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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신춘문예는 계속된다
그래도 신춘문예는 계속된다
  • 최현미 -문화일보 문화부 차장
  • 승인 2014.02.1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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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엔 얼마나 들어오려나. 이런 시대에 누가 시(소설)를 쓰겠나. 좀 줄어들겠지.” 11월 초순을 넘어 신문에 신춘문예 공고를 낼 때가 되면 신문사 문화부에서는 몇 년째 어김없이 이런 말들이 오간다. ‘이런 시대’라는 것은 문학이 우리 문화의 중심이고 한국 사회의 중요한 지성 동력이었던 시대가 지났다는 의미이며, 인터넷·스마트폰이 맹위를 떨치고 다양한 매체가 등장한 시대에 신문 신춘문예라는 것이 다소 낡은 느낌이 드는 시대로 들어섰다는 뜻일 게다.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문학전문 출판사의 문학전문 잡지나 이들이 주관하는 각종 상이 위력을 떨치고 있고, 등단절차 없이 곧바로 책을 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또 각종 단체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의 상금도 신문의 신춘문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점 등을 생각하면 신춘문예의 위치나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신문에 1차, 2차, 공고에 이어 마감이 임박했다는 공고가 나가고, 12월 10일을 전후한 마감일이 다가오면 올수록 쌓여가는 우편물을 보면 매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전국 단위 일간지과 지방지들이 일제히 같은 응모 분야의 신춘문예를 실시한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문학에 대한 열의를 지닌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라는, 일종의 감동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이어 봉투를 뜯고, 번호를 붙여 분야별로 분류하면서 외국에서 온 작품을 볼 때면 먼 이국에서 이렇게 원고를 보내는 응모자의 마음은 어떨까 한 번쯤 생각하게도 되고, 몇 편은 안 되지만 여전히 원고지에 써 보낸 응모작이나 종이에 정서해 곱게 접어 편지봉투에 넣어 보낸 응모작을 보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신춘문예라는 이름 아래 모여드는가를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응모작을 정리해 편수를 세어본 동료 문학담당 기자로부터 응모작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이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신춘문예의 경우도 신문사들마다 조금 들쭉날쭉하지만 응모편수가 전반적으로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늘어났다고 한다.

신춘문예의 존재감은 줄고,
응모작은 오히려 늘어

 확실히 신춘문예의 존재감,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에도 신춘문예의 응모편수가 오히려 늘어나는, 이 같은 현실과 인기의 비대칭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무엇보다도 100년 가까이 이어지며 한국 문단의 주요 작가들을 배출한, 무시할 수 없는 전통의 힘을 생각할 수 있겠다. 등단의 과정과 절차가 다양화되긴 했지만 신춘문예가 갖고 있는 독특한 자리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다는 신춘문예는 1919년 매일신보가 연말에 문학작품 공모를 실시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192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도 비슷한 방식으로 신춘문예를 실시하면서 1930년대 이후 신춘문예는 신인 문학인들의 주요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그 뒤 소설가 김동리, 한수산, 이문열, 김승옥, 박범신, 오정희, 황석영, 시인 서정주, 이성부, 정희성, 평론가 조남현, 최원식, 김치수, 권영민, 최동호 등 한국문학의 중요한 문인과 평론가들을 배출했다. 이 같은 수적인 외형뿐 아니라 서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시절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최인호, 예선에 떨어진 응모작을 당직 중이던 문학담당 기자(당시는 문학담당 기자가 예심을 함께 보곤 했다)가 본심에 올려 당선된 박범신 등 신춘문예가 숱한 신화와 전설을 낳기도 했다. 한 작가가 몇 개 신문에 동시에 당선되면서 그 뒤로 중복 투고가 금지되기도 했고, 담당기자가 당선자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겉표지를 잊어버려 당선자 찾기에 나섰던 일 같은 에피소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학벌도 자격증도
필요 없는 신춘문예     

이 같은 전통 위에 소설가나 시인이라는 것이 특정학과를 졸업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일정한 자격증이 있을 수도 없기에 신인 문학인, 문학 지망생에게는 신춘문예가 매우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이 컸던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데다 (최근에는 각종 단체나 출판사에서 실시하는 문학상 상금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액수지만) 신춘문예는 상당한 액수의 현상금을 걸고 실시됐고, 상대적으로 공개적이고 공정한 심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도 신춘문예를 지탱하는 이유이다. 물론 신춘문예로 등단했다고 소설가, 시인으로서의 활동이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또 보장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히 당선자는 좋은 시인, 좋은 소설가를 찾고 있는 출판사, 편집자들에게 인상적인 인사를 하는 것으로, 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같은 문학 내부의 이유만으로는 신춘문예의 인기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시와 소설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소설책과 시집 판매고가 갈수록 떨어지는 데 비해 신춘문예 응모자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 내적인 이유보다는 문학 외적인 곳에서 요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먼저 자기 안의 무엇인가를 꺼내 말하고 싶은 욕구,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사회적으로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고, 집단보다 개인이 중요시되고 개인의 욕망이 인정되면서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 또한 함께 높아졌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등을 통한 글쓰기가 일상화되면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훨씬 접근 가능한 현실이 됐다. 즉 사람들이 직업, 나이에 관계없이 SNS와 인터넷에 (짧은 글이지만)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글을 대중에게 보이고, 공감하고, 평가받는 일이 일상화된 것이다. 이제 글쓰기는 더 이상 몇몇 문학적 재능을 지닌 사람들의 프로페셔널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대중적 영역이 된 것이다.

