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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가 실망으로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정권교체가 실망으로 반복되지 않기 위해
  • 윤홍식 |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25.02.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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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 –  「애국자의 길 #BEK0401」, 2004

윤석열 탄핵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2016~17년 박근혜 탄핵은 1990년대 이후 점점 심각해지는 사회경제적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전기처럼 보였다. 시민의 대다수는 ‘불의한 박근혜 정부’가 물러나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시민은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뀐 현실을 목도 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무 수행 평가를 보면 집권 1년 차 1분기 긍정 평가는 81%에서 집권 5년 차 4분기 42%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고, 부정 평가는 11%에서 51%로 5배 가까이 높아졌다.(1)

사회경제적 이동성의 저하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세습 자본주의가 고착하였다. 이는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 대다수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엄청난 기대가 엄청난 실망으로 끝나는 참담한 현실을 지켜보아야 했다. 기대가 실망으로 끝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안타깝지만 (체제를 전환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운명에 순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정부가 동일한 운명을 직면했던 것은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5년을 집권하면서 단 한 번도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낮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은 정권이 출범한 2006년에 10월 77%에서 2021년 12월 퇴임 시도 76%로, 집권 초와 거의 같았다.(2)

보수정권의 대통령이 연이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상흔을 남길지 지금으로선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대통령과 그 정부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그러나 그다음은? 윤석열만 몰아내면, 살만한 세상이 찾아오는가? 정권교체는 어떤가? 정권이 교체되면, 평범한 사람들은 더 살만해지나? 정권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정권교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정권교체가 필요하다. 보수정부가 등장할 때마다 한국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으며,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은(권위주의 체제의 연장이라고 비판받았던) 노태우 정부 시기로 퇴행을 반복했다.(3) 스웨덴에서 발간된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서는 한국을 심지어 인도, 멕시코, 인도네시아, 미얀마, 파키스탄, 필리핀과 함께 아시아에서 독재화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분류했다.(4) 

민주주의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 정권교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권교체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평등을 보장해 주지도, 사회경제적 위기를 완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민주주의 회복을 넘어 정권교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 묻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

이런 관점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의 생산·복지·정치체제의 특성을 개략해 보자. 먼저 생산 체제를 보면, 한국은 대기업 집단이 숙련노동을 자동화로 대체해 임금과 노동조건을 조정하는 산업 관계가 중심인 체제이다. 숙련 또한 작업장 숙련에 기초한 특정 기업에 특화된 숙련보다는 고등교육을 통해 자동화 설비를 운영할 수 있는 표준화된 (일반)숙련을 습득한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높은 체제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소수의 지분을 가진 가족이 대기업 집단을 지배하는 구조이고, 기업 간 관계보다는 대기업 집단 내의 조정이 핵심적인 체제이다. 내수와 수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성장동력은 내수보다는 수출, 서비스업보다는 (가격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제조업 중심의 생산 체제이다.

지배구조와 기업 간 관계는 1950년대 적산불하를 통해 대기업 집단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해 1960년대에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생산 체제의 특성이 되었다. 산업 관계, 숙련 형성, 수출 중심의 특성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강화된 생산 체제의 특성은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를 줄이고 나쁜 일자리를 늘리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250인(300인) 이상을 고용한 대규모 사업체의 고용 비중은 1993년 31.8%에서(5) 2014년에는 12.8%로 급감했다.(6)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기업규모에 따른 생산성과 임금 격차가 예외적일 정도로 큰 나라가 되었다.(7) 더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 집단이 숙련을 자동화로 대체하면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노동력이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었다는 것이다. 2015~16년 기준으로 중소규모사업체 노동자가 대규모 사업체로 이직하는 비율은 2%에 그쳤다.(8)

이런 생산 체제의 특성은 한국의 복지 체제의 특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거치면서 한국은 (암묵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지향했지만, 현실은 보편적 복지와는 큰 차이가 있다.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안정적 고용관계에 기반한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복지를 확대하면서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는 노동자와 취업자의 20%가 넘는 영세자영업자가 공적 복지에서 배제되는 ‘역진적 선별주의 복지 체제’가 만들어졌다.(9)

돌봄과 관련해서도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책임을 가족과 민간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사회서비스를 제도화했다. 이런 복지 체제는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비판받을 수 있지만, 핵심 노동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비용을 낮추어 대기업 집단이 주도하는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생산 체제에 부합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보수적 리버럴 정당’과 ‘권위주의적 보수정당’이 독점하는 우편향 된 양당제 중심의 다수제와 대통령제는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반영해 합의를 통해 생산 체제와 복지 체제를 조정해 사회경제적 위기를 완화하는 역량을 최소화하였다.

반대로 국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대기업 집단은 총수를 중심으로 생산과 분배를 위계적으로 조정한다. 더욱이 ‘보수적 리버럴 정당’과 ‘권위주의적 보수정당’이 경쟁하는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유권자를 동원하기 위해 양적으로 공적 복지가 확대되었지만, 생산 체제와 정치 체제의 핵심은 물론,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 체제의 성격도 지난 30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10)

예를 들어, 대통령 후보 시절 대기업 집단 중심의 생산 체제를 전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김대중·노무현·문재인정부를 거치면서 한국경제의 대기업 집단 중심성은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11) 대기업 집단의 이해를 반영하는 생산 체제는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지난 60년 동안 지속되었다. 

민주화 이후 1998년 30대 대기업 집단의 GDP 대비 매출액 비중은 47.5%였지만, 2023년을 기준으로 30대 대기업 집단의 GDP 대비 매출액은 무려 76.9%에 달했다. 2019년 70.7%보다도 불과 4년 만에 6.2%p 높아졌다.(12) 정권교체가 선거·대의 민주주의와 법치, 견제와 균형, 시민의 자유 등 자유 민주주의 회복에 그치고, 시민이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이유이다. 

