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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그리스 영토’를 잠식하다
경제위기 ‘그리스 영토’를 잠식하다
  • 가탱 엘리 외
  • 승인 2013.02.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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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ssier 그리스라는 실험실

<무제>, 2009-아포스톨로스 게오르기우

발칸반도에 속하는 그리스는 서로 끼워 맞춰진 섬들이 불규칙한 도형을 그리는 반도로 이루어져 있다. 에게해에서 이오니아해까지, 핀도스산맥에서 로도피산맥에 이르는 봉우리들을 거쳐, 평원에서 곶까지 뻗어 섬으로 이어지는 그리스 국토는 자연의 변덕이 심한 땅으로, 그 땅에 사는 인간들은 그 변덕을 통제하고 정비해야만 했다. 한때 그리스 개발은 유럽연합(EU)의 선결 과제 중 하나였다. 변두리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판들이 그것을 증명이나 하듯 도로를 따라 곳곳에 늘어서 있다.

긴축정책 상황에 처한 그리스는 공간적 장벽과 단절이 한층 심화됐다. 2년 사이에 교통 부문 공기업들이 민영화되고, 8개 주요 철도노선이 폐지됐으며, 그리스 본토와 주변의 작은 섬들을 잇는 교통수단을 보장하기 위해 지원되던 국가보조금도 삭감됐다.(1) 대중교통비가 상승하고 기름값이 올랐으며,(2) 여기에 소득은 감소하면서 지역 불평등은 심화됐다. 코린트만 하구, 펠로폰네소스반도와 그리스 북부 지역을 잇는 선박 갑판 난간에 팔꿈치를 괸 채, 승객들은 빈 공간으로 그들을 지나쳐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동차들은 해안 반대편으로 빠르게 질주했다. 바닷물 속에 박힌 4개의 거대한 기둥은 파트라스교 바닥을 지탱하고 있다. 기둥 위로는 실처럼 얇은 흰색 밧줄이 부채꼴로 펼쳐져 있다. 유럽에서 긴 다리 중 하나인 파트라스교는 코린트만을 가로지르며, 다리 양쪽으로 도시 밀집 지역이 펼쳐진다. 하지만 파트라스교 왕복 통행료 35유로는 하루 평균임금 수준이기에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다리 이용객은 많지 않다. 그리스 정부가 재정을 충당하고 유럽 투자은행 차관을 통해 건설된 파트라스교는 프랑스 뱅시(Vinci) 자회사가 42년의 양도계약하에 운영 중이다.

파괴를 통한 경제성장의 전형

긴축재정은 그리스를 가차 없이 국토 재개발로 이끌었다. 공공자산 매각을 위탁받은 그리스자산개발펀드(Hellenic Republic)는 물, 전기, 고속도로, 항구 등 모든 네트워크를 쪼개 매각에 부치고 있다. 헬리니코공항도 마찬가지다. 2004년 올림픽종합경기장으로 탈바꿈했고, 재정위기로 인한 국토 매각이 닥치기 전까지는 공립공원이 문을 열 예정이었다. 시 도시계획서비스 소속 페레니키 바타발리는 "금융위기 이후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막대한 소요 비용에도 불구하고,(3) 지방자치단체의 책임하에 카노-카약용 하천로, 하키장, 펜싱연습장 같은 각종 시설들은 철거되며 그 부지는 투자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헬레니코처럼 상업용과 관광용 시설이 합쳐진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은 그리스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사업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진행되면서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그리스 내 국토 분극화 현상을 야기한다. 여기에다 그리스 정부는 면세지역화를 추진하고 있다.(4) 광물자원 개발 및 원유층 탐사도 생태계에 대한 고려 없이 재개됐다. 경제학자 야니스 에우스타토오울로스는 그리스의 현 정책을 '환경파괴에 의한 경제성장 모델'이라 칭하며 "사회적·재정적·환경적, 그리고 세대 간 덤핑을 통한 국토 경쟁에 입각한 성장"이라고 설명했다.

