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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선의 문제 <너와 나>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선의 문제 <너와 나>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4.02.13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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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너와 나>를 보면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세미(박혜수)의 시점 쇼트가 매우 적다는 것이었다. 또한, 시점 쇼트가 적은 만큼 세미와 하은(김시은)이 같이 있는 씬에서 세미의 원 쇼트도 적어 그녀의 시선으로 영화를 연출하려는 방식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이었다. 세미가 처음 자신의 집에서 앵무새와 열쇠고리를 바라보는 장면만 봐도 시점 쇼트가 없고, 그녀가 하은을 처음 만나는 씬은 한 컷으로 진행된다. 한 컷이라 해도 세미의 뒤에서 하은을 바라보듯 연출한 것이 아니라 측면에서 진행되어 두 인물을 관찰하는 느낌의 쇼트이다.

세미가 하은을 캠코더로 촬영하는 것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보자. 짝사랑하는 인물의 감정을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긴 시선과 타이트한 인물 얼굴 쇼트로 나타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여주며, 어깨너머로 세미의 시점처럼 작동하는 부분은 존재하지만, 쇼트를 나누어서 세미가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단독 시점 쇼트와 리액션 쇼트를 배제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 중 하나가 하은이 키스하고 싶다고 적은 훔바바가 누구인지를 질투와 기대감이 섞인 양면적 감정으로 따라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더 이상한 부분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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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너와 나>는 세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녀의 시선에 이입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세미의 감정에 이입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세미 또한 누군가의 시선 아래에 있는 듯 연출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을 돌이켜보면 이러한 생각이 더 분명해진다. 창밖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시선은 고개를 돌려 세미를 바라본다. 이것은 하은의 시선도 누구의 시선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시점 쇼트는 대부분 하은이 훔바바에게 키스하고 싶다고 적은 노트를 세미가 바라보는 것, 떨어질 듯 놓여있는 컵, 관객들은 짐작하기 힘들지만 감독이 의미심장하게 넣은 아이를 바라보는 세미의 모습, 노래방 기계에 나오는 환상, 죽은 듯 누워있는 하은의 발뒤꿈치를 보는 것, 창고에 숨어 사는 개들을 보는 장면, 훔바바의 정체가 밝혀지는 하은의 핸드폰을 바라보는 쇼트처럼 감정을 연출하는 기능이 아니라, 이야기가 은유하는 대상을 드러내는 것과 상황을 설명하는 기능으로만 작동하고 있다.

당연히 영화가 어떠한 형식을 취했다는 사실은 이상한 것도, 꼭 이렇게 연출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너와 나>의 핵심 아이디어가 4.16 세월호 참사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은유하면서, 꿈을 통해 죽은 인물의 시점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러한 연출이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꿈의 구조에서 타자의 시선에 이입하고 바라보는 연출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사실적으로 관찰하는 시선의 카메라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스타일의 시선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며, 시점 쇼트는 대부분 인물의 주관적 시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야기 흐름에 중요하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여줘야 하는 대상이나, 감독이 의도한 상징, 은유, 구조를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때문에 <너와 나>에서 꿈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필터를 씌운 듯 뿌연 화면을 만든 것은 이러한 이야기 구조와 연출 형식의 부조화를 어떻게든 무마하려는 앙상한 시도처럼 보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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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품고 있던 꿈의 구조가 밝혀진 후반부를 한번 보자. 세미를 따라가던 이야기가 사실은 비극에서 살아남은 이가 꾸는 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지나가고 세미와 하은은 둘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후 둘은 수학여행이 끝나고 보자며 헤어진다. 이때 영화는 쇼트/역쇼트로 컷을 나누되 하은의 위치에서 그것을 수행한다. 하은의 시선에서 떠나가는 세미를 바라보는 것이다. 세미는 갈듯 말듯 다시 하은을 보러 여러 번 되돌아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라도 헤어지기 싫은 마음과 미래를 알고 있는 초월적인 시선에서 재난과 비극이 조금이라도 지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복합적으로 연출된 장면이다. 하지만 후경에 놓인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인물들이 지나가거나 서 있는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지시하는 직접적인 연출을 통해 이 씬이 지니는 감정은 사랑보다 상실과 슬픔의 기운이 더 크게 드리워져 있다.

<너와 나>는 그런 영화다. 네 삶과 사랑의 설렘과 질투, 두려움, 슬픔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 생동감은 비극이 닥쳐올 이야기의 미래를 알고 있는 세계에 속한 나의 시선 아래 사라진다. 예컨대 영화는 연락이 안 되는 하은을 쫓으며 훔바바가 누군지 의문을 품는 세미의 질투와 기대감의 감정이 아닌, 영화의 시작부터 눈물을 흘리고 죽은 새를 보듯 그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더 강조한다. 학교에서 하은과 우연히 재회했을 때에도 사랑하는 너를 만난 기쁨은 잊히고 죽은 반려견을 애도하는 것으로 빠르게 넘어간다. 의도적으로 배치된 것이 드러나 보이는 장례식 장면과 제사 지방 태우는 인물의 직접성처럼 말이다. 결말에서도 가족과 행복하게 밥을 먹고, 앵무새를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세미의 모습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의 시선도 사랑받는 이의 시선도 아닌 꿈꾸듯 죽은 이를 떠올리는 나의 시선이다. 즉 <너와 나>에는 제목과 달리 너와 나가 있는 것도, 네가 된 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된 너만 있다. 모든 인물이 나이다. 비극 바깥에서 모든 것을 알고 바라보는 나만이 있다.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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