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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문화톡톡] 대치동이 교육 1번지 인가
[김정희의 문화톡톡] 대치동이 교육 1번지 인가
  • 김정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3.01.16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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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지난 방학에도 교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오빠를 데리고 내려와 방학을 보내는 동안 몹시 당당했고 오빠가 얼마나 들어가기 어려운 공립학교에 들어갔나 은근히 자랑을 했다. 거기만 나오면 총독부나 부청에 취직하는 건 문제도 없다고 했다.

ㅡ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에서

 

한티마을 대치동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서울반세기종합전’을 매년 열고 있는데 이번에는 ‘한티마을 대치동’이라는 주제로 전시 중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전국구 교육 1번지’가 되기까지 ‘상전벽해’의 여정을 통해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뜨거운 교육열이 만든 대치동의 변화상을 확인”하시라는 소개글과 함께 대치동 학원가가 펼쳐진다. 전시는 <대치동 학원가>에 이어 <역사 속의 대치동>, <아파트 숲 대치동>, <8 학군과 대치동>, <교육타운 대치동>으로 이어진다. 


대치동의 역사 

대치동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속하였다가 1963년 서울에 편입되었다. 과거 대치동은 탄천과 양재천의 합류지점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수해에 취약한 곳이었다. 그래서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할 수 있는 봄보리가 주요 재배작물이었다. 대치동의 원형인 구마을은 ‘한티마을’또는 ‘한터마을’이라 하였는데, ‘한티’는 ‘큰 고개’라는 뜻인 대치(大峙)의 순우리말이다. 옛 한티마을에는 ‘쪽박산’이 있었는데, 이 ‘쪽박산’이 있던 자리에 대치동 최초의 신해청아파트(현 대치현대아파트)를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대규모 아파트 개발이 진행되었다. 
 

8 학군의 등장

중학교 입시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면서 1968년 당시 문교부는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7·15 입시개혁안)를 발표하였고, 1969년부터 중학교 입학시험제가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명문학교로 불리며 과열된 입시경쟁을 초래하던 경기중, 경복중, 서울중, 경기여중, 이화여중 등이 폐쇄되고, 학생들은 학군 내 중학교에 추첨·배정되었다.

중학교 무시험진학으로 입시문제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옮겨지자, 문교부는 1974년부터 서울시 고교평준화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소위 명문고등학교로 이루어진 공동학군은 도심반경   3Km 이내, 도심반경 2Km 이내로 축소되었다가 1980년 폐지되면서 거주지 중심 배정 일반학군 9곳인 완전학군제로 변화하게 된다. 1980년 당시 서초구와 강남구가 8 학군에 속하게 되고 강남개발에 맞추어 강북의 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소위 ‘강남 8학군’이 탄생하게 된다.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아니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주치게 되는 벽면에 전시된 자극적인 기사 제목들로 숨이 막혀온다. 
 


"입시제도는 아무리 바뀌어도 대치동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치동 초등학생들, 고교 ‘수학 정석’ 배워”

·· 돈·계급 대물림하는 빗장도시                                      .              "코로나에도 대치동 학원가 ‘초호황’··· 서울 학원비 매출 살펴보니"
대치동 학원가 ‘줌 (zoom) 바람’ “24시간 수업 들들 볶아줍니다.”            ‘불수능’에 대치동 수요폭발,···“전세 매물 없다” 초조한 학부모들              ‘시간당 30만 원은 기본’ 대치동 입시 컨설팅

···학생도 모르는 진로 만들어줘                                        
“2시간 반 자고 나와···방학 땐 학원 9곳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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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주차전쟁 피하려···대치동 원룸 잡고, 헬스장 등록하는 부모들"          "지방학생, 연휴 맞아 ‘대치동 특강’ 위해 상경"    
방학 맞아 ‘귀한 몸’된 대치동 원룸 빌라 “방 없어서 못 구해요.”



아마도 대치동의 학부모들은 이런 전시를 보러 올 리도 없고, 보러 올 시간도 없어 보이니 아이가 있는 학부모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대치동으로 이사 가지 못하면, 초등학생의 경우는 ‘수학 정석’을 가르치지 않으면, 시간당 30만 원이 기본인 대치동 입시 컨설팅을 받을 수 없다면 부모로서 자녀교육을 제대로 못하는 게 아닌가 죄책감마저 들게 하는 내용들이다. 굳이 이런 기사들을 전시자료로 써야만 했는지 원망스럽다는 느낌도 든다. 
 
