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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함을 경험과 자연에 되돌려주기
따스함을 경험과 자연에 되돌려주기
  •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 승인 2025.05.1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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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개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저, 안호성 역, 2025, 갈무리)을 읽고

통념을 무너뜨리는 독창적 사유

화이트헤드의 책들은 우리의 통념에 무너뜨리는 독창적 사유를 전개하는 만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어렵고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자연의 개념도 책을 읽어나가기가 여간 만만치가 않다. 과정과 실재를 탐독했던 사람이라 해도 고개를 갸웃하면서 글을 읽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왜 그런 걸까? 물론 자연의 개념이 더 친숙하게 다가올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현대수학과 과학철학을 어느 정도 접해보았던 게 틀림없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화이트헤드가 노년에 이르러서야 철학 저술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때는 이미 그가 위대한 수학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자연의 개념에서 사영기하학, 위상수학과 같은 현대수학의 개념과 원리, 상대성 이론과 같은 현대 물리학의 성과에 기초해 자신의 사유를 구축해간다. 계열과 집합, 족과 군, 평행과 수직, ··, 극한과 수렴, 4차원 다양체, 공액, 합동 등 등장하는 여러 용어 대부분이 그러하다. 자신만의 문제의식과 관점 속에서 그것들을 변용함으로써 근대 과학이 전제한 실체론, 즉 자연 개념에 관한 존재론적 전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재구성하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 용어들이 등장하는 배경과 맥락, 기존의 개념 정의와 역할 등을 충분히 인지하지 않은 상태로 글을 읽어나가면, 화이트헤드가 여러 대목마다 제기하는 논점들을 파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자연의 개념의 철학적 재구성 시도가 보여주는 담대함과 급진성을 충분히 감지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사영기하학, 위상수학, 상대성 이론 등의 현대 수학과 현대 물리학의 주요 논의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만 화이트헤드의 사유를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순 없다. 자연의 개념에서 등장하는 모든 얘기를 속속들이 알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표가 과정 형이상학, 유기체 철학의 핵심 논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면, 화이트헤드가 견지한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단은 충분하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도대체 왜 화이트헤드는 수학과 과학의 개념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고 하는가?’ ‘그렇게 했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문제의식을 확인하는 게 어쩌면 자연의 개념을 독해하는 좋은 출발점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의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자연의 이분화라 얘기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9<궁극적인 물리 개념들>에서 자연의 진정한 성층을 포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악성적인 이분화 학설의 무의식적 영향을 지적한다. 근대 이후 서양 철학과 과학은 감각-알아차림을 통해 포착된 자연으로서의 외양적 자연과 감각 알아차림의 원인인 자연으로서의 인과적 자연이라는 자연 개념의 이분화를 전제하였다. 객관적 대상과 주관적 의식, 불변하는 실체와 우유하는 속성 등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한 것이다. 하지만 화이트헤드가 보기에, 이러한 자연의 이분화는 커다란 혼란을 야기했다. 우선 에테르 이론으로 운동을 설명하려는 오랜 노력, 태양에 인접한 별의 위치 측정을 둘러싼 논쟁 등 당혹스러운 난제들이 생겨났고 그에 관해선 비일관적인 설명만 내놓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으로 우주의 풍부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경험을 사유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는 단순히 인식론적 오류가 아니라, 존재론 자체를 잘못 설정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화이트헤드는 경험이라는 사건 자체를 왜곡한 걸 중대한 잘못이라고 보았다.

 

과학과 근대세계, 상징 활동, 과정과 실재등에서 화이트헤드는 이 오류를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로 정식화한다. 그리고 실체-속성의 이분화와 긴밀히 연관된 절대적 시공간 개념, 즉 단순 정위의 가정 또한 그 오류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다.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는 사유의 산물인 추상적인 관념적 존재를 구체적인 존재로 오인하는 걸 가리킨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구체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실은 추상적인 것이다. ‘’, ‘의자’, ‘’, ‘기억’, ‘의식, 자연의 개념에서는 자연이 바로 그러하다.

 

