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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칼럼] 역설 속에서 평행을 꿈꾸다
[서포터즈 칼럼] 역설 속에서 평행을 꿈꾸다
  • 전지후(르디플러)
  • 승인 2025.04.0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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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혼란은 우리를 자주 과거로 이끌며, 그 속에서 방향을 가늠할 지적 나침반을 찾게 만든다. 프란츠 파농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식민주의 잔재와 인종차별이라는 맥락 속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처럼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빅토르 오르반 등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의 재부상 속에서, 한나 아렌트는 민주주의 위기의 진단자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나 아렌트는"악의 평범성",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1930년대 초 시온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나 이후 비판자로서의 입장에서 이를 성찰하며 방대한 글을 남겼다. 가자 지구가 피로 덮인지 어느새 16개월을 향해가는 지금, 휴전협정까지 깨며 6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한 이스라엘 정부를 목도해야 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 한나 아렌트를 펼쳐야 한다. 

초기 시온주의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아섰던 한나 아렌트의 시온주의 비판은 두 가지 맥락으로 나뉜다. 첫째,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려 한 것. 둘째, "의식적 파리아"의 부재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지상에서 누구와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아렌트의 고발은 지상 인구의 이질성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삶 자체의 필연적 조건이라는 굳건한 확신을 내포하며,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선택이라는 폭력을 행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때로 사회적 소속감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과도 부딪히며 살아가야 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그들과 이웃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해야 한다. 지상에서 함께 살아갈 이들을 어떻게 택할 수 있는가? 아렌트는 특정 인종에 기반을 둔 사유의 불길한 승리를 직감했고, 그렇게 테오도르 헤르츨 (정치적 시오니즘의 창시자) 및 다수파 시온주의자들과 결별하게 된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아랍인들이 숨쉬고 있는 거주지에 오직 유대인을 위한 국가를 세울 순 없는 것이다. 

아렌트는 나아가 "의식적 파리아"의 존재의 필요를 역설한다. "의식적 파리아"는 쫓겨나고 버려진 자들이나, 그럼에도 함께 모여 그들을 내쫓은 기존 세계의 질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고 다른 세계를 만드는 이들이다. 시온주의에 반대할 수 있었던 자들, 소위 지식인이라 불렸던 자들의 양심과 사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었었고, 이를 아렌트는 "양심의 불안"으로 명명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반시온주의,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소수에 불과한 이들은 "네투레이 카르타"라고 불리는 유대인들로, 평화와 화합을 지향하는 토라의 교리를 따르자고 주장하며 시온주의를 세속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초정통파 교인들이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네투레이 카르타들의 움직임은 결국 하나의 믿음, 당파에 불과한 시온주의에 맞서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의식적 파리아"로서의 존재를 요청한다. 

오랜 시간동안 이스라엘 국민들은 팔레스타인과의 대화와 협상은 미뤄둔 채 휘황찬란한 텔아비브의 화려한 건물들 속에서 살아왔다. 일반 시민들이 의식적 파리아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았더라면 지금까지 비극이 계속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들은 깨어 목소리를 낼 의무가 있다. 

아렌트는 말한다. "평화는 외부에서 주어질 수 없다". 평화는 협상, 즉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상호 타협과 최종적 합의의 결과다. 이를 위해서는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관계는 서로를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얼마나 진심으로 마주하는지 등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좌측)와 다니엘 바렌보임 (우측)
에드워드 사이드 (좌측)와 다니엘 바렌보임 (우측)

<평행과 역설>은 저명한 팔레스타인 철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와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우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스라엘 사람이었던 다니엘과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던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역설은 두 사람이 서로를 평행하여 마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노라 고백한다. 상처의 역사를 넘은 우정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평화의 시작점이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대화에서, 서로를 마주보았던 순간들 속에서 싹트는 무언가를 느꼈던 것일까. '바이마르 워크숍'을 기획하게 되는데, 이는 아랍인과 유대인 학생들이 상처와 혐오를 넘어 하나가 되어 함께 음악을 연주했던 워크숍이었다. 초반의 팽팽했던 긴장과 적대감은 떠나가고,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이 모두 모여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작품을 연주하게 된다. 서로를 못된 원흉으로만 알고 있던 소년들에게 "만남"의 경험은 어떻게 작용했을까. 그들은 서로를 전처럼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남은 이해의 전제가 되고, 평화의 퍼즐이 되며, 용서의 불씨가 된다. 

그러나 만남의 전제가 되는 것은 정의의 성취다. 6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와 천 여명의 이스라엘 사망자 수 통계를 본다. 한 민족을 멸절시키고 생식 역량을 파괴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반인륜적 행태를 매일 접한다. 유엔 보고서의 제목처럼, '인간의 인내 한계를 넘어서는' 이 순간, 만남과 용서를 감히 꿈꿀 수 있는가? 

한나 아렌트, 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의 시간은 흘러가 버린 게 아닐까. 우리는 더 많은 의식적 파리아들과 네투레이 카르타, 바이마르 워크숍을 꿈꿀 수 있나.  간절히, 또 다른 <평행과 역설>을 보고픈 요즘이다. 


[참고문헌] 
김선욱, 한나 아렌트와 유대주의, 철학논집 제 60집. 2020.
<복음과 상황> 2023.12월호.에드워드 W.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평행과 역설>. 마티. 2011.
한나 아렌트,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 한길사. 2022.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한길사. 2019.
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시대의 창. 2016.
이유. 유엔 보고서 "이스라엘, 팔 민족 재생산 전략적 파괴". 2025. 03.18. 민들레.


[사진출처]
Barenboim-Said Akademie

 

 

글·전지후
여기저기 일벌리고 다니기 좋아하는 문어발 대학생. 문어발 하나하나가 익히고 배우는 것들과 관계들을 모두 사랑한다. 요즘에는 프랑스어 배우는 데 푹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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