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김윤진의 시네마 크리티크] 신체의 변형과 훼손: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김윤진의 시네마 크리티크] 신체의 변형과 훼손: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 김윤진(영화평론가)
  • 승인 2025.03.24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1. 영화 '할로윈'의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1. 영화 '할로윈'의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2. 영화 '텍사스 전기톱 학살'의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2. 영화 '텍사스 전기톱 학살'의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신체의 변형과 훼손은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비디오 대여 시장의 성장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던 슬래셔 영화가 대표적이다. 토브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에서 시작된 슬래셔 영화의 인기는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1978)을 지나 <13일의 금요일>(1980), <스크림>(1996, 국내에는 1999년에 개봉),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 국내에는 1998년에 개봉) 등으로 이어지며 수많은 시리즈와 리메이크작을 양산했다. 1970-80년대에 시작된 슬래셔 영화의 인기는 1990년대에 정점에 달하다가, 2000년대에 이르면 캐릭터와 설정의 지나친 반복으로 점차 관객의 외면을 받게 된다. <무서운 영화>(2000)는 슬래셔 영화의 진부한 클리셰를 겨냥해 웃음을 자아내기에 성공한 사례다. 신체를 무차별하게 난도질하는 장면으로 모종의 쾌감을 자아내던 슬래셔 영화의 인기는 사그라드는 듯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림 3. 영화 '쏘우'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3. 영화 '쏘우'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4. 영화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4. 영화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2000년대에 들어와 공포 영화에서 묘사되는 신체의 훼손은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쏘우> 시리즈로 대표되는 고문 포르노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밀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힌 채 본격적인 고문이 시작되는데, 신체를 훼손하고 절단하는 과정이 끔찍하고 잔혹하게 묘사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장면에서 관객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야 하며, 고문의 수위가 극심하여 영화를 보고 난 뒤 많은 이들이 정신적 충격을 호소할 정도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일라이 로스 감독의 <호스텔>(2005, 국내에는 2007년에 개봉)을 비롯하여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의 엑스텐션(2003), 알렉상드르 뷔스티요와 줄리엔 모리가 감독한 <인사이드>(2007), 자비에르 젠스 감독의 <프런티어>(2007), 파스칼 로지에 감독의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2008, 국내에는 2009년에 개봉)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엑스텐션>, <인사이드>, <프런티어>, <마터스>는 일부 마니아에게 ‘고어(gore) 물’로 분류되며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그림 5. 영화 '티탄'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5. 영화 '티탄'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6. 영화 '미래의 범죄들'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6. 영화 '미래의 범죄들'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신체를 가학적으로 착취하는 극단적인 고문 포르노·고어 영화는 2010년대에 접어들며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동안 이어져 온 ‘좀비 물’의 인기에는 '고어 물'에 대한 열망이 내재해 있으며, ‘카니발리즘’을 다루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측면에서는 의학을 소재로 삼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고어적인 열망이 일부 반영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CG 기술의 발전으로 신체의 내장 기관을 자르고 붙이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로우>(2016, 국내에는 2017년에 개봉)와 <티탄>(2021)을 비롯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본즈 앤 올>(2022),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미래의 범죄들>(2022, 국내에는 2024년 개봉), 그리고 코랄리 파르쟈 감독의 <서브스턴스>(2024)를 지나며 신체의 훼손은 다시금 영화의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970-80년대에 시작된 슬래셔 영화와 2000년대에 들어와 관찰된 고문 포르노 영화, 그리고 최근 들어 관찰되는 바디 호러 물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 간에는 분명 어떤 차이가 있다. 특히 평론가 제임스 퀀트(James Quandt)가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라고 설명한 경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2004년 아트포럼에 “피와 살: 최근 프랑스 영화에서의 섹스와 폭력”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는데, 여기에서 브루노 뒤몽, 프랑수아 오종, 가스파 노에, 카트린느 브레야, 필립 그랑드리외 감독이 만든 영화들을 설명하기 위해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New French Extremit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1) 그의 설명에 따르면,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에 속하는 영화들은 의도적으로 금기에 반하는(“willfully transgressive”) 경향으로 특징지어지며 이를 위해 성욕, 고문, 폭력, 식인 등 극단적인 주제와 장면들을 동원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여기에서 관찰되는 ‘위반 충동’이 법의 위반을 넘어 상식이나 합의라고 할 만한 것들의 위반까지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즉, 이들 영화는 성문율의 위반에서 나아가, 불문율까지 위반한다. 성문율의 위반은 차라리 당연한 것 또는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되고, 여기에 더하여 영화는 불문율에 도전하고 넘어서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다. 퀀트의 분석처럼 포르노에서만 관찰되던 주제, 따라서 극장에 걸리는 영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 노골적으로 제시되거나, 아이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살인도 가감 없이 전시되는 식이다. 즉, 이런 영화는 “모든 금기를 깬다(to break every taboo).”(2) 따라서 이들 영화가 관객에게 공포감이라기보다는 역겨움과 혐오감을 자아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듯 보인다. 관객들은 하나같이 찝찝한 기분과 구역질 나는 느낌, 메스꺼움 등을 토로한다. 실제로 가스파 노에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이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다수의 관객이 영화 도중에 퇴장했을 뿐만 아니라 구토하거나 실신한 이들의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보기를 포기하거나 극도의 정신적 충격을 경험하게 만드는 지점은 특히 영화와 관객의 관계를 재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의 영화들은 이전까지 관객이 영화라는 매체에 기대했던 감각을 정면으로 뒤흔든다. 퀀트는 자신의 글에서 브루노 뒤몽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러한 영화의 극단성이 관객을 ‘깨우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관객은 영화를 현실과 단절된 동시에 안전한(합의에 기반한) 세계로서 경험했으며 또 그렇게 경험하길 원했다. 그러나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의 영화들은 현실과의 단절을 제공하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의 가장 어두운 측면을 직면하게 한다─그것을 꺼내어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파헤친 다음에 눈앞에 들이미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영화는 관객의 영화 보는 경험을 이전과는 다른 것으로 만든다. 영화가 끝나도 기분 나쁜 찝찝함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당신의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러한 영화를 보려는 열망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1), (2) James Quandt, “FLESH & BLOOD: SEX AND VIOLENCE IN RECENT FRENCH CINEMA”, https://www.artforum.com/features/flesh-blood-sex-and-violence-in-recent-french-cinema-168041/

 

 

글‧김윤진
시각예술 및 대중문화에 대하여 글을 쓴다. 2024년 대한민국 만화평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GRAVITY EFFECT 미술비평상을 수상하였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