하여 화이트헤드는 철학의 과업을 다음과 같이 단언하였다. “모든 철학적 담론의 시도는 자명함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야 한다.” 그동안 철학과 과학은 연역을 통해서든 귀납을 통해서든 증명을 중시해왔다. 이미 주어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인식 대상(또는 명제)이 있고, 그걸 관찰하는(판단하는) 인식 주관이 증거와 논리를 들어서 관찰(판단) 결과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밝히는 게 주된 과제라고 생각해왔다. 이와 달리, 화이트헤드는 철학이 하는 일은 보다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보다 추상적인 것이 출현하는 것을 설명하는 일이다. (...) 철학은 추상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지 구체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문창옥의 표현을 빌리면, “철학은 추상화를 비판하고 설명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는 이미 구체적인 것에는 추상 관념이 깊이 뿌리내려 있다고 보았다. 구체적 존재는 고립된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다. 하나의 존재는 그 밖의 다른 모든 존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 존재의 온전한 모습은 그러한 관련성을 설명할 수 있는 관념들의 상호연관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그렇기에 철학은 우주의 구체적 사실들 속에 예증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관념들의 조화를 탐구해야 한다. 나아가 그것들을 보다 구체적인 직관과 직접 비교하여 그것들을 완전하게 하고 보다 완벽한 도식을 형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요컨대, 추상 관념들의 체계화와 일반화가 철학의 과업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을 앎의 대상이 되는 물질 세계와 앎의 주체가 되는 인간 세계로 분할해버린 탓에, 우리는 어떤 경험이 참되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데 매달려 왔다. 경험에 관한 설명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경험이 어떻게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묻지 않았다. 자연의 개념에서 화이트헤드는 추상적인 일반 관념들이 구체적인 경험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도록 하려고, 경험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를 차근히 탐구한다. 감각-알아차림으로부터 출발하여 경험을 구성하는 추상 관념들을 밝히고 그 관념 간의 연관성을 살펴보아 연장 추상화 방법으로 체계화한다. 이렇듯 경험의 순간은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아니라 끝으로 옮겨지고, 구성되어야 할 목표가 된다.

 

이러한 자연 철학의 재구성은 서양 근대의 철학과 과학이 지워버렸던 형이상학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개념에서 현대 수학과 현대 물리학의 성과를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건 단지 화이트헤드가 수학자였다는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과 형이상학의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과학과 철학이 경험에서 단순화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작업했다면, 화이트헤드는 이 방향을 역전시킨다. 단순화로부터 경험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추상적 체계를 구축한다. 이러한 역전적 작업은 경험의 생생함과 풍부함, 다양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자명하게 사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변적 경험주의(Speculative Empiricism), 사건으로서의 자연(Nature as Event)의 저자인 디디에 드베즈(Didier Debaise)에 따르면,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기획은 인간의 지각과 의식의 특질로 환원될 수 없는 풍부한 경험 전체를 개념화하여 철학적 사유를 확장하려는 급진적인 시도다.

 

한발 더 나아가, 드베즈는 화이트헤드가 자연의 개념에서 제기했던 핵심 문제, 경험 없는 사변에 대한 비판이 갖는 정치성을 짚어낸다. 서양 근대는 자연 개념에 부여했던 수학적 차원과 물리적 차원에 속하지 않는 미적 감각, 도덕적 감각, 쾌락, 이익, 중요성에 대한 감각 등을 자연에 속하지 않는 피상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한 다양한 감각들은 오로지 인간 의식 속의 주관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되어 자연으로부터 추출되었다. 그와 함께 자연은 텅 빈 죽어버린 실체가 되었다. 주관적 속성들은 피상적이고 우연한 것들로 치부되어 진리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오직 근대적 과학 지식만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심지어 그러한 감각들을 중시하였던 전통적 사유, 지역 공동체, 아마추어들까지도 탈자격화되었다. 드베즈는 모든 감각적 특질을 경험으로부터 추출하는 과정이 식민화 권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축이라고 보고, 자연의 이분화와 그것이 야기한 이러한 문제들을 포식적 추상화(predatory abstraction)’라는 용어로 개념화한다. 이사벨 스탄게르(Isabelle Stengers)파국적 시대에(In Catastrophic Times)에서 이상의 내용을 우리는 파괴된 실천과 집단적 지식의 거대한 묘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라고 간명하고도 강력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물론 이에 반대해서 현상학과 해석학과 같이 체험, 의미, 이해와 같은 개념을 중심으로 타자성을 사유하고 인식론을 재정립하려는 회복적 시도들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도 계속해서 자연에 관한 실체론적 사유는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화이트헤드는 주관과 객관, 실체와 속성 이분법을 완전히 해체하고 이들 간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대담한 존재론적 전환을 통해 경험 전체에 수반되는 가능성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강화하려고 했다. 철학이 일반적 개념들을 제공함으로써 자연의 태중에 실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특정한 사례들의 무한한 다양성을 더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화이트헤드의 사변 철학은 포식적 추상화를 대체할 새로운 추상화, 상상적 일반화를 내놓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철학과 과학의 이론적 쇄신에 그치지 않는다. 포식적 추상화가 무효화하거나 식민화하였던 지식과 집단, 즉 존재의 다양한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며 사물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세심한 배려를 제공했던 실천들에게 자격을 되돌려 주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사변적 작업이 갖는 정치성을 다른 방향에서 다시 검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연의 개념을 읽는 중에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문화의 해석에서 제기한 중층 기술(두터운 기술, thick description)’이 문득 떠올랐다. 중층 기술은 단순히 현상을 포착하는 것에 그치는 현상 기술(얇은 기술, thin description)과 구분된다. 현상 기술에 머물지 않고, 그 현상의 맥락, 의도, 동기, 의미를 함께 담아내기 위해 그것들을 다각도로 짚어내면서 입체적으로 서술하는 인류학적 탐구 방법이다. 기어츠에 따르면, 우리 세계는 평면적이거나 단층적이지 않다. 오히려 여러 차원이 중첩되어 있는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차원의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상징 체계와 그 상징 체계를 따라 행위하는 행위자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인류학자들은 중층 기술을 위해 라포(rapo)’자기 성찰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찰 대상인 타자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깊이 고민해야 하며, 관찰하는 나 자신의 문제의식, 태도 등도 면밀히 성찰해야 한다. 어떤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아내는 가운데 밀도 있게 관찰하는 가운데 이 두 과제를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유의해야 하는 점은 기어츠의 중층 기술은 인류학자가 완전한 내부자가 되어 집단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외부자로서 방관자만의 시선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내부자와 외부자의 자리를 오가는 관점의 전환을 강조한다. 혹자는 현장에서 활자로, 타자에서 자아로 그리고 그 반대 당향으로 관심의 초점을 오가는 작업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런데 화이트헤드의 문제의식에 비춰보면, 여기서 빠져있거나 은연중에 무시하고 넘어가 버리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추상화의 문제다. 중층 기술에서 관찰 대상과 관찰 주체 간의 관계를 순환적인 해석 과정으로 개념화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다. 그러한 관찰을 수행하는 작업이 토대하고 있는 추상 관념에 대한 반성적 설명, 즉 개념과 이론 체계에 대한 비판과 재구성이다.

