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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가 깃든 토스카나 와인 산지, 키안티 클라시코
역사와 문화가 깃든 토스카나 와인 산지, 키안티 클라시코
  • 안미영
  • 승인 2025.02.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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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토스카나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와인 여행지다.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 등 고품질 와인들이 생산되는 지역들은 토스카나에서도 각기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중요한 변화의 흐름을 겪으며 의미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키안티 클라시코를 향해 떠났다. 

 

구릉지대에 포도밭이 조성된 키안티 클라시코 풍경
구릉지대에 포도밭이 조성된 키안티 클라시코 풍경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달리며 창밖으로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선 풍경이 펼쳐지면 토스카나에 도착한 것을 실감하게 된다. 북쪽으로는 피렌체, 남쪽으로는 시에나, 그 사이에 위치한 키안티 클라시코는 7만1,800헥타르에 달하는 구역이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이들조차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를 구분하지 않고 지칭하는 것이 흔하지만, 사실 두 지역은 완전히 다르고 이탈리아 와인 원산지 통제 명칭도 명확히 구분된다. 

현지에 도착해 만난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의 조반니 마네티(Giovanni Manetti) 회장은 키안티 클라시코를 명확히 구분하게 된 계기를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다며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지역이 처음으로 구분된 건 1716년 토스카나 대공국의 군주 코시모 3세가 키안티 클라시코의 생산 지역을 규정하면서부터였다. 그런데 ‘키안티 클라시코’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이후다. “이곳의 와인 품질이 훌륭해서 많은 인기를 누리자 주변의 외곽 지역에서도 유사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점차 지역의 정체성이 흐려졌습니다. 품질 관리를 통해 오리지널을 지키는 게 중요해졌죠. 그래서 1924년 본래 규정된 지역의 33개 와이너리들이 모여 우리 지역의 고유성을 지키고 홍보하며 테루아를 반영한 와인을 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키안티 클라시코 협회를 설립했습니다.” 

 

키안티 클라시코를 상징하는 검은 수탉
키안티 클라시코를 상징하는 검은 수탉

검은 수탉, 즉 ‘갈로 네로(Gallo Nero)’를 키안티 클라시코의 공식적인 로고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검은 수탉 조각상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에게 너무도 유명해진 검은 수탉 로고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품질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상징물이다.

1924년 협회를 만든 생산자들이 명확하게 구분하고자 한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은 키안티 지역과 완전히 차별화한 생산 규정이 있다.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 내에서 재배한 포도로만 와인을 생산해야 하고 산지오베제 품종을 80% 이상 사용해야 하며 나머지는 규정으로 허용된 레드 품종을 20%까지 사용할 수 있다. 키안티 지역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다. 재배 면적당 포도 수확량 또한 까다롭게 제한하고 있는데, 모두 지역 테루아의 특징을 온전히 표현하는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규정이다.

이제 협회가 설립된 지도 10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협회 소속 와이너리는 500여 개로 늘어났다. 2024년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가 설립 100주년을 맞는 해. 조반니 마네티 회장은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설립된 와인 협회인 만큼 의미 있는 100주년을 기념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는 지속 가능성 선언문을 발표하며 지역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렸다. 그것은 미래를 내다보고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의 땅과 이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을 보호한다는 내용이었다. 

 

숲과 포도밭이 공존하는 그레베 지역의 풍경
숲과 포도밭이 공존하는 그레베 지역의 풍경

고지대에 올라 내려다본 키안티 클라시코의 풍경은 끝없이 포도밭이 펼쳐진 장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높고 낮은 구릉지대를 따라 숲이 우거져 있고 포도밭은 일부에 불과했다. 역사적으로도 이곳은 삼림지대와 올리브 나무숲, 포도밭이 함께 있었고 농업경제도 이를 기반으로 이뤄져 왔다.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지금도 전체 면적의 60% 이상이 삼림지대이고 약 10%의 면적에는 올리브 나무가 식재돼 있다. 포도밭도 전체 면적의 약 10%인 7000헥타르 정도다. 현지에서 만난 와인 생산자들은 지역의 허파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삼림을 훼손하지 않고 잘 관리하는 것이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건강한 포도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키안티 클라시코의 많은 와이너리들이 적극적으로 유기농 재배를 하고 있으며, 유기농 전환을 완료한 와이너리가 60%에 육박한다. 다른 와인 생산지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생산자들이 추구하는 유기농 재배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노력은 빈야드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 소를 키우며 그 소의 분변을 퇴비로 만들어 사용하는 와이너리에서는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넘어 바이오다이내믹까지 적용하며 건강한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활용 유리로 만든 병을 사용하고 수자원을 관리하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는 와이너리의 수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이 지역에서 만난 한 와인메이커는 “자연 앞에서 겸손하게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매해 주어진 자연조건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키안티 클라시코가 지난 2023년 도입한 추가 지리적 단위 ‘UGA(Unità Geografica Aggiuntiva)’도 중요한 소식이었다. 키안티 클라시코를 11개 지역으로 세분화해 원산지의 테루아를 와인에 온전히 반영하겠다는 의도다. 지역의 고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다양한 생물과 공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생산자들이 실행 중인 유기농 재배와도 결국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고풍스러운 성에서 전통에 대한 소신으로 빚어내는 와인

‘참나무 숲속의 성’이라는 의미의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Castello di Querceto)는 키안티 클라시코에서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에 자리한 와이너리다. 탑이 있는 ‘L’자 모양의 건축물은 이름처럼 숲속에 자리한 고즈넉한 성의 모습이다. 

