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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6888 중앙 우편 대대 The Six Triple Eight (타일러 페리, 2024)> ‘항명’으로 성취한 민주주의 역사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6888 중앙 우편 대대 The Six Triple Eight (타일러 페리, 2024)> ‘항명’으로 성취한 민주주의 역사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5.01.20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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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으로 이룬 쾌거

1943년, 2차 대전 중 흑인 여성, 채리티 애덤스 소령(케리 워싱턴)이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인 홀트 장군(딘 노리스)에게 ‘항명’하며 성취해 낸 민주주의 역사를 2024년에 소환한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흑인 여성으로 대표되는 소외된 계층이 불평등한 민주주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포스터
포스터

고압적인 홀트 장군은 전형적인 인종 차별자이고 성차별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미지를 겹치게 연출한 홀트 장군 캐릭터는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보인다.

육군 여군단 소속에 대한 자긍심과 또렷한 정체성을 가진 채리티 소령은 이미 군대 조직 내의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맞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음에도 지성과 품격,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다.  홀트 장군은 흑인 여군단이 복잡한 우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폄훼하며 불가능한 기간과 업무량을 부여해 부당한 트집을 잡으며 업무 진척을 막는다.

마침내, 갈등이 극에 달하자, 홀트 장군이 그녀를 보직해임 하고 흑인 여군단의 임무를 중단시키겠다고 하다.

 

홀트 장군에게 항명하는 채리티 중령
홀트 장군에게 '항명'하는 채리티 중령

그 부당한 처사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애덤스 소령은 “죽어도 안 된다(”Over my dead body, Sir.”)며 목숨 건 ‘항명’을 한다. 이 항명을 통해 그녀는 부대를 지켜냈고 1,700만 통에 이르는 우편물을 90일 안에 분류하고 배송하는 임무를 완수한다. 부당한 홀트 장군의 처사에 감히 목숨을 걸고 항명한 체리티 중령에게 전 대대원이 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지금의 한국 정치 상황, 계엄군 지도부와 대조되어 인상적이다. 전시 상황의 항명이라 사안이 심각했지만, 병사들이 편지를 받고 환호하는 모습에 치졸한 인종주의자 홀트 장군도 조용히 물러선다. 그녀와 6888부대원에게 백인 병사와 장교들 모두 경례와 경의를 보낸다. 흑인 여성 영웅이 탄생했던 역사적 순간이다.
 

편지에 담긴 민심

여성과 흑인이라는 이중의 편견을 극복하고 달성한 민주주의가 소소해 보일 수 있는 편지 배달 임무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 또한 의미심장하다. 편지에 담긴 민심을 읽지 못한 지도자와 그 민심을 읽고 해결하는 지도자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역사를 쓰기 때문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군사우편이 전달되지 않아 병사들 사기가 바닥이라고 통찰하고, 고향에서 온 편지가 군대 사기 진작에 중요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홀트 장군은 보급품 등으로 인해 여력이 없으며, 이 상황에서 편지는 부차적이며, 군대가 승리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루스벨트를 도와 6888부대를 창설하여 채리티 애덤스에게 임무를 맡기도록 조언한 실존 인물, 메리 매클라우드 배순(당시 전국 흑인 여성 협회 회장 )은 오프라 윈프리가 연기한다.

 

실제 채리티 중령과 6888부대원

영화 말미에 실제 뉴스 영상을 통해 실존 인물들을 보여주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 부인인 미셸 오바마의 연설을 통해 흑인 여군단의 위업과 역사를 정리해 주는 편집은 의미 있는 마무리다.

이런 거대 담론과 함께 수많은 편지에 담긴 민심의 개인 서사도 미시적으로 들여다본다.

산피에트로. 1943년 12월. 치열한 전투 중 전투기 한대가 추락한다.  죽은 조종사의 품에는 피에 젖은 편지가 있다. 회색톤의 치열한 전투 장면에서 붉은 피에 젖은 편지만 강조되는 미장센은 <쉰들러 리스트>의 붉은 원피스 소녀와 흡사하다. 각지에서 모인 구겨지고 젖은 편지들은 미처 손을 쓰지 못한 채, 거대한 격납고에 보관된다. 편지들 화면 위로 사랑과 그리움, 편지를 못 받는 애달픈 마음이 담긴 사연들이 보이스 오버된다.

 그중 죽은 조종사의 피에 젖은 편지 사연으로 플래시백 된다. 에이브럼 데이비드(그레그 설킨)와 리나 데리콧(에보니 옵시디언)은 인종의 벽을 넘는 연인이었다. 전장에서 돌아와 결혼하겠다던 에이브럼은 꿈에도 그리던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지만 전사하고 만다. 리나는 사랑하는 에이브럼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흑인 여군단에 입대한다. 리나는 6888부대원이 되어 유럽에서 편지 분류와 배달의 임무를 완수하게 되고 기다리던 에이브럼의 편지, 전사하면서 남긴 피에 젖은 편지를 받게 된다. 풀뿌리 민심의 예에 담긴 풋풋한 로맨스는  채리티 애덤스 중령이 맞닥뜨리는 거대 담론을 구체적이고 살갑게 채운다.

채리티 아담스 중령이 신병들과의 첫 만남에서 “여성 흑인 병사들이 백인 병사들만큼만 적당히 잘하는 건 사치다.”라며 완벽한 군 생활을 제시하고 자신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리나는 실수 연발이다. 그녀는 어리고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캐릭터가 대조적인 이 두 여성은 소외계층이 억압과 차별을 극복하며 살아내는 다채로운 방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흑인만의 목소리가 아니라 소외된 계층에 대한 보편적 공감을 끌어낸다.

 

흑인 역사에 대한 탐구

이 영화를 연출한 타일러 페리는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영화 제작자로 그 자신이 가난한 집안 출신의 흑인이다. 흑인 출신인 오프라 윈프리, 흑인 혼혈로 전 대통령을 지냈던 버락 오바마를 존경한다고 한 타일러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오프라 윈프리를 연기자로 캐스팅하고, 미셸 오바마를 통해 영화에 묵직한 역사의식을 남긴다. 스파이크 리 감독보다 평가절하되긴 하지만 꾸준히 흑인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의 작가적 저력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흑인 커뮤니티를 위한 상업영화를 만들고 있는 타일러 감독은 흑인 문화에 대한 탐구를 통해 ‘검은색은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 ’를 입증해 가고 있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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