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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떼창과 선행학습
K-떼창과 선행학습
  • 김정희 | 문화평론가
  • 승인 2025.01.31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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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의 <아파트>와 떼창의 민족
주령구(酒令具) ⓒ국립민속박물관

로제의 <아파트(APT.)>는 2024년 10월 18일 발매된 이후 두 달 만에 유튜브 누적 조회수 6억 뷰, 전 세계 뮤직비디오 인기 1위를 했고, 지금도 다양한 기록을 경신하면서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로제가 각종 매체에서 밝히고 있듯이,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여럿이 술 마실 때 즐겨 하는 술 게임에서 착안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파트’ 게임이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술 게임의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있다. 바로 주령구이다. 주령구는 경주에서 출토된 14면체의 주사위인데 술을 마실 때 주령구를 굴려서 나오는 면에 쓰여있는 벌칙을 수행하는 것이다.

벌칙은 소리 없이 춤추기 (금성작무 禁聲作舞), 술을 다 마시고 웃기 (음진대소 飮盡大笑), 한 번에 술 석 잔 마시기(삼잔일거 三盞一去),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자창자음 自唱自飮) 등 14가지가 있는데, 지금과 견주어 게임의 재미나 창의성이 결코 떨어진다고 하기 어렵다.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주령구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겼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로 각종 역사책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해마다 음력 5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제사를 지냈는데 낮이나 밤이나 술자리를 베풀고, 떼 지어 노래 부르며, 춤춘다. 춤을 출 때는 수십 명이 서로 줄을 서서 땅을 밟으며 장단을 맞추었다. 그들의 풍속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고, 비파 듣기를 좋아한다.” (『후한서』)

“해마다 씨뿌리기를 마치고 제사를 지낸다. 떼 지어 노래를 부르며, 춤추고 밤낮을 쉬지 않고 술을 마셨다. 그 춤을 수십 명이 일어서서 뒤를 따르는데 땅을 밟으며 허리를 굽혔다 치켜들면서 손과 발이 상응하며, 가락과 율동은 탁무(鐸舞)와 흡사하다.” (『삼국지』)

 

고대 국가의 제천행사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것이 유독 우리 조상 고유의 행동은 아니었을 텐데, 이토록 다양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우리 조상이 정말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부여의 영고라는 제천행사에서는 “밤낮없이 길에 사람이 다니며, 노래하기를 좋아하여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후한서』)

“길에 다닐 때는 낮이나 밤이나,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노랫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삼국지』)

고구려는 “그 풍속이 음(淫)(‘음하다’는 것은 호방하고 기운이 넘친다는 뜻)하고, 모두 깨끗한 것을 좋아하며, 밤에는 남녀가 곧잘 떼 지어 노래 부른다.” (『후한서』)

“그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며, 나라 안의 촌락마다 밤이 되면 떼 지어 모여 서로 노래하며, 놀이를 즐긴다.” (『삼국지』)

 

로제의 <아파트> 중에 “I’m talking drink, dance, smoke, freak, party all night 건배 건배”(내 말은 마시고, 춤추고, 피우고, 발칙해지고, 밤새도록 놀아보자는 거야), “Sleep tomorrow but tonight go crazy”(잠은 내일 자고, 하지만 오늘 밤은 미쳐버리자)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어쩌면 역사책에 기록된 우리 선조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여 신기하다.

『떼창의 심리학:한국인의 한, 흥, 정 그리고 끼』에서 김재은 교수는 이렇게 떼 지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군취가무(群聚歌舞)라 하고 이것이 바로 떼창이라고 말한다.

 

“Craziest Audience In the World” 

역사책에 기록된 떼창 말고 우리가 기억하는 떼창은 아마도 국민의례시 “애국가제창이 있겠습니다” 였을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떼창이라고 하면 외국 가수들의 내한 공연에서 외국어로 된 노래를 우리 관객들이 따라 부르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 콘서트 내내 모든 가사를 완벽하게 화음까지 넣어서 부르는 관객들을 보며 콘서트의 주인공은 놀라며, 감동하고, 나중에는 무대 위에 눕기까지 한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콘서트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다 함께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다.

