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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돌아오면
그가 다시 돌아오면
  • 박노해 | 시인
  • 승인 2025.01.31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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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돌아오면
계엄의 밤이 도래하겠지
번득이는 총구가 우리를 겨누고
의인들과 시위대가‘수거’되겠지
광장과 거리엔 피의 강이 흐르고
사라진 가족과 친구를 찾는
언 비명이 하늘을 뒤덮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살림은 얼어붙고 경제는 파탄나겠지
우린 갈수록 후진국으로 추락하겠지
오가는 사람도 드문 스산한 밤거리엔
총소리 군홧발 소리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계엄군이 내 가방을 뒤지고 신상을 털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남북이 충돌하고 전쟁이 돌아오겠지
자위대가 상륙하고 미군이 연합하고
긴 내전과 숙청의 날들이 이어지겠지
숨어있던 친일파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광복80년 만에 이 땅은 다시 빛을 잃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모든 방송과 언론과 유튜브에선
검열된 이슈와 재미와 조작으로
눈과 귀를 가리며 관심을 돌리겠지
김건희의 국빈 행사와 일상을 띄워대며
패션과 미담의 화제거리로 도배되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자유도 민주도 선거도 의회도 삭제되겠지
빛을 들고 나선 이들이 샅샅이 색출되고
단 몇 줄 올린 글로 검은 제복이 찾아오겠지
너 좌빨이지, 불순분자지, 완장을 찬 극우대의
광기 어린 폭력에 숨도 못 쉬겠지

아아 그가 다시 돌아오면,
저들이 살아서 돌아오면,

버젓이 권좌에 도사린 채
내란을 지속하고 내전을 불지르는 자들

지금, 빛으로 끌어내 처단하지 않는다면
지금, 뿌리째 뽑아내 청산하지 않는다면

 

 

글·박노해
시인, 노동운동가, 사진작가.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으며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1991년 사형을 구형받고, 감옥 독방에 갇혀서도 독서와 집필을 이어갔다.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에는 20여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왔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12년 만인 2022년 5월 신작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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