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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과학과 제국의 결혼'은 과연 행복한가-<오펜하이머>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과학과 제국의 결혼'은 과연 행복한가-<오펜하이머>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3.10.0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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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후 미국의 국가 영웅으로 떠올랐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후 미국의 국가 영웅으로 떠올랐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2023)에서 천재 이론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참여한 맨해튼 프로젝트는 미국의 국가적인 과업이었다.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공동 참여한 이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은 1942년부터 1946년까지 진행됐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전체 예산은 현재 화폐 가치로 약 23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수학적 계산조차 쉽지 않은 어마어마한 액수다.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를 대표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간다. 그러면서도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에는 반대한다. 수소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자로서 세계를 지배한 제국이 됐다.

<오펜하이머>는 과학과 정치, 과학과 국가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펜하이머>에 나타난 과학과 정치, 과학과 국가의 문제는 유럽이 과학을 통해 제국주의 시대를 연 것과 비교해볼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유럽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과학의 힘을 꼽는다. 유럽은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유라시아의 변방에 불과했다. 1775년에는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80%를 차지했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 규모를 합친 것만으로도 세계 총생산의 3분의 2에 이르렀다. 유럽의 세계 지배는 1855년 이후 본격화됐는데, 그 배경은 군사-산업-과학 복합체와 기술 덕분이었다. 근대 후기의 성공한 유럽 제국들은 모두 과학연구를 장려했으며, 많은 과학자는 제국주의를 위해 무기, 의학,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내용을 다룬 부분의 소제목을 ‘과학과 제국의 결혼’이라고 붙였다.

 

청문회에 참석한 오펜하이머.
청문회에 참석한 오펜하이머.

유발 하라리의 주장대로라면, <오펜하이머>에서 미국이 유럽 제국주의의 후계자가 된 배경도 과학에서 찾을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개발을 주도한 원자폭탄은 미국이 독일, 일본을 무너뜨리고, 제국주의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영화만이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는 나치가 핵무기 개발에 먼저 성공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에서 독일계 유태인 가문 출신인 오펜하이머는 ‘악의 제국’인 나치가 가공할 무기를 개발해 세계를 파멸시키기 전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치는 핵무기를 포기했고, 미국은 핵무기 개발을 국가적인 과업으로 추진한다. 그런데 오펜하이머가 개발한 핵무기는 독일이 아니라 일본에 투하된다.

오펜하이머가 과학자로서 선택한 길과 그의 연구 결과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오펜하이머가 미국 뉴멕시코주의 황량한 사막에 건설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개발한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그런데 미국은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고 군인들이 일본에 진격했다면 원자폭탄 피해자보다 더 많은 자국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한다. 즉 정치인은, 제국은 숫자로 전쟁의 결과를 판단한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의 영역에 뛰어들었고, 그로 인해 19세기 유럽의 과학자들처럼 ‘과학과 제국의 결혼’에 참여하게 됐다. 그런데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결과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원자폭탄 폭발 장면을 시각화한 '오펜하이머' 포스터.
'오펜하이머' 포스터.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원자폭탄 개발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후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순진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이 주인공이고, 트루먼에게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명령을 수행한 수많은 군인, 과학자의 한 명일 뿐이었다. 실제로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는 군인이었다. 게다가 오펜하이머는 1940년대 말부터 미국이 추진한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함으로써 공산주의자로 몰려 청문회에 출석해야 했다. 원자폭탄 개발 정보를 소련에 넘겼다는 혐의였다.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가 청문회에 출석해서 곤욕을 치르는 장면, 그가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가 공산주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공산주의자 여성과 결혼한 이야기도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만든 것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없다. 그것은 제대로 된 일이었다. 하지만 원자폭탄이 제대로 사용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라고 회고했다. 원자폭탄 개발은 과학자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사용은 정치인의 일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로 인해 국가적인 영웅이 됐지만, 바로 그 이유로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비밀문서를 취급하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은 아름답다.”라고 말했지만, <오펜하이머>는 ‘과학과 정치의 결혼’과 관련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럽 제국주의와 과학자, <오펜하이머>에 나타난 미국과 오펜하이머의 관계는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현대 자본주의와 과학의 관계는 어떠할까? <오펜하이머>는 과학과 정치, 과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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