아테네 시내의 일부 지역에서는 상가의 3분의 1이 소비 위축으로 폐업에 처했다. 광이 나는 진열창 뒤로 먼지 쌓인 적막함만이 예전에 가구점이었고 미용실이었던 상가들을 뒤덮고 있었다. 전면에는 수천 개에 이르는 빈 아파트들을 매매하고 임대한다는 노랑·빨강 전단지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급격한 소득 감소와 실업률 증가로 많은 가구들이 다시금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다. 그리스의 평균소득은 2010∼2011년 30% 감소했고, 실업률은 2009년 1월 경제활동인구의 8.8%던 것이 2012년 6월 24.4%로 늘어났다.(5) 사실 그리스의 위기는 마드리드 외곽 분양택지들의 유령화와는 모습이 다르다. 도시 조직의 해체는 스페인보다 더디고 덜 심각하다. 그리스의 경우 도시계획 없는 도시화가 이루어진 결과, 도시는 덜 통합적인 구조를 갖게 됨에 따라 도시 체계의 붕괴를 더 잘 견뎌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스는 은행가도, 도심 부지 판매에 나선 홍보자도, 사회정책에 입각한 국가가 펼치는 주거정책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오아니스 메탁사스의 독재(1936∼41)와 군부독재(1967∼74), 내전(1946∼49)을 거쳐 공산당의 패배를 목격했고, 이후 몇 년에 걸쳐 콘스탄틴 카라만리스의 우파 정부(1955∼63)가 정권을 차지했다. 탄압과 금지 속에 노동자운동은 한 번도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각개약진식 개발'이 모자이크된 도시공간

아테네는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주도한 계획이 한데 합쳐진 상향식 도시개발을 따라 발전됐다"고 하로코피오대학 토마스 마로우타스 교수(사회지리학)는 설명했다. 즉, 토지 소유주가 부지를 제공하면 개발자가 노하우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설계도에 기반한 매매로 확보된 자본으로 5∼6층짜리 소규모 건물들이 올라갔다. '안티파로키'(보상)라고 지칭한 이런 소자본 체제는 1950∼70년 주요한 주택 보급 방식으로 자리잡았고, 아테네 시내 중심지들은 대출보다는 저축에 기반한 도시 건축에 근거해 발전했다. 개인의 건물소유권이 보장되는 안티파로키 제도는 국가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영역과 은행의 부진, 경기 변동에서 그리스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6)

그러나 자체적인 도시 조직화도 긴축재정이라는 맹렬한 공격 앞에서 흔들리는 듯하다. 행정과 상업 기능의 중심지인 아테네는 국내 소비 위축 심화와 공공지출 삭감 타격을 크게 받았고, 이 위기에 따른 충격은 아테네에서 농촌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에게해 해안에서 핀도스산맥 줄기에 걸쳐 펼쳐진 테살리아의 농업지대는 모자이크처럼 분포돼 있다. 아테네 북쪽 200km에 이르는 지역은 초록빛 옥수수, 황금색 짚, 백색 목화처럼 색색으로 부드럽게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풍광이다. 공장 건물과 관개수로관, 농산물 보관 창고로 쓰이는 원기둥형 창고가 이 지역이 농업 부문 산업 지역임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집중적 농업이 이뤄지는 유럽의 다른 지역과 달리 테살리아는 인구 밀집 현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에비드리오마을 광장 플라타너스나무 그늘 아래서 볼로스대학 디미트리스 고우시오스 교수(농촌지리학)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세기 초 그리스는 유럽 지역에서 가장 극단적인 농업개혁을 단행했다. 국가는 각 가구의 필요에 따라 철저한 평등주의에 입각해 토지를 분배했는데, 대토지 소유자들에 의한 독점을 철폐하고 소농들을 장려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 지역의 평균 경작지 규모는 15ha를 넘지 않는데, 오늘날까지 농업 구조가 가족 중심의 소규모 농작 형식으로 남아 있다.(7)

