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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 논란, 이제 ‘다름’보다는 ‘같음’에 주목할 때
메갈리아 논란, 이제 ‘다름’보다는 ‘같음’에 주목할 때
  • 정혁
  • 승인 2016.09.30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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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여2>, 2016 - 권재원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한국의 여성혐오 논란은 언젠가부터 논의의 진전 없이 그저 소모적 논쟁만 계속 반복되는 듯하다. 원래 페미니즘, 여성혐오, 메갈리아 이 세 가지는 각기 다른 층위의 문제인데, 어찌된 게 지금은 한데 마구 뒤엉켜 버렸다. 사실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도 있고, (여성혐오의 다층적 얼굴(1)을 고려하면) 내면화된 여성혐오를 지닌 메갈리안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마치 메갈리아의 활동 방식을 반대하기만 하면 여성혐오를 저지르는 것이고, 무조건 메갈리아를 옹호하면 그게 곧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처럼 여기는 단순하고 1차원적인 낙인과 배제의 논리가 현재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다. 이 과정에서 유탄을 맞은 정의당이나 시사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망연자실한 채 지금도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다. 소위 진보정당이라 불리며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정치의 한 축을 면면히 지켜온 정의당도 (실체가 모호하지만) 양쪽에서 동시에 비판을 받으며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고, 국내 주간지 발행부수 1위이며 창간한 지 만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사인 역시 유래 없는 대규모 절독 사태를 맞고 있다.
한국 정치와 언론에서 나름 ‘스타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 정의당과 시사인이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하니, 다른 이들은 여성혐오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흔히 말하는 주류 정당들은 아예 공식적으로는 다룰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대다수 언론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한국기자협회보 “업계 전반에 ‘메갈리아’ 이슈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적극적인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른 셈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점차 ‘광장’에서는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려 하지 않고, 그저 인터넷 게시판과 SNS 상에서 상대방을 향한 산발적인 ‘조리돌림’만 반복되는 상태다. 양측 사이의 진지한 소통은 거의 단절됐고, 끼리끼리 모여서 살풀이 하듯이 분노를 쏟아내기만 할 뿐 이런 답답한 상황을 변화시킬 출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실체가 불분명한데, 섀도복싱은 계속된다

여성혐오 논란에서 항상 대명사처럼 등장하는 ‘메갈리안’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메갈리아 사이트는 (시인 노혜경이 말했듯이) 사실 지금은 ‘유령사이트’나 마찬가지다. 마지막 공지가 작년 말에 올라왔고, 게시글의 수 자체도 그리 많지 않으며, 조회수나 댓글수도 다른 대표적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여러 측면에서 입장을 달리하는 ‘워마드’와의 분리로 구성원이 달라졌고, 주 활동 무대를 페이스북으로 옮기며 소위 말하는 ‘미러링’에 대한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마저도 여타 페이스북 인기 페이지에 비하면 크게 활성화되어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2015년 중반에 탄생한 메갈리아나 그 뒤에 이어진 페이스북 페이지 등에서 게시된 글들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과연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었을까? 이거야말로 정말 ‘침소봉대’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일단 역사가 별로 오래되지도 않아서 절대적인 양 자체가 많지 않을뿐더러, 이곳에서 생산된 게시물들도 극단적인 몇몇 사례가 계속 웹상에서 똑같이 복사되어 유통되고 있을 뿐(그래서 옹호하는 쪽이든 비판하는 쪽이든 예시로 드는 사례가 거의 비슷하다) 특별한 콘텐츠가 많지도 않다.
다만 기존에 남성들이 하던 행위를 여성들이 미러링 했다는 점이 큰 주목을 받았고, 이게 한국 같은 차별적 사회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런 활동 자체가 어떤 변화의 상징처럼 느껴졌으며, 일종의 혐오할 권리가 더 이상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걸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소위 말하는 진보언론이나 지식인들도 바로 이런 부분에 의미부여를 했고,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문제를 환기시키는 데에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따져보면 ‘앙팡 테리블’은 거기까지였고, 앞서도 말했듯이 현재는 실체가 모호하다(물론 메갈리안과 싸우는 이들의 실체도 딱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소수의 직접적인 관련자들을 빼고 나면 딱히 메갈리안이라고 할 만한 정체성이 확실하지도 않고, 웹사이트나 페이스북 페이지의 활동성을 보면 그렇게 광범위한 호응을 받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비교한다면 워마드가 상대적으로 선명성은 더 강하고, 성격은 다르지만 일베가 훨씬 더 인기가 높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성혐오 논란에서 언제나 메갈리안을 얘기하고, 어쩌면 이게 논의의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일 수 있다.
이는 실체가 불분명한 메갈리안을 양측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부분만 바라보면서 논쟁을 벌이는 셈이다. 한쪽에서는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문화 및 제도를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예로 들며 옹호하고, 다른 쪽에서는 미러링의 근본적인 한계와 성 소수자 비하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지적하며 비판한다. 결국 여성혐오 문제의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서로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상대방과 싸우기만 바쁜 형국이 됐다. 게다가 여성혐오를 다루는 데 있어서 신중하게 접근하기보다는 그저 성대결 국면으로 몰아가며 트래픽을 채우거나(주로 보수매체의 선택), 아니면 최소한의 균형감각도 없이 무턱대고 메갈리안 찬양 일색으로 지면을 도배한(주로 진보매체의 선택) 언론으로 말미암아 이 문제는 더 개미지옥으로 빠져버렸다.

