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코로나 사태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산업 수혜기를 따라 급성장하며, 하나의 미디어 산업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많은 이들이 그 기점으로 코로나 직전 <기생충>(봉준호, 2019)이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 그리고 <오징어 게임>
(황동혁, 2021)이 시청 시간 글로벌 1위를 기록한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류의 이니셔티브가 스토리텔링과 영상 콘텐츠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 과정까지 한류를 견인한 것은 K-POP과 게임이었다. 이 점은 한류 산업을 오늘날에 이르게 한 이니셔티브가 스타시스템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오히려 팬덤과 같이 집단적 배타성을 확보하는 과정에 한류의 이니셔티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 역시 한류의 스토리텔링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서 집단적 배타성을 확보한 노하우에 대하여 2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자주 간과되는 사실이기는 하나, 팬덤은 팬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 차이는 팬 뒤에 붙는 접미사 ‘덤(-dom)’에서 온다. 팬(Fan)은 ‘광신도’를 뜻하는 명사 파나틱(Fanatic)에 어원을 두고 있는 만큼, 특정한 대상을 추종하게 된 사람을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팬덤(Fandom)은 접미사(-dom)의 어원이 동사였던 만큼, 팬이 하는 행동을 지칭하는 의미로서 문화인류학적인 지층을 가진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팬덤의 접미사 -dom은 ‘판단’ ‘권한’ 등을 뜻하는 게르만 고어 ‘tuom’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영어 접미사 -dom으로 변화하며 ‘영역’과 같이 물리적인 배타성을 드러내는 단어로 변화했다.(1) 즉, 팬덤은 팬의 영역이자 그들이 행하는 판단 및 권한으로, 팬덤은 필연적으로 정체성을 구분하는 행위로 구별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류의 이니셔티브로서 팬덤은 단순히 추종의 대상을 기준으로 영역을 나누는 데서 끝나는가? 이는 한류를 오늘날의 자리까지 이끈 콘텐츠가 K-POP과 게임에 있었던 만큼, 한류가 불고 오는 팬덤 역시 K-POP과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문화행태적 특성에 바탕하고 있다.
그것은 사행(Speculative)을 통한 우월감이다. 즉, 뜻밖의 행운을 통해 우월감을 얻으려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한류 산업의 중핵이자 노하우이며, 넷플릭스가 25억 달러라는 거금을 한류 콘텐츠에 배팅한 나름의 근거이기도 하다. 게임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K-POP의 팬덤 문화 역시 사행성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가령, △우연한 계기로 아이돌의 연애대상이 되는 팬픽문학의 서사성 △희귀 가치에 대한 기대를 안고 사는 굿즈 △노력과 무관하게 아이돌 추종을 통해 가치의 상승과 하락을 기대하는 심리 등이 그러하다.
22.09% vs 1.86%, 상징성을 생산하지 못하는 영화 콘텐츠
한류 산업을 지탱하는 팬덤의 사행적 특성은 비단 팬덤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팬덤 자체가 한류 산업의 이니셔티브인 만큼, 생산물부터 소비 결과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으로 광범위한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의 결과는 넷플릭스 인게이지먼트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월 26일, 넷플릭스는 2024년 하반기 시청자 인게이지먼트 보고서 「What We Watched」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리포트에 수록된 콘텐츠는 시리즈와 영화를 포함하여 총 15,563개로, 이 중 한국어를 사용하는 콘텐츠는 총 945개로 전체 콘텐츠 중 6.0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쉽게 말해 20편 중 1개는 한국에서 제작된 콘텐츠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분포와 특성이다. 945개의 한국 콘텐츠 중 시리즈는 516개, 영화는 429개다. 영화 콘텐츠에 비해 시리즈가 약 10% 많았던 셈이다.
어느 콘텐츠에 특별히 비중을 두었다고 볼 수 없는 비율이지만,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비교하면 상황이 다르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한국어 콘텐츠 중 시청 시간 기준 상위 10%에 해당하는 콘텐츠는 총 118개로, 공개된 한국어 콘텐츠 중 약 12.49%가 상위 10%에 이름을 올렸다. 결코 낮게 평가받을 수 없는 결과지만, 118개의 콘텐츠 중 영화 콘텐츠는 단 4개였다.
4~12부작까지 연속되는 시리즈 콘텐츠의 러닝타임과 영화 콘텐츠를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올바른 비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으나, 영화 콘텐츠 안에서만 따로 떼어 시청 시간 상위 10%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추려보아도 그 범주 안에 들어오는 한국어 콘텐츠는 단 8편으로 그 차이가 크지 않다.
