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시민 볼모로 달리던 베를린 급행열차 ‘탈선’
시민 볼모로 달리던 베를린 급행열차 ‘탈선’
  • 올리비에 시랑|<르 디플로> 특파원
  • 승인 2009.12.03 17: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ossier] 국가의 변이
민영화 이후 고장·운행중단 반복…기간교통망 대혼란
출퇴근길 시민 갈수록 고통…철도회사 이익은 급증세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이곳을 찾은 많은 외국 방문객과 기자들은 기적이 일어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베를린 광역급행철도 에스반(S-Bahn)은 정상으로 운행됐다는 것이다. 지난 4개월 동안 수시로 운행 차질을 빚은 에스반 때문에 고생했던 베를린 시민들은 이 특별한 기념일에는 에스반이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원문 보기>>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상황이 이해가 되나요? 불과 몇 주 전이었으면 지하철 승강장에 꽉 들어찬 인파, 그리고 공항에서 발 묶인 여행객들의 모습과 함께 신경질적 발작증이 감도는 도시 한복판에서 축하 기념행사가 열릴 뻔했지요. 장벽을 9월 9일이 아니라 11월 9일에 무너뜨린 동베를린 주민들에게 서방은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프렌츠라우어 베르크의 리블링 카페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공산주의의 붕괴에 대한 기쁨이 자본주의의 승리에 대한 유익한 교훈과 일치할 수도 있었다. 6월 중순에서 10월 초까지 에스반은 잦은 고장으로 부분 혹은 전면 운행 정지를 야기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에서 유래가 없는 최악의 대중교통 위기를 초래했다. 에스반의 모회사인 도이체반(Deutsche Bahn·독일철도)이 미래의 주주들에게 자회사의 경영 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철도 유지 비용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당시 도이체반은 민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참사 모면

지난 5월 1일 전동차 바퀴가 빠져서 베를린 클라우스도르프역 진입 구간에서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지만, 문제가 전동차의 앞부분에서 발생했더라면, 또 전동차가 서행하지 않았더라면 대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에스반은 바퀴 불량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관할 연방철도사무국(EBA)은 이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무국은 6월 초 대부분의 전동차에 대해 운행 중지와 기지창에서의 점검을 명령했다. 점검 결과, 보수·유지와 안전에서 규범을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문서화된 지침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수·유지 담당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완수할 수 없는 상황에 분명히 놓여 있었지요. 심지어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책임 관리자가 특별 채용됐어요. 그의 지휘 아래 에스반은 4년 동안 전체 직원의 4분의 1을 감원했고, 리히텐베르크 작업창을 폐쇄하고 전동차 수를 줄이고 예비 전동차를 폐기처분하고 재료와 인력을 최소한으로 제한했습니다. 몇 년 만에 그들은 우리의 일상적 작업에 필요한 수단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죠.” 베를린-삭스-브란덴부르크 지역 철도 기관사 노조(GDL) 책임자인 한스요하임 케른첸의 증언이다.

 

▲ <베를린>, 1984-조루즈 루스

에스반 운행이 전면 금지된 다음, 여름 내내 운행은 정상화되지 않았다. 9월 7일부터 상황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자마자 또다시 악화됐다. 차량 검사를 통해 1개 차량의 8개 제동장치 실린더 가운데 4개꼴로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다시 열차는 부품 교환을 위해 정비창에 보내졌으며 1개월 반 동안 전체 차량의 4분의 1만 운행됐다.

 

베를린 시민들은 대체 대중교통수단(전차·지하철·버스)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에스반이 유일한 교통수단인 경우가 많은 도시 외각의 주민들에게는 큰 고통이 따랐다. “여름 내내 1시간30분 먼저 집에서 나와야 했고, 오후 늦게는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지출도 늘어났고,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이고, 회사 상사의 야단을 맞아야 했다”고 카데베 백화점의 한 점원은 증언했다.

차량 4분의 3이 멈춰서다

이용객들의 화를 삭이기 위해 에스반 경영진은 기술 휴업 중인 기관사들을 인파로 뒤덮인 역 구내로 보내서 소통을 시도했다. “욕설과 분노의 폭발, 그때는 정말 창피했다. 과거 누가 나에게 이와 비슷한 상황이 언젠가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1920년대부터 최근까지 베를린의 에스반은 전국에서 가장 확실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차량의 4분의 3이 움직이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충격이었다”고 케른첸은 회고했다.