실제로 글쓰기는 음악이나 미술 같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진입 장벽이 매우 낮은 편이다. 여기에 문학에 대한 절대 권위가 무너진 것도 한 몫 했다. 80∼90년대까지만 해도 ‘소설가=지식인,지성인’으로 등식화되어, 글을 쓴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혹은 자신의 온 삶을 던져야 할 수 있는 작업 정도로 여겨졌던 것에 비해 요즘은 누구나 책을 내는 시대가 됐다. 따라서 자신을 문화적 방식을 통해 표현하려 할 때, 문학(글쓰기)은 진입장벽이 거의 없는 가장 손쉬운 일이 됐다. 이제 글쓰는 작업은 일종의 ‘성스러운 상아탑’ 영역에서 ‘세속적 장터’로 내려왔다고 할 수 있다. 서점가에 글쓰기 책들이 줄이어 나오고, 문화센터 등에 글쓰기와 창작 강의가 넘쳐 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 현상이다. 이에 따라 신춘문예는 최근 들어 뛰어난 소설가, 시인을 발탁하는 전문적인 존재 이유와는 조금 다르게 ‘온 국민의 문학 오디션’ 같은 축제가 된 측면도 있다.

어두운 사회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

실제로 올해 조선일보가 2014년 자사 신춘문예 응모자수를 통계를 내보니 전 연령대가 고르게 응모했다고 한다. 시 부문 응모자는 40대(20%), 20대(19%), 50대(17%), 30대(14%) 순이었고, 소설은 20대(30%)가 제일 많았고, 30대(21%), 40대(19%), 50대(12%) 순이었다. 초등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는 오디션이 된 것이다. 이는 문학전문 출판사의 계간지 게재나, 문학상 등과 비교하면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전문잡지나 문학상의 경우 한번 해볼까 하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춘문예는 같은 시기에 일간지, 지방지들이 모두 한꺼번에 실시하는 ‘온 국민 문학 오디션’이기에 응모작, 당선작들을 보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당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올해 당선작들을 살펴보면 고독사, 자살, 88만원 세대의 고통, 돈 때문에 동거하는 여대생, 왕따와 성폭력에 시달리는 고교생 등의 이야기들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문화일보의 소설 당선작인 한인선의 <유랑의 밤>은 돈이 없어 남자 친구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동거로 일상을 이어가는 여자 대학생 이야기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집안이 급격히 몰락해 기숙사비를 마련하기 힘들다. 과외를 일주일에 몇 건이나 뛰지만 휴대전화비, 교통비, 식비, 학자금 대출이자 등을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식구인 고양이를 데리고 편의상 알파벳으로 명명한 남자 A, B, C의 원룸에서 차례로 동거한다. A와 문제가 생기면 짐을 싸서, B에게 의탁하고, B와 사이가 틀어지면 C의 집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조선일보 소설 당선작인 이세은씨의 <달로 간 파이어니어>는 시체처리업자의 눈으로 바라본 자살과 고독사의 풍경을 담아냈고, 서울신문 당선작인 이태영 <길을 잃다>는 불법체류 단속에 걸려 보호소에 온 여자와 그녀를 관리하게 된 화자를 통해 다문화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이처럼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전체적인 경향은 그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신호들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춘문예의 영향력과 존재감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는 현재 활발하고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상당수가 이미 신춘문예가 아니라 문학전문지나, 문학 단체나 문학전문 출판사가 주관하는 상을 통해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엄마를 부탁해>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한꺼번에 거머쥔 신경숙은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출판사에 재직하던 중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 우화>가 당선되면서 등단했고, 신세대 감각으로 등장한 뒤 어느새 한국문학의 중심 자리를 차지한 김영하는 1995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한 뒤, 1996년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 신인 작가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깊이 있는 문장으로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김연수 역시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로 등단하고 1994년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요즘 가장 ‘핫’한 소설가인 정유정은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2007년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7년의 밤>을 통해 확고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의 활약
 
 
이 같은 변화는 신문이 우리 사회에서 단순한 언론매체를 넘어 하나의 독보적인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지녔던 시대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또 문학, 출판 등 하부의 전문적인 분야가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이제 출판 역시 상업적인 힘으로 움직이면서 시장이 중요한 평가의 잣대가 된 탓이기도 하다. 또 한국의 모든 신문사들이 같은 시기에 똑같은 형식의 문예 공모를 실시하는 것이 사회 전체로 낭비라는 지적, 짧은 시간에 많은 공모작들을 심사하다 보니 제대로 된 심사가 안된다거나, 신춘문예 당선작 스타일이 따로 있다는 식의 비판 등에 따른 자연스러운 하락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소설가, 시인이 일정한 등단 절차를 거쳐야 하는 한국의 독특한 상황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문학이 우리 사회의 문화에서 화려한 대접을 받는 시대가 지난 지금, 그래도 문학의 축제 같은 이런 행사가 여전히 유지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참 마음 뿌듯한 일이기도 하다. 신춘문예 역시 신문사들이 보다 상업적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고, 신춘문예의 의미가 더욱 떨어져 차례로 없애기 시작한다면 언제가 문청들이 일제히 작품을 투고하고, 마음을 졸이고, 1월 1일 지면에 당선작들을 보는 이 떠들썩한 신춘문예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글•최현미
이화여대 학부 및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문화일보에서 일하고 있다. 문학, 출판, 국제담당 등을 거쳐 지금은 문화부에서 영화와 어린이책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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