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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댑테이션>, 할리우드라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댑테이션>, 할리우드라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 김채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3.07.10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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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리 알면 좋은 텍스트, 『난초 도둑』

 

영화 속 수잔 올린(메릴 스트립 분)
영화 속 수잔 올린

1994년 난초 수집가 존 라로쉬(John Laroche)는 세미놀(Seminoles) 인디언 몇몇을 고용해, 플로리다 남부에서 희귀 난초를 불법적으로 채취하다 잡혀 기소된다. 뉴요커(New Yorker)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에스콰이어, 롤링스톤, 보그에도 기사를 기고하던 수잔 올린(Susan Orlean)은 이 사건에 흥미를 느껴 1995년부터 취재에 들어간다. 관련 기사를 몇 차례 내다가 본격적으로 파고들 필요성을 느낀 그녀는 1998년 『난초 도둑 The Orchid Thief』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녀는 라로쉬 사건에 흥미를 느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책에서 말한다.

 

“도대체 난초에 무슨 매력이 있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정신없이 난초를 숭배하고, 그것도 모자라 훔치고 또 독특한 새 품종을 만들어내려고 애쓴단 말인가? 또 그런 다음에는 그것이 꽃을 피우기까지 거의 10여 년을 어떻게 그토록 흔쾌히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이유를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존의 입을 빌려서 독자에게 들려준다.

 

“인생에는 의미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어떤 ‘분명한’ 의미가 없다는 거지요. 잠에서 깨어나 일하러 가고, 그저 이런저런 시시껄렁한 일들을 하잖아요. 사람은 누구든지 항상 조금은 색다른 뭔가를 찾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빼앗길 수 있고 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뭔가를 말입니다.”

 

요약하자면, 『난초 도둑』은 쓸데없는 것에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잔 올린은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일에 몰두하면서 마치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을 완수하려는 사람들을 대도시 뉴욕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자주 마주하던 수잔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열정의 이유를 이해하고 싶은 것”이 자신의 유일한 열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라로쉬의 ‘빗나간 열정’을 단순히 ‘이해’해보려는 욕망으로 3년에 걸쳐 사건을 취재하고 플로리다 현지답사를 다녀온 끝에 책을 완성한다. 어쩌면 그녀의 욕망도 관점에 따라서는 ‘쓸데없는 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쓸데없는 일에 뛰어든 또 한 사람이 있다. 찰리 카우프만(Charlie Kaufman)! 그는 두 겹으로 된 쓸데없는 열정이 담긴 책, 『난초 도둑』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려 한다.

 

 

2. 불가능한 『난초 도둑』의 영화화 그리고 <어댑테이션>의 결말

 

난초, 존, 수잔

<존 말코비치 되기 Being John Malkovich>(1999)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일약 주목받는 시나리오 작가가 된 찰리 카우프만. 영화사는 그에게 수잔 올린의 베스트셀러 각색을 의뢰한다. ‘인공 조미료 없는 영화’를 꿈꾸던 찰리는 상업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난초 도둑』의 ‘꽃 이야기’에 집중하려 한다. 영화사 간부 발레리가 찰리에게 난초 도둑, 존과 저자 수잔의 러브스토리를 가공해서 넣어보면 어떻겠냐고 부추기지만, 그는 "섹스 이야기. 총 쏘고, 자동차 추격하고, 역경 극복하고, 삶에 대한 교훈을 늘어놓는 영화"는 질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단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꽃 이야기’를 영화화하려는 찰리는 번번이 벽에 부딪힌다. 여기서부터 영화 <어댑테이션 adaptation>(2002)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발화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해보려는 작가적 욕망을 가로막는 것은 영화사가 아닌 바로 찰리 자신이다. 그는 꽃과 벌에 관한 이야기나 원시 생명체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다윈의 이론을 영화화할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찰리가 『난초 도둑』의 텍스트 내부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하자 쌍둥이 동생 도널드는 저자 수잔을 만나보라고 권한다. 그마저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을 대신해 결국 도널드가 수잔을 만난다. 그리고 그는 수잔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쌍둥이 형제는 망원경으로 수잔을 훔쳐보며, 그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녀를 미행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텍스트 바깥 이야기가 찰리의 시나리오에 편입된다. 꽃에 관한 순수한 드라마에서 시작한 영화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우리에게 익숙한 ‘섹스, 총, 자동차와 인생의 교훈’이 뒤섞인 스릴러를 펼친다.

