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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의 문화톡톡] 사랑이라는 공포(2): ‘혼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공포,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홍성은, 2021)
[이지혜의 문화톡톡] 사랑이라는 공포(2): ‘혼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공포,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홍성은, 2021)
  • 이지혜(문화평론가)
  • 승인 2023.05.02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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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사람들(2021)ⓒ 네이버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 ⓒ네이버 영화

노벨상경제학상(2019)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는 한국의 세계 최저 출산율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를 받아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일본 인구 전문가인 아마노 가나코(닛세이기초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은 멸종위기 단계”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 2월 출생아는 2016년 4월부터 86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증가세를 보이는 것도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온라인 설문조사 기관 PMI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전국 만 19세에서 59세 남녀 2400명을 대상으로 ‘미혼 남녀의 결혼 계획’을 조사했다. 공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결혼 계획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61.4%였다.

4월 26일, 새로운 저출산 정책기획을 일부 발표되었다. 정부가 ‘결혼, 출산과 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을 새로운 목표로 삼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혼자사는 사람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 인간은 꼭 혼자가 아니어야만 행복하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

보부아르의 장편 모든 인간은 죽는다 『Tous les hommes sont mortels』(1946)는 인간의 실존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홀로 태어나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수많은 선택을 하며 자신의 삶을 견인해 나아가야하는 존재다. 그러나 삶의 끝엔 늘 죽음이 있으므로, 인간은 결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불안한 존재다. 이러한 점을 역설하기 위해 보부아르는 포스카(Fosca)라는 소설 속 주인공에게 불멸의 약을 마시게 한다. 문제의 원인인 생물학적 죽음을 삶에서 도려내고자 한다. 공포라는 감정의 거세를 시도한 것이다. 이로서 포스카는 “돌 보다 더 단단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에 실패한다.

 

공포란 무엇인가.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다. 두렵고 무서운 마음의 반대에는 고요, 즉 평정심이 있다. 이 평정심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감정의 역치를 넘어설 때, 이 감정의 외연에는 ‘쾌락’이 있다. 다시 말해, ‘쾌락’은 삶의 내면이 아닌 외연을 만족시키는 감정이다. 그러나 영혼의 평화를 유지하고 내면의 평정을 중시해 삶을 유지하는 이상적 경지의 쾌락을 뜻하는 말도 있다.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ataraxia)’다. 공포의 반대, 그 반대를 넘어선 바깥을 ‘아타락시아’로 정의할 수 있다면 혼자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오롯이 혼자인 삶을 감정의 동요 없이 유지하는 것,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기다리는 것. 모두가 일종의 쾌락이며 아타락시아다.

지금 혼자 있으며 미래에도 혼자이길 원하는 사람들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 흔들리게 하는 것,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 우리의 ‘아타락시아’를 무너지게 하는 공포의 대상은 무엇일까?

감정은 감정을 유발하는 사건이나 대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발생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가혹한 실존 조건은 죽음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존재함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대상에서, 이러한 사건에서 유발되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혼자 사는 사람들>(2021) ⓒ네이버 영화

혼자가 아니라는 공포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은 혼자가 아니게 되었을 때의 공포를 그리는 영화다. 콜센터 상담원인 진아는 “사람 들고 나는 것이 티도 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녀는 혼자만 잘하면 되는 일을 하고 있으며,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 그러므로 진아의 쾌락은 ‘혼자’라는 아타락시아에서 온다. 반대로 진아의 ‘옆집 남자’가 추구한 쾌락은 아타락시아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내면의 쾌락이다. 진아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줄담배를 피는 그는 성인물 무더기에 깔려 고독사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체가 발견될 때까지 혼자인 진아의 앞에 자꾸 귀신으로 나타나 겨우 ‘인사’를 구걸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공포의 주체를 완전히 비튼다. 흔히 귀신을 공포의 대상이자 사건으로 삼는다. 하지만 진아의 공포는 귀신이 아니다. 남자가 죽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은 후에도 진아는 동요하지 않고 일상을 산다. 왜냐하면 남자가 귀신이었다고 하더라도 혼자 살아가는 진아의 삶, 즉 혼자라는 아타락시아는 침범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옆집 남자의 주검이 발견된 후부터는 다르다. 이를 기점으로 진아는 공포를 느낀다. 공적인 일이 아니면 최소한의 대화조차 거부하며, 혼자이고 싶은 진아에게 옆집 남자의 일을 계기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서 진아는 공포를 느낀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관통하는 메시지는 ‘공포’다. 혼자가 ‘아니게 되는’ 공포와, 혼자가 ‘아니고 싶은’ 공포다. 또한 혼자 ‘죽은’ 사람과 혼자 ‘살’ 사람이 견뎌내야 하는 공포다.
 

혼자 사는 사람들(2021)ⓒ 네이버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 ⓒ네이버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공포는 혼자 ‘살지’ 않게 되는 것에서 온다.

