실재하는 것은 이 둘의 관계와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비틀린 <행복한 왕자>와 제비 같은 시니컬한 존재감과 도덕적 딜레마, 그리고 섬뜩한 실재계 존재에 대한 확인이다. 그렇다고 공포장치와 ‘연쇄살인’이 이 영화의 드라마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종일관 실재계의 아우라만 풍길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섭지 않다. 섬뜩할 뿐이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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