수잔과 난초 도둑, 존은 인터뷰를 거듭하면서 친밀해지고 급기야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형제는 혹시라도 존재할지 모를 비밀을 캐기 위해 이들의 밀회 현장에 잠입한다. 존이 기거하는 비닐하우스는 유령 난초를 배양하는 종묘장으로, 이 난초는 암암리에 신종 마약으로 이용된다. 수잔과 존은 그곳에서 꽃 분말을 흡입하면서 둘만의 파티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행동거지가 어설픈 찰리가 그들에게 붙잡히면서 상황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수잔은 도널드(실은 찰리)가 자신들의 치부를 시나리오에 쓸 것이라 우려해 그를 죽이려 한다. 수잔과 존은 찰리를 흔적 없이 살해하기 위해서 유령 난초가 자라는 늪지대로 그를 끌고 간다. 차에 숨어 있는 동생은 위급한 순간에 형을 구해 도망간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한밤중, 울창한 정글 같은 숲속에서 추격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순찰차와 찰리가 운전하던 차가 부딪치면서 도널드가 죽고 만다. 존 역시 찰리를 뒤쫓다가 악어에게 물려 죽고 총소리를 듣고 급파된 경찰에게 수잔이 붙잡히면서 영화는 종결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이면서 성급하게 요약된 시놉시스에 불과하다.

 

 

3. 자아분열을 해결하는 카우프만의 영화적 장치

 

창작의 고뇌에 시달리는 찰리

할리우드에 삶의 토대를 둔 모든 예술가는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길 원한다. 그러나 그 바람은 대부분 이루기 힘든 신기루다. 창작자의 예술적 동기를 최대한 살리면서 동시에 박스 오피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는 이 어려운 욕망은 카우프만을 찰리와 도널드라는 두 자아로 분열시킨다. 카우프만은 처음부터 이 사태를 염두에 두고 『난초 도둑』을 각색하는 시나리오 작가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우리는 코엔 형제(Ethan/Joel Coen)의 <바톤 핑크 Barton Fink>(1991)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창작의 고뇌에 시달리는 작가들을 보았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과 사건에서 촉발되는 대다수의 자기 반영적인 메타 픽션은 작가가 집필하고 있는 영화 속 이야기가 안쪽 디제시스가 되고, 그가 처한 상황이 바깥 디제시스가 된다. 영화는 이 두 개의 디제시스를 왕복하면서 미장아빔을 형성한다. 감독은 이 장치를 통해 이야기의 외연을 점점 확대하여 ‘시간 이미지’나 ‘우주’와 같은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 도달하고자 한다. 때로는 결이 다른 두 개의 디제시스 사이를 인물이 왕복하게 하면서 환상을 만들기도 한다. <어댑테이션> 역시 전반부에서는 이런 방식을 따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두 개의 디제시스가 하나로 합쳐진다. 카우프만의 독창성이 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안과 밖의 미장아빔을 창의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난초 도둑』의 해체’, ‘카우프만의 분열’, ‘로버트 맥키의 등장’, ‘두 가지 버전의 감동적인 엔딩’이라는 장치를 고안한다. 그러니 우리는 하릴없이 카우프만의 장치를 지도 삼아 두 개의 디제시스를 넘나들어야 한다.

 

3-1. 『난초 도둑』의 해체

 

성격이 다른 두 형제, 찰리와 도널드

“카우프만의 시나리오는 완전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말도 안 되는 ‘각색(adaptation)’을 허락받아야 했고 나는 이렇게 말했죠. ‘안돼! 농담하니? 이건 내 경력을 망칠 거야!’ 하지만 매우 현명하게도 그들은 내게 어떤 압력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미쳤다는 생각을 극복하고 동의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지금은 이 영화를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정말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어댑테이션>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점은 ‘삶과 집착’이라는 책의 주제에 매우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  수잔 올린의 인터뷰 중에서

 

카우프만이 <어댑테이션>의 원재료로 삼은 『난초 도둑』은 수잔 올린의 인터뷰처럼 ‘삶과 집착’이라는 주제를 관통한다. 하지만 영화 <어댑테이션>도 과연 그러한가? 각색되는 과정에서 수잔과 존은 원작에는 없는 ‘불륜’과 ‘살인’을 저지른다. 게다가 그들은 주기적으로 만나 마약을 흡입하는 인물로 완전히 설정이 변경된다. 두 사람의 역할이 크긴 하지만 <어댑테이션>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카우프만이다. 영화 속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수잔과 존은 찰리가 아닌 도널드의 머리에서 나온 인물들로서, B급 장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과연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가 ‘삶과 집착’이라는 책의 주제에 매우 충실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극 중 찰리와 관객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오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은 일에 몰두하면서 마치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을 완수하려는 사람들” 중에 존과 수잔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도널드 그리고 시나브로 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 아이러니한 이야기는 결코 영화 속 등장인물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일은 하찮은 것으로 취급된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된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전부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 세계는 사람들이 벌인 하찮은 일들이 집적된 거대한 건축물인 셈이다. 찰리는 『난초 도둑』을 영화화하기 위해 원작을 디제시스 안쪽으로 밀어 넣고, 바깥쪽의 디제시스에 자신과 가상의 쌍둥이를 내세운다. 마침내는 두 개의 디제시스를 통합해서 영화를 마무리하려 한다. 도대체 영화가 무엇이기에 카우프만은 이렇게 집착한단 말인가?

