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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콘클라베>, 신의 이름으로 벌이는 인간의 정치극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콘클라베>, 신의 이름으로 벌이는 인간의 정치극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5.05.12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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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카메라가 포착한 교회 안의 권력과 고해

권력이 깃든 믿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다.

이 모순적인 감상이 영화를 본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이라는 가톨릭의 엄숙한 의식을 무대로 삼는다. 하지만 영화 속의 인물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성직자의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에서 피 대신 와인이 흐른다면, 이 영화는 기도 속에 정치가 깃든 세계를 그린다. 이들이 입은 붉은 수단만이 우리에게 이 장이 여전히 '성스럽다'는 착시를 줄 뿐이다.

신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인간의 욕망

'콘클라베'란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이다. 그 단어처럼, 영화는 세상과 단절된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추기경들의 밀실 정치'를 포착한다. 시스티나 성당의 장엄한 아치 아래, 각기 다른 신념과 계략을 품은 이들이 교황이라는 단 하나의 자리를 놓고 표를 던진다.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랄프 파인즈)은 전임 교황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로, 선거를 주관하는 전례위원장이다. 그는 자유주의적 인물인 벨리니를 지지하지만, 표가 갈리며 뜻밖에도 자신에게 표가 몰리자 혼란에 빠진다. 이 장면이 영화의 중심이다. 그는 진심으로 교회를 위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인가. 교황이라는 자리가 갖는 위엄과 책임, 그리고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한 인간적인 욕망이 섞여 들어가며 <콘클라베>는 권력의 본질을 파헤친다.

영화는 파벌, 이념, 젠더, 인종, 심지어 과거의 애정사까지 복합적으로 다루지만 과장되지 않으며, 권력 앞에서 흔들리는 추기경들의 인간적인 고민과 성장 과정을 섬세하고 진중하게 담아낸다. 반복되는 투표와 대화 중심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유지되고 영화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너무나 인간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성당의 고요함을 무대 삼아, 인간의 욕망과 권력을 정교하게 엮은 정치 스릴러를 완성해냈다. 추기경들은 언어와 출신, 신념에 따라 식탁을 나누고, 은밀한 연설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지지 세력을 규합한다. 신의 대리자를 선출하는 자리에서조차, 협상과 회유, 때론 협박이 오간다. 인간적인 두려움과 욕망이 의례의 장엄함을 뚫고 스멀스멀 피어난다.

그래서 <콘클라베>는 단지 교회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가 충돌하고, 이미지 정치가 진실을 덮고, 때로는 종교마저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낯설지 않다. 영화 속 보수 진영의 테데스코 추기경은 이슬람 혐오와 문화 보수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신념이라는 이름 아래 혐오를 정당화하는 오늘날의 극우 정치와도 겹쳐진다.

그의 언행은 '신의 이름으로 선을 그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배제되고, 또 침묵하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풍경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의 침묵이 말하는 것

촬영은 고정된 카메라를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이뤄진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물들의 행동보다는 '침묵'을 찍고 있다. 이는 종교라는 주제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말보다 무거운 기류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배경음악 또한 과하지 않다. 성가처럼 흐르다가도 불협화음을 삽입하며 긴장을 유도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에는 완전한 정적이 흐른다. 이 음악의 절제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진리와 침묵'이라는 주제를 매우 효과적으로 보완한다.

그래서 영화는 종교라는 외피 속에 숨겨진 추한 민낯을 드러내면서도, 끝내 그 품격을 잃지 않는다. 붉은 수단의 장엄함처럼 형식은 지적이고 절제되어 있으며, 마지막까지도 우아함을 유지한다. 교황이 선출되는 결말은 이상적일 만큼 맑고 단호하며, 로렌스의 미소는 내면의 갈등을 통과한 이만이 지을 수 있는 평화의 표정이다. 장르적 긴장과 미학적 절제가 정교하게 맞물린 이 영화는, 종교 정치극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한 보기 드문 사례다.

창이 깨지고, 바람이 불어온다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는 성당의 창이 산산이 부서지고, 그 틈을 타 바깥의 바람이 밀려드는 장면이다. 콘클라베의 본질인 고립과 단절의 균열, 오랫동안 전통과 권위의 이름으로 닫혀 있던 체계 속으로 새로운 공기가 스며든다. 그 바람은 말 그대로 '신선한 공기 한 모금', 숨이 막힐 듯한 밀실 정국 속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의 메타포다.

'A breath of fresh air'. 한국어로 '새로운 바람'이라 불리는 이 표현은 변화의 가능성, 폐쇄적 질서의 환기를 뜻한다. 영화는 그 장면을 단순한 연출 이상의 메시지로 끌어올린다. 변화는 바깥에서 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결국 내부에 달려 있다는 걸 말이다.

<콘클라베>는 묻는다. 믿음의 공간에서도, 변화와 의심, 성찰의 여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한다. 영화 속 느릿하게 기어가는 거북이처럼, 고요하지만 끈질긴 전진이야말로 신념이 나아가야 할 방식임을 은유한다.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창문을 깨고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바람을 받아들일 열린 마음과 두려움 없는 지성,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토대 아닐까.

믿음의 이름으로 봉인된 세계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변화의 바람을 들이는 것, <콘클라베>는 바로 그 용기 있는 질문으로 끝맺는다. 진정한 신념이란, 의심마저 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일러준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콘클라베> 포토

글·서성희
영화평론가ㆍ영화학박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전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을 역임했다. 현재 영화에 관한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영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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