대혼란의 효과는 엄청나서 정치 지도자들도 허둥댔다. 아침 그로스만 교통부 장관은 독일의 수도가 메두사의 뗏목으로 변신하는 악몽에 사로잡혀서 “베를린은 서방 문명에 걸맞은 교통 환경을 언제나 다시 되찾을 것인가?”(1)라고 탄식했으며, 베를린시 대변인 리하르트 몽은 “도이체반의 경영진이 이러한 돼지우리를 청소할 수 있는지 지켜보자”(2)고 외쳤다.

에스반이 ‘돼지우리’로 변모하기까지는 세밀하게 의도된 정치 과정이 필요했다. “연방정부가 도이체반을 민간 기업으로 변모시키기 시작한 1994년이 모든 것의 시초였다. 당시 지도자들은 독일철도를 민영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뿐이라고 장담했다”고 철도교통 시민단체 베를린 대변인 카를 바스무스는 기억했다. 1999년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는 자신의 친구 하르트무트 메도른을 도이체반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혔다. 에어버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독일철도 개혁의 선봉장이 됐다. 10년에 걸쳐 3만9천 명의 철도공사 직원을 1만9천 명으로 절반 남짓 줄였다.

독일 언론인 귄터 발라프가 최근 출간한 책에는 이 회사에서 사장의 계획에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쫓기거나 해고된 간부들의 다양한 증언이 기록돼 있다.(3) 철도공사 자회사인 도이체반 인력회사가 비협조적인 직원을 내쫓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됐으며, 내부에서는 이 회사를 “무국적자·무권리자 사무소”로 부르기도 했다. 정리해고에 발맞춰 고위 임원급의 임금은 급등했다. 중요 회의 때마다 자신의 친위대를 대동하고 회의장에 나타나는 메도른 사장은 참여한 간부들에게 “우리는 회사의 목표에 동의한다”는 문구가 적힌 커다란 포스터에 사인할 것을 요구했다고 해고된 한 공사 간부는 발라프에게 증언했다.

이렇게 대규모 구조조정을 완료하면서 도이체반은 증시 상장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정치권력은 이를 축하해주었다. 2005년 기민당과 사회당은 연합정부 합의안에서 철도공사의 민영화 계획을 명시했다. 바이에른주 경제·교통부 장관 오토 비스호이는 메도른을 위해서 결정적 역할을 맡았다. 그의 헌신에 대해 정확한 보답이 제공됐다. 민영화 계약서의 도장도 마르기 전에 비스호이는 주 장관직을 떠나 도이체반의 ‘정치관계’ 책임자라는 예민한 직책을 맡으면서 도이체반 임원이 됐다.

CEO로 변신하는 교통관료들

흔히 노동조합을 자본에 대한 ‘역권력’으로 인식하지만 2개의 주요 철도노조인 트랜스넷과 DGBA는 도이체반의 민영화를 지지했다. 트랜스넷의 위원장 노베르 얀센은 “착한 국가와 나쁜 자본이라는 대립적 시각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4)고 수없이 되풀이했다. 메도른 팀은 그에게 맞춤식 전향을 제공했다. 2008년 5월, 얀센은 노조를 탈퇴한 뒤 도이체반의 인사 책임자 자리를 얻고 연봉 140만 유로를 받는 임원이 됐다. 그는 “대규모 노동조합을 이끄는 일이나 대기업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거의 비슷한 업무”라고 말한다.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예를 들면 기관사에게 기관차 운전뿐 아니라 객차 청소도 약간 하면서 소규모 정거장에서는 여러 잡일도 거들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구상하고 있다”고 <빌트 차이퉁>(2008년 5월 16일자)에서 설명했다.

민영화 집행자가 보기에는 모든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철도운송의 미래에 대한 공공토론으로 시민을 걱정시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2005년까지는 오직 직업 정치인만이 무엇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심지어 연방정부의 도이체반 민영화 계획이 만천하에 드러난 2006년에도 언론이나 어디서도 아무 토론조차 없었다”고 바스무트는 지적했다. 사민당 당원들조차 2007년 10월에 열린 당 전당대회에 가서야 이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얻기 시작했다. 전당대회 투표에서 당원의 70%가 민영화를 반대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이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2008년 5월 30일, 연방의회 사민당 의원들은 도이체반을 지주회사로 바꾸는 법안에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졌다. 승객운송은 이제 해외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DB 모빌리티 로지스틱스’라는 새 이름의 회사가 맡게 됐다. 이로써 2008년 10월 27일로 예정된 증시 상장이라는 거사를 위한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다.