수잔 올린이 『난초 도둑』에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기이한 욕망과 열정이었을 것이며, ‘난초 도둑’은 그런 인간에 대한 환유일 것이다. 수잔은 카우프만과 그의 시나리오에서 ‘난초 도둑’과 같은 열망을 보았다. 수잔의 이야기를 재료 삼아 고군분투하는 카우프만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는 스스로 난초 도둑이 되었다. 수잔이 감화된 지점은 카우프만의 영화에 대한 ‘기이한 열정’이 아니었을까?

 

3-2. 카우프만의 분열

 

영화관(觀)도 다른 두 형제, 찰리와 도널드

<어댑테이션>은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의 전작 <존 말코비치 되기>의 제작과정을 기록한 메이킹 필름의 한 신으로 출발한다. 주인공 말코비치가 제작진을 독려하는 장면 속에 어수룩한 찰리가 보인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물론 메이킹 필름 속에 삽입된 찰리는 CG로 처리된 것이다.) 찰리가 잔뜩 위축된 채 촬영장을 벗어나 길거리로 나오면서 비로소 <어댑테이션> 본편의 막이 오른다. 영화는 이 장치를 통해 <존 말코비치 되기>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찰리 카우프만이 주인공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렇다면 쌍둥이 동생, 도널드는 왜 등장시켰을까? 내향적이면서 지적이고 한편으로는 소심하면서 자기 확신이 부족한 형과 달리 도널드는 단순하게 사고하고 누구와도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사회적 인물이다. 찰리와 마찬가지로 도널드 역시 시나리오 작가다. 그는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에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쓴다. 이미 프로가 된 찰리에게 가끔 조언을 구하지만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작법 강연을 들어가면서 완성한 시나리오로 도널드는 일약 ‘새로운 천재’로 인정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도널드의 시나리오는 찰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섹스, 총, 자동차, 인생의 교훈'이 범벅된 장르 영화다. 따라서 도널드의 시나리오는 찰리의 영화적 이상, 그 건너편에 있다.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도중, 인물 설정이 막히자 도널드는 형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자 찰리는 “범인은 대학의 영문학 교수야. 죽을 때까지 살점을 도려내고 자신을 파괴자라고 부르지”라고 건성으로 답한다. 도널드는 “아주 좋은 걸, 재미있어”라고 말해 외려 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몇 시퀀스가 지난 후, 도널드는 시나리오가 완성하는데 찰리가 농담으로 던진 아이디어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도널드는 기쁨에 차서 찰리에게 대강의 줄거리를 이야기한다.

 

우로보로스

도널드 : 킬러는 인질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 먹게 해. 주인공 캐롤라인 몸에는 자기 꼬리를 먹는 뱀 문신이 있는데...

찰리 : 우로보로스.

도널드 : 그게 뭔데?

찰리 : 그 뱀 이름이 우로보로스야.

도널드 : 아무튼, 킬러가 인질에게 살을 먹게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자기를 먹는 거지.

(이때 찰리에게 번개처럼 영감이 스친다)

찰리 : 난 미쳤어. 내가 우로보로스였어!

도널드 : 그게 뭔지 모른다니까.

찰리 : 시나리오에 내 이야기를 집어넣을 거야.

 

찰리가 자신을 우로보로스(uroboros)로 지칭한 것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자기 꼬리를 입에 문 형상으로 유명한 우로보로스는 무한 순환과 자기 충족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이 상징은 찰리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 <어댑테이션> 안에 삽입하는 일을 의미하며, 서로의 분신인 찰리와 도널드가 각기 지닌 속성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찰리의 아이디어를 도널드가 수용하고 도널드의 제안을 찰리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안과 밖에서 따로 작동하던 디제시스가 드디어 하나로 합체된다.

