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계층을 파고든 트럼프
-혼돈의 시대에 노동의 가치를 다시 묻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

‘트럼프 포비아’가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는 가운데,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유럽은 미국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트럼프는 유럽연합(EU)을 향해 “미국산 석유와 가스를 대규모로 수입하라”고 압박을 하고, 폰 데어 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미국산 에너지 구매증가를 제안하고,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현재 참여중인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다. 어떻게 해야 트럼프를 기쁘게 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을 지낸 세르주 알리미 편집고문은 “민주당 출신의 오바마가 한때 유럽 사민민주주의에 환상을 심어주었으나, 민주당은 엘리트주의적이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며, “반면에 트럼프는 저항과 변화의 투사로 변신해 이민자와 난민의 유입에 따른 일자리 불안, 진보 엘리트층의 탈(脫) 대중적 위선 등에 불만을 가진 서민층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다”고 진단한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보언론의 과잉분노가 트럼프 현상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자들은 직업의 상시적인 불안정성과 해고의 위험성에 처해있으나 ‘뜬구름 잡는 정책’을 내놓는 기존의 진보정당에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는 좌파정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에서는 노동의 본질과 의미를 되새기는 기사들을 특집으로 내놓았다. 좋은 일자리는 상류층이 독차지하고, 항상 위태로운 비정규직 일자리는 약자들의 몫이다. 기업과 국가는 적자를 메우려고 법정 휴가를 줄이고, 무급 노동을 늘리며 비정규직과 계약직 일자리를 양산한다. 경제학자 그레고리 르젭스키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진단하며, 좌파정당들이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사회학자 다니엘 리나르는 기술발전과 노동 환경의 변화속에서 노동의 본질과 가치를 따져 묻는다. 노동의 전문화와 분업화가 가속화하면서 한쪽에서는 불안정 노동을 매매하는 파견업체들이 있는가 하면(알렉시 모로), 노동자들의 지치고 지루한 직장생활을 돕는 직업 전환코칭이 성업 중이다(안 주르댕은). ‘수익이 나는 곳으로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본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토리노 자동차공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하루 5천대를 생산했던 생산 공장은 이제 텅빈 침묵의 공간으로 변해, 노동자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강팍한 삶과는 달리, 기업주들의 범죄는 대개 묵인된다. 노동자들이 산재 사고로 희생을 당해도, 기업주들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노동형법이 사용자 보호법으로 변질된 까닭이다.
목동들이 고산지대에서 계급투쟁을 하는 이유
양치기를 낭만적으로 여기는 분들에게 1월호의 ‘목동’ 르포르타주 기사는 다소 충격적일 듯하다. 고산지대에서 휴가나 주말도 없이 고독 속에 일하는 목동들은 곰과 늑대의 위협과 싸우며, 생필품의 부재에 시달린다. 우리가 즐기는 치즈 케익에 목동들의 땀과 고통이 녹아있는 셈이다.
베트남, 멕시코, 서아프리카, 레바논, 팔레스타인, 조지아, 몰도바…
베트남에서 메콩강이 남중국해로 흘러드는 지역, 이른바 ‘아홉 마리 용의 삼각주’는 2100년 이전에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염분 침투, 해수면 상승, 오염 탓이다. 마일리스 키데르 특파원이 베트남 쌀을 위협하고,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기후 위기의 현실을 고발한다. 멕시코에서는 지난해 9월30일 대통령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에서 같은 당 출신의 클라우디아 쉰바움으로 바뀌었지만, 전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오브라도르는 빈곤퇴치와 경제개혁의 주도자로 각광을 받는 반면에, 미국의 이민정책과 국경장벽 건설에 동의했고, 군사화한 치안정책의 수립자로 비판받는다. 그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여성 대통령 쉰바움은 과연 좌파의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멕시코 전문가 엘렌 콩브가 쉰바움의 미덕과 한계를 말한다.
서아프리카에 범아프리카주의가 부활할까? 레미 카라욜은 “과거 구분되는 범아프리카주의 2.0이 필요하다”며, “청년들이 더 이상 부패한 ‘프랑사프리크’를 원치 않는다”고 지적한다. 하마스와 전쟁을 2년째 이어가는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인프라를 파괴한다는 핑계 아래 레바논 전체에 폭격을 가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수렁을 만들고 있다고 에마뉘엘 아다드 특파원은 전한다. 이스라엘 총리는 레바논인들에게 “헤즈볼라를 제거하지 않으면 가자에서처럼 더 길고, 더 파괴적인 이스라엘과의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자국 이기주의에 빠진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의 야만 행위에 눈을 감고 있다. 이스라엘의 도를 넘는 폭력은 온라인 SNS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페북과 인스타그램에선 친이스라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고, 반이스라엘 콘텐츠에 대해선 검열이 이뤄지고 있으며, 심지어 문학작품까지 표적이 되고 있다고 샘 비틀은 지적한다. 구소련 공화국의 일원이었던 조지아와 몰도바는 이웃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10월말 긴장감 속에서 선거를 치렀지만 선거 결과가 묘하게 나왔다. EU가입 후보국 지위를 얻은 후 처음으로 전국 선거를 치른 두 나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친유럽 세력이 압도적 지지를 얻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선거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다비드 퇴르트리는 지정학과 현실주의 사이에서 동유럽 국가들이 겪는 딜레마를 집중 분석한다.
탄핵시위는 경쾌한 ‘뮤직앤댄스’처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의 성일권 발행인은 “권력자의 위세당당한 ‘처단’발언에 시위현장이 도리어 축제의 큰 마당이 되었다”며,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이슈를 담은 무정형적 시위문화의 파급성과 확장성을 평가한다. 20~22대 서울시 교육감을 지낸 조희연 전교수는 “12.3 쿠데타의 무산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며, “이제 정파가 아닌, 국민 참여적 개혁운동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87체제’가 탈권위주의적인 열망을 담았다면, 이제는 대중참여적이고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를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세대로 탄핵시위에 참여한 권윤지 작가는 “우리의 시위는 하나의 멋진 퍼포먼스였다‘며, ”두려움을 떨친 여러 사람의 집단적인 행동이 예술로 승화되었다“고 말한다. 안치용 인문학자는 한국 민주주의 과제로 협치 가능한 분권형 체제를 담은 제7공화국의 도래를 희망한다고 밝힌다. 목수정 작가는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정치의 과제로 팬덤정치의 극복을 지적하며, “권력자 아래 무릎꿇고 엎드리는 자가 우리 사회의 적”이라고 비판한다.
현대성, 탈경계, 존재성…
1월호의 문화면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존재의 의미를 묻는 글들이 주로 게재된다. 현대인의 고독을 주로 화폭에 담은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멜랑콜리(이츠하크 골드버그), 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인간존엄성 탐색(엘라드 라피도트), 유럽의 환상문학 기원(뤼카드 게이터)이 소개된다. 김경 평론가는 영화 <페드로 파라모>(2024)에서 페드로의 죽음은 유령을 부르는 악랄한 권력자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마치 “한국의 12월과 닮아있다”고 지적하고, 평론가 김소영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해체하는 테크네의 귀환으로, 탈경계 속에서 해체와 조립의 변증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소 난해한 글이지만, 행간을 읽다 보면 지적 희열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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