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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이 던진 두 개의 과제
계엄이 던진 두 개의 과제
  • 박원호 |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승인 2025.02.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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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 – 「한반도 분단의 냄새 #BEC1101」, 2004
노순택 – 「한반도 분단의 냄새 #BEC1101」, 2004

시대를 잘못 찾아온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뒤이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 그리고 내란죄 수사를 위한 현직 대통령의 체포는 우리의 정치와 시민사회에 크나큰 파장을 안겨줬으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것인지, 내란과 관련된 대통령의 법적 책임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시민사회와 정당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 앞의 정치 일정이 어떻게 놓일지, 너무나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지워진 과제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왜 우리 정치공동체는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고, 미래에 이런 불행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영속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의 무엇을 고치고 바꿔야 하는가? 우리 정치공동체가 앓고 있는 불행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손쉬운 답변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지면에서도 사실 우리가 처한 딜레마들에 대한 거친 스케치를 시도해 볼 따름이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고 단선적인 ‘처방’은 오히려 독약이 될 수도 있으며, 그보다는 차라리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을 잘 정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들을 ‘제도’와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치의 문제가 정치제도, 혹은 정치구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우리의 정치 문화가 문제라는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첫째, 우리 헌법과 정치구조에 매우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적극적인 제도 개혁, 특히 개헌과 선거제 개혁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이번 계엄 사태의 핵심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적 정치 문화를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제도의 과제: 정치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차제에 개헌과 정치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먼저 들린다. 사실 ‘87년 체제’가 낡았기 때문에 새 헌법과 새 정치 질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되었으며, 구체적인 개헌안(예컨대 2018년 대통령 발의안이나 2016년 대화문화아카데미 등)들이나 선거제 개혁에 대한 논의도 많은 진척이 되어 있다. 다만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웠을 따름이다.

엄밀히 말해, 이번 계엄 사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로 기존 개헌과 정치개혁 논의를 심각하게 헝클어트렸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것은 우리 ‘헌법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우리 ‘헌법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 즉 위헌적인 계엄이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계엄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제왕적 개인’이 자신을 제한하는 제도적 틀이 답답해서, 혹은 제도가 충분히 ‘제왕적’이지 않아서 일으킨 사건인데, 갑자기 ‘제왕적’ 대통령제를(그 제도적 틀을) 고쳐야 한다고 하면 틀린 말이다. 비유하자면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다친 김에 뇌수술하자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 정치체제가 ‘뇌수술’이 필요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우리 정치체제는 극단적으로 부적절한 대통령들을 자꾸 탄생시키는가? 왜 우리 정치체제는 끊임없이 적대적이면서도 공생적인 양당제와 정치 양극화를 만들어 내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상당 부분 진척이 된 것도 사실이며 그 해답이 주로 헌법과 선거제도, 특히 우리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출 방식인 단순 다수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에는 학계가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계엄이(혹은 ‘교통사고’가) 이런 정교해야 할 논의를 정치적 국면으로 끌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일정의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시점에서 만약 탄핵이 인용되어 대선이 곧 치러진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대통령 선거 이전에 개헌과 선거제를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개헌이나 선거제 개혁의 시기는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다가올 대통령 선거를 개헌과 정치개혁에 대한 공약을 중심으로 치르게 하고, 당선된 대통령에게 그 공약을 지키게 만드는 것이다. 2018년도 개헌 국면의 오류를 다시 범하지 말자는 의미이다.

개헌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를 한 개만 고르라면 나는 단연코 ‘전문(前文)’이라고 답하겠다. 우리가 개헌이라고 하면 완전한 백지 위에 전문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을 재규정하는 전면 개정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헌 논의가 항상 헌법전문에 무엇이 포함되고 무엇이 빠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보통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정작 중요한 핵심 규정에는 이르기도 전에 말이다.

