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이하늘의 시네마 크리티크] 뭉근한 집요함과 해방된 몸짓 <다음 소희>(2022)
[이하늘의 시네마 크리티크] 뭉근한 집요함과 해방된 몸짓 <다음 소희>(2022)
  • 이하늘(영화평론가)
  • 승인 2023.04.03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75회 칸 국제 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이미 관객들을 만난 적이 있던 <다음 소희>(2023)는 2017년 전주 현장실습생 여고생 자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쉽게 놓칠 수 있는, 작은 목소리를 담은 영화를 지지”한다는 배두나 배우의 뭉근한 집요함은 정주리 감독의 전작인 <도희야>(2014)에 이은 만남으로 그 힘이 증폭되었다. 더욱이 정주리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라는 사실과 신예 배우인 김시은의 활약도 기대되는 지점이다. 영화의 시간 구성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소희(김시은)는 휴먼  엠넷이라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고객들의 인터넷 해지를 방어하는 ‘해지 방어팀’에 배치된다. 소희의 발랄함은 고발장을 작성하고 자살한 이준호 팀장(심희섭)의 죽음을 목격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주저앉는다. 해지 방어율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팀장에게 폭력을 가해 징계를 받던 소희는 석양이 지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후 2부에서 소희의 죽음을 수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은 은빛 물결이 마구 흔들리는 그녀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비틀거리는 시스템과 웅덩이에 고인 감정 

어른들의 말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똑바로 두 눈을 응시한 채 자기주장을 피력하던 소희는 한마디로 당돌한 소녀다. 아니, 그런 소녀였다. 소희는 출근한 첫날에 마주한 집단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지우고 숨죽이고 일하는 방법을 배운다. 파티션 칸막이 너머로 울리는 전화와 기계처럼 대응하는 동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희의 단독 샷은 이제 그룹 샷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소희 역을 맡은 김시은 배우는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지정된 자리에 몸을 고정하는 담담한 변화를 성실하게 수행해낸다.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고객들의 마음을 익히는 컨트롤”을 하라는 이준호 팀장의 말은 소희의 사적인 감정도 뒤로 밀어두라는 학습으로 바뀐다. 고객들의 인터넷 서비스를 해지를 방어하면서 빠르게 다음 고객으로 전화를 돌리는 콜센터의 업무 체계는 일 처리와 감정 모두에 속도를 요구한다. 

감정을 한편에 방치해 둔 채로 일에 임하는 것은 소희뿐만은 아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업무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소희의 친구들 역시 막다른 길목에 서있다. 개인 방송 BJ로  먹방을 하면서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는 쭈니(정회린), 물류센터에게 일하며 낮과 밤이 바뀐 태준(강현오)까지. 채워진 감정의 웅덩이는 비우지 못하는 오류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끊이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처럼 과도한 업무와 함께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이준호 팀장은 자동차 안에서 자살을 한다. 이준호 팀장이 남긴 회사의 악행에 대한 고발장은 즉각 입막음을 하기 위한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종결된다. 각서를 작성한 직원들과 마지막까지 각서에 사인하기를 머뭇거린 소희는 이내 시스템에 굴복하고 만다. 머뭇거림은 소희의 마지막 버티기였을까. 소희는 이제 서서히 웅덩이 안으로 코를 박고 소리 없이 삶을 살아낸다. 수치화, 정량화되는 집단은 언제나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각인시킨다. 업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의지가 없음으로 낙인이 찍히는 시스템의 폭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회사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지워지는 수준을 넘어 말살된다. 수치화된 집단은 비단 회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회사 내의 해지방어율과 학교의 취업률은 거울쌍처럼 맞붙어서 소희를 옭아맨다. 콜센터의 목표치를 올리려고 혈안이 된 팀장과 취업률에 목숨을 거는 학교 담임의 소름 끼칠 정도의 유사한 모습은 고인 웅덩이에서 나는 썩은 악취처럼 쉬이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비틀거리는 시스템의 돌덩이를 시시포스처럼 오르는 것은 단연 아이들이다. 곧 무너질 건물에 임시방편을 해놓는 것처럼 그 무게는 금방이라도 아이들을 덮칠 것처럼 위태롭다. 각서에 서명한 이후에 인센티브에 목숨을 걸었던 소희는 현장실습생이라는 핑계로 월급을 떼어가는 회사를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팀장을 폭행한다. 3일간의 정직 처분을 받게 된 소희는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을 보고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1부인 소희의 죽음 이후에 등장한 형사 유진은 현장에 도착해 절차대로 일을 수행한다. 소희의 주변 인물들을 탐문조사하고 회사를 방문한다. 그 과정에서 소희의 죽음이 “이런 일”로 치부되는 사회를 목격한다. 형사 유진은 소희의 활발함과는 다르게 어떤 일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는 무력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묵인하는 어른들의 일그러진 표정에 유진은 진실을 파헤치기로 다짐한다. 배우 배두나만의 강렬한 아우라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후 소원해지는 친구들을 집결시키는 태희(배두나)의 집요함은 20년을 뛰어넘어 <다음 소희>의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의 끈질김으로 변모한 것이다. 개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주는 인물로 설정된 배두나는 소희의 친구들을 만나며 그룹 샷의 인물들에게 각자 몫의 쇼트를 할애해 준다. 개인으로 해방된 아이들은 소희의 흔적들을 제공한다. 