 

이를테면, 두꺼운 기술과 얇은 기술 간의 대립은 관찰한 현상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있다. 여기서 관찰 또는 측정의 문제는 여전히 근대 과학의 존재론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관찰되는 현상(객관적 대상)과 관찰하는 연구자(주관적 주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이분법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일단 두껍다, 얇다의 대립이 두께의 양적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관찰한 바를 세세하게 빠짐없이 기록해 더 많은 내용을 담아내면 두터운 기술이 되는 걸까? 아니면, 어떤 현상을 더 다양한 각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들여 더 많은 장소에서 관찰하면 될까? 수많은 타자의 시선을 최대한 고려하면 해결되는 걸까?

 

화이트헤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중층 기술은 어떻게 일반화, 보편화할 것인가라는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질문을 반드시 포함할 수밖에 없다고 볼 것이다. 더 나은, 즉 더 깊고 더 풍부하고 더 생생한 경험, 그리고 경험 전체가 간직하고 있는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가능성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추상화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사변적 기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한 기획에 기반한 사유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화이트헤드가 제기하는 철학의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은 거대한 묘지에서 드넓은 우주로 상상과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일에 복무해야 한다. 화이트헤드가 자연의 개념에서 구축하고 과정과 실재로 발전시켜나간 사변 철학, 과정 형이상학, 유기체 철학을 통해 바로 그러한 과업을 실천에 옮겼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비춰 다시금 책을 읽어나가면, 딱딱한 단어들과 복잡한 문맥들 사이로 따뜻하고 다채로운 사유의 빛을 드리우려는 화이트헤드의 치열한 사유의 흔적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디디에 드베즈 지음. 박기형 옮김. 2025. “자연을 넘어서: 개념은 어떻게 정치적 권력이 되었는가.”(SONIC ACTS FESTIVAL 2019 - HEREAFTER 강연녹취록) 웹진 인-무브. https://en-movement.net/548

문창옥. 1993.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추상의 역리.” 오영환 외 지음. 김규철 펴냄. 과학과 형이상학. 자유사상사.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지음. 안호성 옮김. 2025. 자연의 개념. 갈무리.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지음. 오영환 옮김. 2008. 과학과 근대세계. 서광사.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지음. 문창옥 옮김. 2003. 상징활동: 그 의미와 효과. 동과서.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지음. 오영환 옮김. 2003. 과정과 실재. 민음사.

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문옥표 옮김. 2009. 문화의 해석. 까치.

Dabaise, Didier. 2017a. Nature as Event: The Lure of the Possible. trans. Michael Halewood. Duke University Press.

Debaise, Didier. 2017b. Speculative Empiricism: Revisiting Whitehead. trans. Tomas Joseph Weber. Edinburgh University Press.

Debaise, Didier, and Thomas P. Keating. 2021. “Speculative Empiricism, Nature and the Question of Predatory Abstractions: A Conversation with Didier Debaise.” Theory, Culture & Society, 38(7-8), 309-323. https://doi.org/10.1177/02632764211052076

Stengers, Isabelle. 2015. In Catastrophic Times: Resisting the Coming Barbarism. trans. Andrew Goffey. Open Humanities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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