국내 페미니즘 운동의 공백과 메갈리안

그렇다면, 사람들은 여성혐오 문제를 논하면서 왜 자꾸 메갈리안에 얽매일까? 그 이유는 기존의 국내 페미니즘 운동이 사실상 공백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메갈리안을 비판한 이영희 사회연대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국내 페미니즘에 관해 감히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린다.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했던 90년대에 여전히 머무른 채로,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과 새로운 세대출현을 간과하고 과거의 모호한 여성해방적 개념, 가부장제구조 타파라는 관성에 젖어 있다고 말이다.”(2)
또 메갈리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노혜경 시인 역시 이런 말을 했다. “21세기 2016년 한국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렇게밖에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건 전형적인 페미니즘 운동이다. 지금 여자들이 억울해서 미치겠는데 뭔가 여자들끼리 모여서 해보자고 했을 때 그들이 어느 사이트를 찾아가겠는가? 갈 데가 메갈리아밖에 없다.”(3)  한마디로,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든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든 둘 다 공히 국내 페미니즘 운동의 실종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혐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분명히 뭔가를 해야만 하겠는데, 국내의 페미니즘 운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사람들은 마치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의 대표격인 듯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영희 대표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일베가 비난받듯, 메갈리아도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헬조선 ‘분노사회’에서 여성혐오를 저지르는 쪽이나 이를 미러링하는 쪽이나 둘 다 “욕하는 재미”를 뿌리치며 분노를 다스리기는 참 쉽지 않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을 막론하고 ‘공론화의 장’을 만들어야 할 임무를 전부 방기하고 있으며, 정치권 역시 골치 아프게 된 여성혐오 문제를 일단은 방치하고 있기에 상황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고질적인 이분법과 
이해하길 거부하는 정서

