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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2013년체제론
2013년의 2013년체제론
  • 김종엽
  • 승인 2013.05.13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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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초 <2013년체제 만들기>(창비)를 출간했다. 그는 2012년 총·대선에서의 야권 승리를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 형성과 연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총·대선 모두에서 야권은 패배했고, 2013년 출범한 것은 '2013년체제'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2013년체제 만들기>는 지금 서점에 꽂혀 있는 책 가운데 아마 2013년이라는 연대와 가장 불편하게 동거하는 책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담론이 출현했고, 또 현실에 의해 부정된 과정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대로 살핀다면 그런 고찰은 실패한 담론의 경위를 되짚는 것을 넘어서 실천적 담론 일반이 마주칠 수 있는 곤경에 대해서도 무언가 말해줄 것이다.

2008년 '촛불항쟁' 이후 시민의 선거에 대한 민감성과 투표 행위의 일관성이 높아졌다. 이런 전략적 투표 행위의 반복은 야당에 선거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은 동시에 야권 연대를 강제해나갔다. 이 성과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비교적 뚜렷해졌고,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등장 시점에 이르면 많은 사회과학자가 2012년 총·대선이 유권자와 정당체제가 재정렬되는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가 될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는 좌절되었다. 하지만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 지지자 대부분이 '멘붕'(멘털 붕괴)을 경험했다는 것은, 이런 기대가 사회과학자를 넘어서 다수 시민 사이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기대가 존재할 때는 그 기대를 행동으로 전환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대와 행동의 순환적 강화를 유도하려는 실천적 담론이 출현할 수 있다. 이 경우 실천적 담론은 기대되는 사회 변화의 의미와 진폭, 그리고 그것이 개개인의 생활사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세히 그려보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천적 담론은 현재 일반화된 기대의 내용을 정돈하고 해명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에 내포된 잠재력까지 기대 속에 포섭하려 한다. 이 추가적 기대가 바로 사람들에게 행동을 향한 더 강한 동기부여(Motivation)를 이룩하기 바라면서 말이다.

2013년체제론이 수행한 것은 실천적 담론 일반이 취하는 행로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2012년 총·대선이 정권 교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런 정치적 변화가 왜 심대한 체제 변동의 계기가 될 수 있는지, 그렇게 해서 도래할 체제가 얼마나 풍부한 잠재력이 있는지 밝히려 했다. 같은 선상에서 2012년의 선거가 1987년체제 수립에 비견할 만한 중요성이 있으며, 분단체제의 제약을 새롭게 돌파하는 면에서는 1987년체제 이상일 수도 있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원(願)을 크게 가지는 것' 자체가 선거 승리의 동인임을 역설했다. 요컨대 이 경우에도 담론은 기대를 확장함으로써 동기를 활성하려고 했다.

자신의 기대 또는 예견이 자신을 실현하는 요인으로 참여하는 경우 통상 '자성적 예견'(Self-fulfilling Prophecy)이라 부르는데,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2013년체제론 또한 일종의 자성적 예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창안자 로버트 머튼에게서 그랬듯이 여전히 부정적 함의가 깃들여 있다. 또한 관찰의 객관성을 강조하는 객관주의적 사회 이론의 처지에서도 불만스럽게 여길 개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회의 본성에 대한 오해에 기초하고 있다. 오히려 자성적 예견은 사회적 재생산과 변동의 구성적인 요소이다. 사회는 언제나 그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이라는 기대,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 어떨 것이라고 하는 믿음과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소망·예상·기대·믿음은 모두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사회적 사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를 의식적으로 동원하는 것 앞에 있는 리트머스시험지는 진-위 또는 선-악이 아니라 성공-실패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가 기준도 그렇게 조정돼야 한다. 예컨대 핵심 문제는 '자기 성취를 위해 (어떤 사안에 대한) 예견과 기대를 동원할 때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 사전에 스스로 적절히 평가했는가'이다.