그런데 시원한 샴페인이 준비될 무렵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축제 분위기를 망쳤다. 증시 상장 2주 전, 대폭락 장세를 목도한 정부는 황급히 상장을 연기했다. 사민당 재경부 장관 페어 슈타인브뤼크와 도이체반 CEO 메도른은 공동성명에서 “경기가 성공적인 증시 상장을 허락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동할 것이다. 길은 이미 정해졌다”고 발표하면서 훗날을 기약했다.

그러는 동안 철도 승객들은 철도 안전이 점점 악화되는 것을 경험했다. 2008년 7월, 쾰른역에서 이체(ICE) 고속전철이 탈선했다. 차축이 부러지면서 일어난 이 사고로 인해 이체의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당황한 연방철도사무국(EBA)은 도이체반에 관리 소홀을 피할 수 있는 조처를 강구하도록 명령했다. 메도른 사장은 오히려 화를 내면서 사무국을 비난했다.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무국 공무원들이 “언론을 통해 사건을 키운다”(5)는 것이었다. 양쪽의 갈등은 격화됐고 결국 법정 분쟁까지 간 끝에 법원은 철도사무국의 손을 들어주고 도이체반에 이체 차량 검사를 더욱 자주 실행할 것을 명령했다.

감독관청 시정명령도 거부

 

▲ <베를린>, 1984-조루즈 루스

그러나 교통부 산하의 철도사무국은 도이체반의 ‘지옥의 열차’를 중지할 수단이 없었다. 에스반의 경우처럼 도이체반 자회사들의 급속한 교통 서비스 저하도 막을 수 없었다. “이미 2~3년 전부터 서비스의 질이 분명히 낮아지고 있다”고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도시 운송망(VBB) 사무국장인 한스 베르너 프란츠는 지적했다. 대중교통을 조직하고 열차의 운행 시간과 승객 안전을 감독하는 지자체 관할 기구인 VBB는 자신의 무기력함이 얼마나 큰지를 이 기회를 통해 가늠하게 됐다. “열차 지연, 아무런 이유 없는 운행계획 취소, 비밀리에 열차에서 객차 두 량 빼내기 등의 사례를 확인했어요. 2007년 봄, 안할텐 역사에서는 제동장치 고장으로 열차가 탈선할 뻔했습니다. 모래 분사기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에스반은 속도를 시속 100km에서 80km로 줄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에스반은 우리에게 이러한 기술적 문제를 보고하는 것을 거부했어요. 보고할 의무가 있는데도 말이죠.”

 

같은 시기에 에스반의 영업이익은 2004년 900만 유로에서 2008년 5600만 유로로 급등했다. 망연자실한 프란츠는 하늘만 쳐다보았다. “이렇게 벌어드린 돈으로 에스반 경영진은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아니 최소한 서비스 질의 악화를 막는 데도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에스반은 본사에 한 푼이라도 더 갖다 바치죠. 본사는 항상 더 많은 이익을 요구하고요. 2010년 도이체반 경영진은 에스반에서 무려 1억2600만 유로를 뜯어가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시는 매년 지역 대중교통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에스반에 2억5천만 유로를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놀라 자빠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 베를린 시민은 도이체반의 증시 상장을 위해 자신도 모른 채 세금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에스반과의 계약을 재협상해야 한다. 물론 에스반은 자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테니 계약서를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장담할 것이다. 이 계약서는 불행하게도 만료일이 2017년 12월까지다.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며 프란츠는 재계약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현재까지 연방정부는 도이체반 민영화 예정일을 새로 정하지 않고 있다. 에스반 운행 차질로 베를린 교통이 대혼란에 빠지면서 민영화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도른은 이제 민영화 문제에 관심을 끊었다. 지난 3월, 490만 유로의 퇴직수당을 선물받고 도이체반을 떠난 그는 현재 모건스탠리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후임 뤼디거 그루베는 지난 7월 러시아 철도회사와 상호지분 참여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낙관적인 미래를 펼쳤다. 에스반의 경영진은 이 협정에 대해 논평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열차 상태를 확인하느라 매우 바쁘다”며 홍보책임자는 이해를 구했다. 언론 담당이 열차를 고친다고? 베를린 시민은 언제나 근심을 덜게 될까. <<원문 보기>>

글·올리비에 시랑 Olivier Cyran

번역·김태수 asticot@ilemonde.com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각주>

(1) <파이낸셜타임스 독일판>, Hambourg, 2009년 9월 9일.

(2) <슈피겔>, www.spiegel.de, 2009년 9월 10일.

(3) Günter Wallraff, <Aus der schönen neuen Welt>, Kiepenheuer & Witsch, Köln, 2009.

(4) <차이트>, Hambourg, 2008년 9월 18일.

(5) <쥐트도이체 차이퉁>, 2008년 8월 15일.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