이런 생각의 정반대 지점에 미국 헌법의 ‘amend-ment’가 있다. 통상 수정헌법이나 수정조항으로 번역되며 헌법 본문 뒤에 미국 헌법은 현재 27개나 되는 수정조항들이 달려있다. 이를 가장 잘 번역한 이는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었을 것이며, 그것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원포인트 개헌’이라는 말로 우리 정치사에 남았다. 헌법을 근본에서부터 새로 쓰는 것보다 한 개의 조항을 수정하는 극히 제한된 부분 개정의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를 ‘당선 후 즉각’ 개헌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공약으로 치러서는 안 된다. 헌법의 어떤 부분은 어떻게, 왜 바꿀 것이며, 우리 선거제의 어떤 부분은 어떻게 바꾸겠다는 ‘이유와 내용’을 가지고서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반대로 헌법을 백지에 새로 쓰는 것은 반드시 헌법전문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거쳐야 하며, ‘국민’을 ‘인간’으로 바꾸는 논쟁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논쟁의 1%에 불과하다. 개정 절차가 어려운 개헌시장이 열리면 온갖 이슈와 어젠다가 밀려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임기 초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자원을 이렇게 소진할 정치인은 없다. 1,000개의 합의점이 존재하는 연합을 찾는 것보다는 1, 2개의 합의점이 존재하는 다수 연합을 구성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며, 이런 개헌의 1, 2개 ‘포인트’들을 대선 기간에 미리 정하자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제도 개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말을 해야겠다. 제도 개혁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같이 붙어 있다는 것, 항상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 한 나라에서 최선의 제도가 다른 정치 문화에서는 최악의 제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혹시 우리가 헌법과 법령을 바꾸고 제도를 건드리는 것은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가 아닌가, 늘 성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제도 바깥의 세상, 정치 문화의 문제를 여기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의 과제: 음모론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이번 계엄 사태 이후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사실 음모론과 가짜뉴스의 영역이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9월 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계엄령의 가능성을 경고했을 때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믿기 어려웠고, 대다수의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민주당의 음모론이라 치부했다. 우리의 문제는 계엄설이 계엄령으로 ‘실현’되었다는 데 있다. 이제는 믿지 못할 것이 없어진 셈이며, 못할 말이 없는(Anything goes) 세계가 열린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주요 동기 중 하나가 부정선거에 대한 의심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이번 계엄 사태를 통해서 아마 가장 세를 불린 사람들이 있다면 부정선거론자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음모론은 자신의 어려운 처지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나름의 논리로 설명하는 대안적 내러티브이다. 

계엄설이 계엄령으로 현실화하고 그 이유 또한 대통령이 부정선거론을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부정선거론을 믿지 않던 대통령 지지자들도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정선거론을 받아들이기 십상일 것이다. 이번 계엄의 최대 수혜자가 전광훈과 선거부정론자들인 것이다.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는 사실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윤석열 정부는 당선 이래 끊임없이 선관위의 신뢰성을 공격했고, 급기야 작년 국정원으로 하여금 선관위 서버를 “점검”하게 하는 등 선거 신뢰를 훼손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결국 이것으로 인해 자멸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자신의 지지자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함으로써 선거 신뢰성 회복의 길은 요원해졌다.

“Anything goes”의 세계가 열린 후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는 불타오르는 중이다. 그 와중에 국회에서 직접 증언을 한 김어준의 케이스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것은 계엄 이전의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던 일이며,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은 사실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명백한 증거나 팩트 체크 없는 ‘제보’들이 경쟁적으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각종 매체를 통해서 위험하게 증폭된다는 점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음모론의 작용과 반작용이 난무하는 세계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딜레마는 이런 음모론과 가짜뉴스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굳이 표현의 자유를 들지 않더라도 규제와 단속이 불가능한 미디어 환경에서 규제와 단속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오히려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놔둘 수도, 그렇다고 규제할 수도 없으니,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아직 전 세계 어느 사회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앓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계엄령을 발동하게 했으니 말이다.

적어도 의원, 정당, 공공기관을 통해서 나가는 정보는 그 소스의 확인과 팩트 체크 과정 등 공표의 조건들을 미리 정할 것. 유튜브의 큰소리들과 카카오톡의 ‘받은 글’들은 사실 재미와 관심과 전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팩트가 무엇인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훌륭한 가짜뉴스란 99%의 팩트와 1%의 악의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우리 공동체를 좀먹다가 나라를 파탄(예컨대 계엄령 선포)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점.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사실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가정에서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결론이 너무나 싱겁고 힘들고 가장 오래 걸리는 해결책이라 아무도 관심이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시작했으면 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특히 우리 기성세대는 아무도 뉴미디어를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대통령도 그의 열성스러운 지지자들도 그러했고 여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언젠가 누군가 이런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학교와 가정에서 낮은 목소리로 토론하는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시작하는 것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작하지도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정책적 대안을 말하라면 규제가 아닌 교육, 법령이 아닌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제 발전과 정치민주화라는 이중의 임무를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취해 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런 대한민국의 성취가 사실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난 한 달 동안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정상궤도를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50년 전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헌정질서를 새롭게 구상하고, 정치 공론의 장에서 음모론이 설 땅을 줄여나가는 일은 위에서 본 것처럼 간단한 일도, 단기적으로 해결될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해 있는 위기가 중대한 만큼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을 파면하고, 어떻게 수사할 것이며, 다음 선거에서 누가 집권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기에 비하면 어쩌면 사소한 문제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항로를 결정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아까운 시간을 하염없이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어젠다가 무엇이고, 그 연합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서 떠나야 할 시간이다. 

 

 

글·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정당학회 부회장, 한국조사연구학회 연구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심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연구방법론, 투표행태 및 한국정치 등이다. 

*이 글은 계간 <일곱번째나라> 창간호에 실린 것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본지에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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