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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를 능멸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한국 민주주의를 능멸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 성일권(<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5.05.02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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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1, 대한민국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내려진 이 판결은 한 사람의 운명을 넘어서, 한국 민주주의 전체를 법정에 세운 정치적 판결이었다. 이 사건에서 법정에 선 것은 이재명이었지만, 기소된 것은 민주주의였다.

사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권력의 내란

이 판결은 법의 탈을 쓴 권력 개입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사법 절차의 일부로 포장됐지만, 실상은 정권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법복들의 정치였다. 선거 등록을 불과 열흘 앞두고, 단 한 차례의 구두변론, 6만 쪽에 달하는 기록을 9일 만에 심리한 뒤 결정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은 법치주의의 모독이자 주권자의 선택권에 대한 직접적 침해였다.

오늘날 권위주의는 더 이상 탱크로 오지 않는다. 검찰과 법원이, 언론과 재벌이 공모한 기득권 카르텔이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고 민주주의를 설계하는 방식이 이미 일상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두 가지 오해를 확인시켜준다. 하나는, 많은 시민들이 선거는 오직 유권자의 투표로만 결정된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법원의 판결 하나가 대선 지형을 재편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이재명 자신도 기득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우파 인사들을 포용하고 중도 확장을 시도하면 법조 카르텔도 누그러질 것이라 믿었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그는 오산했다. 기득권은 타협이 아니라 복종만을 받아들인다.

 

신속 재판이라는 이름의 시나리오: 조희대의 초능력과 한덕수의 출마

조희대 대법원장은 일찌감치 ‘3심은 3개월 내 결론을 내려야 한다라며 신속 재판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신속성은 놀랍도록 정권의 시간표에 일치했다. 2심 선고 후 36일 만에 내려진 판결, 6만 쪽 재판기록을 9일 만에 검토한 초인적 법관들, 그리고 곧바로 한덕수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이 일련의 흐름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그 시점에서 대법원은 자신들의 기존 판례를 뒤집으며 이재명 유죄 가능성을 열었다. 법은 이제 판결이 아니라 정치의 도구가 되었다.

이번 판결은 다시 한번 서울대 법대 내란과로 불리는 사법 엘리트 집단의 폐쇄성과 권력 연대를 드러냈다. 대부분 윤석열 정권이 임명한 대법관들, 그중 일부는 다음과 같은 이력으로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800원 횡령한 버스 기사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거나, 김앤장에서 보고서 몇 건으로 9억 원을 받은 후 대법관으로 임명되었거나, 진보 야당 인사들의 대부분 무죄를 뒤집고 유죄로 판결한 자들이다. 이들 법복 귀족은 정의를 구현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윤 어게인을 법적으로 보장하려는 권력의 손발이 되어가는 중이다.

 

미력하나마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두 명의 대법관

이번 판결에서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41쪽에 달하는 반대의견을 통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다수의견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퇴행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재명 후보의 발언이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 온 대법원 선례를 따라야 한다라며 이 후보 혐의를 유죄로 단정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선거 과정에서의 공방을 정치적 혼재 영역이라고 규정한 뒤 여기에 법원이 개입해 발언의 허위성을 가리는 역할을 맡게 되면 "그 자체로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부작용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특히 다양한 정치적 공방 중에서 검사가 기소편의주의를 내세워 일부 표현만 임의로 선정해 기소하는 상황을 가정하게 되면, 법원은 두루 이뤄진 정치적 공방 중 기소된 당사자의 발언만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고 재판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두 대법관은 선거 과정의 거짓 정보를 가릴 권한은 스스로 정보를 분석, 판단할 수 있는 유권자의 선택에 최대한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보았다. 이어 다수의견의 논리는 선거인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목 아래 수사기관 또는 법원이 (정치인의 발언을) 올바른지 아닌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주권자인 국민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처사로서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를 넓히는 구시대적 사고라고 했다.

하지만 윤석열이 감투를 안겨준 다수의 법관은 엿장수의 가위질 이상으로 법률을 제멋대로 재단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이재명 개인의 법적 문제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본질을 시험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 판결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권력의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민주당에 후보 교체 압박 목소리 유도

이번 판결의 목적은 단기적으로는 민주당에 후보 교체 압박을 가하고, 장기적으로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항시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대선에 영향을 주기 위해 유죄 프레임을 덧씌우고, 선거 이후에는 혹여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추가 기소로 대통령을 길들일 수 있는 무기로 삼으려 한다. 필요하다면 탄핵 시나리오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무리가 아니다.

 

표적은 이재명이 아니다: 진보와 개혁 전체를 겨눈 칼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법적 공격이 단지 이재명이라는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 표적은 한국 사회에서 실질적인 개혁 정책이며, 그 개혁을 지향하는 모든 정치세력, 시민사회, 지식인 집단이다. 이번 사태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반기는 일부 진보 좌파가 있다면, 그것이 왜 진보가 계속 주변화되는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이 판결은 단지 법적 결과가 아니다. 민주주의 자체가 재판받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심판대 위에서 우리는 단지 이재명의 운명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와 시민권의 상태를 직시해야 한다.

정의는 법정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시민들은 다시 정의의 깃발을 휘날리며, 목청껏 민주주의를 부르짖는다. 오라 진짜 민주주의여, 가라 가짜 민주주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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