이 와중에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적으로 상대를 한남충, 메갈충이라고 규정하며 매일같이 반복적인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쯤에서 정의당 탈당 사태와 시사인 절독 사태를 다시 살펴보면 이 사안을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될 듯하다.
지금 정의당이 처한 상황을 보면 동일한 하나의 정당을 가지고 한 쪽에서는 ‘메갈당’이라고 욕하고, 다른 쪽에서는 ‘반여성주의 정당’이라고 비난한다. 누구는 탈당 사유로 ‘메갈리안을 지지해서’라고 말하는데, 또 다른 탈당자는 ‘여성주의를 부정해서’라고 한다. 사실 이런 현상은 여성혐오와 관련해 그나마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려는 다른 모든 이들도 요즘 똑같이 겪는 일이다. 하나의 의견에 대해 양쪽에서 완전히 반대의 이유로 비판하는 걸 도처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문제가 현재 한국사회에서 전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고 있다는 의미일 테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쪽 편이냐 저쪽 편이냐를 따져 물으며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 아직도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시사인 절독사태에도 퍽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 시사인은 논란이 많은 기사나 특정세력이 원치 않는 기사도 수없이 다뤘지만, 이번처럼 심각한 위기에 빠진 적은 없었다. 고작 특집기사 몇 개로 순식간에 ‘메갈언론’이 되어버린 시사인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한국언론(특히 진보매체)이 그 동안 알게 모르게 활용해온 일종의 ‘진영논리’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측면도 있다. 최근 한국기자협회보가 지적한 바대로(4),결국 언론에까지 스며든 고질적인 이분법(이는 언론 종사자와 독자 모두 해당된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한편, 여성혐오 논란에서는 특히 ‘상대방을 이해하길 거부하는 정서’가 광범위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자신이든 남이든 어떤 단어로 규정하는 건 정체성을 알기 쉽게 표현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간을 한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맹점도 있다. 상대방을 메갈충이나 한남충 등으로 규정해버리고 이들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인 충돌을 경험하다 보면, 아예 이해를 위한 노력 자체가 저하될 수 있다. 그래서 필자가 실제로 ‘내가 한남충이다’라는 제목으로 다분히 의도적인 도발의 글을 온라인매체에 올렸을 때에도 가장 인상적인 댓글이 바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냥 이해하기가 싫다”는 거였다(상대방을 메갈충으로 규정하는 이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도 있는데, 이들은 양쪽 다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상대방에 대한 심층적 이해에 둔감한 듯하다.
이미 여성혐오 논란의 피로감은 상당한 수준으로 쌓였고, 사람들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싸움 자체에 몰입하거나 아니면 아예 방관하는 자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의 이름이 ‘여성혐오’인 까닭에 여성들은 그저 체념하는 경우도 많을 테고, 남성들 역시 건강한 이성관계를 포기한 채 장기간 단절을 겪을 수 있다. 여성혐오 문제에 발목이 잡힌 진보정당이나 진보언론도 논의의 진전 없이 그저 낙인과 배제로 인한 피해만 커지는 상태가 지속되면, 어느 순간 자기검열과 기계적 중립에 빠질 수 있다. 그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 없이 반목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런 비극적 상황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과정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는 점에 주목해야

이제까지 서술한 모든 난점에도 불구하고,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비판하는 사람이든 둘 다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는 결론이 동일하다는 점을 나는 주목한다. 메갈리아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노혜경은 “2030 남자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라며 “여성들도 그 세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메갈리아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남녀들이 서로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좀 더 대화를 할 필요가 있고, 젊은 세대들이 손 좀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메갈리아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이영희 역시 “여성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남성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연대해서 싸워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고 말한다. 결국 두 사람의 결론은 ‘상호이해’와 ‘연대’의 필요성으로 동일한 셈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기존 국내 페미니즘 운동의 공백’으로 드는 것도 비슷하다. 원인도 비슷하고 결론도 동일한데 그 중간에 메갈리아를 둘러싼 과정에 대한 입장이 다른 것이라면,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메갈리아 논란은 ‘다름’보다는 ‘같음’에 주목해야 할 때다. 메갈리아를 둘러싸고 지금까지는 한남충, 메갈충이라며 서로 반목했지만 앞으로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우리 모두가 상호 이해와 연대를 향해 같이 나아가야 할 시점인 것이다.
나는 ‘한남충’이다. 그렇지만 미래에는 헬조선이 좀 더 성평등한 나라가 되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 메갈리안과도 손을 맞잡고 사회의 진보를 향해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여성혐오는 절대 자랑이 아니며, 페미니즘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신장시키는 이념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싸워야할 것은 단순히 남자나 여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지배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한 권력과 자본의 야만성이다.  



글·정혁
시사문화 블로그(The Story of ART)를 운영하며,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1) 강남순(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여성혐오'의 다층적 얼굴들-역삼동 공용화장실 살인사건>, “남성만이 여성혐오사상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도 여성혐오사상을 내면화한다”, 2016년 5월 19일.
(2) 이영희, <뭐, 메갈리안이 페미니스트라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9월호.
(3) 노혜경, <메갈리아 해방전쟁>, 부산 특강, 2016년 9월 7일.
(4) 한국기자협회보, <‘메갈 언론’ 낙인 찍고…기자 신상털이에 인신공격도>, “이번 사태는 현 미디어 지형이 딛고 선 진영논리의 자장 안에서 더욱 증폭됐다. ‘일베’와 구분되는 정치 성향을 보인 남초 커뮤니티가 절독대상으로 꼽은 소위 진보 매체들에 보이는 반응은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에 가깝다. 이들에게 언론은 ‘내 편’이고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고 실현하는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언론 역시 보도태도와는 무관하게 구독유치와 마케팅 등 과정에서 이런 진영논리를 현실적인 조건으로 활용해왔다. 시사인만해도 이 기간 구독과 관련해 ‘주진우 기자’를 거론한 문자를 독자들에게 보낸 바 있다.”, 2016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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