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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의 문화톡톡] 일에 진심인 사람들의 이야기
[장윤미의 문화톡톡] 일에 진심인 사람들의 이야기
  • 장윤미(문화평론가)
  • 승인 2024.03.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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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이 베테랑인 이유

고수, 달인, 장인. 미세한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모두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다. 한 분야에서 오로지 자기 실력으로 인정받은 사람들. 다른 말로는 베테랑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아무나 베테랑이라고 불리진 않는다. 독보적인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 동시에 일의 시작과 끝, 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변수와 해결책을 머리에 담고 몸으로 익혀야 한다. 그러다보니 축적된 지식과 오랜 경험은 필수이자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 베테랑이 된다는 건 모순이다. 대개 베테랑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나이가 지긋한 사람을 떠올리는 건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 빨리 자신에게 맞는 업을 찾아 이른 나이에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흔치 않다. 그리고 이럴 경우엔 베테랑보다는 전문가라는 단어가 더 자연스럽다.

기계의 시대 속도의 시대를 사는 지금, 베테랑이 되기란 쉽지 않고 베테랑이라고 인정받았다고 해도 자신의 업을 오랫동안 이어나가는 건 녹록지 않다. 기계가 개입되지 않은 노동 분야를 꼽는 게 빠를 시점에서 대부분 노동자는 기계에 밀리고, 반대로 고도의 기술을 가진 숙련자는 높은 임금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사업주의 고용 기피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저임금 제도는 그 본래적 의도와는 다르게 고숙련자와 저숙련자 모두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최저임금으로 후려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여러모로 베테랑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노동 구조다.

그럼에도 베테랑이란 말은 시대를 초월하며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대한 인정인 동시에 찬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베테랑이라 불리는 사람들 역시 자신이 그렇게 불리는 것에 부끄러워하면서도 뿌듯함을 감추지 않는다.

처음부터 베테랑이 되겠다는 목표나 다짐으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이 그렇듯 먹고 살기 위해서,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오래 하다 보니, 남보다 잘 하다 보니, 남들에게 인정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베테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뿐이다.

‘당신은 베테랑이시군요.’라는 말에 부끄러워하며 아니라고 손사래 칠 치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업과 그 능력에 대해서 만큼은 의심하지 않기에 뿌듯함과 자신감을 숨기지는 않는 열 두명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돋보이게 하는 건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자신의 업을 애정하는 것,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 것, 겸손하지만 자신을 쓸데없이 낮추지는 않는 것.

 

2. 그렇게 하다 보니, 불균형한 몸

기록 노동자 희정이 쓴 <베테랑의 몸>은 열 두명의 노동자를 인터뷰한 인터뷰집이다. 열두 명 중에는 조리사, 안마사, 어부와 같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업을 가진 베테랑도 있고 세공사. 로프공, 식자공처럼 다소 낯선 업을 가진 베테랑도 있다.

희정, [베테랑의 몸], 한겨레출판, 2023.
희정, [베테랑의 몸], 한겨레출판, 2023.

이른바 베테랑이라 지목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자신의 업에 따라 불균형하게 맞추어진 균형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작업의 특성과 일의 능률, 그리고 일하기 편한 자세로 불균형하게 ‘균형적’으로 몸이 변했기 때문이다.

30여 년 동안 금속 세공일을 해온 세공사 김세모씨는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다. 오랜 시간을 앉아서 하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작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체 부위는 손가락인데 서너개의 손가락으로 육중한 기계의 힘을 버텨야 하다보니 손가락의 감각은 점점 사라지고 대신 손목이 점점 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깨가 말리고 이 어깨를 받치는 허리에 병이 생겼다. 일하는데 쓰는 건 손가락이지만 허리까지 병이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선배도, 동료도, 후배도 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가진 흔한 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병.

어린 말이 경주마로 설 때까지 돌보고 훈련하는 일을 하는 마필 관리사 성상현씨는 말과 함께 일하는 시간 동안 만큼은 절대적으로 모든 움직임을 말에 맞춘다. 비를 피한답시고 우산을 쓰거나 몸무게를 마음대로 늘리지도 않는다. 말은 큰 덩치만큼이나 힘이 좋기도 하거니와 워낙 예민한 동물이라 생각 없이 하는 작은 행동에도 쉽게 놀라곤 하는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돌발상황은 언제든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말이 사고지 작업 도중 부러지고 찢어져서 응급차에 실려 가는 사고자만 그의 작업장에서 한 해 백 명 이 넘는다고 한다.(1)

몸무게를 늘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 역시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말을 위해서다. 그는 말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관리사는 좋은 관리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유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말과 함께 뛸 때 그는 최대한 말과 수평이 되는 자세를 취한다. 말이 뛰면서 만드는 진동과 충격은 고스란히 그의 허리와 관절에 전해진다. 뛰는 건 말이지만, 골병드는 건 그다.

남편 박명순과 결혼하면서 동시에 어부가 된 염순애씨는 어부라는 업과 어울리지 않게 배멀미도 심하고, 수영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체적 약점은 다섯 명의 자식과 생계 앞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피를 토하면서 멀미를 견뎌냈고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각오로 파도를 버텼다. 땅을 밟은 다음에야 비로소 허리를 펼 수 있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다. 내일 작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쉬엄쉬엄하라는 말, 조심하라는 말은 공허한 위로와 걱정에 불과하다.