동원된 추가 기대를 동기 부여적 힘으로 전환하려면 사회적 영향력 형성이 필수다. 이 영향력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담론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고 확산될 수 있는지, 그리고 조직된 사회 역량과 접맥되는지에 달려 있다. 2013년체제론의 저자 백낙청 교수는 '원탁회의' 등을 통해 참여의 노력을 다했으며, 그의 대의와 논지에 동의하는 사람들 또한 가능한 범위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사회 규모는 언제나 이런 조직과 참여의 노력보다 더 크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노력이 자신을 실현할 충분조건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담론의 신빙성에서 발원하는 영향력인데, 신빙성을 형성하는 것은 어떤 자명한 사건 또는 사태의 지지를 받거나 사회 구성원의 동기와 소망에 강하게 결속되는 것이다. 이 두가지 모두에서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사태의 측면에서 그렇다. 2013년체제론의 토대가 된 2011년까지 시민의 투표 성향과 야권의 연합정치는 신빙성을 형성할 만하지만, 그것이 충분히 높고 강력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총선 패배는 그런 신빙성을 크게 약화시켰다.

사람들의 동기와 소망 수준에서도 2013년체제론은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2013년체제론의 담론 구조와 관련 있다. 2013년체제론은 2012년 총·대선에 의한 정권 교체가 점화시킬 수 있는 체제 변동의 잠재력, 그리고 그것이 가진 사회적 개선 전망을 폭넓게 의제화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 근시안을 극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근시안을 극복하는 것은 모든 사회적 혁신과 개혁 담론이 추구하는 바이지만,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다. 2013년체제론이 "심전(心田)을 가꾸는 공부와 세상을 바꾸는 사업을 동시에" 수행할 것을 호소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우연이 아니다. 근시안을 극복하려면 정신적 능력의 발전과 안목의 확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정화를 통한 동기 유발은 사회적으로 확산되기 쉽지 않은 기획이다. 동기 유발을 위해서는 대중의 범속한 욕구에 좀더 접맥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실천적 정책이 아닌 담론을 제기하는 처지에서 보면 과도한 부담이다. 그렇다 해도 정치적 실천의 일차적 과제가 사회 구성원의 가치나 선호의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것이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시도라는 것은 아니다)보다 현재의 선호를 수용하는 데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그런 과제를 조금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담론과 행위 동기 사이의 관계가 더 긴밀해진다고 해도 그것이 담론을 실현할 충분조건은 여전히 아니다. 실천적 담론은 실천적이고자 해도 여전히 담론이며, 동원된 추가 기대 또한 여전히 기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실천적 담론이 부상하고 또 가라앉는 과정은 아무런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 실현되지 않았다 해도 2013년체제론이라는 담론이 존재했기 때문에, 즉 2013년체제론이 잠재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2013년 현재를 충만하지 못한 것, 선택과 배제의 필터를 거친(그렇게 해서 왜곡도 발생한) 현행성(Actuality)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거부된 혁신의 프로젝트는 언젠가 새로운 혁신을 위해 쓰일 수 있다. 그때 새로운 혁신은 빈 터에서 출발하지 않고 잠재태에 머물고 있는 담론을 재조합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당연히 그것은 새로운 작업에서 낯섦을 제거하고 신속함과 효율성을 더해줄 것이다.

2013년체제론의 핵심 내용 가운데는 벌써 그런 것이 있다. 현재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제3차 핵실험으로 인해 매우 높은 수준의 긴장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긴장의 지속 자체가 2012년 총·대선의 야권 패배, 그리고 그로 인한 2013년체제론의 유실과 연관된 것이고, 2013년체제론에 내포된 '포용정책 2.0'은 2013년체제의 수립과 무관하게 현재 상황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즉 분단체제의 긴장과 위기 상황은 결코 남한의 주도권 발휘 없이 북-미, 북-중 또는 미-중 관계 속에서 풀려나갈 수 없다는 것, 햇볕정책의 유효성 상실 국면이 그 반대 경우보다 평화에 의한 비핵화 정책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는 것, 이 평화에 의한 비핵화는 북-미 간의 대화에 입각한 평화협정 체결뿐 아니라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이라는 제도적 보증을 필요로 하며 양자가 서로 지지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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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문화평론가.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위원. 저서로 <웃음의 해석학>(1994), <시대유감>(2001),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2002). 편서로 <87년체제론>(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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