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의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The Seed of the Sacred Fig, 2025)은 오늘날 이란 사회가 직면한 억압적 현실을 가장 내밀한 공간, 즉 가족이라는 소우주를 통해 치밀하게 해부한다. 그 밑바탕에는 억압과 통제를 상징적 도구와 정교한 서사 구조를 통해 형상화한 연출력과 각본이 자리한다.

영화는 혁명수비대 법원의 수사판사로 승진한 아버지 이만(미삭 자레)이 부인과 두 딸과의 신뢰 관계를 어떻게 붕괴시켜가는지를 추적한다. 체제의 명령은 가족 내부에 절대적 도덕 규율로 작동하며,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그 수행자가 된다. 부인과 딸들의 외출, 언행, SNS 활동까지 검열 대상이 되며, 그 긴장은 일상을 파고들다 서서히 저항의 한 조각을 완성한다. 이 흐름은 종교적 보수주의가 정치적 권력으로 상정될 때 삶에 어떻게 침투하는지를 시각화하여 증언한다.

이 과정에서 히잡은 보이지 않는 불안전한 시각 기호로 작동한다. 집안에서 촬영하는 설정상 이만의 부인 나즈메(소헤일라 고레스타니)와 두 딸, 레즈반(마흐사 로스타미)과 사나(세타레 말레키)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채 등장한다. 히잡은 단순한 복장이 아닌, 여성의 감정과 신체, 존재 전반을 감시하고 윤리적 틀을 봉합하는 상징체다. 이때 영화는 사라진 히잡을 오히려 보이지 않는 통제의 균열을 극적으로 시각화하는 촉매제로 사용하며, 결국 여성의 자율성과 저항의 가능성을 극적으로 발화시킨다. 이 일로 인해 감독 모함마드 라술포르는 이란 당국으로부터 징역 8년형을 선고 받았고 출연 배우들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이유도 그 형량 선고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슬람 교리는 가부장제 권력과 결합되어 가족 내부의 심리적 위계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며, 여성의 침묵은 ‘존경’과 ‘순종’이라는 덕목으로써 그렇게 억압된다.

하지만 SNS와 디지털 영상의 등장은 국가 폭력을 폭로하고 감시를 전복하는 새로운 응시의 장치로 기능한다. 여기서 영상기술은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가 아니라, 억압된 목소리를 사회적 기억으로 치환하는 윤리적 장치가 된다. 이 장면은 이란 여성들이 겪는 암묵적 폭력을 외부 세계로 가시화하는 시작점이자, 감정과 기억의 기록을 통하여 구축된 저항의 실질적인 축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이만의 권위가 부정당하고, 부인과 두 딸이 그의 시선과 통제에서 벗어나려 탈주할 때 벌어지는 추격 장면은, 전복의 정치적 함의로 충만하다. 이는 단순한 폭력으로부터의 도주가 아니라, 가부장제 질서와 종교적 도덕률로부터의 탈주이자 새로운 사회의 열망을 담은 첫걸음이다.
라술로프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국가 차원의 폭압이 정교하게 가족에서의 아버지 모습으로 내면화되어가는 과정을 과감하게 묘사해 낸다. 감독은 그런 일상이라면 그 속에서 균열이 발생해야 하고, 그 균열을 따라 저항의 윤리를 폭발시켜야 한다고 폭로하듯 주장한다.

이 영화는 현실의 내면 구조를 가정의 사례로써 해체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윤리적 주체화를 재설계하려 한다. ‘말하지 않음’으로부터 ‘말할 수 있음’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그 미세한 균열의 서사는, 침묵과 폭로, 통제와 탈주 사이에서 새로운 저항의 가능성을 개방한다. 막내딸 사나의 아버지를 향한 마지막 총질은 그 저항의 가능성을 개방하여 그 속으로 아버지의 권위를 매몰시킨 상징적 종언이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