 

2025년 전망? 어렵지 않다

2025년 이후 사회정책의 전망이 궁금한가? 대답은 간단하다. 현재와 같은 생산·복지·정치 체제가 지속되는 한 한국이라는 국가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외적 위기 대응하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명분으로 대기업 집단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생산과 분배를 유지·강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TSMC와 같은 경쟁사에 뒤처지자, 삼성전자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국회에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적용제외’를 담은 ‘특별연장근로 사용요건 완화’를 입법화해 줄 것을 국회에 요구했다.(13) 곳곳에서 이런 식의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결국 2025년 정권교체는 ‘리버럴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에 그치고 사회경제적 위기는 더 심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교체 이후 시민에게 남는 선택지는 무엇인가? 다섯 번째 정권을 교체해도 소용이 없다면, 어떤 선택이 시민에게 남겠는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잠재된 경제는 ‘박정희·전두환 때가 좋았어’라는 의식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포퓰리즘으로 위장한 파시즘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럽과 미국을 보라. 우리라고 예외이겠는가? 한국 사회의 진단, 전망, 과제가 제도로서 사회정책을 넘어 민주주의와 생산의 문제를 포괄해야 하는 이유이다. 생산과 분배라는 경제와 복지는 결국 자원을 얼마나,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둘러싼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가 실망으로 반복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정부가 독점하고, 대기업 집단의 총수가 독점하는 조정 기제를 대신해 생산과 분배를 조정할 수 있는 새로운 기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제는 산업 관계, 숙련 형성 등 생산 체제를 구성하는 요소와 재분배 방식과 수준을 결정하는 복지 체제를 작동시키는 제도적 기반인 정치 체제를 새롭게 재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12·3 내란에 놀라 단순히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주장은 하책 중에서도 하책이다. 한국 사회는 내외적 위기·재편·전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힘이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12·3 내란 사태에서 보듯 행정부에 집중된 권한 또한 분산시켜야 하는 모순적 과제를 안고 있다. 즉, 체제를 전환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정부를 만드는 동시에, 그 정부가 국민의 의지에 반할 때 지체 없이 그 정부를 견제할 분산된 권력구조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한국의 경우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일반 국민이 권력의 전횡을 심판할 합법적 수단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선거와 선거 사이에 집중된 권력을 항시적으로 견제할 분권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산 체제 또한 변화하는 세계 경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계층화된 조정 기제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전국 단위건 산별 단위건 지역 단위 건)자본과 노동의 공통의 이해를 늘려갈 수 있는 조정 기제도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방향이 결정되면,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그 합의를 지속할 수 있는 기제도 필요가 있다.

공적 복지의 보편적 확대는 그 전환의 과정에서 반드시 건너야 할 눈물의 계곡을 넘을 수 있는 안전판이 되어야 한다. 국내외 위기·재편·전환에 대응하는 것은 단기적 과제가 아니라 중장기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글·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이 글은 계간 <일곱번째나라> 창간호에 실린 것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본지에 동시 게재합니다.


(1) 한국갤럽(2024),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570~608호 월별·연간 통합. 
(2) Pew Research Center(2021) “Merkel will end her tenure in office as a leader who was internationally popular during tumultuous times” September 22, 2021.
(3) V-Dem Institution(2024) “Country Graph: South Korea” https://www.v-dem.net/data_analysis/CountryGraph/ (접속일, 2025. 1. 2). 
(4) V-Dem Institution(2024) Democracy report 2024: Democracy winning and losing at the ballot. University of Gothenburg. 
(5) 여기서 대기업은 25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규모 사업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1993년은 300인 이상을 고용한 대기업의 비율. OECD 통계가 없어 국내 통계를 사용했다. 250인을 기준으로 사용하면, 수치는 더 급격하게 감소했을 것이다. 신석하. 2004. “외환위기 이후 고용상황 변화에 대한 연구.” 한국개발원 엮음, 『한국경제 구조변화와 고용창출』, pp. 79-162. 서울: 한국개발원.  
(6) OECD. 2011. Entrepreneurship at a Glance 2011,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9789264097711-en. OECD. 2017. Entrepreneurship at a Glance 2017,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entrepreneur_aag-2017-en.
(7) OECD, Entrepreneurship at a Glance 2017. OECD. 2016. “Promoting Productivity and Equality: Twin Challenges”, OECD Economic Outlook, No. 99. 
(8) 전병유. 황인도. 박광용. 2018.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책대응: 해외사례를 및 시사점.“ BOK 경제연구. 제2018-40호. 
(9) 윤홍식(2019)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1』 서울: 사회평론아카데미. 
(10) 생산체제의 핵심은 대기업 집단, 제조업, 자동화, 수출 중심, 정치체제의 핵심은 보수적 리버럴 정당과 권위적 보수정당, 양당이 독점하는 대통령 중심의 다수제를 이야기한다.
(11) 조태근(2007) “시장 지배를 향한 노무현 정부와 재벌의 동거.” 『월간말』, 252: 130-135. 한겨레, (2018) “재벌개혁 갈 길 먼...문재인 정부, 삼성에 또 구애?” 2018. 7. 31
(12) 황인학 이인권 서정환 이병기 한현옥(2000) 재벌구조와 재별정책: 평가와 과제. 서울: 한국경제연구원. 한국세정신문(2024) “4대 대기업 매출액, GDP 대비 40% 넘어서....경제력 집중 심화.” 2024년 10월 10일. http://www.taxtimes.co.kr/news/article.html?no=266662 (접속일, 2025. 1. 3).
(13) 한겨레(2024) “삼성 반도체 경쟁력 부족은 근로시간 아닌 기업무능 탓”. 2024년 12월 24일.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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