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2025년 4월 8일 자 보도에서,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의 폭풍 속 워싱턴 포스트'란 제목의 심층 기사를 통해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가 소유주 제프 베조스의 이념적 개입과 트럼프 행정부 2기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르몽드는 먼저 워싱턴 포스트의 전설적인 과거를 상기시킨다. 기자 루스 마커스가 입사했던 40년 전, 이 신문은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에 이르게 했던 영광 속에 있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번째 스캔들은 이 상징적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3월 15일 예멘에서의 군사작전과 관련된 기밀 정보가 시그널(Signal) 앱을 통해 공유된 사실이 드러났고, 이 사건은 ‘시그널게이트(Signalgate)’로 불리며 디애틀랜틱이 최초 보도했다고 한다.
르몽드에 따르면, 사설면 부편집장 루스 마커스는 이 사건과 신문사의 변화에 대한 깊은 회의 끝에 지난 3월 10일 사직했다. 제프 베조스가 사설면에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식 색채를 입히려는 시도를 비판한 칼럼을 썼지만, 해당 칼럼은 게재되지 않았다. 그녀는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입사해 사랑했던 워싱턴 포스트는, 이제 그 워싱턴 포스트가 아니다"라고 썼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2025년 2월 26일, 제프 베조스는 사설면의 편집 방향에 대해 '개인적 자유'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입장은 허용하지만, 그에 반대되는 의견은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워신턴 포스트 편집국은 이를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사실상의 충성 맹세로 받아들였으며, 이후 사설면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시플리는 사임했고, 후임은 아직 공석인 상황이라고 르몽드는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포스트는 여전히 공격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월 28일 백악관에서 트럼프로부터 치욕적인 대우를 받은 직후, 신문 사설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돈 코를레오네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하지만 편집국 내부에서는 이러한 사설면의 혼란이 뉴스 보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불확실성'이라는 단어가 회의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르몽드는 덧붙였다.
르몽드는 워싱턴 포스트의 독립성을 위협한 이가 다름 아닌 2013년 이 신문을 인수하며 회생시킨 제프 베조스라는 점을 지적한다. 당시 그레이엄 가문으로부터 신문을 인수한 베조스에게 도널드 그레이엄은 " '포스트'가 누군가를 화나게 하면, 그들은 당신을 해치려 할 것"이라며 경고했고, 베조스는 "포스트는 진실을 따라갈 것"이라 약속했었다.
이후 신문사는 황금기를 맞이했으며, 편집 인력이 2배로 늘고 탐사보도팀이 강화되었으며, 디지털 전환에 성공해 뉴욕 타임스를 추월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2016년 대선에서의 러시아 개입과 트럼프 1기와 관련된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본사 7층의 ‘퓰리처의 벽’이 그 성과를 상징한다고 르몽드는 전한다.
이 시기를 이끈 편집장은 마티 배런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회고록 『Collision of Power: Trump, Bezos and the Washington Post』(2023)에서 트럼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베조스가 보도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고 르몽드는 밝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은퇴한 마티 배런은 "포스트는 여전히 훌륭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의 일련의 사건들은 거대한 충격과 함께 평판을 훼손시켰다”고 우려를 표했다고 르몽드는 보도했다.
르몽드는 이어, 제프 베조스가 2025년 1월 20일 트럼프의 재임 취임식에서 샴페인 잔을 들었고, 트럼프 및 일론 머스크와 함께 마러라고에서 만찬을 나누었으며, 멜라니아 트럼프의 삶을 다룬 영화의 판권을 4천만 달러에 사들이고, 멜라니아 본인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트럼프를 비즈니스 천재로 미화했던 리얼리티쇼 'The Apprentice'의 재방영도 베조스가 승인한 것이라고 전했다.
전 편집장 캐머런 바는 "베조스는 이제 '워싱턴 포스트'를 팔아야 하며, 블루 오리진이라는 진짜 우선순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르몽드는 덧붙였다.
르몽드는 사설 게재 취소 사태가 '포스트'의 전통을 무너뜨렸다고 평가했다. 11월 5일 대선을 불과 11일 앞둔 시점에서 준비되어 있던 카말라 해리스 지지 사설이 예고 없이 취소되었고, 이는 워터게이트 이후 대선마다 입장을 밝혀온 전통의 종결이었으며, 베조스가 직접 "미국인들은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지만, 오히려 불신을 증폭시켰다고 전했다.
이후 구독자는 30만 명 감소했고, 2월 사설면 재편 이후 7만 5천 명이 추가 이탈했다고 르몽드는 분석했다. 또한, 하루 2,200만 명에 달하던 독자가 2023년에는 200만~3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2년간 누적 1억 7천만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베조스는 편집국장으로 텔레그래프 출신 윌 루이스를 임명했지만, 그는 2011년 뉴스오브더월드 도청 스캔들과 관련해 수천 통의 이메일 파기를 승인했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그 의혹은 포스트 내부 기자들이 자체 보도로 폭로했다고 르몽드는 지적했다.
또한, 2024년 6월 윌 루이스가 샐리 버즈비 국장을 해임하고 자신의 측근을 편집국장으로 앉히려 했다는 사실이 편집국에 이메일로 통보되었으며, 그는 다음 날 회의에서 “이젠 아무도 당신들 기사를 읽지 않는다”고 말하며 틱톡 전략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인사는 내부 반발로 무산되었고, 이후 루이스는 편집국 전원 회의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르몽드는 보도했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 뉴욕 타임스, 디애틀랜틱, CNN, 월스트리트 저널 등은 '포스트'의 유능한 기자들을 잇달아 스카우트했으며, 2022년 퓰리처 수상자인 조시 도지와, 2001년 수상자인 만평가 앤 텔네스도 이직 또는 사직했다. 텔네스는 베조스를 포함한 기업가들이 트럼프를 신격화하는 조형물 앞에 달러 자루를 바치는 만평이 검열당하자 사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르몽드는 2025년 4월 3일, 2009년 퓰리처 수상자 유진 로빈슨도 퇴사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트럼프의 언론 정책을 비판한 칼럼으로 트루스 소셜에서 모욕당했으며, 민권단체가 머스크 반대 광고 게재를 요청했지만, 신문사는 11만 5천 달러를 받고도 이를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르몽드는 전문가 의견을 인용해 지금 미국 언론계가 19세기의 정파적 언론 시대로 회귀하고 있으며, 20세기에 확립된 사실 기반의 공공 저널리즘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1971년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했던 전통을 지닌 매체이며, 당시 소유주 캐서린 그레이엄은 “신문의 첫 번째 의무는 소유주의 이익이 아니라 공익”이라고 선언했음을 상기시켰다.
마지막으로 르몽드는, 워싱턴 포스트가 과거 밥 우드워드의 말을 인용해 "Democracy dies in darkness(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Riveting storytelling for all of America(미국 전역을 위한 매혹적인 이야기)"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에 어울릴 법한 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재선된 지금, 백악관 출입 기자들은 국가 안보법을 근거로 소스 추적이나 휴대폰 압수에 대비해 Signal 앱을 사용하라는 교육까지 받고 있다고 르몽드는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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