진아의 말에 의하면 사실 정신병자도 일반인도 다 똑같은 사람이다. 진아는 “타임머신을 갖고 있으니 카드 유효기간을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고객을 일반인 응대 메뉴얼과 똑같이 대해 문제없이 처리할 만큼 노련하다. 콜센터 일은 대화에 감정을 섞지 않고 쉼없이 전화를 받아야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다. 이러한 일은 타자와의 유대를 꺼려하는 진아에게 있어서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신입 수진의 등장은 사수인 진아의 삶에 균열을 부른다. 수진은 대표적인 ‘혼자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스스로 자신이 그렇다고 이야기 한다. 수진의 말에 대답해 줘야 할 의무가 생긴 진아는 공적인 일 외에는 진아와 대면할 일이 없도록 선을 긋는다. 그러나 수진은 진아의 사적인 영역에 자꾸 침범하려고 한다. 점심시간을 침범하고 단골 국수집까지 따라오며 자꾸만 진아의 선을 넘으려고 시도한다. 자살한 엄마의 전화로 연락하는 진아의 아버지도 그렇다. 진아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연락을 받지 않기 위해 잠자코 어머니가 남긴 재산을 모두 넘긴다. 그러나 유류분을 넘긴 후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온갖 핑계를 대며 진아에게 연락한다. 내 송장을 치울 사람이 없다는 공포, 내 병수발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졌다는 공포를 진아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함께 살기를 권유한다.

 

혼자 해결하기

수진은 고객과의 통화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익숙치 않다. 전화선 너머의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막막하다. 진아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는 통화 연결 대기음이 수진에게 있어서는 불안의 대상이 된다. 통화 연결 대기음은 처리해야 할 고객에 대한 공포로 치환되는 것이다. 수진은 퇴근후에도 대기음을 듣는 이명 현상을 겪는다. 그러나 비프음은 혼자 듣는 것이다. 통화도 혼자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진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그런 수진과 통화하게 된 정신병자는 수진을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유일한 타인이다. 정신병자가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타임머신은 과거와 미래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게 중계하는 기계다. 이 기계의 존재는 ‘현재’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현재가 있어야 가장 좋은 과거를 분별할 수 있고, 현재가 있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2002년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수진의 질문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세계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던 정신병자에게 유의미한 응답이다. 또한 수진에게 있어서는 이명을 앓게 만든 장소에서 유일하게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한 사람이다. 카드사에 전화해 도돌이표처럼 같은 질문을 하던 정신병자는 비프음 환청을 듣는 수진의 감정적인 질문(응답)으로 인해 ‘불안하고 막막한’ 자신의 생활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수진에게 그 사실을 토로함으로서 비로소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수많은 타인들이 같은 색의 옷을 입고 길거리에 모여 월드컵을 응원하던 2002년으로 한 번 만이라도 다시 가서 섞여보고 싶다”던 그의 소망에 처음으로 공감해 준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2021) ⓒ네이버 영화

공포의 반대말

수진이 회사를 그만둘 즈음부터 진아는 혼자 살지 않게 되는 공포에 시달린다. 진아는 습괍적으로 수진의 자리를 비워놓고 앉았다가 그녀의 빈 자리를 느낀다. 비프음의 막막함을 체험 하게 된다. 전화선 너머의 사람들에게 응답하는 방법을 잊게 된다. 공실이 된 옆집을 보러 온 남자에게 자신이 목격한 귀신 이야기를 해준다. 이는 평소의 진아 답지 않은 행동이다. 목발을 짚은 남자는 조소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폭소로 진아의 호의에 응답한다. 이처럼 진아에게 도래한 삶의 균열은 진아가 들이키던 국수의 면이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씬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끊어진 국수가락 앞에서 어쩌지를 못하며 울먹거리는 진아를 카메라는 오래 응시한다. 혼자가 불안하고 어려워졌으므로 진아는 공포스럽다.

혼자 있는 사람들의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가. 새로운 옆집 남자는 진아의 조언을 무시하지 않았다. 성인물에 깔려 죽은, 자신이 이사올 집에 먼저 살던 남자를 위해 모르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불편한 다리를 한 채로 정중히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켜보며 진아는 ‘혼자’라는 공포를 인정하기로 한다. 또 새로운 ‘혼자’의 도래를 인정하기로 한다. 그 증거로 진아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전화선을 넘어 수진에게 사과한다. 아버지에게 전화해 새로운 선을 긋는다, 영화의 말미, 카메라는 창문을 열어 세상 밖을 바라보는 진아를 오래 응시한다. 그녀는 혼자 살 수 있게 되었다. 화면 속의 그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보인다. 그걸로 충분하다.


 

글·이지혜(이해이)
문화평론가. 제16회 <쿨투라> 영화평론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문화현상과 기술인문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leehey@khu.ac.kr /인스타그램: @leehey_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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