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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키17> 다르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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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5.05.1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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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자아와 복제된 신체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은 인간 복제라는 익숙한 주제를 통해 존재, 반복, 자아의 균열을 재조명하려는 야심 찬 시도를 보여준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죽음 이후 매번 다시 태어나는 존재,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이어받는 자신”이라는, 자기복제의 사유 결정체로 등극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의 17번째 복제가 단순히 생물학적 재생에 머물지 않고, 금지된 ‘멀티플’로써 자기의 또 다른 자아와 충돌하는 서사적 사고를 친다는 점이다.

미키 17은 미키 18을 만나면서 복제로써 유지되는 줄 알았던 자아의 연쇄가 사실은 복제되면 될수록 자기 자신과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급기야 그 일은 연인 나샤(나오미 애키)를 사이에 두고 또 다른 자신과 싸우는 일로 폭발하게 된다. 분명 봉준호 감독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닌, 차이의 연속으로써 은연 중에 기존의 인간 중심적 자아 개념을 해체하려 한다. 여기서 복제되는 것은 오로지 신체일 뿐이다.

출처:네이버
출처:네이버

이 설정은 곧 복제된 신체의 의미를 단순한 과학기술의 성과가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의 담지체로 끌어올린다. 복제된 미키는 신체적으로 동일할지라도 감정적으로, 기억적으로, 윤리적으로 이전과는 결코 동일하지 않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기억이 없는 동일한 신체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는 듯 오히려 그 틈에서 자기성(selfhood)의 균열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 균열은 자의식의 파편화로 이어지고 결국 신체 복제는 기술의 진보가 아닌 인간성을 시험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봉준호가 이 분열된 자아를 그려내는 과정을 외계 생명체(영화에서는 크리퍼라 불린다)라는 타자 집단과 병렬적으로 구성한다는 점이다. 크리퍼들은 인간처럼 개별적으로 분열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의 군체처럼 행동하고 감정보다는 구조 속에서 움직이며 심지어 감정적 반응도 집단으로 반응한다. 복제 인간 미키 17과 미키 18이 개별성과 감정으로 분열되고 있을 때, 크리퍼들은 집단성과 질서 체계로써 응집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비는 곧 인간 중심적 존재론에 대한 비판적 우회가 되기도 한다.

미키 17, 미키 18 / 출처:네이버
미키 17, 미키 18 / 출처:네이버

그러나 이처럼 매혹적인 개념적 구도에도 불구하고, <미키17>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해학적 디테일이 사라진 작품처럼 느껴진다. 그의 이전 작품들, 예컨대 <살인의 추억>에서의 서사 리듬, <마더>에서의 심리 묘사, <기생충>에서의 공간 배치 등은, 모두 연출자의 시선이 우리의 일상을 영화적으로 '드러내는 기술’로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해온 결과물들이었다. 그에게 있어 연출이란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윤리를 발현시키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키17>에서는 그 섬세한 밀도가 떨어진 느낌이다. 순번으로 차별화된 복제된 자아 사이에 펼쳐진 긴장과 균열이 서사적 리듬이나 공간적 배치로 충분히 표출되지 않는다. 자아의 불안은 심리적으로 응축되지 못하고 공간의 배치는 단순한 경계짓기에 불과하다. 크리퍼들의 유려한 행동 역시 집단성과 의식을 드러내기보다는 고도로 응집된 기술적 기능적 배열 이미지에 가까워, 해학적 정교함이 서려 있는 비유이미지로 승화되기엔 상징적 에너지가 부족하다.

출처:네이버
출처:네이버

결국,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이 국내 작품에서 언제나 발휘해온 미시적 연출력—장면 간 연결의 절묘함, 감정의 누적 방식, 시선의 중층성 등—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유야 어떻든, 결국 <미키17>은 기술 의존적 존재, 반복되는 자아, 존재의 나열과 충돌을 주요 소재로 다루었지만, 그 깊이를 받쳐줄 연출의 정교함이 기대에 못 미친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 공백은 곧 상상과 구현 사이의 틈, 그리고 철학적 개념과 시각화 사이에 존재하는 여전히 좁히기 힘든 미묘한 거리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봉준호 감독이 다음 작품에서 다시 채워나가야 할, 자기만의 간극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은 여전히 발전 중이라 할 수 있겠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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