떼창 관련 알고리즘은 같은 가수의 콘서트에서 일본 관객과 우리나라 관객들의 태도를 비교하는 영상으로 인도한다. 이 영상들은 콘서트에 와서 조용히 가수의 노래를 듣는 일본 관객들과 너무도 다른 우리나라 관객들의 열광적인 태도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떼창을 하며 콘서트장을 거대한 노래방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나라 관객들은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단지 그 공간에서 영원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관객들을 향해 2017년 내한 공연 당시 콜드플레이는 “Craziest Audience In the World”라고 말했는데 특별히 과장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팝의 역사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현재 케이팝의 위상은 우리들의 떼창을 다른 나라에 되돌려 줄 단계에 이르렀다. 2022년과 2023년 블랙핑크의 프랑스 공연 당시 프랑스 관객들의 한국어 가사 떼창은 더 이상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 이름 틀린다면 뚜두뚜두 맞음... Black 했다 Pink 했다 내 맘대로 바꿈...또 이 어려운 걸 해내지... 웃어주지만 마냥 약하진 않아... 비바람이 불수록 더 높이 날아” 
- <Pretty Savage>, 블랙핑크

 

떼창을 위하여 - 공연을 위한 선행학습

콘서트에서 떼창은 이미 알고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만, 좋아하는 가수라 하더라도 외국 가수의 경우는 대부분 외국어로 된 가사들을 미리 외워야 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콘서트의 예상 공연 목록을 만들고, 가사를 암기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우연히, 종이에 가사를 인쇄하여 줄치고 외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기말고사 공부하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 가수의 공연이라 해서 준비가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말 가사라서 외우기 쉬운 대신, 애국가 제창같이 하는 떼창이 아니라 각각의 노래마다 호응하고 응원하는 방식이 다양해서 미리 공부해야 하는 양이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선행학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룹사운드 잔나비가 팬들을 위해 준비한 <떼창 특강>을 보면 떼창의 선행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떼창 특강>은 실제 학원에서 수능 학원 강사들이 강의하는 형식을 패러디하고 있는데, 밴드 리더인 최정훈이 일타강사가 되어 떼창의 기초 과정과 심화 & 1등급 과정으로 나누어 떼창에 대해 강의하는 영상이다.

“2024 페스티벌 완전 대비 떼창 특강”이라는 강의 제목과 강사 홍보용 문구 “떼창 영역대표 강사 떼창의 신 최정훈”에 이어 토시를 끼고, 칠판을 등에 진 채, 단소를 들고 예제를 설명하는 밴드 리더의 모습은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암기 유형 출제 확률 100%, 후회 없는 외우기”, “다음 두 소절의 차이를 서술하시오”, “Q. 위의 세 예문은 홀린 듯이 다 함께 박수를 쳐야 하는 구간이다. 세 곡의 제목을 박수가 빠른 순서대로 적으시오” 등, 입시학원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떼창 특강>은 팬들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 가상하여 감탄이 절로 난다.

이에 호응하는, “너무 어려워서 그냥 다음 학기에 수강할게요”라는 댓글마저 재미있다. 그런데 입시학원에 대해 전이해가 없다면, 어째서 콘서트에서 부를 노래가 예상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출제 유형별로 1등급과 심화 과정이 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학원은 이미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원이 일상이 된 아이들

학원이 일상이 된 이유는 초·중·고를 다니는 동안 한 번도 학원에 가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원을 가는 이유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수능을 잘 보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 버린 우리 사회에서 경쟁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시험 잘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다.

출발선에 대한 기준이 없는 한,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빨리 배우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게 학원은 선행학습을 하는 곳이 되었다.

2014년 9월 12일부터 ‘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학생들의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목하에 당시 학년말에 당해연도 교과서 진도가 끝난 이후, 방학 중, 또는 방과 후 학교 교육과정에서 실시되고 있던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이 법은 학교에만 적용되었다. 현실적으로 학교 교육의 목표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입시와 수능시험에 대한 반성과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시행된 선행학습 금지법은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학원과 과외에 더 의존하게 했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또 다른 학원이 생겨났고, 초등 의대반에서 나아가 유치 의대반까지 등장했다.

학교는 어떤 곳인가?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 영화 <Where to Invade Next>(2015)에서 핀란드의 교사는 학교는 행복을 찾는 곳이라고 말한다. 과제도, 표준화된 시험도 없다는 핀란드 학교에서 나무타기를 하며 노는 핀란드 어린이들과 우리나라에서 의대에 가기 위해 유치원부터 학원에 가는 어린이부터 번역된 핀란드 수학교과서를 수학 문제집으로 풀고 있는 어린이가 겹치자 슬픈 마음이 든다. 남한의 면적은 약 100,210㎢, 인구는 5,171만 명인데 핀란드는 면적 338,462㎢, 인구는 고작 558.4만 명(2023)이다.

우리는 열심히 살지 않으면 살기가 어렵다. 그래도 학교에 다니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2학년에서 배우기 시작하는 구구단을 외우는 시기는 아이마다 다르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되고, 할 수 있는 것들로 아이들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악도, 좋아하는 노래도 그렇게까지 열심히 외워서 떼창을 할 필요가 없이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눈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 <다시 만난 세계>, 소녀시대

 

 

글·김정희
문화평론가. 종로 여행(女行)길 크리에이터. 전 한양대, 부천대 교직과 강사. 공저로 『문화, 공동체를 상상하다』, 『우리는 왜 피로한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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