 

쌓임과 흩어짐의 미약하지만 집요한 움직임 

정주리 감독은 쌓임과 흩어짐이라는 반복적인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하는데, 극을 끌고 가는 추동력이 되는 허공에 흩날리는 눈과 거리에 쌓이는 눈은 움직임을 향한 소망을 구체화한다. 자동차 안에서 연탄 자살한 이준호 팀장과 함께 쌓여있는 창문의 눈덩이는 기계처럼 일하는 직원들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소음들과 포개진다. 소희의 자해 역시도 쌓여있는 눈밭 위에서 깨진 유리병으로 손목을 긋는 행위로 움직임의 마비를 형상화한다. 반면 흩날리는 눈은 오랜만에 방문한 지하 연습실을 나가는 계단에서 소희가 마주한, 손으로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거리에 쌓인 눈과 달리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자동차 유리창에 눈송이가 닿는다.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되냐는 소희의 간절한 물음은 부모의 귀에 가닿지 않는 것처럼 신기루처럼 흩날리듯 사라진다. 잠자코 숨을 죽여 쌓인 소희의 감정들은 흩날리는 눈처럼 자유로이 해소되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오프닝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소희의 숨소리만이 가득한 연습실에서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소희의 격한 몸짓을 따라간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3분가량 되는 시간 동안 카메라가 소희의 뒷모습만을 비춘다는 점이다. 표정이 아닌 몸짓을 거칠게 따라가는 것은 전작인 <도희야>에서 도희(김새론)의 항구 앞에서 흰옷을 흩날리면서 추는 춤과 유사하다. 영남(배두나)의 시선에서 보이는 도희의 몸짓은 가늘게 뻗어진 바람을 느끼는 유연한 손과 다리를 주목한다. 정주리 감독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왜 춤을 추는 것일까. 회사의 직무와 전혀 관계가 없는 춤을 추는 소희와 정해진 안무도 없이 부둣가에서 춤을 추는 도희는 움직임을 통해서 어딘가에 닿고자 한다. 그녀들의 춤은 타인으로 하여금 그 흔적으로 도달하도록 도와준다. 강물에 몸을 던지기 전의 소희가 방문했던 가게에서 똑같이 맥주를 마시는 유진은 소희가 보았을, 사선으로 들어오는 바닥의 빛을 본다. 머물러있는 빛은 어떠한 움직임도 선보이지 않는다. 빛의 종적을 좇아 도착한 강물에 들어가는 소희의 움직임은 오프닝과 대비된다. 소희의 춤을 거칠게 따라가던 카메라는 이제 제자리에서 소희가 프레임 너머로 사라지기까지 침묵한다. 강물 속으로 들어가며 작아지는 소희의 형체는 근접한 거리에서 춤을 추면서 카메라와 멀어지고 가까워지던 역동성을 지워버린다. 

하지만 유진은 생의 끝자락에서 꿈틀거리는 소희의 움직임을 복원한다. 분리되었던 소희와 유진은 보이지 않는 정동으로 연결된다. 소희의 죽음 이전, 두 사람은 같은 춤 연습실에서 스쳐지나가면서 서로를 목격했다. 유진의 엉성하지만 미약한 움직임을 소희가 지켜보았고, 이제 소희의 춤을 유진이 지켜볼 차례다. 소희의 휴대폰을 복구하면서 그 안에 담긴 단 하나의 영상인 연습실에서 거울을 보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영상을 플레이하는 유진은 계속에서 넘어지던 구간을 성공시키고 환하게 웃는 소희가 동영상을 종료시키는 순간을 함께한다. 정주리 감독은 영화의 구조를 수미상관으로 배치하면서 완수한 움직임을 남겨놓는다. 이 움직임은 영화의 제목처럼 다음의 소희가 나오지 않기를 희망하는 미약한 강렬함이며, 챕터를 연결해 주는 소희 이후의 유진이다. 유진은 사건을 파헤치다가 콜센터 회사, 학교를 너머에 장학관까지 도달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책임 회피에 환멸을 느낀 유진은 따져 묻지만, 장학관은 말한다. “이제 교육부 가시렵니까? 그 다음은요?” 과연 그 다음은 무엇일까.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다음 스텝은 무엇이 될까. 다시 돌아와 정주리 감독은 남겨진 단 하나의 영상을 통해 말한다. 생동감 넘치는 걸음들을 잊지 않고 들여다봐주기를. 여러 명의 움직임이 모였을 때, 다시 정동을 되찾을 것이기에.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이하늘
영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