농지개혁은 그리스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주요한 요소였다. 1922년 이후 신흥공화국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로 귀향한 수십만 명의 국민에게 기존에 오스만제국이 소유한 토지를 분배했다.(8) 토지 분배는 신흥국가의 정당성을 확립시키는 수단이었다. 토지 분배가 종결된 뒤 국가는 서서히 개입을 축소했다.(9) 농촌 유권자층들이 소외되는 것을 막으려 국가는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면세 혜택을 부여했다. 19세기 후반부터 농촌에 대한 과세액은 점차 감소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민들은 실질적으로 거의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농업소득은 세제에서 제외됐고, 동시에 농업생산제도 내 계약에 기반한 사회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 급여명세서에 따른 계약관계 부재는 대신 친족과 이웃 사이의 재화 및 서비스 교환이 주가 되는 일종의 비공식적 협력 체계를 형성시켰다. 이런 체계는 농업 노동자의 착취를 조장했는데, 특히 알바니아 노동자가 착취되었다.

가장 급진적이었던 그리스 토지개혁

2011년 이후 그리스 정부가 농민의 면세 혜택 기준 금액을 1만2천 유로에서 5천 유로로 하향 조정하면서 농민들도 과세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는 농업 활동이 회계기준을 준수하도록 강제했고, 위반시 벌칙금을 내야 하는 근로쿠폰제도를 도입해 임금노동자제도를 농촌 지역에까지 확대했다. 고우시오스 교수는 "정부는 세수 확충이라는 명목으로 농촌 지역의 협력 체계를 붕괴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 정책은 세금 징수를 넘어 더 타산적인 논리를 확산시키고 있다." 부유한 선주들은 면세 대상인 세금 징수는 평등주의에 입각했다고 볼 수 없다. 그리스의 부채 상환을 위해, 그리스의 채무자들은 세금징수제도를 이익 챙기기 수단으로 전락시켜 민영화했다.

핀도스산맥의 숲이 우거진 비탈에 위치한 아벨리아마을. 시청 직원인 도우라스 아고리차는 이미 농민에 대한 과세가 가져온 타격을 헤아리고 있었다. 아고리차의 급여는 이미 40% 삭감된 상태였다. 농민들을 응대하는 상주 직원인 아고리차는 이렇게 말했다. "매주 내게 찾아오는 농민 15명 중 4분의 3이 큰 고충을 겪고 있다. 일부는 자급자족 덕분에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름값, 전기요금, 물세 상승으로 농민 과세는 비극을 부르고 있다."

급격한 소득 감소, 과세 의무 부과, 간접세 상승으로(2008년 이전 18%였던 부가가치세는 23%로 상승했다) 많은 농민들은 토지소유권을 상실했다. 소규모 경작 체제, 농민의 고령화, 그리고 동유럽으로의 EU 확대로 인한 EU 공동농업 정책의 농업지원금 삭감으로 농민들 중 가장 취약층은 파산 위기에 처했다. 토지개혁 세분화의 여파로 평원농업 지대에는 토지 집중화가 야기될 것이고, 산간 지역에서는 경작지 포기 현상이 늘어날 것이다.

유럽 정치화폐 공동체로의 편입은 그리스 국토를 재편성했다. 물론 EU의 재원, 특히 농업 부문의 자본은 그리스 발전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성에 따른 국토의 특수지역화를 촉진하면서 유럽 단일시장 내 통합은 그리스의 사회적·공간적 차별화를 조장했다. 유럽 내 노동분업 체계 덕분에 에게해 섬 지역의 관광특수화가 성공함과 동시에 산업 공간의 쇠퇴가 촉진됐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파트라스는 그리스 내 주요 산업도시 중 하나였다. 섬유·고무·제지·비누·제분 업체와 도살장 등 수많은 공장들이 해안가를 따라 펼쳐졌고, 고용된 노동자도 수천 명에 달했다. 현재는 버려진 건물만이 남아 있다. 그리스 노동조합연구소인 파트라스노동연구소장 야니스 소우발리오티스는 "1970년대 이후 들어선 정부마다 지역경제의 발전을 위해 산업권 개발을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생산성 높은 투자 부족으로 산업은 약화됐고, 파트라스의 산업은 EU 내 경쟁에서 버틸 수 없었다. 유럽 내 훨씬 경쟁력 있는 시장들과 맞서게 되면서 파트라스는 빠르게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냉전 종식과 동유럽의 자유주의 체제 전환으로 파트라스 산업의 쇠퇴는 한층 가속화했고, 공장들은 불가리아와 같은 해외로 이전했다. "1993년 그리스 최대의 섬유기업이던 페이라이키파트라이키사의 폐업은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노동자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맥주기업 암스텔과 시멘트기업 티탄을 제외한 대기업들이 모조리 문을 닫았다. 중소기업들도 예외가 아니었다."(10)