이어서 드는 의문은 <교육타운 대치동>에 대한 것이다. 영어로는 Daechi-dong, Education Town으로 써놓았는데 education town이라는 단어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검색해보니 파키스탄의 펀잡 라호르의 주택단지라고 한다. 여기서 교육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전시는 입시 학원과 학원을 둘러싼 시설들에 대해 마치 학원 광고처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입시학원과 이를 둘러싼 시설들이 모여있는 곳이 교육타운이라는 것이다. 

2021년 강남구에 등록된 사설학원이 2,383개인데 서울시 전체 사립학원 수의 17%에 해당하며, 서울시 자치구 중 사립학원 비율이 10%가 넘는 곳은 강남구가 유일한데, 이 중 절반 이상의 학원이 대치동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치동 학원의 수강생 범위는 전국적이므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육타운이라 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이어서 대치동 학원가는 변화무쌍한 입시제도에 맞춤형 전략을 제공함으로써 빠르게 성장해 갔는데, 입시 전형이 다양해질수록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세분화· 전문화된 교육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함께 학원의 광고와 강의 자료 등을 취급하는 인쇄· 복사집, 독서실과 스터디카페, 고시원 및 학사등 교육 지원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덧붙여, 대치동 학원가가 교육정책 및 대입전형을 분석하여 입시전략 수립능력을 가진 고학력의 전문 강사군 유입과 해외체류학생 상대 소규모 다양한 강의등 특수 수요 장소, 높은 교육열을 가진 학부모, 90년대 분당·송파· 잠실 대규모 주거지 형성으로 학생규모가 폭발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는 표까지 전시하고 있다.

결국 이 전시를 관통하고 있는 교육은 학생과 학부모, 학원강사가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사교육’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함께 쓰이는 ‘대치동’을 ‘전국구 교육 1번지’”로 쓰고 싶어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 중기 문신 이식(1584~1647)의 「택당집」 
자손들을 위한 과거공부 독서목록이나와 있다.
「시경」과 「서경」은 대문(大文) 위주로 100번씩,
「중용」과 「대학」은 횟수를 제한하지 말고
아침·저녁으로 읽기 등 독서방법과 과문 공부 방법을 다루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김정희 ©

퇴계와 연암 그리고 다산 

입시준비라면 조선시대 부모들도 만만치 않았다. 과거시험을 준비하게 될 자손들을 위해 과거공부 독서목록과 공부 방법등을 기록한 이도 있다. 이황 선생이 손자인 안도에게 쓴 편지중에는 과거시험 준비용으로 지은 글을 받아보았고, 지은 글을 나중에 평가해서 보내준다는 내용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대치동 일타강사보다 수준 높은 첨삭지도 아니었겠는가?

연암 박지원은 아들에게 “과거볼 날이 점점 다가오는데 과시(科詩)는 몇 수나 지어 봤으며 속작(速作)에는 능하여 애로가 없느냐? 글제를 대해서 마음에 어렵게 느껴지지 않은 뒤에라야 시험장에 들어갈 일이고 비록 반도 못 썼다 하더라도 답안지는 내고 나올 일이다. 글씨 연습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좋은 간장지(簡壯紙)를 사서 성의를 다해 살지고 충실하게 글씨를 써보는게 어떻겠니?”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과거시험뿐만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은 “우리나라는 서울 문밖에서 몇 십리만 떨어져도 태곳적처럼 원시사회인데 하물며 멀고 먼 시골이랴?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빨리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편지를 아들에게 보내며 앞으로 서울 십리 안에서만 살게 하겠다는 계획까지도 덧붙인다. 
이러한 교육열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시대도 아니고 대학입시가 과거시험도 아니지 않은가?


전국구 교육 1번지

우리나라의 교육열과 입시제도를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대학입시와 사교육을 분리시켜 말하기도 쉽지않다. 하지만 입시준비=사교육=교육은 결단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사교육’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함께 쓰이는 ‘대치동’은 ‘전국구 교육 1번지’라고 할 수 없다. 물건을 팔기 위해 광고를 하거나 이익을 목적으로 그렇게 쓰는 것까지야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서울역사박물관은 상업적 이익을 얻기 위해 전시하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전시를 할 때 온전히 ‘사실’만을 전시하는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대치동을 주제로 전시 준비를 하려고 보니 온통 사교육과 관련된 것뿐이었다고. 그런데 과연 전시를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들의 관점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전시가 존재하기나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박물관이 가진 교육의 기능을 덧붙여야만 하겠다. 관람자들이 전시를 그냥 보는 차원을 넘어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전시가 바람직한 전시가 아닐까? 그런 전시야말로 우리가 기대하는 전시가 아닐까?

 

 

글 · 김정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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