 

3-3. 로버트 맥키의 등장

 

찰리에게 조언하는 로버트 맥키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시나리오 선생을 꼽으라면, 영화인 대부분이 로버트 맥키(Robert Mckee)를 떠올린다. 맥키의 유명한 십계명은 피처 필름의 공식처럼 여겨진다. 맥키에게 있어서 장르란 곧 영화의 다른 이름이며, 맥키의 십계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갈등과 사건이다. 이는 당연히 <어댑테이션> 속 찰리의 드라마투르기와는 정반대다. 우리의 찰리는 지금 ‘꽃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고 일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카우프만의 또 다른 분신, 도널드는 형과 노선이 다른 맥키의 신봉자이다. 도널드는 거금을 들여 시나리오 워크샵에 다녀와서는 “맥키는 천재야. 농담까지 잘해서 웃다가 끝났지"라고 외치면서 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대사는 더 가관이다.

 

도널드 : 맥키도 진지한 사람이라서 형도 좋아할 거야. 형처럼 독창성이 있거든. 그분 말씀이 장르를 지키래. 독창성도 그 안에 있는 거라고. 모큐멘터리 이후에 새로운 장르는 없데. 난 스릴러. 그럼 형은?

찰리: 우리의 DNA가 같다니. 이보다 큰 비극은 없는 것 같다.

 

벽에 가로막힌 시나리오 작업의 활로를 뚫기 위해 드디어 찰리는 적진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맥키가 강연하는 동안, 찰리는 창작력이 고갈되어 남에게 의존하려는 자신의 태도에 대한 자괴감으로 붕괴 직전에 다다른다. <어댑테이션>에서는 이 장면을 찰리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들려준다. 찰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순간, 맥키는 마치 그를 향해 말하듯 ”내레이션을 사용하겠다고요? 그따위로 쓰려면 집어치워요!”라고 일갈한다. 정신을 추스른 찰리가 용기를 내 맥키에게 질문한다.

 

찰리 : 별사건도 인물 변화도 없다면 어떻게 스토리를 써야 하죠? 좌절할 뿐 해결책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요.

맥키 : 진짜 세상 말이오?

찰리 : 네. 선생님

맥키 : 이 세상에 사건이 없다고요? 지금 제정신이요? 매일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대학살에, 전쟁에, 아비규환에,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도 있지만 썩을 인간들은 누군가를 짓밟고 있소, 사랑을 찾기도 하지만 잃기도 하오. 교회 앞에서 맞아 죽는 사람이 있고 굶어 죽는 사람도 있소. 누군가는 애인 때문에 친구를 배신하는데, 삶에서 그런 걸 못 본다면 인생이 뭔지 아무것도, 쥐뿔도 모르는 거요!

 

이 장면에서 맥키와 찰리의 영화관(映畫觀)이 정면충돌한다. 도대체 ’꽃 이야기‘에 어떤 갈등이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막다른 길에 접어든 찰리는 강연을 끝내고 돌아가는 맥키에게 매달린다.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호소하는 찰리에게 연민을 느낀 맥키는 술집에서 길고 긴 고민 상담을 한 끝에 답을 내놓는다.

 

맥키 : 마지막 장면이 관건이요. 엔딩만 감동이면 성공이지. 중간에 어떤 실수가 있었든, 마지막엔 감동을 주란 말이오. 단 관객을 속이거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x ex machina)는 금물이요. 인물을 바꾸시오. 스스로 변하게 만드는 거요. 그것만 잘 해내면 걱정 없소.

우리는 맥키의 대사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왜냐면 이는 영화 전반부에서 존이 수잔에게 했던 말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존 : 내가 식물을 왜 좋아하는지 아세요? 식물은 늘 변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줄 알아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니까요.

 

찰리는 드디어 맥키의 이론과 ‘꽃 이야기’를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자신이 처한 이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adaptation)’할 것이며, 어떻게 수잔의 책을 ‘각색(adaptation)’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감동적인 엔딩’을 만드는 일이다.

 

3-4. 두 가지 버전의 감동적인 엔딩

 

존과 수잔 일행에게 쫒기다 지친 형제는 나무 그루터기에 숨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상대를 진지하게 응시한다. 각자가 가지지 못한 면 때문에 서로를 부러워했던 형제는 옛이야기를 하면서 흉금을 털어놓는다. 이때 형제가 나눈 ‘사라 이야기’는 자못 감동적이다. 고등학교 시절 도널드는 사라라는 여학생을 사랑했다. 하지만 사라는 도널드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흉보고 이를 찰리가 듣게 된다.