 

마르코 피치알레티(좌)와 알레산드로 프랑수아(우)
마르코 피치알레티(좌)와 알레산드로 프랑수아(우)

와이너리에 도착하자 입구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너인 알레산드로 프랑수아(Alessandro François)와 그의 사위 마르코 피치알레티(Marco Fizialetti)다. 성을 향해 난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날개를 활짝 펼친 공작새들이 거닐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건물로 들어가 와이너리 시설을 둘러보고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자 그레베 지역의 전경이 펼쳐졌다. 역시 숲과 포도밭이 공존하는 풍경이다.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의 빈야드는 약 65헥타르 규모로 해발고도 350미터에서 520미터 사이에 위치한다. 대부분 레드 품종을 재배하는데 산지오베제와 카나이올로, 콜로리노 등 토착품종과 함께 카버네 소비뇽, 시라, 멀롯 같은 국제 품종도 재배한다. 말바시아, 트레비아노 등 화이트 품종도 일부 재배하고 있다. 

 

카르텔로 디 퀘르체토 와이너리의 공작새
카르텔로 디 퀘르체토 와이너리의 공작새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는 1924년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를 창립한 33개의 와이너리 중 하나로, 당시 창립 멤버 중 유일하게 여성이 대표로 참석한 와이너리였다고 한다. 현재의 오너인 알레산드로 프랑수아는 설립자의 손자로 다음 세대와 함께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제 할아버지가 1897년 포도원 부지와 성을 매입하고 와이너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산지오베제를 재배하기 시작했죠.” 키안티 클라시코에서 와인 생산 가문이 포도밭과 건물을 100년 이상 계속 유지하고 있는 와이너리는 20여 곳 남짓이다.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는 현재 127년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의 오너, 알렉산드로 프랑수아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의 오너, 알렉산드로 프랑수아

두 사람은 와이너리 곳곳을 안내했다. 특히 지하 셀러에서는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의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1900년대 초반 빈티지의 와인도 있었고, 수십 년 된 빈티지의 와인들이 종류별로 보관돼 있었다. 마르코 피치알레티는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가 가족 경영으로 와이너리의 전통을 이어오며 일관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를 이어 와인을 생산하기 때문에 윗세대가 만든 와인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며 맛과 품질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지역의 특성을 표현하면서 숙성 잠재력이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는 것은 기술력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합니다.” 

카스텔로 디 케르체토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와인들
카스텔로 디 케르체토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와인들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를 대표하는 와인들과 음식을 함께 즐기는 시간이 이어졌다. 기본급 와인에서부터 탄탄한 양조 노하우가 느껴졌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가장 높은 등급인 ‘그란 셀레지오네’의 와인은 뛰어난 구조감과 숙성잠재력이 돋보였다. 

일 피키오 빈야드에서 생산하는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 일 피키오(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Il Picchio)는 95% 산지오베제에 토착품종인 콜로리노를 5% 블렌딩한 와인이다. 꽃과 초콜릿, 허브향이 어우러지며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상당했다. 다음으로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 라 코르테(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La Corte)가 잔에 따라졌다. 1904년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이 와인은 해발고도 약 450미터에 위치한 라 코르테 빈야드에서 재배한 산지오베제 100%로 생산한다. 좋은 산미와 함께 풍부한 과일 향과 약간의 허브 향이 어우러지며 복합미와 우아함을 갖춘 와인으로, 산지오베제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두 와인은 그란 셀레지오네의 규정에 따라 3개월 병 숙성을 포함해 30개월 이상 숙성한 뒤 출시한다.  

 

지하 셀러에서 숙성 중인 올드 빈티지 와인들
지하 셀러에서 숙성 중인 올드 빈티지 와인들

이어서 맛본 치냘레(Cignale)는 90%의 카버네 소비뇽과 10% 멀롯으로 생산한 와인이다. 치냘레는 토스카나의 방언으로 야생 멧돼지를 의미한다. 이 와인을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건 1986년으로, 당시 알레산드로 프랑수아는 키안티 클라시코의 정통성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국제 품종을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1985년 첫 수확을 앞둔 시점에 멧돼지가 포도밭의 포도를 모두 먹어 치우는 일이 벌어지며 와인 생산이 한 해 미뤄졌고, 그 에피소드를 와인의 이름과 레이블에 표현해 멧돼지 와인인 치냘레가 탄생했다. 구조감이 뛰어나며 풀바디에 부드러운 타닌이 느껴지는 와인으로 산지오베제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의 숙성실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의 숙성실

자연에 둘러싸인 성안에서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와 함께 즐기니, 와인의 진가가 더욱 잘 드러나는 듯했다. 주인장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훌륭한 와인을 즐기고, 와이너리의 역사와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지의 시간이 풍성하게 채워졌다. 

 

 

·안미영
매거진 <노블레스>를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 피처 에디터로 근무했고, 여행서와 에세이 등 4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현재 와인21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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