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서포터즈 칼럼] 영화 <3학년 2학기>를 통해 보는 또 다른 노동자, 현장 실습생
[서포터즈 칼럼] 영화 <3학년 2학기>를 통해 보는 또 다른 노동자, 현장 실습생
  • 조예은(르디플러)
  • 승인 2025.02.07 1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취업후진학 제도 등과 같은 적극적인 정부의 행정 및 재정적 지원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현장 실습생을 배출해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대학을 졸업한 이들도 가기 힘든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합격 등 유의미한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반면 현장에서는 노동자 착취, 저임금 노동은 물론 산업재해 소식도 끊이질 않는다. 

노동자와 학생 신분을 동시에 지닌 채, 추가 노동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전공 관련 실무 경험이 아닌 값싼 노동력 취급을 받게 되는 현장 실습생을 영화 <3학년 2학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3학년 2학기' 포토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3학년 2학기' 포토

 

사회로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에 걸맞은 실무 경험을 하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딘다.

열아홉의 끝자락, 원하는 목표에 닿기 위해 치열히 공부에 매진하거나 이미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목표로 뜨겁게 달리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창우의 온도는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꿈이자 목표가 딱히 없지만, 특성화고를 다니고 있기에 그저 다들 쓰는 현장실습 지원서를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적어 내려갈 뿐이다.

그렇게 다니게 된 중소기업의 회사는 창우에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아직 서툰 아이들을 나무라는 사수와 그런 사수를 말리며 챙겨주는 또 다른 상사, 누구보다 아이들을 위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실적이 중요한 인사부 팀장, 일이 서투른 아이들과 달리 이미 적응하여 자신의 몫을 해내는 또 다른 현장 실습생.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학생이었던 창우는 노동자로 실전에 투입된다.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3학년 2학기' 포토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3학년 2학기' 포토

 

현장 실습생: 추가 노동과 위험

‘전공과 관련한 실무 경험’이라는 명목 아래 현장실습이 이루어지지만, 기업이윤을 위해 늦은 저녁까지 물량을 맞추기 위한 잔업을 이어가며 안전장치조차 설치되지 않아 몸 사려야 하는 현장에 놓인다. 안전 장비마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지만, 현장 실습생인 창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서툴러서 실수하기 일쑤이기에 그저 눈치를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어지는 추가 노동으로 인해 흐려진 집중력으로 실수를 하게 되었고, 회사에서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춰주지 않은 탓에 한순간에 손을 다치며 며칠간 일을 쉬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3학년 2학기' 포토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3학년 2학기' 포토

 

현실 속 현장 실습생

밴드로 상처를 덕지덕지 붙인 채 일을 이어가는 창우의 앳된 얼굴은 우리를 분노케 했던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대 재해로 인해 생명과 건강을 잃는 현장 실습생의 소식을 상기시킨다. 학생이 기업에 채용되어 전공과 관련한 실무를 경험하며, 진로의 길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달리 현장 실습생은 단순히 부담 없이 교체하기 쉬운 ‘소모품’으로 여겨지며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공통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한 교육 목적이 아닌 즉각적인 노동 시장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직업 교육을 바탕으로 하는 특성화고등학교는 직업주의에 치중되어 있고, 실적과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체가 현장 실습생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하지 못하면서 현장실습의 질이 떨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 실습생에게로 돌아간다. 현장 실습생이 그저 ‘실습’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간곡해지는 이유다.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3학년 2학기' 포토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3학년 2학기' 포토

 

반복되는 3학년 2학기

말마따나 ‘느리고 산만한 아이’인 창우가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일한 만큼 제 몫의 가치를 인정받길 바라게 되는 건 왜였을까.

그 본질적인 질문의 답은 모두가 거치는 첫 사회 경험의 모습과 창우가 닮아있고 그를 둘러싼 환경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노동자로서 세상을 마주하는 시기는 달라도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창우와 같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신의 옛 모습을, 혹은 지금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 든다. 그런 창우의 속마음은 영화 내내 그려지지 않지만, 그를 지켜보는 시선에서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는 그에 그치지 않고 일하며 겪게 되는 부조리와 그에 따른 수동적인 노동자의 탄생을 그려내며 또 다른 공감과 이야기를 건넨다. 찰리 채플린이 영화 <모던타임즈>를 통해 보여준 톱니바퀴 속 인간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노동자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창우와 함께 일하다가 아버지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우재와 배달 라이더로서 일자리를 찾은 성민의 빈자리가 금방 다른 현장 실습생으로 대체되며, 또 다른 창우가 탄생하듯 말이다. 그렇게 3학년 2학기는 되풀이되고 있다.
 

참고: 김윤숙. "특성화고등학교 파견형 현장실습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광주교육대학교, 2017. 광주
교육부 인재정책실 평생직업교육정책관 중등직업교육정책과, “2024년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 통계 조사 결과 발표”
국가인권위원회,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마련 실태조사”

 

글·조예은
언제나 일상이 평범할 수 있는 평온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대학생, 
영화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고찰하는 글을 찬찬히 쓰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