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미래’가 아닌 ‘돌아갈 미래’에 대하여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백 투 더 퓨쳐>는 1985년에 개봉(국내에서는 1987년에 개봉)과 동시에 호평을 얻으며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이후 시간여행을 다루는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백 투 더 퓨쳐>의 여러 성공 요인 중에서 필자는 특히 영화의 ‘현재’가 개봉한 당시의 ‘현재’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하는데, 왜냐하면 이를 통해 관객들이 주인공의 시간여행에 따라 효과적으로 시제가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1985년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십 대 소년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폭스 분)가 괴짜 과학자 에메트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 분)와 함께 박사가 발명한 타임머신(‘드로리안’)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실수로 타임머신의 조작 버튼을 건드려 시간여행을 하게 된 마티는 30년 전의 ‘과거’인 1955년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사히 만나도록 도와주게 된다. 일련의 사건들 이후 마티는 미래로 돌아가기 위해, 즉 이전엔 그의 현재였지만(was his present) 지금은 그의 미래인(is his future) 1985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번개를 이용하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박사의 도움으로 미래로 돌아가는 데에 성공한 마티는 1985년으로 돌아와 달라진 현재에 만족해하며 여자 친구와 데이트에 나선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티가 처음으로 이동한 시간대가 그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임에, 즉 1955년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티는 1985년이라는 현재로부터 30년 뒤의 미래인 2015년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30년 전 과거인 1955년으로 이동한다.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미래’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먼저) 이동한 것일까? 그의 이동에 담긴 함의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의 탁월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미래(future)로 ‘간다(go)’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돌아간다(back)’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단어의 선택에는 이미 그 자체로 미래에의 방문이 최초(first)가 아니라 중복(double)임이 암시되어 있다. 즉, ‘미래로 돌아간다(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의 제목은 곧 그것이 회귀(return)이자 반복(repeat)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은 ‘미래’라는 시간대의 근본적인 속성에 반하는 것으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대이자 앞으로 도래할 시간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방문이 이미 반복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영화가 택한 전략은 ‘현재’를 ‘미래’로 만드는 것이다. 즉,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먼저 이동하는 것으로, 이로써 1955년이라는 과거로 이동한 그에게 1985년이라는 ‘최초의 현재’는 더 이상 현재가 아니게 된다─그것은 비로소 ‘돌아갈 미래’가 된다. 마티의 미래에의 방문이 재방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여러 차례 시간여행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돌아갈 미래’가 사실은 그의 ‘최초의 현재’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백 투 더 퓨처>의 탁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마티의 이동을 통해서 관객들이 시제의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영화의 현재와 관객의 현재가 일치한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동하는데, 마티의 이동에 따라 그의 현재는 계속 변화하고 동시에 1985년에 대한 그의(그리고 관객의) 인식 또한 계속 변화하게 된다: 즉, 1985년은 영화가 시작할 즈음에는 현재이다가(is), 마티가 과거로 이동하고 난 뒤에는 현재였던(was) 것이 되고, 이어서 마티가 미래로 돌아오려 시도하는 순간에는 되찾을 현재일(will be) 것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티의 현재이자 관객의 현재인 1985년이라는 시간대는 마티의 이동에 따라 현재시제로 경험되다가 과거시제로 경험되고, 이어서 미래시제로 경험된다.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관객들이 <백 투 더 퓨쳐>를 통해서, 즉 마티의 시간여행을 통해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대를 옮겨가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지점일 것이다. 만약, 마티가 현재에서 곧장 30년 뒤의 미래로 이동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는 ‘돌아갈 미래’를 갖지 못했을 것이고, 그에게는 오직 ‘나아갈 미래’만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마티를 비롯한 관객들은 이처럼 극적인 시제의 전환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앞선 글에서 필자가 언급했듯이, “시간여행을 다루는 영화에서 시간을 거스르는 이동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동을 통해 인물의 현재가 계속해서 변화함에 따라 변화한 현재가 최초의 현재와의 관련 속에서 계속해서 재고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1)
<백 투 더 퓨쳐>에서 마티가 우여곡절 끝에 박사의 도움으로 번개를 이용하여 성공해 낸 1955년에서 1985년으로의 시간여행은 단지 ‘미래로 돌아가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잃어버렸던 ‘현재를 되찾는’ 일이나 다름없다. 즉, 그의 재방문은 (새로운 자리가 아니라) 그가 있었던 원래의 자리를 되찾는 일이며, 그것은 곧 현재(1985년)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1985년으로 돌아온 마티가 그의 자동차와 여자 친구를 반가워하며 새삼스레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장면이 드러내듯 말이다. 그리하여 영화의 제목인 ‘back to the future,’ 즉 ‘미래로 돌아가는’ 일은 일단 ‘현재’를 ‘미래’로 만드는 것을, 다시 말해 과거로 이동하는 과정을 선결 조건으로 요구한다. 1955년에서 1985년으로의 시간여행이 ‘미래로 돌아가는 일’이기 위해서는 그에 앞선 1985년에서 1955년으로의 시간여행이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드러내듯 <백 투 더 퓨쳐>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1985년에서 1955년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1955년에서 1985년으로의 이동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2편과 3편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바,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에서 영화의 주된 문제는 언제나 ‘미래로 돌아가는 일’과 관련되어 벌어지게 된다.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의 반복에 대하여
흥미로운 지점은 2편과 3편에서도 마티가 되찾으려는 현재(또는 돌아가려는 미래)가 2편과 3편이 개봉한 당시의 시간대가 아니라 변함없이 1985년이라는 사실이다.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영화와 관객 모두에게) 최초의 현재인 1985년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 실제로 2편은 1편의 마지막 장면, 즉 마티가 1955년에서 1985년으로 돌아온 순간에서(즉, 1985년에서) 시작되고, 3편은 1편의 가장 중요한 장면, 즉 마티가 1955년에서 1985년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에서(즉, 1955년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2편과 3편을 모두 보고 난 관객은 시리즈 전체에 걸쳐서 하나의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 시리즈에 걸쳐 마티와 관객 모두에게 최초의 현재였던 1985년을 되찾으려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에서 핵심적인 시간여행은 1985년에서 1955년이나 2015년으로의 이동이 아니라(또는 그 역전도 아니라), 오히려 1985년에서 1985년으로의 이동이 된다. 즉, 최초의 현재에서 되찾은 현재로의 이동 말이다.

