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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이냐 생존권이냐?
화장품이냐 생존권이냐?
  • 세드리크 구베르뇌르 | <르 디플로> 특파원
  • 승인 2009.12.03 16:5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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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écial] 인도네시아 열대림 파괴로 벼랑 몰린 원주민들

어슴푸레한 빛이 나는 동틀 무렵, 오랑림바족들은 숲 속의 빈터에 빙 둘러 모여 있었다. 허리께만 천을 두른 남자들은 방문객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남자들 뒤에 선 여자들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거나, 낯선 이들의 방문에 겁먹은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건장한 체격을 가진 망티라는 남자는 우리와 동행한 인도네시아인 인류학자를 불렀다. 망티는 다섯 가족의 가장이자, 최연장자이다. 오랑림바족은 우리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서둘러야 했다. 곧 사냥을 나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서식지가 점차 사라지면서 사냥감도 줄어들고 있다. 서식지가 사라지는 이유는 수마트라섬의 숲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숲을 위협하는 포식자는 바로 기름야자수 위주의 단일 경작 체제이다. 식재료와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돼오던 야자수유에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바로 바이오 연료의 하나인 식물성 메틸에스테르다. 1998~2007년 인도네시아가 공식적으로 경작지를 300만ha에서 700만ha로 확대하면서, 말레이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 기름야자수 생산국이 되었다. 야자수유의 급속한 수요 확대에 따라(현재 2250만t에서 2020년경 4천만t으로 증가 예상),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0년까지 2천만ha를 야자수유 경작지로 확대하겠다는 장대한 계획을 발표했다(2천만ha는 20만㎢로, 프랑스의 3분의 1에 이르는 면적이다). 1999년 220만ha였던 숲의 면적이 현재 40만ha로 줄어든 수마트라도 예외는 아니다. 수마트라의 현재 야자수 경작 면적은 45만ha지만, 여기에 86만ha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화장품 원료 이어 바이오연료 바람 타고 야자수 경작지 확대

 

▲ 인도네시아의 울창한 열대우림

사냥감이 급속히 줄자 허기를 면치 못한 일부 오랑림바족들이 땅을 팔면서, 그들의 생활 터전이 속한 생태계 파괴에 일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쪽에 살고 있는 부족이 자바인들에게 숲을 팔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름야자수 경작지를 만든다더군요.” 망티가 설명한다. 망티의 이 말에 자리에 있던 사냥꾼들은 화를 참지 못했고, 방문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보호구역’인 국립공원 한복판에서 오랑림바족이 매입 권리조차 없는 야자수 경작자에게 땅을 팔 수 있었는가. 그것도 오랑림바족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토지 사용자일 뿐인 상황에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 인도네시아 환경부 장관의 약속은 무의미할 따름이다. 2007년 3월 23일 그는 자카르타에서 “기름야자수 경작지의 수백만ha 확대에는 어떤 숲의 희생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지 않았던가? 망티와 그 식구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불과 몇km 떨어진 곳에서 54살의 카르데오가 우리를 맞았다. 그가 우리를 맞은 곳은 장밋빛으로 칠한 회벽 기둥으로 둘러싸인 그의 넓은 집 안뜰이었다. “전에 내가 살던 곳은 저기랍니다.” 그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널빤지로 만든 집을 가리켰다. “기름야자수가 나한테는 행운을 가져왔지요.” 카르데오는 이 지역에서 ‘트랜스미그라시’(transmigrasi)로 불린다. 1950년과 2002년 사이 자바의 과잉인구 문제(1)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600만 명이 넘는 자바인 빈민층을 주변 섬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폈다. 이런 이주 정책은 섬 토착민과의 갈등을 야기했는데, 이렇게 섬으로 들어온 이주민은 좋게 말하면 혜택받은 침입자였고, 나쁘게 말하면 인도네시아 열도 내 자바민의 지배 역사를 굳히는 식민자였다.

 

2001년 보르네오에서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한 수백 명의 자바인들이 다약족 전사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 사건으로 다약족은 ‘참수의 종족’이라는 옛 명성을 되찾았다. 카르데오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자바를 떠난 것은 1984년입니다. 정부로부터 목재로 된 집 한 채와 3ha의 땅, 1년간의 물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기름야자수 경작이 시작되기 전으로, 생활이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지금은 16ha를 경작하고 있지요. ha마다 1.6t이 매달 생산되고, kg당 700~1700루피에 판매됩니다. 매달 수입은 4500만 루피입니다.” 즉, 매달 3500유로에 이른다는 말이다. 카르데오는 제로에서 시작했으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을뿐더러, 아들들을 대학에까지 보냈다. 기름야자수 재배는 손이 많이 가지 않아서, 그의 농장에 고용된 사람은 6명에 지나지 않는다. 즉, 크게 인건비가 들지 않는다. 여태 만난 기름야자수 생산업자들은 인건비 절감이 좀더 친환경적인 고무나무에서 기름야자수로 전환한 주된 이유라고 말한다. “비료와 몬샌토 살충제 덕분에 생산량은 더 향상됐다”고 카르데오는 자축한다. 기름야자수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그가 한 번이라고 들어봤을까? 그의 대답은 솔직했다. “내 생활수준과 인도네시아 국가경제는 기름야자수에 달려 있으니, 환경문제야 뭐….”

