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동네 산책하는 기분으로 양재천로를 걷다 보면, 가로수가 즐비하게 펼쳐진 도로변에 꽃과 풀 향기가 그윽하고 통창이 시원한 레스토랑이 눈에 띈다.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 ‘마누테라스’는 그리 넓지 않은데도 사방이 탁 트여 마치 파리 센강변의 테라스 카페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적인 매력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겸비한 이찬오 셰프와의 인터뷰는 양재천의 사계절만큼이나 다채로운 맛이 느껴졌다. 토요일 이른 아침, 테라스에는 발라드풍의 음악이 흘렀고, 양재천변의 산책객들이 요리를 준비하는 흰 옷차림의 셰프와 직원들에게 아침 인사를 가볍게 건넸다.

레스토랑의 이름이 세례명인 ‘마누’를 뜻한다고 알고 있어요. 세례명을 내건 음식점이라니, 왠지 요리엔 진심일 것 같은 애정과 결의가 느껴지네요. ‘마누테라스’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2002년부터 요리를 해오다, 2015년 청담동 건물 4층에 처음 저의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 제 이름을 넣고 싶었습니다. 그때 찬오보다는 부르기 쉬운 마누를 넣은 거죠. 4년 전, 이곳으로 옮겨와 상호를 마누로 하려다가, 마침 1층에 작은 테라스가 있어 그걸 살려 마누테라스라고 네이밍했습니다. 테라스에서 와인 취향의 고객에게 캐주얼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콘셉트를 갖고서 테라스는 와인, 홀은 다이닝으로 구분지어 서비스를 하게 된 거죠.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작명이었습니다.
양재천의 아름다운 산책로 때문인지 이곳에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면 썸도 사랑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군요. 인테리어나 공간 구성에 가장 큰 힘을 쏟은 부분이 있을까요?
양재천로에 사는 까닭에 동네 주민으로서 이곳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재천의 사계절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살리고 싶었습니다. 인위적으로 꾸미기보다는 테라스를 그대로 살리고, 통창을 활짝 열어 자연과 교감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접시 위의 요리는 ‘찰나의 예술’입니다. “회화와 달리 요리는 먹으면 사라져 버리지만 찰나의 감동은 영원히 남는다”고 말씀하신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고객에게 영원히 남는 찰나의 감동을 선사하는 요리는 어떤 요리일까요?
천상의 맛은 없습니다. 다 주관적입니다. 어느 시점에선 그냥 요리일 뿐입니다. 식사 시간의 분위기, 기분이 훨씬 중요한 거 같습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객을 응대하고 최고의 품질과 개성 있는 비주얼의 요리를 제공하면 그 시간의 즐거움이 찰나의 감동으로 남습니다.
호주,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요리를 배우셨다고 들었습니다. 해외에서의 경험이 마누테라스 요리 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아마도 익숙한 맛이 아닌 새로운 맛, 그리고 쾌감을 주는 맛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맛이 있으면서도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주는 음식. 굳이 말씀드리자면, 회화적인 요리를 추구한다고 생각해요. 요리에서 맛과 재료, 신선함 같은 건 물어볼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거예요. 중요한 건 개성인데, 마누테라스의 개성은 ‘회화적인 요리’라는 데 있죠. 색감은 물론 어느 접시와 그릇에 담느냐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게 중요하죠. 회화적으로도 완벽한 것, 이게 요리의 완성이라고 봅니다.
말씀을 나누다 보니 화가와 얘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드네요. 그림 전시회도 몇 차례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섯 차례 정도 했어요. 10여 년 전에는 활발하게 그렸고, 그림도 제법 많이 팔렸어요. 요즘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요리를 그림이라 생각하고 요리의 회화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어요.