먼저 2편을 간단히 살펴보자. <백 투 더 퓨처 2>(1989, 국내에서는 1990에 개봉함)은 이제 막 1985년으로 돌아와 현재를 되찾은 마티가 갑자기 재등장한 박사와 함께, 그리고 여자친구 제니퍼와 함께 ‘미래로 돌아가는’(2) 것으로 시작된다. 박사의 손에 이끌려 30년 뒤의 미래인 2015년으로 이동한 마티와 제니퍼는 위기에 빠진 자녀들의 운명을 구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윽고 현재로(즉, 1985년으로) 다시 돌아온 그들은 기존의 1985년이 아니라 완전히 뒤바뀐 1985년을 마주하게 된다. 망가진 현재를 되찾기 위하여 마티와 박사는 다시 과거로, 즉 1955년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마티는 다시금 미래로, 즉 예전엔 현재였고 지금은 미래인 1985년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박사가 탄 ‘드로리안’이 번개를 맞아 사라지면서 미래로 돌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좌절한 마티 앞에 사라진 박사가 (과거에서) 보낸 우편이 도착하고, 그가 (번개를 이용해 자신을 1985년으로 보냈던) 1955년의 박사를 찾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어서 3편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3편 역시 2편과 마찬가지로 1편의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제 막 1955년에서 1985년으로 마티를 보내는 것에 성공한 박사 앞에 (1985년에서 돌아온) 마티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마티는 박사의 도움을 받아 1955년의 현재에서 100년 전 과거인 1885년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박사의 죽음을 막고 무사히 임무를 완수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마티가 ‘미래로 돌아오는’ 일이다. 고장 난 ‘드로리안’이 속력을 낼 수 없게 됨에 따라, 마티와 박사는 증기기관차를 이용하기로 한다. 결국 마티는 미래로(1985년으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하지만, 사랑을 택한 박사는 과거에(1885년에) 남는다. 그리하여 영화는 1985년으로 돌아온 마티가 제니퍼와 함께, 그러나 이전과는 다소 달라진 모습으로 ─그는 더 이상 ‘겁쟁이’라는 말에 도발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로 ‘나아갈’ 것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이처럼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는 마티가 1985년이라는 최초의 현재를 되찾는 이야기를 세 편에 걸쳐서 보여주고 있다. 1985년에서 출발한 마티와 관객이 세 편의 영화를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목적지는 출발한 시간대인 1985년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동은 그야말로 동어반복적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는 이미 오래된,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를 하나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루이스 캐롤(3)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4)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다루어져 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기본 줄거리는 우연히 토끼 굴에 떨어진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도착해서 겪게 되는 기이한 이야기이다. 특기할 지점은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앨리스의 방문이 처음이 아니라 반복된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으로,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은 앨리스를 한눈에 알아볼 뿐 아니라 그녀를 ‘전설의 앨리스’로 부르며 그녀의 방문이 ‘재방문’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정작 앨리스 본인은 자신을 ‘평범한 앨리스’라고 소개하며, 이상한 나라로의 방문이 처음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점에서 앨리스와 마티의 이야기가 공유하는 특성이자 오늘날의 관객 또한 공감할 것이 분명한 지점은 바로 처음과 반복을 구별하지 못하는 감각에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복제 기술로 인하여 원본과 사본의 차이가 사라져 그것들 간의 구별이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한 현실이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들이 서로 ‘다르다’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마티의 ‘돌아갈 미래’나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로의 방문이 처음이 아니라 반복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처럼, 이러한 인식은 언제나 뒤늦게서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1985년에서 출발하여 1985년으로 도착하는 마티의 시간여행이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21세기 들어와 앨리스의 이야기가 문학적인 차원에서 풍부하게 논의되고 있듯이, 마티의 이야기 또한 더욱 다양한 관점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 김윤진, 「[김윤진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속 시간의 활용, 그리고 <듄:파트 2>」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4.03.25.,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571.
(2) 여기서 ‘미래로 돌아가는’ 일은 마티가 아닌 박사의 입장에서의 이동이다. 이미 2015년에 방문했던 박사가 1985년으로 돌아온 뒤, 마티와 제니퍼를 데리고 2015년으로 재방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시간여행은 ‘미래로 돌아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없이 쉽게 이루어진다.
(3) 루이스 캐롤(Lewis Carrol)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의 필명이다.
(4) 미국의 문학 이론가 브라이언 맥헤일(Brian McHale)은 일찍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대중문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한 바 있다. 그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로의 회귀(return)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수많은 반복(repeat)에 담긴 함의를 포스트모더니즘 충동과 연관하여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수많은 버전에서 “내러티브성에 대한 저항”과 “내러티브화를 향한 충동”이 동시에 발견되었으며 이처럼 상충하는 충동의 공존은 그 자체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경향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Brian McHale, ‘"Things then did not delay in turning curious": Some Version of Alice, 1966–2010’ <Project Narrative> https://projectnarrative.osu.edu/about/current-research/lectures-and-presentations/mchale
글‧김윤진
영화평론가/미술비평가.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GRAVITY EFFECT 미술비평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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