생산경제의 몰락은 유로존 가입과 민간 부채가 지탱한 소비 증가의 뒤에 한동안 감춰져 있었다.(11) 합의 속에 만연했던 환희도 올림픽과 함께 종지부를 찍었다. 2008년 위기로 투기 거품이 붕괴하고 서비스 활동이 바탕이 된 취약한 경제가 전면에 드러났다. 이런 여건 속에서 유로존 탈퇴와 평가절하된 드라크마화로의 회귀는 생산 부문의 몰락에 따라 수출을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수입만 가속화할 것이었다.(12) 10년간에 걸친 화폐 통합이 진행된 뒤 탈공업화의 함정이 그리스를 삼켜버린 것이다.

극우파 밀어낸 파트라스 사회주의자들

파트라스항의 화물선박들은 점차 관광객을 실은 크루즈선으로 대체됐다. 노동자의 모습 대신 이주민의 모습이 증가했다. 해안도로 반대편 폐쇄된 공장 지붕에 앉은 채, 불법 이민자들은 선박과 트럭이 오가는 모습과 순찰하는 경찰들을 주시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 반젤리아 소마카는 "그들 중 일부는 벌써 2∼3년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의사회'(프랑스 비정부기구) 소속 변호사 소마카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불법 이주민들에게 법적 조언을 해주고 의료지원 활동을 한다.

바닷가 앞 넓은 공간에 주차된 세계의사회의 버스 앞에 선 소마카는 더블린협정(Dublin II)의 영향을 하루하루 실감한다. 그리스를 통해 유럽으로 불법 입국해 그리스 외의 유럽 국가에서 붙잡힌 이민자들은 자동적으로 아테네로 돌려보낸다는 내용의 협정이 2003년 채택된 이후 파트라스는 유럽의 막다른 골목으로 전락했다.(13) "지금은 그리스에 입국하는 게 출국보다 되레 쉬운 상황이다!"

경제위기라는 여건 아래 외국 이민자의 도시 내 집중 현상은 일각에서 광신적인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5월 신나치주의당인 '크리시 아브기'(황금새벽당)파의 지원을 받은 동네 민병대가 시내 이민자들을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2011년 11월에서 2012년 5월까지 정부를 이끈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는 극우파인 라오스당(LAOS·대중정교회연대)을 정부 내에 받아들임으로써 1974년 군부정권 몰락 이후 정치계에서 금지된 극우파를 다시금 합법화했다. 2011년 8월 터키와의 국경에 대한 경계벽 설치 결정은 그리스의 이민정책에 군사적 성격이자 눈길을 끄는 결정이었다.

소수일 뿐임에도 대중매체의 과도한 집중을 받은 파트라스 주민들이 극우파를 지지한 반면, 다수는 그들의 분노를 다르게 표출했다. 파트라스가 주도인 아카이야 지역에서 극좌파연합 시리자당이 범그리스사회운동당인 파소크당을 대신해 출범했다. 시리자당에 가장 상징적 의미가 있는 선거 지지 기반 지역에서 극좌파연합당은 2010년 파트라스시청장 자리를 확보했고, 지난해 6월에는 국회선거에서 좌파 제1당으로 자리매김했다.