 

찰리 : (그때를 떠올리면서) 내가 모욕당한 기분이었어. 넌 몰랐을 거야.

도널드 : 나도 다 들었어.

찰리 : 그런데도 좋았어?

도널드 : 난 사라를 사랑했고 그 사랑은 내 것이잖아. 사라도 그걸 뺏을 권리는 없어. 사랑은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찰리 : 너를 바보 취급했는데도?

도널드 : 그야. 내 알 바 아니지. 사랑한 만큼 행복했으니깐.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어떤 것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면, 그것이 사는 목적이며 행복이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날이 밝아오고 추격전이 재개된다. 그러다가 도널드는 존이 얼떨결에 쏜 총에 맞게 된다. 상처 입은 도널드를 태우고 거칠게 차를 몰아 추격을 벗어나려는 찰리, 총소리가 들리자 근처에서 새벽 순찰 중이던 경찰차가 달려온다. 동생을 보살피면서 운전하던 찰리는 순찰차와 충돌하고 만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던 도널드는 차창 밖으로 튕겨 나간다. 죽어가는 도널드를 살리기 위해 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삶의 의지를 북돋는 것뿐이다. 그 순간 찰리는 도널드가 <사이코>와 <양들의 침묵>을 짬뽕한 것 같은 기괴한 시나리오의 내용을 떠벌이면서 배경음악으로 쓰겠다며 흥얼거리던 터틀스(The Turtles)의 ‘Happy Together’가 떠올라 그에게 이 노래를 불러준다.

 

Imagine me and you, I do(나와 당신을 상상합니다.) / I think about you day and night, it's only right(나는 밤낮으로 당신을 생각해요. 정말 그래요) / To think about the girl you love and hold her tight, so happy together(사랑하는 여자를 생각하고 꼭 끌어안는다는 것. 너무 행복하죠.)

 

관객들은 전반부에서 도널드가 이 노래를 자신이 쓴 시나리오에 삽입하겠다고 말할 때, 맥락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찰리가 자꾸만 눈을 감는 도널드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는 이유를 우리는 문득 떠올릴 수 있다. 사라! 찰리는 도널드의 마음을 빼앗았던 사라를 상기시키는 노래를 불러줌으로써 동생의 죽음을 막으려 한 것이다. 이 정도면 ‘happy together’, ‘사라 에피소드’ 그리고 동생이 쓴 짬뽕 시나리오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제법 그럴싸한 매듭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제 찰리는 도널드의 러브스토리를 재료 삼아 관객에게 인생의 교훈을 들려준다. “남들이 뭐라 하던 내 알 바 아니다. 난 사랑한 만큼 행복하니까. 오래전부터 난 그렇게 생각했어.” 사건이 마무리된 후 찰리는 예전에 잠시 사귀었던 아멜리아를 만난다. “남자 친구와 프라하에 갔지만 그곳에서 당신을 생각했다.”라는 그녀의 말에 용기를 낸 찰리는 아멜리아에게 키스한다. 동생이 설파했던 ‘행복론’을 실천한 찰리. 찰리의 내레이션이 계속된다.

 

“바로 집으로 가야겠어. 마지막 장면이 드디어 생각났다. 맥키 선생이 알면 난리 나겠지만, 내레이션 없이는 안 되겠어. 맥키가 뭐라고 하던 나만 좋으면 되지. 내 역은 덜 뚱뚱한 배우로 할래. 제라르 드 빠르듀, 발음이 별로라 좀…. 하여간 다 썼으니 된 거야. 아멜리아를 보낸 찰리는 처음으로 희망을 떠올려본다. 끝이 맘에 든다. 좋았어.”

 

이로써 우리는 찰리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도널드를 희생시켜가면서 그리고 맥키 선생님의 충고를 받아들이면서 구축한 감동적인 첫 번째 엔딩을 본다. 또 다른 엔딩 버전은 찰리의 내레이션이 끝나고 카메라가 붐다운하면서 도로 중앙 분리대에 심어진 바로 그 ‘꽃’ 쇼트이다. 결국 영화의 진정한 끝은 찰리가 간절히 원했던 ‘꽃 이야기’로 마무리된 셈이다. 할리우드라는 생태계에서 창작의 고뇌에 시달리던 시나리오 작가의 ‘적응’과 ‘각색’이라는 두 가지 사건으로 이뤄진 <어댑테이션>. 이 영화는 분열된 카우프만의 두 자아가 서로에게 들려주는 ‘사라 이야기’와 ‘꽃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하나로 합일된다. 이 정도면 까탈스러운 맥키 선생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글·김채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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