이는 영화 콘텐츠 안에서 조회 수로 기준을 바꾸어 보아도, 조회 수 상위 10%에 해당하는 콘텐츠 수는 8편으로 결과는 같다. 다시 말해 429개의 한국어 영화 콘텐츠 중 시청 시간 및 조회 수 상위 10%에 해당하는 콘텐츠는 1.86%에 불과하다. 516편 중 114편, 즉 22.09%의 비율로 시청 시간 상위 10%에 올라오는 시리즈물의 실적과 비교하면 (최소한 넷플릭스에서) 한류 산업에 대한 영화 콘텐츠의 기여도는 크지 않다.(2)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위해서는 한류 콘텐츠에서 영화 콘텐츠가 가진 위상이 무엇이었는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2004년,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마일스톤을 마련한 후, 봉준호의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한류 산업에서 영화 콘텐츠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콘텐츠였다. 그러나 1.86%라는 숫자는 이제 영화가 그 상징성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생존·경쟁·막장, 한류 콘텐츠는 왜 팔렸는가?
반대로 22.09%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024년 하반기 넷플릭스 인게이지먼트 보고서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흑백요리사>(윤현준, 2024)로 대표할 수 있는 예능 콘텐츠의 급격한 성장과 <지금 거신 전화는>(박상우, 위득규, 2024)로 대표될 수 있는 막장 드라마의 수요가 있었다는 점이다. 3번째로 많이 소비된 한류 콘텐츠인 <엄마친구아들>(유제원, 2024) 또한 ‘잘생기고 예쁜’ 소비재로서 배우의 스타성에 기댔을 뿐, 서사적 혹은 예술적 완성도에 기대서 소비된 것이 아니다.
즉, 한류 콘텐츠는 우리가 <기생충>을 생각하며 이야기하듯 높은 품질을 기대하고 소비하는 콘텐츠가 아니다. 아울러 <지옥 시즌2>(연상호, 2024)와 같은, 이른바 플래그십으로 분류할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상위 10%에 턱걸이했다는 점 또한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서바이벌 리얼리티 <흑백요리사>와 막장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은 왜 흥행한 것인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두 콘텐츠 모두 출연자가 우발적인 상황을 통과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그 과정을 어떻게 통과하는지에 따라 생존의 여부가 갈린다. 이는 시청 시간 1위를 고수한 <오징어게임 시즌2>의 소구점과 같다.
그 소구점은 한류 산업의 이니셔티브였던 ‘팬덤’의 동기인 “뜻밖의 행운을 통해 우월감을 얻으려는 욕망”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징어게임 시즌2>가 시즌1과 같이 서사적 완성도도 없었으며, 시즌1과 같은 외부적 파급력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류 콘텐츠는 헤이세이 이전부터 발전한 일본의 애니 콘텐츠는 물론, 태국(<마스터 오브 하우스>(시바로즈 콩사쿨, 2024), <집에 오지 마>(타나눗 이브라힘, 2024)), 인도네시아(<섀도우의 13>(티모 타잔토, 2024)), 필리핀(<아웃사이드>(카를로 레데스마, 2024)) 등 동남아 신흥 강자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한류 콘텐츠의 넷플릭스 점유율이 5%가 넘어간다는 점, 그리고 그중에서도 시청 시간 상위 10%에 해당하는 콘텐츠가 12%가 넘는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인 성과다. 그러니 우리는 글로벌이 왜 한류 산업을 소비하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는 그 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누구도 한국에서 계엄령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리고 한국이 ‘민감국가’로 분류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더불어 트럼프 2기를 예상할 수는 있었어도, 특정 국가에 25% 관세 정책을 부과했다가 3일 만에 철회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막장이 실제 상황이 될 때, 막장이 소비되는 풍경은 그리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더불어 생존이 당면한 과제이고, 경쟁이 유일한 방법일 때 그것을 보려는 욕구는 자연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뜻밖의 행운’을 통해서만 생존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의 한복판에 와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뜻밖의 행운 이상의 과정을 만들 것인지, 어떻게 우월감의 필요를 소거할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궁극적으로 지금까지 한류의 이니셔티브였던 팬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그것이 오늘날 한류 산업이 당면한 과제다.
글·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연구원.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문화재단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1) Oxford English Dictionary. s.v. “-dom (suffix)”. December 2024
(2) 기술된 모든 수치는 「What_We_Watched_A_Netflix_Engagement_Report_
2024Jul-Dec」를 Python을 통해 가공한 것으로, 일부 정규표현식 작성에 ChatGPT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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