파판드레우 총리의 고향인 산간마을 칼렌차는 파트라스항에서 겨우 35km 떨어져 있다. 마을 광장에는 1960년대 수차례 총리직을 역임한 파판드레우의 할아버지 게오르기오스의 조각상과 파판드레우의 아버지이자 1981∼89년, 1993∼96년 총리직을 지낸 안드레아스의 조각상이 그들 가문이 세운 선거 지지 기반 요새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아들이자 2009∼2011년 정부를 이끌던 파판드레우 총리의 조각상은 아직 그 발판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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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탱 엘리, 알랑 포프라르, 파울 바니에 Gatin Elie & Allan Popelard & Paul Vanni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지리학자들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1) 2013∼2016년 예산계획은 1800만 유로 예산 감축을 목표로 하며, 이는 약 15∼20% 감소한 수준이다.
(2) 2009∼2012년 기름값이 2배로 뛰었다. www.autoline-eu.fr.
(3) 올림픽에 소요된 비용은 140억∼200억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4) <로이터>, 2012년 8월 28일.
(5) 유럽연합(EU) 통계기관 유로스타트(Eurostat)에서 발췌.
(6) 그리스의 자가주택보유율은 2007년 73%였는데, 유럽 평균은 65%, 프랑스는 58%, 독일은 46%였다.
(7) 평균 40ha다. 프랑스의 보스 지방 같은 집중농업 지역의 평균 경작지 규모는 105ha다. 일반적으로 그리스의 평균 경작지 규모가 5ha를 넘지 않는 반면, 프랑스는 52ha다.
(8) 로잔 협약은 그리스-터키 전쟁(1919∼22) 종결 뒤 이들의 귀국을 명시하고 있다.
(9) Noëlle Burgi, ‘야만적 위기, 그리스 무너져내리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2월호.
(10) 아테네노동연구소에 따르면, 아테네에 현존하는 90만 개 기업 중 2009년 5만8천 개 기업이 문을 닫았고, 2010년에는 6만 곳이 문을 닫았다. 이런 탈공업화는 긴축정책으로 인한 내수 부진과 국외 경쟁에 기인한다.
(11) 연평균 소비대출 성장률은 2002∼2007년 24% 증가했다. ‘2009년 6월 말 유럽 소비대출’, Sofinco, www.ca-consumerfinance.com, 2009년 11월.
(12) 경제학자 자크 사피르는 “통화 평가절하를 통해 그리스에 수출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수출은 2011년 그리스 국내총생산의 27%를 차지했고, 이 중 재화 수출이 12%였다. <르몽드>, 2012년 5월 24일.
(13) 유럽 난민 정책의 주축인 이 협정은 이주민이 처음 입국한 EU 회원국이 난민 요청 심사에서 유일한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환난의 연속

1967~74년   군사독재.
1981년   유럽경제공동체(ECC) 가입.
2001년   유로존 가입.
2004년 11월   그리스 정부가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부합하는 것처럼 국가회계를 조작함.
2009년 10월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파소크) 소속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집권. 이 시기 예상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6%에서 12.7%로 급증.
2009년 12월   국제신용평가사 그리스 신용등급 강등. 그리스 국채 금리 폭등.
2010년 3월   첫 긴축 프로그램 실시.
2010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에 구제 요청.
2010년 5월   3년에 걸쳐 1100억 유로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는 첫 구제금융안 발표. 유로존 위기국 지원을 위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창설.
2010년 6~7월   2011~2016년을 목표로 새 긴축정책안 발표. 그리스 부채 20% 감축을 조건으로 1090억 유로를 지원하는 새 금융구제안 발표.
2011년 10~11월   그리스 은행 재자본화와 은행 보유 채권 50% 감축을 골자로 한 새 구제금융안 발표. 파판드레우 총리가 새 구제금융안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제안. 프랑스와 독일의 압력으로 국민투표 계획을 철회하고, 11월 9일 총리직 사퇴. 루카스 파파데모스 전 유럽중앙은행(EC) 부총재가 파판드레우의 뒤를 이어 파소크당과 우파 정당(ND·신민주당), 극우 정당으로 구성된 새 연정의 수장에 취임.
2012년 2월 민간부문 보유 채권 53.5% 감축을 조건으로 1300억 유로 규모의 새 구제금융안 발표.
2012년 5~6월   조기 총선 실시. 다수 의석 확보에 실패. 신나치주의 정당 ‘황금새벽당’ (약 7%의 득표율로) 원내 진출. 신민주당 2차 결선투표에서 승리. 파소크당과의 연정에 힘입어 안도니스 사마라스가 총리에 취임.
2012년 11월   2013년 한 해 94억 유로의 재정 감축을 조건으로 344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추가 지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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