레스토랑에 걸린 셰프의 작품들을 보니, 예술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네요. 으레 예술가들이 그렇듯 요리에도 영감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보통 요리의 영감을 어디서 받으시나요?
매일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모든 것이 영감이 됩니다. 반복되는 나날이지만, 하루하루가 예술 활동의 한 부분이고, 저의 요리에 그 영감을 구현하는 거죠.
메뉴판을 보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의 음식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성비’ 있는 캐주얼 레스토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런치 코스: 33,000원/디너: 35,000원~69,000원)
레스토랑은 단골 장사라고 하잖아요. 많은 방문을 끌어내려면 가격의 벽이 낮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가의 파인다이닝도 좋지만, 이렇게 하면 웬만한 고객들은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거예요. 가격 저항을 좀 낮추면서, 고객들이 편하게 좀 더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저희의 모토인 셈이죠. 고가의 음식이 아니라고 해서 맛과 서비스가 덜한 건 절대 아닙니다. 더욱이 제가 사는 동네잖아요.
다시 찾는 고객들이 많은 비결이군요.
단골손님이 많은 편이에요. 고객이랑 유대감 같은 것이 생겨나 서로 안부도 묻고, 특히 꼬마 손님이 쑥쑥 자라는 것도 보고... 꼬마 손님이 오면 디저트를 준비할 때 가급적 아이 취향으로 추천하는데, 맛은 오랜 추억을 간직하나 봐요. 그 맛을 잊지 못해 커서도 찾아오고요. 아이들은 되게 빨리빨리 자라거든요. 여기서 4년 정도 영업하면서 얻은 게 있다면, 끈끈한 단골분들이에요.

'칸티나 트라민, 누스바우어 게뷔르츠트라미너'
과거 요리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셨죠. ‘화이트 와인에 어울리는 요리’ 편에서 요리 대결 중에 와인을 따라 드시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와인을 즐기시는 편인가요?
소싯적엔 하루 1~2병을 마셨죠. 1년으로 치면 500병이 족히 넘었는데 그땐 과하게 마셨던 거 같아요. 뭐든지 과하면 독입니다. 나중에는 좋은 와인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마시는 상태가 되더군요. 지금은 좋은 와인으로 하루 한 잔이나 이틀에 한 잔 정도 가족과 함께 마십니다. 한 병 따면, 진공 보관하여 2~3일 마십니다.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각자 바삐 움직이는 게 눈에 띕니다. 모두 건장한 남자들인 것도 인상적이고요. 셰프가 아닌, 리더로서의 이찬오가 궁금해집니다.
조금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직원 6명이 모두 남자입니다. 아무래도 여성은 주방에서 막 혼내고 가르치기에 조심스럽기도 하고, 업무의 강도가 세다 보니 체력적인 부분이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정확하게 ‘이런 리더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솔선수범해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직원들도 으쌰으쌰 하며 함께 일하고, 빨리 자기만의 노하우를 만들어서 저를 좀 뛰어넘길 바라는 거죠.
다양한 라인업의 와인이 인상적입니다. 와인을 고르시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많지는 않고 대략 60여 종 있습니다. 첫째로 맛있어야 하고, 대형마트에 없는 와인, 포도 품종이나 동네의 특성이 정확히 나타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마실 수 있는 와인이 저의 선택 기준입니다.

이찬오 셰프의 그림이 놓여있다.
와인은 아직 특별한 날에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마누테라스’는 그런 인식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보이는데, 혹시 이곳만의 와인 트랜드가 있을까요?
와인도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식에 김치를 대부분 드시지만 안 드시는 분도 있듯이 자기 취향이죠. 트랜드는 항상 바뀌니까 굳이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안 따라가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죠. 저는 와인이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반주 문화에서 고를 수 있는 흔한 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많은 와인을 접해보셨을 것 같은데 통틀어 인생 와인 혹은 평생 잊지 못할 와인은 무엇인가요?
매번 느끼는 건데 어느 정도 검증된 와인은 항상 저 같은 요리사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어울리는 요리는 뭘까 하는... 지금 저희가 마시는 ‘칸티나 트라민 누스바우머 게뷔르츠트라미너(Cantina Tramin NUSSBAUMER Gewurztraminer)’에는 갑오징어 같은 해산물이 페어링 음식으로 떠오르네요.
이 와인은 당도도 어느 정도 있지만, 산도가 되게 좋아서 달다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저희 런치 메뉴 중에서도 갑오징어나 연어 요리에 많이 들어가는 오일류를 어느 정도 씻어줄 수 있는 와인 같습니다. 또 마누테라스가 디너에는 해산물 중 날 것도 같이 내놓거든요. 타르타르에도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약간 비릿한 맛을 가진 음식에는 약간의 당도가 있는 와인이 적합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렇다고 또 당도가 과하면 음식 맛이 살아남지 않은데, 이 와인은 적당한 것 같네요.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부지런한 예약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왔고, 막내일 듯싶은 훤칠한 키의 직원은 손으로 적는 대기 리스트를 밖에 준비하면서 마누테라스의 하루가 시작됨을 알렸다.
글·이하늘
사진·이생
글·장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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