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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K-Number> - “빼기가 아닌 더하기의 시선”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K-Number> - “빼기가 아닌 더하기의 시선”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5.03.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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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지속적으로 묻고 답하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나를 구축한 익숙한 환경을 한 발짝만 벗어나도 강렬하고도 무기력하게 되돌아온다. 그만큼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란 존재의 토대이자 보호망인 것이다. 이를 벗어난 순간 나는 내가 누구인지, 타인에게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묻고 설명해야 하는 일명 자기소개라는 난감한 순간을 마주한다. 나의 소개 처음에는 내 이름이 있다. 내가 명명하지 않았고 나보다 남이 더 많이 불러주는 나의 이름, 그 이름을 지어준 이가 대게 나와 일촌 관계인 부모이거나 가족이다. 이렇게 이름에서 출발해 우리는 평생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하고 싶은) 지, 나아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묻고 답을 찾아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자체에 갇혀 평생을 이 질문을 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려 25만명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해외 입양인이 이들이다. 자신과 다른 생김새의 가족들 틈에서 혹은 가족이라 명명할 사람이 부재한 틈에서 평생 이질감과 괴리감을 가지고, 자신의 본명을 잊거나 바꾸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 생존과 실존의 질문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이다.

<K-Number>는 미오카 밀러 (김미옥)를 중심으로 한국 해외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 여정을 담는다. 영화는 서류에서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부모는 누구인지, 그 뿌리 찾기를 기관의 서류에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도 난감하지만, 입양인의 서류는 당사자에게도 공유되지 않고, 서류의 정보도 지워지고 조각나 있고, 심지어 조작되어 있는 게 드러나면서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그래도 어릴 때 해외로 입양되어 가족은 물론 한국어 마저 잃은 상황에서 내가 나를 찾기 위해서는 입양 서류 속 단어 하나, 숫자 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예를 들어, 영화의 제목인 K Number는 입양인들의 입양 서류에 붙여진 일련번호를 일컫는다. 입양인들이 주민번호인 마냥 기억하는 이 번호는 어쩌면 이들 존재에 고유성을 부여한 무엇이 아닐까? 혹은 입양 과정에 대한 어떤 실마리라도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Number는 지극히 관료적 숫자였다. 영화는 미오카의 부모 찾기 여정 속에서 어느 순간 Number의 의미를 만난다. 그리고 그동안 가날프게나마 유지했던 실타래를 툭하고 내려놓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오카는 나를 찾는 여정을 멈출 수가 없다. 여정이 아니라 숙명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제로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차로 타고 끊임없이 길을 가는 영화는 비를 맞고 눈을 맞서며 밤낮없이 터널을 지난다. 실제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길의 장면은 그만큼 이들 실제 여정이 길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고, 이 비장소는 그 자체로 자기 찾기 여정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이렇게 영화는 서류를 통해 나의 나를 찾아가지만 서류에 다가가면 갈수록 내가 기억하는 나와 괴리감이 커진다. 서류의 정보 오류와 미오카의 어린 시절 기억은 괴리가 있다. 곱씹고 또 곱씹으며 재편집이 일어난 그러나 이제는 고체화된 기억과 조각나고 누락되고 왜곡된 기록은 서로 충돌하며 그녀의 여정을 미궁에 빠트린다. 무엇보다 기억과 기록 모두 이 여정에 큰 힘이 없다. 영화는 기록과 기억을 기반으로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듯 이 땅의 어딘 가에 있을 ‘나’의 흔적을 찾아헤맨다. 친생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을 세 차례 방문해 추적 중인 미오카는 기록에는 서류상 그녀의 가족이 존속 살해에 연류되어 있고 본인은 거리에 버려진 아이였다. 그러나 그녀의 기억에는 가족 살해의 기억이 부재하고 자신이 버려진 기억조차 없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부모를 찾는 이유 중 하나로 실종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파서 라고 말한다.

 

현재까지 1970년 전후 한국 해외 입양인은 25만 명이 넘는다. 25만의 수치는 숫자로도 거대하지만 단지 숫자만이 아니다. 25만의 인생이고, 이들 개인이 매순간 마주하는 실존과 생존의 물음이자 몸부림이다. 그 중 두 건만 소개하자면, 입양 문서를 기반으로 한국 호적을 추적하다 보면, 원 가족의 호적과 다른, 본인이 호주가 된 고아 입증을 위한 호적이 이중으로 존재한다. 고아여야 입양이 가능하다는 타국의 요청 때문에 한 사람에게 두 개의 호적을 부여된 것이다. 그리고 나를 찾아 본국에 온 입양인은 결국 해외에서 자신을 입증하는 고아 호적을 선택해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일어난다. 그 경우 원 가족을 찾는 것은 더 요원해진다.

또 다른 건은 평생 살아온 입양국에서 양부모가 입양 신청을 완료하지 않아 입양국 시민으로 신분증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성인이 되어 불법체류자가 되어 버린 경우이다. 이들은 그동안 교육받고 자란 “자국”에서 추방되어 다시 한국에 돌아오지만 언어도 문화도 가족도 부재하다. 한국에서는 “해외 입양”은 달러 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거다. 25만 명의 어린이를 국가 주도 하에 고아로 만들어 입양을 보내고 방치하고 잊어버리고 지워버린 것이다. 이들 여정에 아니 숙명에 동참하던 감독은 그들과 함께 제자리 걸음을 맴돌면 혼돈 속에서 묻는다 “서류에 근거해 추적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게 영화는 한국 해외 입양인이 한국에서 생모와 생가족을 찾는 여정을 서류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여정에서 국가의 민낯과 인권 유린을 은폐한 역사의 한 장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입양의 문제를 입양인의 자기 찾기 여정에서 출발해, 기관과 제도의 부조리,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 다시쓰기로 나아가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풀지 못한 채 질문과 문제를 다룬다. 개인의 삶에 응어리진 시대사를 촘촘히 풀어내면서 현재적 역사쓰기를 시도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사건으로서 역사쓰기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영화는 한국의 해외 입양을 사실 여부를 추적하고 비판적으로 폭로하고 있지만, 사실의 문제를 너머서 “관심”의 문제로 나아간다. “과연 한국인 중에 몇 명이나 입양의 문제를 알고 있냐”고 물음을 되돌리며, 지금 현재도 친생 부모에 대해 안테나를 세우며 많은 시간을 쏟고 상상하느라 밧데리가 방전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입양 아이들에게 “빼기가 아닌 더하기의 시선”을 가지자고 제안한다. 이처럼 영화는 과거를 비난하고 비판하여 비판적 담론 생산에 일조하기 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길을 제안한다. 사건이나 사안이 아니라, 사람이 보이는 사람을 담은 영화이다.

 

<K Number>는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관객상,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그리고 코펜하겐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CPH:DOX 경쟁작이다. 참고로, <K Number>를 보고나면 또 하나의 영화가 궁금해진다. 영화 속 영화로 등장하는 <포겟미낫>은 미혼모를 둘러싼 또 하나의 입양 서사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폐부를 힘있게 짚어낸 작품이다. <포겟미낫>에 대해서는 다음 리뷰를 참조할 수 있다.

https://www.ilemonde.com/news/userWriterArticleView.html?idxno=14786

 

사진 출처: 감독 조세영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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