이들은 자신이 앓고 있는 직업병에 대해서 마땅히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도 없거니와, 업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고치기도 어려운 병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안타까워하기보다 큰 사고 없이, 부상 없이 자신의 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다행이라 말한다. 이들의 불균형한 몸은 숨과 바꾼 몸인 동시에 감사한 몸인지도 모른다. 일에 맞게 불균형해진 몸 덕분에 다치지 않고 살아남아 자신과 그 가족들이 입고 먹 수 있었고, ‘죽지’ 않고 오래 일한 덕분에 베테랑이라는 찬사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3. 이런 일을 하다 보니, 불균형한 대우

로프공 김영탁씨가 처음 로프를 타고서 한 일은 건물 외벽 청소였다. 하지만 열심히 오래 해도 당최 오르지 않는 노동 단가 때문에 지금은 청소 대신 실리콘 보수로 일을 바꾸었다. 하는 일만 따지면 청소가 훨씬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익숙한 일, 흔한 노동은 쉽게 생각하며 노동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 노동 시장 논리를 이길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몸에 달고 높은 건물에 올라가 일하는 건 똑같지만,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노동의 대가가 달라지고 대우가 달라진다는 게 말이 되나 싶으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조리사로 일하는 하영숙씨 역시 비슷한 경우다. 한 끼 식단을 위해 예산을 짜고, 영양을 고려하며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는 일에는 나름의 기획과 관리가 요구되는 일(2)이지만 ‘밥’ ‘식사’로 불리는 순간 하영숙씨의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나이든 기혼)여성이라면 당연히 잘 하는 일쯤으로 후려쳐진다. 게다가 비정규직, 계약직이 대부분인 조리업계에서 연차가 쌓이고 퇴직금이 쌓인 사람은 퇴사 1순위로 취급된다. 집안일로 치부되는 청소하고 밥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언제든지 값싼 노동자로 바꿀어도 지장이 없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이러한 논리는 살림=비노동, 저숙련 노동이라는 논리를 강화시키곤 한다.

안마사 최금숙씨와 세신사 조윤주씨는 세상이 변하면서 자신이 해온 직업에도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사고로 시각을 잃은 최금숙씨는 자신의 쓸모를 ‘안마’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세상은 그의 쓸모를 값싸게 취급했다. 사실 장애인의 쓸모와 대우는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후려치는 것을 넘어 비인간적일 때도 숱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쓸모를 믿으며 세상으로 나와 지금은 나름 베테랑 소리 듣고 있지만 여전히 두려운 것이 있다면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을 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쪽으로 또 나쁜 쪽으로.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할 음성 기술이 등장한 덕분에 세상으로 한발짝 앞으로 내딛기 위해 뻗은 걸음은 무인 시스템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인 시스템을 갖춘 기계는 오로지 눈과 손으로만 작동되는 탓에 신체 감각을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는 장애인에게는 그저 무용지물일 뿐이고,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 앞에서 타인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은 또 한 번 좌절한다. 모든 게 변해도 자신의 처우만은 도무지 변하지 않는 세상 앞에서.

세신 일은 ‘여자 일치고’ 벌이가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마냥 좋기만 한 일이 어디 있을까. 세신이란 것이 목욕탕이라는 남의 공간에 자릿세를 내고 물과 도구를 빌려 쓰는 일이라 목용탕 주인에게 잘 보여야 하는 건 물론이고 실력 좋고 단골 많은 세신사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눈칫밥을 견뎌야 하는 것도 필수다. 실력이 늘어 내 자리를 갖기 전까지는 나의 벌이는 오로지 잘 나가는 ‘윗’ 세신사와 목욕탕 주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세신일 역시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이 달라지면서 운영 방식도, 체계도 달라졌다. 고정급이 생겼고, 1인 세신 숍이 생기면서 ‘쎄’보이기 위해 빨간 망사 속옷을 입지 않아도 되었다. 나오지 않는 때를 가지고 손님에게 타박받을 일도 사라졌다. 일은 수월해졌고, 그만큼 힘도 덜 들게 되었다. 그러나 세신일 자체가 점점 사라지는 데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중 목욕탕은 물론 유행할 것처럼 보였던 1인 세신 숍의 개수는 해가 지나도 제자리 수준이다. 계속하고 싶어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사라질 직업이다.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변하는 세월 앞에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사라지는 자리와 함께 일에 대한 자부심 역시 시들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4. 베테랑이 등장할 수 없는 시대지만

‘숙련은 반복과 연습, 시도와 정정’(3)으로 완성된다는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시대는 여러모로 베테랑이 등장하기 어려운 시대다. 속도의 시대에 반복과 연습은 속도를 방해하는 빌런이나 마찬가지고, 기계의 시대에 시도와 정정은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골칫거리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약 베테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기계와 속도로만 이루어지는 일이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효율성과 비효율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일러한 사람이 만들어나가는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상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인 일,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는 일을 담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베테랑이란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시대가 변할수록 값진 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1) 희정, <베테랑의 몸>, 한겨레출판, 2023년, 188쪽
(2) 위의 책, 49쪽
(3) 위의 책, 11쪽

 

 

글·장윤미
문화평론가 겸 소설가. 2012년 강원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 당선. 저서로 독서 에세이 <우세한 책들>, 소설 <또 다른 세계로 가는; 플랫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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