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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공공관리론’의 함정
영국 ‘신공공관리론’의 함정
  • 제롬 투르나드르 플랑크 |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 승인 2009.12.0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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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ssier] 국가의 변이
관료 기능 축소한다며 관리·감독 조직 오히려 확대
자율 명분 내세워 국가 위기관리 책임 개인에 전가

작은 국가, 공권력 개입의 최소화, 관료제의 경직성 타파…. 1980년대 초부터 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공공 부문 ‘혁신’을 추진하면서 떠오른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의 모토다. 신공공관리론의 주요 논리는 그야말로 퍼즐(1)과 같다. 여기에는 우선 국가가 이성적 행위 주체로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선’이라는 개인주의적 이론을 비롯해 기업의 전문 경영능력,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곳곳에서 취합한 우수 관리 사례 등이 뒤섞여 있다. 신공공관리론의 가장 열정적인 선구자는 마거릿 대처 시절의 영국이다. ‘철의 여인’의 제1기 정부 시절 산업부 장관이던 조지프 키스를 주축으로 한 몇몇 정치인과 경제연구소·정책연구센터 같은 일부 사설 싱크탱크의 지지에 힘입어(이들 기관 출신 연구자 몇몇은 1979년 보수당 승리 이후 내각에 기용됐다), 신공공관리론이 주창하는 논리 중 일부가 당시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도 했다.(2)

<<원문 보기>>

국가 내 평가제와 계약제의 도입, 경쟁 촉진, 공공서비스 내 민간 경영기법 도입(3), 합리적인 재정지출, 중앙정치 권력의 강화와 공무원의 능력 확대 등을 주창한 신공공관리론은 대처(1979~90)와 존 메이어(1990~97) 집권 시기, 영국의 행정제도 개편과 새로운 시도에 확고한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중앙정부 권력의 강화

 

▲ <오를레앙>, 1984-조르주 루스
국립감사실 신설을 예로 들어보자. 이는 모든 공공 부문 지출이 비용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도록 감독하는 기관이다. 공공서비스 부문 성과지표를 표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무관리개혁’, 행정부의 주요 부문을 독립적이고 유연한 수백 개의 소규모 기관들로 대체한 ‘넥스트 스텝’ 프로그램도 신공공관리론의 적용 사례다. ‘넥스트 스텝’ 프로그램은 대처리즘에 대한 열성 옹호자들로부터 무능력과 구시대의 산물로 비판받아온 고위공직자들의 권력에 대한 집중 공격을 담고 있었다. 브루노 조베르의 <유럽 신자유주의의 전환>(1994)과 루돌프 클레인의 <영국: 경제 쇠퇴에 대한 공공관리에서 민영화까지>에 따르면, 일부 공위공직자들은 이런 개혁에서 제외되었다.

 

공권력 자체뿐 아니라, 공권력의 범위에 대한 문제제기는 중앙정부 권력의 강화를 수반했고, 이는 지방정부를 비롯한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약화를 가져왔다.

언뜻 보면, 신노동당은 집권 후에도 공권력에 대한 이런 시각을 문제 삼지 않았다. 1997년 5월 이후 정부의 발표나 행보에는 성과관리와 ‘학업 부진아’를 감시하고 제재하는 것에 대한 맹신이 잘 나타나 있다.

오랫동안 토니 블레어가 가장 좋아하는 사회학자라는 지위를 누렸던 앤서니 기든스는 2003년 “국가 개혁의 제3의 길이라는 아이디어에는 신공공관리론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4) 사실, 신노동당 집권기에 생겨난 다양한 위원회들은 공공서비스를 좀더 민주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했다. 이런 기관들은 시민이 공공서비스의 품질 관리에 참여할 수 있게 했는데, 이는 단순히 비용 중심이 아닌, 사회적·환경적·질적 평가에 대한 기준이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시장에 대항하는 자는 시장에 의해 제재당한다”는 시장의 기능에 대한 블레어파의 믿음은 ‘현대화’에 대한 지지세력 내에서조차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런 믿음은 여러 차례에 걸쳐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2002년 재정파탄에 이른 민간 철도기업에서 철도 시설을 구해낸 ‘국가 구출작전’(합리화라는 용어를 피하고자 이런 표현을 썼다)이 좋은 사례다.

기든스를 애호한 블레어

신공공관리론은 토리당(보수당)의 선거 패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2000년대 초반 신공공관리론은 오히려 더욱 보편화됐다. 노동당이 흔히 공무 담당자들을 가리킬 때 썼던 ‘공무원’, ‘행정관료’, ‘실무자’라는 용어가 ‘지도자’, ‘전략수립가’, ‘계약인’, ‘경영관리자’, ‘구매자’라는 용어로 대체되는 현상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5) 정부 좌파의 주요 대변인들이 경영전문대학원식의 논리에 영향을 받아 성과평가와 투명성, 관리·감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신공공관리론의 보편화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런 방식은 중앙과 지방의 행정관료들이 자신의 행위와 결과를 끝없이 정당화하도록 몰아넣는다. 성과목표 및 성과지표의 상승과 이를 추구하도록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러니하게도 신공공관리론의 목표였던 관료 기능의 축소가 아닌 오히려 확대를 가져왔다.

때때로 블레어 정부는 신공공관리론을 도입한 보수당보다 오히려 신공공관리론을 확대시키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OECD의 기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블레어 정부는 학교와 병원의 경영 자율화 정책을 넘어, 공공서비스에서도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시민은 향후 (총리 직속 ‘공공부문혁신처’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비자’가 되지만, 공직자들은 여전히 간섭과 통제를 중요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복지국가의 존폐는 향후 서비스 및 서비스 수혜자(공공 및 민간)의 다변화에 좌우될 것이다.

블레어 총리는 2002년 개혁 발표 당시 “공공서비스는 환자, 학생들, 보행자 및 일반 시민의 필요에 따라 제공되는 것이지, 서비스 제공자의 기호에 따라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며, 그 밖의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블레어 지지자들의 말에 따르면, 보건과 교육에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은 서비스 사용자들이 자녀를 위해 학교를 선택하거나, 원하는 치료체계(예를 들어 환자가 원하는 치료 방식이 아닐 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내부 경쟁뿐 아니라 민간 서비스와 경쟁하게 되면서, 행정부에 경쟁 심리를 유발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공서비스의 질적 개선이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개인화하고, 기존에 국가가 담당해온 위기관리를 점차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원문 보기>>

글·제롬 투르나드르 플랑크 Jérôme Tournadre-Plancq
주요 저서로 <좌파와 우파를 넘어, 영국의 제3의 길?>(파리·2006) 등이 있다.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각주>

(1) 필립 베제스, <국가의 재창조. 프랑스 행정부의 개편(1962~2008)> 프랑스 대학출판부, 파리, 2009, p.3.

(2) 이러한 조짐은 이전에도 발견된다. 1968년 노동당 정부가 발행한 보고서는 이미 공공서비스의 낮은 생산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3) 드니 생 마르탱, <신 관리주의 국가의 성립>, 옥스퍼드대학 출판부, 2000.

(4) 앤서니 기든스의 <신진보주의>와 <진보주의 선언>에 수록, 폴리티출판, 캠브리지, 2003, p.14.

(5) 존 클라크·자넷 뉴먼 공저, <관리국가>, Sage, 런던, 1997,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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