원주민-이주민 유혈 충돌

카르데오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수마트라의 소농들에게서 그와 같은 열정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실망하고,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던 작물 때문에 더욱 빈곤해진 소농들은 자신들의 토지가 부당하게 빼앗기고, 그들의 삶의 터전인 강이 오염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전 열도에 걸쳐 수백 개의 마을이 질서유지군과 기업에 맞서 물리적 저항을 하고 있다. 와히연맹은 수마트라에서만 지역민과 기름야자수 플랜테이션 기업 간에 280여 건의 충돌이 있었고, 전국에 걸쳐 500여 건이 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투자자는 토지를 넘겨받을 때 법적 의무를 지게 되는데, 이는 환경적 영향에 대한 조사도 포함한다. 그러나 스위스의 ‘라이프 모자이크’ 연맹 대표로, 기름야자수 단일 경작의 영향에 대한 보고서(2)를 작성한 세르주 마르티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5천만 루피(약 3900유로)의 뇌물만 있으면 2만ha의 경작을 허가받을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거주민들을 위협하기 위해 공무원과 경찰을 대동한 기업들이 마을에 나타납니다. 이른바 ‘국가발전계획’에 따라 기름야자수 경작지가 될 예정인 땅의 주인이 토지 양도를 거부하면 공산주의자로 모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마치 수하르토 시대처럼 말입니다.”(3) 인도네시아에서 ‘재산권’이란 아직도 불확실하기만 하다. 네덜란드 식민통치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발전’과 ‘공익’이라는 미명 아래 국가는 사유재산을 탈취할 권리를 늘 보장해왔다. 인구 2500명인 카랑멘다포는 1999년까지 고무나무와 벼농사로 생계를 꾸렸다. 자급자족이 가능하던 그리운 시절이다. 마을 대표인 모하메드 루스디가 말한다. “인도네시아 재벌기업인 시나르마스그룹이 경찰과 군인의 도움을 받아 숲을 베러 왔습니다. 시나르마스는 600ha의 토지를 손에 넣어 기름야자수 경작지로 전환시켰지요. 우리는 더는 가진 땅이 없습니다. 숲도 없고요. 이웃 7개 마을이 똑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루스디는 유엔 개최하에 180개국이 참가해 2007년 12월 3~14일 열린 발리 콘퍼런스에 참석해 마을이 당한 일을 탄원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시나르마스는 손해배상, 경작지의 소득 공유, 일자리 공급, 도로와 학교 건설 등 마을 사람들에게 했던 많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분개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약속이 이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의 소득은 급감했고, 심지어는 20%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 사람도 있다. 결혼해서 세 아이를 둔 42살의 사유티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99년 이전에는 1.5ha의 고무나무 재배지를 갖고 있었고, 그 땅에서 생산되는 천연고무로 매달 120만 루피(약 100유로)를 벌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적은 지분만 갖고 있는 사유티의 월소득은 22만5천 루피(약 17유로)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생활은 모두 화폐화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전까지 직접 재배하던 과일과 채소를 모두 구매해야 했다. 하천은 죽어갔다.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물고기들을 죽였다. 다중 경작과 정글은 물을 저장하지만, 단일 경작은 토양 유실을 촉진한다. 홍수가 나면 도로가 사라지는 것이다. 낙담한 마을 주민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 한 주에도 몇 번이나 골록(도끼의 일종)으로 무장한 10여 명의 주민들이 경작지를 포위하고, 시장에 내다팔 야자수 열매를 딴다.

카랑멘다포의 북쪽에는 2천 가구가 살고 있는 로구만데사 마을이 있다. 2006년 시나르마스는 정부로부터 이 마을의 토지를 기름야자수 경작지로 전환할 권리를 얻어냈다. “정부는 이 토지가 마을 사람들 소유라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마을의 어른 중 한 명인 수지노가 말한다. “시나르마스가 우리 땅 500ha를 가져갔고, 우리는 회사가 약속한 보상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군인이 총칼로 호위하는 벌목공사

기다리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항의에 나섰다. 2007년 12월 28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회사 시설물을 공격했고, 불도저 11대와 4륜구동 1대를 불태웠다.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을 통해 이 저항은 방송에 보도되었고, 여론은 마을 사람들 편을 들었다. 경찰은 24명을 체포했고, 이 중 9명은 오랜 기간 경찰에 구금되었다. 수지노는 말을 이었다. “회사는 이윤만 생각해서 여러 세대에 걸쳐 필요한 자연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정당은 한 곳도 없고요. 인도네시아 인권위원회는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3500여 명의 오랑림바족은 여전히 수마트라섬 내륙 정글에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생활한다. 1966년 인도네시아의 열대림은 1억4400만ha였고, 당시 숲은 인도네시아 면적의 77%를 차지했다. 오늘날 숲의 5분의 4가 사라졌다.(4) 칼리만탄(보르네오섬 남쪽 지역)과 인도네시아 파푸아에서처럼 수마트라에서도 매일 축구장 400개에 해당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속도는 세계 최고다. 유엔에 따르면 보호지역인 인도네시아 열대림 파괴가 2012년경이면 훨씬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다.(5)

“우리는 잃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분노한 한 젊은이가 말한다. “다른 불도저도 얼마든지 불태울 용의가 있습니다.”

글·세드리크 구베르뇌르 Cédric Gouverneur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각주>

(1) 인도네시아 총인구 2억2천 명 중 1억2700만 명이 자바에 거주한다. 자바의 면적은 138㎢로 총면적의 10% 미만이다.

(2) ‘설 자리를 잃으며’, 스위스 LifeMosaic , 인도네시아 Sawit Watch, 영국 Friends of the Earth, 2008년 2월. www.foe.co.uk/resource/local/planning/news/losing_ground.hml.

(3) 50만에서 100만 명의 공산주의자들이 1965~66년 수하르토의 ‘신질서’ 체제 아래 학살되었다.

(4) 옥스팸, 지구의 친구들, 빈곤 퇴치와 개발을 위한 가톨릭위원회(CCFD)가 운영하는 웹사이트(www.agrocarb.fr) 참조.

(5) ‘오랑우탄 최후의 저항’, 유엔환경계획(UNEP),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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